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군 개천면에 있는 옥천사엘 갔다. 사천읍서 친구와 만나 큰이모가 사는 정동 마을도 지나고 외갓댁이 있었던 상리도 지나 갔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마다 오갔던 상리를 지나니 낯선 길들이 이어진다.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한참 달려 옥천사에 도착했다.

 옥천사는 의상조사가 신라 문무왕 때 세운 화엄십찰 중에 하나로 정유재란 때 불에 타 폐허가 된 것을 인조 17년에 중창을 시작했다고 한다. 폐사지로 남을 뻔한 이 곳에 지금과 같은 건물들이 남아 있는 까닭은 학인대사가 이 근방을 지나가다 대둔리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절터를 현몽해 주었단다. 이튼날 신인이 가르쳐 준 곳을 찾아와 보니 과연 절터가 있어 중창을 시작했다고 한다.


(옥천사 천왕문)

천왕문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다양한 표정을 읽을 수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맨밑 둥치 오른쪽에는 원숭이가, 가운데는 쭈글쭈글한 주름이 잡힌 두꺼비가, 그 옆 오른쪽은 입을 쩍 벌린 사자 같은 모습이다.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대웅전은 보이지 않고 너른 마당가에 길다란 큰 건물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자방루다. 정면 7칸에 측변 3칸 짜리 기-인 건물이 앞에 떡 버티고 서 있으니 아주 폐쇄적인 느낌이 든다. 표지판을 읽어보니 왜구들로부터 경내 건물들을 지키기 위함과 호국 사찰이었던 만큼 군사들의 넓은 회합 장소가 필요한 까닭에 이렇게 건물을 크게 짓고 그 앞에 군사들이 모일 수 있는 너른 마당을 두었다고 한다.


(자방루 바깥모습)

 

 2월 포황 오어사 답사를 갔을 때 길눈이 하신 분의 말씀에 귀에 남아 자방루 주렴에도 눈길이 갔다. 자방루 주렴 글귀는 조선말에 이조판서를 지낸 김성근이 썼다고 한다.이 절은 관람객을 배려한 마음이 돋보인다. 마당에 세워놓은 안내판과 별로도 자방루 주렴 해설도 써 붙여 놓았고, 대웅전이나 다른 건물들에도 안내판에 없는 내용까지 첨부해서 안내판보다 훨씬 쉬운 낱말로 안내문을 써 붙여놓았다.



(자방루 주렴 해설)

  너른 마당 왼쪽에 범종각이 있다.


(옥천사 범종각)

  자방루 왼쪽에 난 작은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자방루 안과 대웅전이 보인다. 자방루 안은 밖과 다른 느낌을 준다. 밖에서 본 자방루는 웅장한 방패 같았지만 안은 화려하게 치장을 해 만든이의 미적 감각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야누스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


(자방루 왼쪽에 있는 대웅전 들어가는 입구문)

(자방루 내부)

대웅전은 양쪽에 늘어선 건물들로 인해 좁고 답답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석축을  쌓아 마당에서 올려다 볼 수 있게 지어놓아 작아도 야무지고 당차 보인다..대웅전 안에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그런데 극락전이라고 하지 않고 대웅전이라고 하는 까닭은 옛날에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실 때 쓰던 편액을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이란다.



 대웅전 왼쪽으로 산영각, 독성전 조사전 같은 건물들이 쭈욱 늘어서 있다. 그런데 산영각과 독성전은 아담하다는 표현보다 앙증맞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아주 작다.


  대웅전 오른쪽에는 이 절 이름이 유래된 옥천(玉泉)이 있다.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먹어보니 달작지근하다.이 물을 꾸준히 먹으면 위장병을 고치기도 해서 한국의 100대 명수(名水)에 든단다.



