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남행 비행기 - 제5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21
김현화 지음 / 푸른책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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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싱'이라는 영화가 개봉 되었을 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부모님과 함께 보기를 권했다. 보고 온 몇 몇 아이들이 '북한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사느냐'고 믿기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아마 영화에 그려진 것 보다 더 할 걸.'이라고 대답했다. 정말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는 일들을 보니 '크로싱'의 등장인물들이 겪는 일은 약과다.

압록강을 건너는 일은 건너서 겪는 일에 비하면 고생도 아니었다.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서 태국 찡홍까지 오는 길은 이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이들로 인해 아슬아슬함의 연속이었다. 절실한 이유로 탈북하는 사람들을 인신매매단에 팔아먹는 조선족 택시기사들, 탈북자들을 사서 노예처럼 팔아먹는 인신매매단들, 탈북자들이 가진 돈을 노리는 꽃제비들, 거기다가 중국 공안과 북한에서 파견된 보안원들까지. 실제 경험하는 당사자가 아닌 제 3자조차 가슴이 오그라드는데 이 여정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 책은 청소년 권장도서 중에 하나로 학생들과 북한 사람들의 인권문제나 탈북자 문제 관련 이야기 나누기 할 때 참고할 만한 책이다. 읽기가 편한 소설은 아니지만 현재의 한반도 상황, 나날이 늘어나는 탈북자들 문제 등에 대해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길 바라며 이 책을 권했더니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알 것 같다는 반응이 온다. 한반도 이남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한번쯤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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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외동읍에 있는 문화재를 보러 갔다. 원원사지부터 보고 경주 방향으로 올라가며 숭복사지 삼층석탑,쾌릉,감산사지삼층석탑,영지석불좌상을 보기로 하고 부산을 출발했다. 그런데 네비가 버벅거려 빙~빙~ 둘러서, 산 중턱에 대규모 토목 공사를 하는 있는지라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은 느낌에 거의 한 시간을 헤매다 겨우 원원사지를 찾았다. 

원원사는 김의원,김술종,김유신 등 신라시대 국사의 의논하던 중요한 인물들이 함께 뜻을 모아 세웠다고 한다. 지금 있는 사찰은 근래에 지은 것이고 사찰 뒤편에 원래의 원원사가 있던 터가 있다. 금당이 있던 자리 앞에 두 기의 탑이 서 있는데 화려하다.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 탑은 기단석에 4면에 12지신상을, 1층탑신 4면에 사천왕상을 새겼다. 천년에 넘는 세월동안 이 자리에서 비바람을 견뎌 냈을 텐데 사천왕상 조각은 아직도 생동감이 느껴질 만큼 입체적이다.  



옥개 받침은 5단이다.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숲을 이룬 절터에 금당이 있던 자리를 둘러봤다. 금당 주춧돌도 보이고 원형초석 같은 부재들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다.  

  새로 지은 원원사는 용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군데군데 용을 조각해 놨다. 범종각 안 목어가 특이하다. 목어 아랫부분은 거친 파도와 부드러운 파도를 새겨놓았다. 그래서 물고기가 바닷속을 헤엄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숭복사지 삼층 석탑 .  지도에는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올라가는 길이 잘 닦여 있다. 산기슭 편평히고 너른 곳에 건물은 없고 탑 2기가 서 있다. .파란 하늘 아래 개망초 꽃이 무리 지어 핀 공간에  훼손이 심하지만 품위를 잃지 않고 서 있다. 수북하게 자란 풀들과 함게 있어 그런가 덩그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 탑을 보고 서 있는데 노루 한 마리가 후다닥 과수원으로 뛰어 가는게 보인다. 소나무 숲이 우거지 어두침침한 곳에서 엣날의 영화를 잃어가고 있는 듯한 원원사지 탑을 보고 와서 그런가 맑은 하늘 아래 선 이 탑을 보니 더 없이 행복해 보인다.


  이 탑은 통일신라 시대 탑으로 1층 몸돌에 문비가, 기단석에는 팔부신중을 새겼다. 앞 쪽에 있는 탑은 2층 몸돌과 상륜부가 사라지고 없다. 옥개석 양쪽 전각부분에 작은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다. 그리고 뒤에 있는 탑은 2층 몸돌이 없고 3층 옥개석 위엔 없어졌다. 

  쾌릉을 갔다가 네비에 감산사를 치니 위치가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포기하고영지 석불을 가려고 큰 도로에 접어 드는 길을 나오려고 오다가 얼떨결에 감산사 표지판을 만났다. 마을을 가로질러 난 길을 따라 산길을 올라가니 주변이 전원주택가다. 감산사에 대해 들은 기억이 없어 자그마한 사찰인가 했더니 제법 규모가 있다. 대웅전 뒤 장식 없는 소박한 3층석탑이 있다 첫 번째 본 원원사지 탑이 화려하고 웅장해서 두 번째 본 숭복사지 탑을 봤을 때 소박한 느낌이 들더니 단순한 이탑을 보니 앞 서 봤던 숭복사지 탑 팔부신중은 조형미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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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사에 전탑을 보러 갔다.안내판에 적힌 대로라면 공사가 끝나도 벌써 끝나야 할 땐데 아직도 공사 중이었다. 중간중간 번호를 붙여 놓은 메모지 사이로 전탑 무늬들을 봤다.  

나는 답사 초기 이 탑을 보고 옛날 사람들의 기발함에 혀를 내 둘렀었다. 신라시대 '천불천탑'이 있었다고 하길래 믿질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전돌에 탑과 부처님을 새겨 전탑을 쌓아 '천불천탑'을 만들었던 것이다.   



