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평전
김학동 지음 / 새문사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낙엽은 젖어 블럭에 붙었다. 아침 겸 점심으로 돼고기 김치찌기를 먹었다. 배부른 짐승이되어 20년 전에 읽었던 미당의 시를 찬찬히 읽어본다. 한편으론 시가 뭐겠는가 싶었다. 건강을 잃어버린다면 다 허망한 잡념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평화시대의 시어들은 개인의 추억이나 세상의 정세를 은유하는 정도지만 동족간의 전장에서 그 참상을 보았던 청마 유치환의 시는 인간의 한 없는 가엾음과 자괴감과 가슴 아픔으로 목놓아 울었으리라. 1915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미당 역시 우리의 근•현대사의 치욕과 혁명과 정변 그리고 동난을 격었던 인물이다. 전후 세대인 나에게 전쟁의 혼란기를 전달한 한편의 시는 통계적 역사 사실보다 다가온다.


  미당의 첫시집은 '화사집'(1941년)으로 일제 강점기에 출판되었다. 이 책은 제14집(1993년)으로 1988년부터 1993년까지에 쓴 72편의 신작시들이다. 내 어렸을 적의 시간들 10편, 구만주제국 시 5편, 에짚트의 시 5편, 노처의 병상 옆에서 3편, 1990년의 구공산권 기행시 9편, 해방된 러시아에서의 시 8편, 기타 시들 27편이다. 미당은 고백한다. 


  그의 습작기의 문학소청년 시절이나 다름없는 표현상의 불만과 게으름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다. 미당이 1940년 9월에서부터 1941년 2월까지 남만주 간도성의 양곡주식회사의 한 사원이 되어 밥벌이를 회고하며 썼던 5편의 시는 인상적이다. 시인에게 가을비는 어떠했을까 !


  - '가을비 소리 -


 단풍에 가을비 내리는 소리

 늙고 병든 가슴에 울리는구나.

 뼉나귀 속까지 울리는구나.

 저승에 계신 아버지 생각하며

 내가 듣고 있는 가을비 소리.

 손톱이 나와 비슷하게 생겼던

 아버지 귀신과 돌이서 듣는

 단풍에 가을비 가을비 소리 !     1311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무현 평전 - 지울 수 없는 얼굴, 꿈을 남기고 간 대통령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유서를 쓰던 새벽은 고요했다. 아무도 모른 그의 심중은 결연 했으리라, 이중섭 은박지 크기의 메모지는 잘 씌여지 보고서와 달랐다. 모든 것을 운명임을 자임했다. 자신의 죽음을 확인한 지인들에게 최소의 당부였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이 글이 많은 위안을 준다. 어스무레한 초저녁 길을 걸으면서 미식미식 떠오르는 혈육에 대한 그리움을 눌러준다.


  노무현의 종증조부 노응규(1861~1907)은 구한말 의병장이었다. 한성 진공을 꾀하던 중에 밀정의 밀고로 체포되어 일제가 주는 밥은 먹을 수 없다며 단식하다가 옥중에서 굶어 죽었다.


  노무현과 박정희는 늦둥이었다. 노무현과 박정희의 모친 또한 근대시대의 가난한 촌부였다. 그의 모친은 막내를 애처럽게 생각했다. '돌콩'은 노무현의 어린 시절 별명으로 '노 천재'였다. 당차기가 하늘을 찔렀던 동학혁명의 지도자 전봉준같았다.


 
노무현은 목포상고 출신인 직전 대통령 김대중에 이어 상고 출신 대통령이 것이다.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일까! 노무현이 김구나 링컨을 각별히 좋아하고 존경한 이유 중에는 변변치 못한 학벌에도 불구하고 뜻이 크고 사상이 올발라 위대한 일을 해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비주류였다. 1209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벽 : 김대중 평전
김택근 지음 / 사계절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는 아내를 포천 천주교  묘지에 묻었다. 비탈길을 내려오며 아내 없이는 평지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얼마 후 그의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날마다 조금씩 죽어가는 동생의 죽음 앞에 가슴을 첬다. 아내와 여동생보다 더 일찍 그의 첫 딸이 세상을 떠났었다. 아내는 죽어서도 줄곧 그에게 힘이 되었다. 

 

 사실 그는 딱 한 번 박정희를 만난 적이 있었다. 1968년 새해 청와대로 세배를 가서 5분쯤 얘기 나눈 것이 그의 일생에 처음이지 마지막이었다. 그때 그는 박정희에게 줗은 인상을 받았다.

 

  1980년은 안개정국이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지하의 취조실에서 비명소리가 들였다. 그는 이미 내란 음모 사건의 수괴가 되어 있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표정했다.자신이 사형된 다음 민주주의가 회복되면 정치적 보복을 행하지 않도록 부탁했다. 그의 '종범'이라는 사람들과 평생 처음 창자로 애국가를 불렀다. 광주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오고 가슴이 설렜다. 그는 옥중의 밤에는 흔들렸으나 새벽에는 마음을 바로 잡았다. 사람이 신념대로 산다는 것과 어디까지 내놓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밀접한 함수관계임을 자각했다.

 

  군사 정권은 그를 이중 독방에 가두고 감옥의 복도를 콘크리트 벽으로 막아 버렸다. 분통하였지만 분노하지 않았다. 감옥은 그의 대학이 되었다.그곳에서 독서에 몰입했다. 신학, 철학, 정치, 경제, 역사, 문학 등 모든 분야의 책을 읽었다. 수감 중에 600권의 책을 차입하여 정독했다. 그때에 영감과 용기를 주었던 대표적인 책이 '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12권)였다. '제3의 물결'이 농경과 산업사회 다음에는 지식정보사회가 도래한다는비전을 갖게 했다. 그는 상대방의 지식과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놀라운 흡인력의 소유자였다.

