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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다. 지난 17대 대통령 선거는 역대 어느 선거보다 치열했던 네거티브 캠페인이 벌어진 선거였다. 국가의 미래와 제시한 공약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온데간데 없고, 상대방 흠집내기와 네탓하기로 일관한 극히 조야(粗野)한 선거로 기억된다. 여야간의 이러한 대극적인 공방의 핵심 아이콘은 단연 '도덕성'이었다. 국가 원수로서 가져야 할 도덕성의 기준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과 사유의 전개를 바라보며 나는 내 자신에게도 그 도덕성의 잣대와 기준을 적용해보는 흥미있는 실험을 갖기도 했다.
도덕의 사전적 정의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의 총체'이다. 도덕은 상대적 가치이다. 명확한 원칙과 조항이 있는 법과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법은 지키면 합법이고, 어기면 불법이기 때문에 정확히 이분화로 구분된다. 하지만 도덕은 '지킨다, 어긴다'의 의미가 적용되지 못한다. 사회마다의 상대적 기준 하에서 '높다, 낮다'의 의미로 해석된다. 국가와 문화는 물론, 시대와 개인과 가치관에 따른 상대적 기준의 다양한 스펙트럼. 그것이 바로 도덕의 단면이다.
수십 년에 걸쳐 펼쳐지는 세 사람의 운명과 사랑을 그려낸 영화 《어톤먼트》의 원작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이언 매큐언은 1998년작 『암스테르담』을 통하여 도덕과 비도덕에 대한 인간의 비정형적 기준을 얘기한다. 더욱이 이 작품은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을 수상한 바 있어 금번 재출간에 많은 독서가들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하였다. 높은 수준의 플롯과 연극적 형식, 간결하고 익살스런 문체가 조합되어 짧지만 강렬한 장편소설 한 권이 완성되었다.
소설 속에는 한 명의 여자를 둘러싼 네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두 명은 주인공 격, 다른 두 명은 조연 격으로 등장하지만, 소설의 말미에서 승리(?)하는 자에 대한 이야기의 전복이 일어난다. 몰리라는 매력적인 한 여인의 장례식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저명한 작곡가 클라이브, 인기있는 일간지의 편집국장 버넌, 몰리의 정부인 외무장관 가머니, 언론재벌인 남편 조지. 이렇게 네 명의 남자들이 이야기의 뼈대를 구성하는 인물들이다. 초반 평범하게 흘러가는 스토리 라인은 몰리가 남긴 세 장의 사진이 발견되면서 급반전된다.
작가는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을 표지의 전면에 배치한다. 암스테르담이 어떤 곳인가? 다른 사회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수많은 법과 제도가 개인 자유의 가치로 허용되는 자유의 표상이 바로 암스테르담이다. 매춘, 동성애, 마약, 안락사는 물론, 자살의 자유까지도 허용되는 곳. 지구상의 튀는(?) 사람들의 유토피아이자, 개인의 표현과 행복의 자유가 극대화되는 곳, 암스테르담. 다시 말해서 작가는 '자유'라는 이름의 공간적 현현(顯現)으로 암스테르담을 배치한 것이다.
여기서 작가의 노련한 감각을 읽을 수 있다. 작가는 도덕과 자유의 오묘한 긴장관계를 조합하고 있다. 소소한 사건에 대한 견해차로 수년 간의 우정이 무너지는 상황을 통하여 인간의 도덕적 상대성과 극도의 이기주의를 드러내고, 이러한 악의 미묘한 심리적 발동의 실험장으로 자유의 표상 암스테르담을 설정한 것이다. 소설의 말미, 두 친구의 비극적 결말은 모든 것이 허용되는 암스테르담이라는 공간과 맞물려 어둡고도 기묘한 느낌을 발산케 한다.
소설의 막장을 덮으며 '인간'의 불완정성을 새삼 사유한다. 인간이 만든 도덕적 잣대 속에서 나의 도덕이 너의 비도덕을 공격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도덕을 혼란시키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 도덕, 겸손 등에 이르는 수많은 미덕의 본질을 생각하며 인간 속에 투영되어 있는 한계와 오류, 그리고 극도의 이기에 대한 깊은 상념에 빠진다.
도덕에 있어 포용력과 균형이 내재된 보다 넓은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타인의 도덕성에 대한 이기적인 절대성 부여가 어떤 결과로 귀결되는지를 이 소설은 참혹하게 알려주고 있다. 분명 도덕은 좋은 것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사회일수록 발전이 있고 선진이 가능함은 자명하다. 개인은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사라질 때에 신뢰의 빛은 타오를 것이며 그로 인해 건강한 사회는 구현될 것이다. 단, 그것이 안정된 균형과 공감된 관용의 토대 위에서 실현된다는 전제하에서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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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