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의 절대성을 주창한 뉴턴의 우주론은 2백 년 이상 세계를 지배했다. 뉴턴의 우주는 갈릴레오의 절대 시간과 유클리드 기하학의 직선의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사람들은 세계가 직선과 평면으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각이 짜인 직선과 직각의 세계는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하지만 영원하지는 않았다. 강력한 망원경이 개발되면서 이런저런 오차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후 과학이 발전하고 여러 법칙이 증명되면서 뉴턴의 이론은 수정이 불가피했다.


1905년 유대계의 젊은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거리가 줄어들고 시계가 느려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시공간이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라 상대적인 척도에 불과하다는 걸 의미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직선과 평면으로 이루어진 올곧은 우주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진실은 복잡했다. 곡선과 굴곡으로 이루어진 시공간은 보다 머리 아프고 복잡한 세계였다. 직선의 세계에서 곡선의 우주로 인식과 세계관이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혼란스러웠다. 역사가들은 '현대(contemporary)'가 탄생했다고 떠들었다.


오랜만에 두 딸과 함께 외장 하드에 담긴 과거의 추억을 살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면이 외장 하드 3개에 걸쳐 빼곡하게 차 있었다.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흥미롭게 둘러봤다. 두 아이는 "저 아이가 정말 나야?"라며 신기한 표정으로 즐겁게 반응했다. 아이들이 자라온 모습이 오롯이 박힌 사진과 영상을 둘러보면서 시간 흐름의 입체적 신비성에 새삼 놀랐다. 지난 10년의 시간은 사진으로 볼 때는 늘어져서 보였다. 그러나 현재 내 체감은 하나의 점처럼 느껴졌다. 신기했다.


가장 놀라운 건 기시감의 인식에 관한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본 지난 추억은 분명히 알고 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안다고 할 수 없는 이미지였다. 사실적·역사적으로는 명확히 일어난 사실이지만 정서적·체감적으로는 생소한 일로 여겨지는 골 때린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나간 것은 세월의 고단함 가운데 흐려진다고 하지만 과연 이 정도일까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느낀 시간의 역설이요 비밀이었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더 빠른 속도로 흐른다는 걸 느낀다. 여기에 아이를 키우면 그 가속력은 더 빨라진다. 정신없이 하루가 흐른다. 학창 시절에는 거북이처럼 느려서 죽을 것만 같았던 시간의 속도가 불혹의 나이가 넘으니 과히 총알같이 흐르고 있다. 인생의 선배들은 더 빠르다고 아우성이다. 가령 아버지는 "나이 칠순이 넘으니 눈 깜빡하면 일주일이 지나간다"라고 말씀하신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인생의 후반부로 갈수록 시간이 더없이 빨라진다는 걸 알기에 나이가 들수록 인생을 탐구하는 통찰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나를 겸허하게 한다.


후회도 든다.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흐를 것을 알았다면 그때 더 현재에 충실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 것을. 아이의 말을 더 집중해서 듣고 아이의 행동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할 것을. 아이와 함께 한 여러 크고 작은 일을 기억과 가슴에 아로새기며 살아갈 것을. 지나간 시간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의 의미가 있다.


육아를 준비하고 이제 갓 육아에 입문한 초보 부모들에게 권유하겠다. 아이와 함께 한 시간을 머리와 가슴에 꾹꾹 누르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아이를 목욕시키고 아이의 몸에 로션을 발라주고 자장가를 불려주면서 아이를 재우는 일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일인지 잊지 않기를 바란다. 훗날 육아의 각론은 망각의 세계로 빠지고 '많이 힘들었다'는 추상적인 기억만 남는다. 사진과 영상 많이 찍고 아이와 좋은 추억 많이 만들기를 바란다. 꼰대처럼 들리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진실이며 지혜이다. 그것에 부족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새삼 시간의 비밀에 대해 사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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