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천 박물관에서 본 눈높이 교육-

 

  ‘또 하나의 도구 골각기’ 전시회를 보러 복천 박물관에 갔다. 간 날이 금요일, 오전이었던지라 부산 시내에 있는 유치원, 어린이 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견학을 많이 와 박물관 앞 쉼터는 시끌벅적했다.

  전시실 안에도 유물들을 둘러 보는 아이들 줄이 끊이지 않았다. 4살 정도의 어린 아이부터 7살 정도의 아이까지 선생님 뒤를 따라 유물들을 보며 가고 있었다. 견학 오기전에 박물관에서 지켜야 할 일을 교육 받은 아이들은 한참 개구쟁이 짓을 할 나이인데도 제법 의젓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멀찍이 떨어져서 사방을 둘러보다 인솔 교사들이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철기 시대 유물들(농기구들)이 있는 곳에서 한 선생님은 예닐곱살 쯤 돼 보이는 아이들을 향해 ‘이건 철기 시대에 쓰던 도구인데....’ 라고 설명을 했다. ‘철기시대’,‘도구’ 같은 낱말을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지. ‘이건 쇠로 만든 건데 농사지을 때 쓰거야. ..... ’라고 설명해 주면 좋을 텐데...

  그 다음 선생님은 그냥 아이들이 이끌고 쓰윽 훑어보며 지나갔다. 아이들도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며 그냥 따라갔다. 박물관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목적이 뭔지... 
  그 다음 선생님은 한 아이가 “저건 뭐예요? 선생니임~ 저건 뭐예요?” 끊임없이 묻는데도 핸드폰 메시지 확인하느라 아이의 질문을 무시하며 지나갔다. 아이도 알기를 포기하고 그냥 따라갔다. 
  .....

  그런데 거의 마지막 무렵에 오신 한 선생님은 달랐다. 한 아이가 말 가리개, 말 갑옷 등을 걸친 말앞에서 말머리 가리개를 가르키며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저게 뭐예요?”

  그러자 그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얘들아, 옛날에 장군들은 뭘 타고 전쟁을 했을까?”

  “말 타고 했어요.” 
  “그런데 장군이 탄 말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 장군이 죽어요.전쟁에 져요”

  “그렇지. 옛날에는 전쟁할 때 화살을 쐈거든. 말이 화살을 맞으면 죽겠지.”

  “그래서 저렇게 말 머리 다치지 말라고 쇠를 만든 가리개를 씌운거야.” 

  .... 


  아이들이 재잘재잘 질문을 하면 선생님은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나름대로 아이 눈높이에 맞춰 성의있게 대답해 주었다. 보고만 있어도 흐뭇했다. 그 선생님께 배우는 아이들은 참 복 받은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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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베토벤이 말년에 작곡한 곡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으로 손꼽히는 ‘9번 합창 교향곡’ 탄생 뒤에 숨겨진 비밀을 그럴듯하게 상상해서 만들었다.

 

  말년의 베토벤은 청력을 잃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불행하게 살다갔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그 와중에 어떻게 ‘합장 교항곡’과 같은 명곡을 작곡해서 남겼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제9번 합창 교향곡 초연 당시 베토벤이 감격한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우뢰 같은 박수쳤지만 그것을 듣지 못하자 무대에 있던 한 여성이 올라와 그를 관중들이 있는 쪽으로 향하게 하여 응답을 하게 했다는 일화를 바탕으로 합창 교향곡’이 탄생한 비밀을 상상한 것이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영화를 볼 때도  그림 한 점을 보고 어떻게 이런 기막힌 상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영화 시나리오를 보면서도 그랬다.  어떻게 짧은 일화 한 토막을 읽고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었는지!

 

  베토벤 역을 맡은 에드 해리스 연기가 탁월했다. 에드 해리스가 전생에 베토벤이었나 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만큼.

  베토벤은 작곡가인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자신을 신과 동격으로 생각했다. 동굴에 신과 자신이 있다면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곰 두 마리가 한 동굴 속에 있는 것이라고 했으니까. 그는 음악을 신의 언어라고 했다. 그러면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은? 신의 언어를 알아듣고 그것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신의 언어를 들려주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는게 아닌가! 베토벤이 이 말을 했을 때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베토벤이 안나 홀츠에게 자신의 머릿속에는 소리로 가득차 있다고 했는데 신이 베토벤을 가장 신뢰한 건가. 베토벤이 자신의 언어를 사람들에게 가장 잘 전해줄 것 같은 사람이므로 그에게 끊임없이 말을 한 건가... 그러지 않고야 어떻게 ‘합창’과 같은 음악들을 만들었겠는가!‘ 이러면서. '

 

 그런데 신과 가까운 사람들은 대분분 참 불행한 삶을 살다간다. 베토벤 뿐만 아니라 고흐나 이상 같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예술가들 대부분이 그랬으니까. 사람들은 그들을, 그들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함에서 오는 고독감을 평생 느끼며 살아야 했고, 현실 보다 더 높은 차원의 영역을 넘나드느라 궁핍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만약 베토벤 곁에 정말 안나 홀츠 같은 여성이 있었다면? 베토벤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영혼의 소리까지 감지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죽을 때까지 곁을 지키고 있었으니.

