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소설가 정이현을 좋아한다. 정이현 소설의 특징은 동시대의 초상을 전면에 내세우며 이삼십 대의 생활상을 솔직하고 맛깔나게 그려내는 데 있다. 그다지 무겁지 않고, 잘 읽히며,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서 젊은 여성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다지 좋지 않은 시선으로 정이현 문학을 재단하는 대중들도 적지 않다. 편향된 페미니즘적 관점, 지나치게 가벼운 문체,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소재 등을 근거로 작가 정이현은 공격받곤 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고유 특질을 잃지 않고 브랜드화하여 새콤하고 발랄한 활자를 만들어내는 소설가 정이현을 나는 결코 멀리할 수 없다. 

  소위 '동시대코드'로 대변되는 정이혀니즘의 등장 이후, 이에 대한 아류가 급속도로 퍼져가는 느낌이다. 왕왕 접하게 되는 무슨 무슨 신문사의 신인 단편문학상들을 훑어 보면 이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여성', '2~30대 세대', '동시대', '일상', '다이어트' 등이 21세기 한국 문학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각되고 있을 정도다. 소재는 그렇다 치자.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과 플롯의 구도, 작가의 차별성과 활자의 무게감 등을 생각하면 마음은 더욱 씁쓸해진다. 

  '제 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강력한 홍보문구를 달고 있는 백영옥의 장편소설 『스타일』은 앞서 언급한 정이혀니즘의 아류를 그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하지만 정이현만큼 공감적이지 않고, 덜 가볍지 않으며, 노련하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속도감과 이를 풀어가는 시원한 스토리텔링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작가는 국내 메이저 패션잡지의 8년차 여기자를 전면에 내세운다. 주인공 이서정의 생활반경에서 일어나는 직장생활과 대인관계, 남녀간의 사랑과 섹스, 음식과 패션의 최신 트랜드 등의 세계를 발랄하고 유머러스한 문체로 그려냈다. 장을 이어나가면서 소소한 이야기의 전복과 과거와 연결되는 현재성을 배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편소설이라는 온전한 플롯의 전체적 관점에서 보면 작가의 이러한 구성은 그저 밋밋할 뿐이다.  

  동시대를 살면서 동일한 생각과 고민을 갖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모습 또한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동시대의 전형성과는 거리가 먼 각 캐릭터들의 의미없는 아우성일 뿐이다. 밥맛보다 못한 직장상사, 다이어트에 대한 호도된 사고, 성性에 대한 대중적 개방성, 이삼십 대 여성들의 다양한 동질감 등 소설에 등장하는 21세기적 공감대 배치는 미지근한 등장인물들만큼이나 미지근하고 또 미지근하다. 그저 빠르게 읽힌다는 것, 그리고 한없이 가볍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원동력으로 소설의 막장을 한달음에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장을 이어나가면서 점층적으로 구성되는 듯 보이는 이야기는 뒷부분에 와서 미흡한 플롯의 전형을 보여준다. 초중반과 종반의 이야기 흐름이 부자연스럽다. 뒷부분에 다양하게 배치한 반전들은 오히려 스토리 라인의 매끄러움을 방해한 요소로 지적된다. 급하게 마무리하려는 듯한 부자연스러움과 비공감되는 이야기의 전복은 밋밋한 장편소설이 갖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문단의 위기'가 비단 어제 오늘의 담론은 아니다. 성석제를 위시한 아홉 명의 심사위원들은 이 소설을 동시대의 피상성, 깊이 없음을 쿨하게 잘 형상화한 재기발랄한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의 그들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스타일』은 한국문단의 위기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작품인지, 문학에 이해가 덜 되어 있는 한 미천한 독자의 얼버무림의 대상인지, 명징하게 정리되지 않는 그저 그런 미지근한 소설이다. 내겐 그렇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래도 2008-04-24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우 안타까운 것은 이런 아류가 중앙의 손기자를 비롯한 여러 메이저 신문기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기사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요. 아, 정말 미래가 기대되는 작가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소위 전문가들이란 사람의 식견이 생각보다 높지 않더군요. `스타일`이 문학상 당선작이라는데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을 느낍니다.

프레이야 2008-04-27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벼움이 미덕이 되고있는 세상이에요.
격을 세우지도 못하고 파격을 운운하는...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자면
갑갑할 때가 많은데, 아마도 이책도 그런 종류인가요? 전 읽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