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영사에 전탑을 보러 갔다.안내판에 적힌 대로라면 공사가 끝나도 벌써 끝나야 할 땐데 아직도 공사 중이었다. 중간중간 번호를 붙여 놓은 메모지 사이로 전탑 무늬들을 봤다.  

나는 답사 초기 이 탑을 보고 옛날 사람들의 기발함에 혀를 내 둘렀었다. 신라시대 '천불천탑'이 있었다고 하길래 믿질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전돌에 탑과 부처님을 새겨 전탑을 쌓아 '천불천탑'을 만들었던 것이다.   



옥개 끝부분에 해당하는 곳에는 전각을 새겨 넣었고 연화좌대에 앉아 계신 부처님 조각은 광배까지 새겨 넣었다. 


  그런데 훼손이 아주 심하다. 이 탑이 온전하게 남았있었으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겠다. 

 장연사지 삼층석탑은 감나무 밭 안에 있다.   



기단부에 아무런 조각이 없고 규모는 제법 큰 탑 두개가 서 있다. 통일신라시대 탑으로 추정한다. 뒤에 법당 자리로 추정되는 곳은 밭을 일궈 흔적을 찾기 쉽지 않다. 작은 개울 건너편에 당을 매달던 당간지주가 부러진 채 방치되어 있다.  



남아 있는 당간지주 아래 부분을 보니 하트 모양 무늬가 보인다. 밋밋한 당간지주만 봐서 그런가 독창성이 느껴진다.  온전하게 남아 있었으면 특색있는 당간지주로 주목을 받았겠다.


  장연사지를 보고 나오다가 매전 초등학교 안에 있는 석불좌상을 봤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우리 나라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들을 학교나 면사무소 같은 공공 건물 안으로 많이옮겨 놓았다더니 이 불상도 그때 옮긴 모양이다. 생뚱맞은 느낌이 든다.


  대비사를 갔다. 저녁에 운문사를 가야해서 운문사에서 가까운 사찰을 찾다가 간 곳이다. 산 속으로 한참 들어간 곳에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굽이굽이 걸어 들어와야 하는 곳이다. 햇살이 산 능선 뒤로 물러난 늦은 오후의 산사는 참 고즈넉했다. 절 왼쪽 계곡에 있는 부도밭은 커다란 각석 아래 있다. 

 

함께 간 사람들에게 "신라 사람들이 이 곳을 못봤을까? 마애불을 새겼을 법한 바윈데..." 했더니 다들 공감한다. 아니나 다를까 대비사에경내로 들어가면서 보니 각석에 마애불을 새길 모양이다. 절 마당 아래 있는 밭에 스님들이 분주하게  일을 하고 계신다. 울력이라고 했던가. 그 옆에 앵두가 빨갛게 익었다. 경내로 들어서니 절이 산뜻하다. 마당에 서서 그윽한 눈길로 대웅전을 바라봤다. 수수하고 단정한 건물이다. 한풀 꺾인 햇살이 순한 얼굴로 사찰 곳곳을 어루만지고 있는걸 한가롭게 봤다.



  대비사를 나오는 길에 앵두를 몇 개 따서 먹었다. 



 6월은 시골 어디가나 먹거리가 지천인데 오늘 답사 갔던 곳엔 오디나 산딸기 같은 먹거리가 안 보여서 '오디,산딸기는 어디메 있대?' 노래를 불렀더니 소원 풀었다.


  내려오다 대비사가 산 속으로 옮겨 오기전에 있었던 곳인 박곡리 마을에서 석조여래좌상을 봤다.  

 

풍채 좋은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데 얼굴은 마모가 심하다. 앉아 계신 자태가 석굴암 부처님과 많이 닮았다. 같은 시기에 조성된 불상인가? 불상을 모셔놓은 전각 앞에 흩어져 있던 탑 부재들을 모아 쌓은 놓은 탑이 있다. 온전한 모양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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