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청산 식물원 다녀 오는 길에 양동 마을엘 들렀다.
언제 가도 마음이 푸근해 지는 마을이다.
마을, 길, 민가, 고가, 상가 어느 곳을 가든 눈에 익은 꽃들이 피어 있었다.  





               (냇가에 담 사이에 핀 애기똥풀 꽃) 



                                  (길가에 핀 망초) 

               (과꽃,어릴적 우리 집 마당 가득 피어있던 꽃) 



(수세미 덩굴이 메뉴판을 덮고 있는,음식점 마당도 이렇게 에쁩니다.) 



(마을 길 옆 울타리에 이렇게 예쁜 인동초가 피었습니다) 



(어느 댁 마당에 화분이 가득합니다. 다알리아가 활짝 피었습니다) 



(어느 댁 사립문 앞에 핀 꽃,꽃모양은 도라지 같은데 ...) 



        (박꽃 덩굴이랑 강아지풀이 자라고 있는 어느 댁 담) 


(고택 담 너머로 배롱나무가 가지를 길게 뻗치고 있습니다) 



              (고택 입구에도 배롱나무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고택 흙담 밑에 키작은 대나무가 옹기종기 모여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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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외동읍에 있는 문화재를 보러 갔다. 원원사지부터 보고 경주 방향으로 올라가며 숭복사지 삼층석탑,쾌릉,감산사지삼층석탑,영지석불좌상을 보기로 하고 부산을 출발했다. 그런데 네비가 버벅거려 빙~빙~ 둘러서, 산 중턱에 대규모 토목 공사를 하는 있는지라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은 느낌에 거의 한 시간을 헤매다 겨우 원원사지를 찾았다. 

원원사는 김의원,김술종,김유신 등 신라시대 국사의 의논하던 중요한 인물들이 함께 뜻을 모아 세웠다고 한다. 지금 있는 사찰은 근래에 지은 것이고 사찰 뒤편에 원래의 원원사가 있던 터가 있다. 금당이 있던 자리 앞에 두 기의 탑이 서 있는데 화려하다.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 탑은 기단석에 4면에 12지신상을, 1층탑신 4면에 사천왕상을 새겼다. 천년에 넘는 세월동안 이 자리에서 비바람을 견뎌 냈을 텐데 사천왕상 조각은 아직도 생동감이 느껴질 만큼 입체적이다.  



옥개 받침은 5단이다.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숲을 이룬 절터에 금당이 있던 자리를 둘러봤다. 금당 주춧돌도 보이고 원형초석 같은 부재들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다.  

  새로 지은 원원사는 용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군데군데 용을 조각해 놨다. 범종각 안 목어가 특이하다. 목어 아랫부분은 거친 파도와 부드러운 파도를 새겨놓았다. 그래서 물고기가 바닷속을 헤엄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숭복사지 삼층 석탑 .  지도에는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올라가는 길이 잘 닦여 있다. 산기슭 편평히고 너른 곳에 건물은 없고 탑 2기가 서 있다. .파란 하늘 아래 개망초 꽃이 무리 지어 핀 공간에  훼손이 심하지만 품위를 잃지 않고 서 있다. 수북하게 자란 풀들과 함게 있어 그런가 덩그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 탑을 보고 서 있는데 노루 한 마리가 후다닥 과수원으로 뛰어 가는게 보인다. 소나무 숲이 우거지 어두침침한 곳에서 엣날의 영화를 잃어가고 있는 듯한 원원사지 탑을 보고 와서 그런가 맑은 하늘 아래 선 이 탑을 보니 더 없이 행복해 보인다.


  이 탑은 통일신라 시대 탑으로 1층 몸돌에 문비가, 기단석에는 팔부신중을 새겼다. 앞 쪽에 있는 탑은 2층 몸돌과 상륜부가 사라지고 없다. 옥개석 양쪽 전각부분에 작은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다. 그리고 뒤에 있는 탑은 2층 몸돌이 없고 3층 옥개석 위엔 없어졌다. 

  쾌릉을 갔다가 네비에 감산사를 치니 위치가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포기하고영지 석불을 가려고 큰 도로에 접어 드는 길을 나오려고 오다가 얼떨결에 감산사 표지판을 만났다. 마을을 가로질러 난 길을 따라 산길을 올라가니 주변이 전원주택가다. 감산사에 대해 들은 기억이 없어 자그마한 사찰인가 했더니 제법 규모가 있다. 대웅전 뒤 장식 없는 소박한 3층석탑이 있다 첫 번째 본 원원사지 탑이 화려하고 웅장해서 두 번째 본 숭복사지 탑을 봤을 때 소박한 느낌이 들더니 단순한 이탑을 보니 앞 서 봤던 숭복사지 탑 팔부신중은 조형미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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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사에 전탑을 보러 갔다.안내판에 적힌 대로라면 공사가 끝나도 벌써 끝나야 할 땐데 아직도 공사 중이었다. 중간중간 번호를 붙여 놓은 메모지 사이로 전탑 무늬들을 봤다.  