  유물 박물관에 들러 유물 몇 점을 봤다. 이 곳엔 고려 고종 때 만들어진 임자명반자가 있다. 타악기의 일종으로 보물 495호다.  급한 일을 알리거나 대중들을 불러모을 때 사용했던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향로와 같은 유물 1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고성은 왜군들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했던 지역이다. 옥천사 뿐만 아니라 운흥사도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이끈 6,000 여명의 승병들의 거점 사찰이었다. 경내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 갑갑해 보이던 자경루가 경내 건물들을 지켜낸 굳건한 담처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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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영화를 보러 갔다가 아프가니스탄이 배경이라는 이 영화를 예고편을 보고 개봉 첫날 보러 갔다. 그런데 내용은 접어두고 겨울에 하얀 눈이 내리고 골목마다 아이들이 나와 연을 날리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나는 무슨 까닭인지 아프가니스탄이 건조하고 더운 나라일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물론 촬영은 중국 서북부 지역에서 했다고 하지만) 그리고 매스컴을 통해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사막을 향해 달려가는 군용지프와 무장한 탈레반 같은 것만 봐 온 터라  소련 침공 전 아프가니스탄의 활기차고 평화로운 풍경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아프가니스탄은 아시아와 동유럽의 경계에 있다. 동쪽과 남쪽으로는 파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옛소련연방 국가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에 나오는 두 꼬마 주인공 핫산과 아미르 중, 아미르는 서구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고, 핫산은 동양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핫산은 아자라족, 아미르는 파슈툰 족이란다. 아자라족은 핫산처럼 대부분 하류층을 이루고 파슈툰 족은 아미르네처럼 상류층을 이루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으로 미국에서 작가 된 아미르가 아버지의 친구인 라힘 칸으로부터 파키스탄에 한번 다녀가라는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아미르의 표정이 좋지 않다. 라힘 칸이 파키스탄을 다녀가라는 것이 못 마땅해서가 아니라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아미르가 미국으로 오기 전 하인의 아들이자 자신의 단짝 친구였던 핫산과 함께 했던 어린시절이 펼쳐진다.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이 오면 아미르는 핫산과 함께 연을 날리고, 자신이 쓴 글을 핫산에게 들려주거나 소설책을 읽어주기도 하면서 단짝 친구로 지낸다. 아미르는 하인의 아들이지만 똑똑한 핫산이 자신이 쓴 이야기를 듣고 잘못된 곳을 짚어줄 때 시기심이 일기도 하지만 여전히 둘도 없는 친구였다. 

 

   어느 날 아미르는 핫산과 함께 나간 마을 연날리기 대회에서 우승을 한다. 승리의 징표인 떨어진 아미르의 연을 찾으러 간 핫산이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자 찾아 나섰다가 마을 불량배 아세프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세프가 핫산에게 아미르의 연을 달라고 하자 핫산이 끝까지 못주겠다고 버티다가 폭행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아미르는 못본척 외면한다.  

 

자신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새총을 겨누며 자신을 지켜준 핫산인데 정작 핫산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은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고 도망을 치게 되자 자신의 비겁함에 화가 난 아미르는 죄책감에 핫산을 자신의 집에서 내 보낼 궁리를 하게 된다. 죄책감이 증오로 변한 것이다. 아미르는 아버지가 죄 중에 가장 큰 죄라고 했던 도둑 누명을 핫산에게 씌워 자신의 집에서 내쫓는다.  

 

  그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아미르는 공산주의를 비판해 온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피신, 자신이 꿈꾸던 소설가로 성공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아미르의 가슴 속에는 늘 핫산에 대한 죄책감이 가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아버지 친구의 부름을 받고 파키스탄으로 간 아미르는 라힘 칸으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듣는다. 핫산이 어머니가 다른 자신의 형제라는 것, 라힘 칸의 부탁으로 아미르의 집을 지키던 핫산이 아미르의 집을 끝까지 지키려 하다가 죽임을 당했다는 것, 그래서 어린 아들만 혼자 남아 있다는 것, 부모가 없어 고아원 어디서 살고 있는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도둑질을 하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이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진실을 알아야 할 사람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므로 가장 나쁜 짓이라고 했던 아버지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기막혀 하지만 라힘 칸이 ‘다시 좋아질 수 있단다’라는 말 뜻을 반추하며 아프가니스탄으로 핫산의 아들을 구하러 떠난다. 그런데 하필 하산의 아들을 공산주의자 앞잡이 노릇을 하던 아세프가 노리개처럼 부리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핫산의 아들을 데리고 아프가니스탄을 탈출, 미국에 도착한  아미르는 핫산의 아들을 데리고 언덕에 올라 연을 날린다. 그런데 핫산의 아들은 연을 날릴 줄 모른다.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의 일상적인 겨울철 놀이였던 연날리기도 소년 침공이후 사라졌던 것이다. 아미르의 도움으로 핫산의 아들이 연을 날리다가 다른 연과의 싸움 끝에 땅으로 떨어뜨린다. 그러자 아미르는 연을 주우러 가면 말한다.

  “널 위해서라면 천번이라도 찾아올게(For you, a thousand thimes over).”

