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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제인에어 납치사건을 읽는 일은 내게 있어 초보요리사가 만든 전가복을 먹는 일에 비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온갖 고급 해산물들로 만든 요리라, 엉터리 요리사가 불온도 조절에 실패하거나, 설탕을 소금으로 잘못 알고 넣지 않는 이상, 실컷 먹고 난뒤, 본전 생각에 억울한건 아닌데, 숙련된 주방장이 내는 그 오묘한 조화로움이 빠져 뭔가가 허전한 그런 요리말예요.
특히 초반부는 (그러니까 제인에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후반부에도 그닥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의 전개를 위한 것인지, 온갖 SF, 탐정, 고전, 로맨스, 액션, 심지어는 반전소설의 독자들을 노린 지능적인 낚시밥인지 구분가지 않을 정도로 알맹이 없이 뜸들이는 데 치중을 하고 있어서, 저같이 성질 급한 독자는 책을 저만치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책을 끝까지 읽어낸 것은 후반부에서 그마나 교통정리가 된 탓인지, (무식한 독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지적인 오기가 유발된 탓인지 알 수 없네요.
정작 이 소설은 그다지 지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사건과 인물들의 유기적 관계가 매칭이 안되는 데서 오는 답답함을, 지적인 의구심이라고 하진 않겠지요.
많이들 언급하신 코니 윌리스의 "개는 말할 것도 없이"는 읽어보지 못해 알수 없지만, 이 소설에서 온갖 혼성 장르를 하나의 이야기 구조로 모으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문학작품으로의 여행이란 아이디어가 우디 앨런의 "쿠겔마스씨의 에피소드" 에게 빚졌다는 사실 역시 이책의 핸디캡중 하나입니다. 순전히 사견이지만 보봐리부인 대신에 고른 게 폭풍의 언덕이 아니라 제인에어라는 것도 아쉬운 점. 멋지구리한 히드클리프가 나와주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요.
또 하나 이 소설의 약점은 주인공을 제외한 캐릭터 구축에 실패했다는 겁니다.(그게 작가가 의도한 바인지도 모르지만) 스밀라만큼이나 드물게 강한 캐릭터인 서스데이 외에는 제대로 공들인 캐릭터가 하나도 없어요. 악당인 하데스는 너무 평면적이라 펭귄맨만큼의 내면도 보이지 않고, 서스데이와의 해피엔딩이 의아할 정도로(도대체, 왜!) 랜던은 매력없고 사건에 대한 기여도도 제로에 가깝죠.로체스터 이야기는 벌써 했구요.사실 헐리웃 영화였더라면 로체스터는 제인뿐 아니라 서스데이와도 약간은 케미스트리와 텐션이 있어줘야 되는데, 이상할 정도로 담담하죠.
다시 전가복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래서 맛이 없다는 거냐고 물어보신다면, ㅎㅎ, 저야, 전복이나 해삼은 회로도 잘 먹는 사람이니... 실컷 신나게 접시바닥 보이게 먹어놓고 투덜투덜하는 거라고 이해하시면 될 겁니다. 어설퍼도 전가복인데, 탕수육에 비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