나는 답사 초기 이 탑을 보고 옛날 사람들의 기발함에 혀를 내 둘렀었다. 신라시대 '천불천탑'이 있었다고 하길래 믿질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전돌에 탑과 부처님을 새겨 전탑을 쌓아 '천불천탑'을 만들었던 것이다.   



옥개 끝부분에 해당하는 곳에는 전각을 새겨 넣었고 연화좌대에 앉아 계신 부처님 조각은 광배까지 새겨 넣었다. 


  그런데 훼손이 아주 심하다. 이 탑이 온전하게 남았있었으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겠다. 

 장연사지 삼층석탑은 감나무 밭 안에 있다.   



기단부에 아무런 조각이 없고 규모는 제법 큰 탑 두개가 서 있다. 통일신라시대 탑으로 추정한다. 뒤에 법당 자리로 추정되는 곳은 밭을 일궈 흔적을 찾기 쉽지 않다. 작은 개울 건너편에 당을 매달던 당간지주가 부러진 채 방치되어 있다.  



남아 있는 당간지주 아래 부분을 보니 하트 모양 무늬가 보인다. 밋밋한 당간지주만 봐서 그런가 독창성이 느껴진다.  온전하게 남아 있었으면 특색있는 당간지주로 주목을 받았겠다.


  장연사지를 보고 나오다가 매전 초등학교 안에 있는 석불좌상을 봤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우리 나라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들을 학교나 면사무소 같은 공공 건물 안으로 많이옮겨 놓았다더니 이 불상도 그때 옮긴 모양이다. 생뚱맞은 느낌이 든다.


  대비사를 갔다. 저녁에 운문사를 가야해서 운문사에서 가까운 사찰을 찾다가 간 곳이다. 산 속으로 한참 들어간 곳에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굽이굽이 걸어 들어와야 하는 곳이다. 햇살이 산 능선 뒤로 물러난 늦은 오후의 산사는 참 고즈넉했다. 절 왼쪽 계곡에 있는 부도밭은 커다란 각석 아래 있다. 

 

함께 간 사람들에게 "신라 사람들이 이 곳을 못봤을까? 마애불을 새겼을 법한 바윈데..." 했더니 다들 공감한다. 아니나 다를까 대비사에경내로 들어가면서 보니 각석에 마애불을 새길 모양이다. 절 마당 아래 있는 밭에 스님들이 분주하게  일을 하고 계신다. 울력이라고 했던가. 그 옆에 앵두가 빨갛게 익었다. 경내로 들어서니 절이 산뜻하다. 마당에 서서 그윽한 눈길로 대웅전을 바라봤다. 수수하고 단정한 건물이다. 한풀 꺾인 햇살이 순한 얼굴로 사찰 곳곳을 어루만지고 있는걸 한가롭게 봤다.



  대비사를 나오는 길에 앵두를 몇 개 따서 먹었다. 



 6월은 시골 어디가나 먹거리가 지천인데 오늘 답사 갔던 곳엔 오디나 산딸기 같은 먹거리가 안 보여서 '오디,산딸기는 어디메 있대?' 노래를 불렀더니 소원 풀었다.


  내려오다 대비사가 산 속으로 옮겨 오기전에 있었던 곳인 박곡리 마을에서 석조여래좌상을 봤다.  

 

풍채 좋은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데 얼굴은 마모가 심하다. 앉아 계신 자태가 석굴암 부처님과 많이 닮았다. 같은 시기에 조성된 불상인가? 불상을 모셔놓은 전각 앞에 흩어져 있던 탑 부재들을 모아 쌓은 놓은 탑이 있다. 온전한 모양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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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린데도 그동안 이기대 해변을 가 보질 않았다. 벚꽃 필 때 차를 몰고 일주도로를 드라이버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학생들 야외 수업지를 찾다가 이곳에 동굴이랑 공룡 발자국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가 봤다..방학 하루 날 잡아 아이들 데리고 야외수업을 해도 좋겠다.  

 

 

마린포트홀(넙적한 바위 군데군데 훔푹 파인 웅덩이 모양이 있다. 파도로 인해 바위가 훔푹 파여 만들어진 것이다)

 

 

해식동굴

 

 

관입암(이곳은 화산활동이 빈번했던 곳인데 화산이 폭발하면서 기존에 있던 바위 사이로 마그마가 올라와 굳어진 암석)  


 

 

구리광산

일제시대 이기대 주변에 구리가 많이 생산되었다는데, 이 곳에 구리광산 2호 갱도가 있다.. 지금은 입구가 막혀있다



해녀막사
해녀들의 어구를 보관하거나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 공간, 옆에서 보면 거북모양이다. 지금도 10명의 해녀들이 이곳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오른쪽 해안선  



왼쪽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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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박물관, 등대 내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등대 박물관, 우리 나라 최초의 등대라는 팔미도 등대 모습)


 (검멀레 동굴 위 등대) 



(성산항 등대) 



(성산항 등대 둘) 



(시흥 조가비 박물관 가는 길에 본 등대) 

 

(우도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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