  이 말은 핫산이 아미르의 떨어진 연을 주으러 갈 때마다 한 말이었다.   이로서 끊어졌던  연(緣)을 다시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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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건너 저편에 사계절 1318 문고 5
게리 폴슨 지음, 김옥수 옮김 / 사계절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중3 학생들과 함께 독서 토론을 하려고 이 책을 읽었다. 다리 건너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곳을 향하고 있는 소년의 모습에서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등장인물들의 삶이 참 팍팍하다.  책을 썩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은 몇장 넘기다가 읽기를 그만 둘 것 같다. 그러나 인내심을 갖고 마지막까지 읽다보면 가슴에 묵직하게 내려 앉는 무언가가 있다. 살아가는 것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지만  ‘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라는 싯구처럼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반드시 도움을 주려 손을 내민다는 것, 세상에 아무리 믿을 사람이 없다고 해도 믿어도 좋을 사람이 있어 그래도 살만하다는 것.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책이다. 사정을 모르고 보면 마니는 한낱 약삭빠르고 거짓말쟁이 구제불능 거리의 소년이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것, 가슴 깊숙한 곳에 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 싶은 꿈을 꾸며 호시탐탐 다리 건너 저편으로 가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는 소년이니까.


  마니를 보며 이렇게 불행한 아이가 있을까 싶었다. 아침에는 시장에서 상인들이 가게를 여는 것을 도와주고 먹을 것을 조금 얻어 연명하고 낮에는 미국과 멕시코를 가르는 다리 밑에서 관광객들이 던져 주는 동전을 목숨 걸고 줍고, 저녁에는 길거리에서 장애아동 흉내를 내며 구걸을 하며 살았다. 하루하루를 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며 살았다. 그래서 마니는 이 끔직한 환경에서 벗어나 ‘다리 건너 저편’ 잠자리와 먹을 것을 준다는 그 곳으로 갈 꿈을 꾼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해 보였다.  마니를 노리는 독수리( 마니 같은 어린 아이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 먹기도 하고 돈을 뺏거나 심지어 살인가지 서습없이 저지르는 길거리 사내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가엾은 영혼. 마니에게 행운이 찾아온다. 미군 로버트.


  로버트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고 영혼에 상처를 입고 알코올의 힘을 빌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술을 먹지 않으면 전쟁 중에 죽어간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귓전을 때려 맨 정신으로는 잠을 자지 못한다. 마니는 뒷골목에서  술에 취한 로버트의 지갑을 훔치려다 인연을 맺는다. 지금껏 했던 것처럼 동정심을 유발시켜 돈을 얻으려고 갖은 거짓말을 다하지만 차츰 이제껏 봐 왔던 사람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가슴속에 꼭꼭 숨겨둔 진심을 내 보인다. 마니의 진심을 들은 로버트는 다리 건저 저편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하고.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끝내 마니 편이 아니었다. 마니를 노리는 독수리들로 인해 로버트는 목숨을 잃는다. 마니의 목숨을 구하고.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 놓은 로버트는 서서히 눈을 감으며 호주머니에서 두툼한 지갑을 마니에게 건네며 말한다. 

  ‘얘야, 뱀에게 물리지 않게 빨리 이 곳에서 도망치거라.’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니 마니가 걱정스럽다.

  ‘국경을 건너 미국으로 무사히 잘 건너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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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살육의 현장이 두려워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평범한 어린이가 마을을 습격해 학살을 자행하는 무자비한 소년병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솔직하고 생생하게 고백한 책’이라는 신간 소개글을 읽고 사서 봐야지 했었는데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나간 겨울 방학 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권장도서 중 한 권이 이 책이어서 시간을 내서 읽어봤다.읽는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책이다.

시에라리온은 1991년부터 2002년까지 내전이 일어났던 나라다. 이스마엘 배아는 이 시기에 뜻하지 않게 12살의 어린나이에 소년병이 되어 끔찍한 일들을 수없이 겪고 행하게 되는데 이 책은 그 기록이다.

  이스마엘은 1993년 1월 형과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르투종이라는 마을에서 열리는 장기자랑에 나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다음 날 돌아올 예정이라 누구에게도 떠난다다는 인사도 하지 않고, 어디로 간다는 얘기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 길로 영영 고향을 보는 것이 마지막이 된다. 자신이 살고 있던 마을에 반군이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그 후 주니어 형과 친구와도 헤어져 혼자 숲 속을 헤매고 다니다가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달리고 달려 자신처럼 가족과 떨어져 피난을 가고 있는 다른 무리 6명과 합류를 하게 된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이스마엘 베아가 정부군이 되었을 때 자신도 똑같은 짓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처음에는 총이 무거워,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무서워 총을 쏠 수 조차 없었지만 정부군에서 주는 하얀 가루를 먹은 이후 사람을 죽이는 것, 마을을 불태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죄책감조차 없어지고 그것을 마냥 즐기는 소년으로 변해간다. 물론 이스마엘 베아가 이렇게 변한데는 반군들로 인해 가족들이 몰살을 당한 데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사조차 알 수 없던 가족들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끝에 고향 사람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가족들이 피난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마을을 찾아갔을 때 이미 반군들이 마을에 들어닥쳐 온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고 이스마엘 베아의 가족들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를 죽이고 떠난 뒤였다.