 

 

  그런데 나는 베토벤이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려 깊고, 지혜롭고, 똑똑하고, 예쁘고, 거기다가 헌신적이기 까지, 그러나 자존심을 잃지 않는 품위있는 여인이었던 홀츠가 베토벤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혼자 쓸쓸하게 늙어가고 있었으니.그렇다고 자신의 재능(그녀는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었다)을 활짝 꽃 피운 것도 아니고. 물론 덕분에 몇 백년이 흐른 지금도 신의 언어를 듣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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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였던가? 제인 오스틴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오만과 편견’을 본 것이. 그때 그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리지가 작은 아씨들에 나왔던 둘쨋딸 조랑 참 많이 닮았네.’ 했었다. 그런데 제인 오스틴의 삶을 소재로 한 이 영화 ‘버커밍 제인’을 보니 리지는 제인 오스틴 자신이었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오만과 편견’을 많이 닮았다. 제인이 사랑했던 남자 리프로이는 ‘오만과 편견’에 나왔던 디아시와 참 많이 닮았다. 물론 오만과 편견에서는 리지가 편견을 걷어내고 디아시의 참 모습을 보고 결국 둘이 맺어지지만 이 영화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으로 끈을 놓지만.그리고 많은 재산을 상속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쓰는 극성스런 어머니가 나온다는 점도 비슷하다. 몰입하며 봤던 '오만과 편견'과는 달리 무덤덤하게 봤다.

  

제인 오스틴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많은 남자들이 제인에게 연정을 품었지만 평생 펜을 사랑하며 산 까닭은 무엇일까?

영화 속에서 제인은 사랑 하나만 있으면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가씨였다. 직업 좋고 많은 재산을 상속 받게 될 청년 그토록 구애를 했것만 삼촌의 도움없이는 학교도 다닐 수 없을 만큼 가난한 남자 리프로이를 사랑했다. 제인을 부잣집으로 시집보내고 싶은 부모는 당연히 반대하고, 리프로이의 삼촌 역시 반대를 한다.  둘은 아는 사람들이 없는 먼 곳으로 도망 가서 함께 살기로 한다. 그러나 둘은 연(緣)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가는 도중 제인은 리프로이 부모가 리프로이에게 보낸 편지를 우연히 읽게 된다. 


  ‘....보낸 준 돈 잘 받았다.
너로 인해 우리가 숨통을 튈 수 있었다.
너는 우리의 희망이다...’

그 편지를 읽은 제인은 주변의 반대를 무렵쓰고 먼 곳으로 가서 살아보았자 결코 행복할 수 없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콩까풀이 벗겨지고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리프로이는 가난한 가족을 버려두고 온 죄책감으로 괴로워할 것이고,그것을 바라보는 제인의 마음도 좋을리 없으므로. 결국 제인은 리프로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평생 독신으로 살아간다.


나는 제인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인 자신은 평생 펜과 함께 살면서 자기 쓰고 싶은 글을 마음 껏 쓰며 명성을 얻었고, 사량했던 남자 리프로이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서 수석 판사가 된다. 만약 사랑한다고 끝까지 끈을 놓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두 사람 모두 상처만 입고 다 파멸로 치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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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제비원 석불 보러 가는 길에 봉정사 가는 표지판이 보였다. 그래서 제비원 석불을 보고 내려와 일정을 바꿔 봉정사엘 갔다. 

 봉정사엔 볼거리가 많았다. 극락전,만세루,대웅전 같은 건물들도 볼 만하지만 봉정사 부속 암자 영산암에도 볼거리가 많았다.


(만세루, 봉정사 입구에 해당되는 건물로 2층 누각이다)


(대웅전,보물 제 55호다. 빛바랜 단청이 그대로 있어 보는 이들을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고금당과 3층 석탑)


(극락전과 3층석탑,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국보 제 15호로 지정돼 있다)

그리고 봉정사 입구와 절 주변 나무들도 독특하고 아름답다.