옥개 끝부분에 해당하는 곳에는 전각을 새겨 넣었고 연화좌대에 앉아 계신 부처님 조각은 광배까지 새겨 넣었다. 


  그런데 훼손이 아주 심하다. 이 탑이 온전하게 남았있었으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겠다. 

 장연사지 삼층석탑은 감나무 밭 안에 있다.   



기단부에 아무런 조각이 없고 규모는 제법 큰 탑 두개가 서 있다. 통일신라시대 탑으로 추정한다. 뒤에 법당 자리로 추정되는 곳은 밭을 일궈 흔적을 찾기 쉽지 않다. 작은 개울 건너편에 당을 매달던 당간지주가 부러진 채 방치되어 있다.  



남아 있는 당간지주 아래 부분을 보니 하트 모양 무늬가 보인다. 밋밋한 당간지주만 봐서 그런가 독창성이 느껴진다.  온전하게 남아 있었으면 특색있는 당간지주로 주목을 받았겠다.


  장연사지를 보고 나오다가 매전 초등학교 안에 있는 석불좌상을 봤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우리 나라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들을 학교나 면사무소 같은 공공 건물 안으로 많이옮겨 놓았다더니 이 불상도 그때 옮긴 모양이다. 생뚱맞은 느낌이 든다.


  대비사를 갔다. 저녁에 운문사를 가야해서 운문사에서 가까운 사찰을 찾다가 간 곳이다. 산 속으로 한참 들어간 곳에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굽이굽이 걸어 들어와야 하는 곳이다. 햇살이 산 능선 뒤로 물러난 늦은 오후의 산사는 참 고즈넉했다. 절 왼쪽 계곡에 있는 부도밭은 커다란 각석 아래 있다. 

 

함께 간 사람들에게 "신라 사람들이 이 곳을 못봤을까? 마애불을 새겼을 법한 바윈데..." 했더니 다들 공감한다. 아니나 다를까 대비사에경내로 들어가면서 보니 각석에 마애불을 새길 모양이다. 절 마당 아래 있는 밭에 스님들이 분주하게  일을 하고 계신다. 울력이라고 했던가. 그 옆에 앵두가 빨갛게 익었다. 경내로 들어서니 절이 산뜻하다. 마당에 서서 그윽한 눈길로 대웅전을 바라봤다. 수수하고 단정한 건물이다. 한풀 꺾인 햇살이 순한 얼굴로 사찰 곳곳을 어루만지고 있는걸 한가롭게 봤다.



  대비사를 나오는 길에 앵두를 몇 개 따서 먹었다. 



 6월은 시골 어디가나 먹거리가 지천인데 오늘 답사 갔던 곳엔 오디나 산딸기 같은 먹거리가 안 보여서 '오디,산딸기는 어디메 있대?' 노래를 불렀더니 소원 풀었다.


  내려오다 대비사가 산 속으로 옮겨 오기전에 있었던 곳인 박곡리 마을에서 석조여래좌상을 봤다.  

 

풍채 좋은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데 얼굴은 마모가 심하다. 앉아 계신 자태가 석굴암 부처님과 많이 닮았다. 같은 시기에 조성된 불상인가? 불상을 모셔놓은 전각 앞에 흩어져 있던 탑 부재들을 모아 쌓은 놓은 탑이 있다. 온전한 모양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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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 2005년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별아 지음 / 문이당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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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 방영되고 있는 지라 미실이라는 여인에 대해 알고싶어졌다.몇년 전 '미실'이라는 제목으로 문학상을 받았던 책 한 권이 떠올랐다. 김별아가 쓴 '미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는 단 한 줄도 미실에 대해 실린 글을 없다는데 김별아님이 쓴 소설에는 3대에 걸쳐 신라를 쥐락 펴락 했던 여인으로 그려져 있다. 신라 24대 왕에서부터 26대 진평왕을 사로 잡고, 이모의 아들들, 왕자들까지 관계하며 살다갔다는 여인. 이 여인의 생애를 보니 참 당황스럽다. '미실'과 관계한 인물들이 하도 많아 소설책 서두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혈연 및 혼인 관계 참고표를 수시로 들추며 읽어야 했을 정도니. 그런데 미실이 천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작가가 미실을 해야할 일은 누구보다 기품있게 해 내고자 노력하는 여인으로 그렸다.  성애 장면 묘사도 탁월하다 

신라 시대를 이끌던 남자가 아닌 그 남자들을 무릎 꿇게 한 여인에 초점을 맞춘 소설을 읽다보니 신라 사회에 대한 고정관념이 와르르 무너진다. 이 소설에 그려진 것이 이 당시 사회 모습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성에 관한한 지금보다 훨씬 자유분방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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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통신사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용두산 공원을 가다 쉬고 계신 일 본공연단을 보았다. 이들은 카미이마이케 타바야시 보존회 회원들로 하마다 시에서 오신 분들이다. 타바야시는 농민의 풍작을 기원하며 밭의 신에게 비는 의식에서 유래된 춤이라는데 유카타에 빨간 줄을 메고 꽃장식을 한 삿갓을 쓴 사람들이 큰북을 허리에 걸치고 타바야시를 연주한다.  

공연 전 이들이 쉬고 계신 벤치 옆에 슬며시 서서 사진을 찍으려는 데 가운데 서 계신 분께서 가운데 앉으라고 손짓을 하셨다.  내가 자리에 앉자 내 어깨에 손을 얹고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어 주셨다. 가끔 이분들 사진을 꺼내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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