  

 얼떨결에 정부군이 된 이스마엘은 이로 인해 반군에 대한 분노가 광기로 변한다. 마을을 습격해서 반군 뿐만 아니라 반군들이 자행했던 것처럼 죄없는 마을 사람들까지도 죽이는 것을 즐긴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았지만 소년병 생활을 그만두고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에서 재활 훈련을 받는다. 마약(하얀 가루)을 밥 먹듯 먹던 아이들은 유니세프에서 마약을 주지 않자 금단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소년병 시절 겪은 일들로 악몽에 시달리며 마약을 먹지 않으면 잠들지를 못한다. 그러기를 몇 달,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이 행했던 일들이 떠오르면 미칠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광기에 찬 날들을 떨쳐버리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고통스런 기억들이 번번이 덜미를 잡았다. 그럴 때마다 유니세프에서 파견된 간호사 에스더는 말한다. “너희들 잘못이 아니란다.” 그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한다. 처음에 이스마엘은 그 말을 듣는 것조차 역겨웠다. 그러나 심신의 안정을 찾기시작하면서 그 말을 조금씩 수긍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어린 소년병들에게 총을 손에 쥐어준 어른들 잘못이라는 것을 .

이스마엘 베아가  ‘집으로 가는 길’ 참으로 멀고도 험했다. 12살 어린 나이에 죽음의 문턱까지 넘나들며 혼자 산속을 헤매고,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전쟁을 치르고, 정신적 상처를 조금씩 극복해 나갈 무렵 또다시 내전이 터져 울타리였던 삼촌을 잃고.그래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스마엘의 가족과 대부분의 고향 사람들은 영원히 집에 조차 가지 못했다. 통계상으로는 내전으로 인해 5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지만 정부에서 파악하지 못한 더 많은 사람들이 내전으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다쳤을 것이다. 내전의 참상이 얼마나 생생한지 이 책을 읽다가 덮어두고 잠이 들면 꿈속에서 조차 악몽에 시달릴 정도였는데 실제로 겪은 이들의 고통은 어떠했을 지...

이스마엘이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 떠올리며 이 글을 써 내려갔을 생각을 해 보니 절실하게 생각나는 말이 있다.‘어떤 명분으로도 전쟁은 하지 않아야 한다’. 아주 상투적인 말 같지만 소년병 이스마엘이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 집으로 간 까닭도 이 말을 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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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샨 사 지음, 성귀수 옮김 / 북폴리오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천안문’ 이 책 참 독특하다. 픽션과 논픽션이, 환상과 현실이 적절하게 섞인 듯한, 쉬운듯한데 함축된 의미 파악이 어려운 묘한 책이다 .

  ‘대룩의 딸들’ 처럼 소설 속에 중국의 근대사가 녹아 있는 책 인줄 알고 도서관에서 책 제목만 보고 빌렸더니 아니다. 겉으로 보기엔 ‘천안문’ 사태의 주동 인물로 수배를 받고 있는 아야메를  군인 자오가 뒤쫓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환타지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자오의 생활은 현실적이나 아야메의 도피 생활이나 자오에게 사원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동행한 사냥꾼의 말은 비현실적이다. 마치 몽롱한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이로 인해 자오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현실로 돌아왔다가 아야메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가는 세계를 거닌다. 그러다가  소설이 끝났을 때, '천안문'이란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건가하는 물음을 머리속을 헤집는다.

 

   책 첫부분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대표였던 아야메가 시위하던 도중 고등학교 동창 샤오로 인해 시위대열에서 잠시 벗어난 사이 공산당이 무장 군인을 투입 무자비하게 시위대를 해산 시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래서 잠깐 책을 덮고 인터넷에서 ‘천안문 사태’에 대한 자료를 찾아 읽고 대충의 배경 지식을 쌓은 후 다시 읽었다. 작가 의 의도를 파악한 건 다 읽고 나서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천안문 사태는 이야기를 도입하고 이끌어가는 하나의 장치였다.  천안문은 자오와 아야메, 두 인공들이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문이자 이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문이었다.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라는 시의 '나비'가 아야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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