 

  정권이 강요한 3년간의 미국 망명 생활을 마치고 서둘러 위험한 귀국을 했으나 그의 집에 다시 감금되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동교동 교도소'라 불렀다. 1987년 6.29선언으로 사면과 복권이 되기까지 무려 55차례나 가택 연금을 당했다. 부당한 권력은 '민중의 힘' 앞에 무기력 했다. 1997년, 그의 나이 73세에 대통령이 되었다.

 

  2004년 8월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기각된 이후로 박정희가 살해당한 지 25년 만에 야당의 대표가 된 독재자의 딸이 찾아와 그의 손을 잡았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1209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선 흥행을 압도하는 '싸이'의 고공 행진은 계속된다. 가수생활 12년만에 세상의 물떼를 만난 말춤이 세계 제패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의 반복되는 자가복제적 리듬에 세상 어느 누구도 몸을 흔들지 않고는 못백인다.

 

  '고도'는 1953년 1월 5일 파리의 바빌론 소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이 파리 연극계의 주목을 받게 되자 일부의 지식인과 평론가 사이에서만 알려져 있던 '베케트'는 갑자기 저명 인사가 된다. 공연의 성공은 역사적인 사건이 된다. 제목 고도Godot가 영어의 God과 프랑스어의 Dieu를 하나로 압축한 합성어의 약자라는 해석도 있으나 '고도'에 대한 정의는 구원을 갈망하는 관객이나 독자의 해석에 달여 있다. 

 

  '고도'는 희곡으로 1막은  「시골길, 나무 한 구루가 서 있다」이고, 2막은 「이튿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그것이 전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시골길에서 누군지도 모르며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 -- 그 기다림의 주체적인 두 인물 역시 그 누구도 아닌 그저 그렇게 살아온 몰개성적인 늙은 방랑자들이다.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혼란스럽다. 단 한 가지 분명하게 일치되는 인식은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 에스트라공  그만 가자

 ○ 블라디미르  가면 안 되지

 ○ 에스트라공  왜 ?

 ○ 블라딩시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그들에게 습관이 되어버린,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죽이기 위해 지칠대로 지쳐 있는 그들은 온갖 노력을 다해 본다. 기다림을 포기 하지 않기 위하여, 여전히 살아 있음을 실감하기 위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말을 하는 것이다. 서로 질문하기, 되받기, 욕하기, 운동하기, 장난과 춤추기... 


  하루해가 다 지날 무렵, 그들의 기다림에 한계가 왔을 때 나타난 것은 고도가 아니라 고도의 전갈을 알리는 소년이다. 마치 철책을 지키는 초병이 지루하고 피곤한 밤경계 근무 중에 자신의 근무 파트너(2인1조)에게 사회쩍 이런저런 경험담을 늘어 놓으며 새벽을 기다리는 것과 같지만 다음 날 근무는 반복된다.

 

  '베케니'의 연극은 부조리 연극이라고 최초로 이름 붙인 마틴  에슬린은 베케트를 < 유쾌한 허무주의자 > 라고 일컫는다. 실제로 그는 '삶을 지배하는 것은 고통'이라고 말한다. 그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 즉 인간의 고통을 말한다. 

 

  '고도' 어릿광대들을 통해 냉혹하고 무질서한 혼돈의 세계를 참을성 있게 견디도록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는 고통의 이유도 모르는 기다림과 싸운다. 그들의 짓거리는 논리도 줄거리도 없이 지리멸멸하다. 지리멸멸한 대사와 동작에 독자는 웃는다.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이해하고 동의하는 현대의 고전이다. 1210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변신·시골의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프카는 1904년 문학 친구였던 오스카 폴라크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 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네'였다. 지난 8월에 출간된 문정희 시인의 산문집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다산책방)'를 연상캐하는 문장이다.

 

  카프카의 작품은 사실주의적인 문체로 친숙하지만 그 내용은 아주 낯설다. 읽고 있으면 꿈속을 헤매는 느낌이다. 그의 '시골의사' 단편집에 수록된 '어떤 꿈'은 1914년 12월 씌여졌다는데, 이렇다. '요제프 카'는 산책을 하다 우연히 들어선 공동묘지에서 자신의 무덤을 본다. 


  그는 무덤 앞의 비석에 새겨진 금빛 글자로 된 자신을 바라보면서 어떤 부드러운 기류에 떠밀려 등을 뒤로한 채 무덤속으로 가라앉는다. 영화 '취화선'의 '장승업(1843-1897)'이 도자기를 굽는 화구로 자신의 몸을 들이 미는 경우와 같다.

 

  카프카는 1917년 7월에 펠리체와 두 번째 약혼을 하지만 그해 8~9월에 각혈로 결핵 진단을 받고 파혼한다. 그는 불안과 고독, 소외와 부조리, 실존의 비의와 역설  등으로 사람의 삶 속에 깊이 움직이고 있는 난해하면서도 심오한 여러 특성들과 연관지어 글을 썼다. 그의 새로운 문학적 상상력은 현대와 근대  그리고 미래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을 뛰어 넘는다.

 

어제 밤의 기자회견은 그간의 매료된 꿈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 어떤 현상이 지속되다 안개를 속의 벽에 부딪치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상상의 미래로 모든 꿈이 시작되길 소망한다.  1211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