‘딸기’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 집에 기르던 개다.

형제가 없는 이 아이는 개를 기르고 싶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분이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기 힘들다며 이 아이에게 개를 선물로 주셨다. 엄마는 개 기르는 것을 썩 달가워 하지 않아  사양하고 싶어했지만 아이는 엄마가 안 계실 때 개라도 있으면 가족과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개를 데리고 왔다.


  그런데 개를 데리고 온 후 아이보다 엄마가 그 개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개가 아이 엄마를 자신의 엄마인양 따랐기 때문이다. 아이의 엄마는 엄마를 두고 온 어린 개가 가여워 정이 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리 막내‘라고 할 만큼 좋아했다. 그런데 그 개가 얼마 전에 죽었단다. 그것도 아이 엄마의 실수로.


  개가 죽었다는 하루 전날 서점을 갔다가 아이와 엄마를 우연히 만났다. ‘딸기’를 데리고 서점에 책을 사러 왔다가 나를 만난 것이다. 오랜만에 ‘딸기’를 보고 내가 그랬다.

  ‘어머, 딸기도 왔네. 안녕.’

  그랬더니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쪼르르 달려왔다. 그런데 그게 딸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책을 사고 나오는 길이라 먼저 서점을 나섰고, 나중에 들어왔던 아이와 엄마는 나보다 조금 뒤에 책을 사고 나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오다가 계단에서 그만 사고를 당했단다.  

 

  이 이야기를 한 주가 지난 후에 아이와 엄마께 들었다. 개를 보호하려다가 오히려 개를 잃게 된 엄마는 일주일 내내 혹독하게 앓았다. 자신의 잘못으로 개를 죽게 했다는 자책감에. 계단에서 굴러 자신의 다리도 피멍이 들은 것도 며칠이 지나서야 알았단다. 함께 수업하는 아이들이 딸기의 안부를 묻자 아이는 ‘딸기는 다쳐서 병원에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눈물을 쓰윽 훔쳤다. 아이도 상처가 아주 깊었다. 다친 개를 안고 병원에 가는 길에 자신의 품속에서 죽은 개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고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짐승에게 너무 깊은 정 주지 말라고’

그런데 가족들에게 상처를 받을 까봐 가족들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는 사람이 없듯이 개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런말은 의미없다. 


  아이 엄마의 친정어머니께서 딸기가 죽었다는 소식을 얼마전에 듣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꿈자리가 계속 뒤숭숭 하더니 네가 많이 다칠 것을 딸기가 대신 변을 당한 모양아다’

  그 말을 들은 아이 엄마는 딸기에게 더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다.  살아서 주인에게 기쁨을 주고, 주인이 당할 ‘화(禍)’를 대신 당하고 목숨을 잃었다니 그 슬픔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딸기가 아이와 엄마의 기억 속에 가슴 아픈 기억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지금도 '금방이라도 딸기가 달려올 것 같은 느낌'이 시시때대로 든다는 아이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목이 메인다 .

  ‘부디 하늘나라에서 딸기가 00이네 가족과 같은 분들 만나 행복하게 살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