(봉정사 입구 밑동이 독특한 나무)


(대웅전 뒷편에 있는 부부인듯한 소나무)



(극락전 옆에 우뚝 서있는 가지와 잎이 풍성한  참나무,품이 아주 넓어보여 더운 여름날 왔으면 이 나무 그늘 밑에 한참을 쉬다 왔겠다)

 대웅전 안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하고 나오는 데 풍경소리가 들린다. 참 듣기 좋다. 바람이 많이 불어 물고기가 요동을 치는데도 졸갑스럽지 않다.



 물고기 연주를 즐기다가 극락전,고금당 석탑 같은 곳을 돌아봤다. 그런데 극락전 앞에서 사찰 건축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만나 그분들과 문화해설사 한분과 함께  봉정사를 다시 돌았다. 우리 나름대로 건물을 둘러볼 때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웅전 처마 안쪽에 그려놓은 비천상과 극락전의 공포와 복화반 모양으로 다듬어 지붕을 받치고 있는 목재.


(극락전 지붕을 받치고 있는 나무기둥이 꽃을 엎어놓은 모양'복화반'이다.)




(대웅전 처마에 있는 비천상)

 그리고 절 가까이 있는 암자 영산암에 들렀다. 공사중이라 우화루가 아닌 송암당 뒤편으로 들어갔다. 마당 가운데 흙이 가득 쌓여 있어 한옥 마당의 멋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영산암 마당의 운치를 느낄 수 없어 좀 아쉽다. 그러나 여기도 눈길을 끄는 것들이 많았다. 송암당 뒤편의 크기가 다른 세 개의 문, 응진전의 통마루, 그리고 응진전 오른쪽 측면의(보는 이를 중심으로) 재미있는 벽화... 
  크기가 다른 문을 단 건물을 보고 건축과 교수님이 그랬다.   “ 건축학적으로는 어색한 건물이라고.” 하지만 난  파격적인 멋이 느껴졌다.



(영산암 내 송암당의 뒷모습-문 크기가 왼쪽으로 올수록 작아진다.)

  대부분 마루는 크기나 모양이 비슷한 나무판을 대어 만들어 놓았는데 응진전 마루는 통마루(?)



(응진전 마루)

  그리고 응진전 오른쪽 벽화. 두 남자가 용을 어디론가 끌고 가는 그림도 있고, 사슴 두 마리가 사이좋게 서서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그림도 있고....사찰 벽에 그려놓은 그림은 그 사찰의 설화와 관련있다는데 어떤 전설이 어려있는지 궁금했다. 벽화를 보며 이리저리 상상해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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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하 2010-02-16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소개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감상, 좋은 여행합니다~~

다솜 2010-02-16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기분 좋습니다. 잘 다녀 오셔서 다른 분들에게 도움 될 만함 정보 올려주셔요
 

 

지난 7일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열리는 공연장에서  1시 30분에 하는  인도네시아 탈춤공연을 봤다.  공연프로그램은 4개였다.

 

매넉 댄스(MANUK DANCE). 공작새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춤이란다. 원래 12명의 무용수가 공연하지만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 2명만 와서 공연을 했다. 무용수들의 쓴 탈 뿐만 아니라 의상도 아주 화려하다. 수많은 동물들 앞에서 공작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토펭댄스(TOPENG DANCE).궁중무란다. 왕에게 보여주기 위함을 전제로 춤을 추었기 때문에 정적이고 느리다. 공주와 이웃나라 왕자의 사랑이야기란다. 공주를 사랑하는 또다른 남자가 있어 이웃나라 왕자와의 사랑을 방해한다. 하지만 방해꾼과 왕자가 결투 끝에 이겨 왕자와 공주는 서로 맘 놓고 사랑하게 된다. 우리 나라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삼각구도와 많이 닮았다.




 다지무르코 .(들리는 대로 적은 거라 명칭이 정확한지 확신 없음). 붉은색이 주조를 이루는 화려한 의상을 입은 무용수 2명이 부채를 들고 나와 춤을 춘다. 이 춤은 웬만한 인도네시아 인들도 보기 힘든 상류층만이 볼 수 있는 춤이란다. 무용수들이 입는 붉은색과 흰색은 성스러움을 나타낸단다.


 나하고하라카.(들리는 대로 적은 거라 명칭이 정확한지 확신 없음)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아주 재밌다. 거인으로 분장한 3명의 무용수와 한 남자, 그리고 꽃미남 무용수 한 명이 결투를 해서 결국 꽃미남 왕자가 이긴다.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무용인 모양이다.


 서민들이 즐겼던 우리 나라의 탈춤과 달리 인도네시아 탈춤은 궁중 연회를 위해 추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무용수들의 의상도 화려하고 궁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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