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루는 학교에 가지 않아 - 학교교육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에스테르 뒤플로의 문제 해결 지식그림책 시리즈 1
에스테르 뒤플로 지음, 샤이엔 올리비에 그림, 최진희 옮김 / 라이브리안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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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보고 고픈 그림책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제시하는 문제 해결 지식그림책 시리즈이다. 시리즈 중의 첫 번째 도서이다. 학교교육에 대해 저자가 전하는 내용이다. 29세에 종신교수로 임명되어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등의 도서가 있으며 <이코노미스트>선정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 경제학자 8인'중의 한 명이다. <타임>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등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인정받는 작가의 도서라 펼친 그림책이다.



이 시리즈의 전권의 그림을 담당한 작가도 눈길을 끈다. 간결한 문장의 집약적인 방향성과 그림들은 페이지들마다 상징성이 두드러진다. 글과 어우러지는 그림들을 페이지들마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듯이 오랜 시간 지긋하게 하나씩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7시에 기상하는 아이 닐루의 아침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학교 등교를 하도록 재촉하는 닐루의 어머니와 닐루의 속마음까지도 읽게 된다.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닐루는 갈등을 하면서도 학교에 등교를 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선생님의 교과과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임을 그림으로도 충분히 전해진다.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가르치는 선생님과 글씨를 읽지 못하는 학생들의 인지 차이는 상당하다. 교과과정과 간극이 심한 학생들은 학업에 얼마나 흥미를 가지게 될까? 조는 아이, 학교에 가기 싫은 아이, 결석하는 아이, 가난한 부모들이 가지는 희망은 자녀들에게서 달라지는 결과로 응답을 받을지도 이야기를 통해서 이해하게 된다. 교과과정을 답습만 하면서 변화하지 않는 교육과정은 이득이 없음을 알게 된다. 학생들도 부모들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 눈높이에 맞는 1:1 교과 수업은 놀라운 학업성취도를 이루게 된다.


가난을 이겨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난을 이겨내는 의지와 노력, 방법들이 다양하게 모색되어야 한다. 이 저자는 경제학자이면서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대안을 모색하면서 제시하는 그림책이다. 학업성취도가 크게 벌어지는 한국교육문제도 함께 생각해 보게 하는 그림책이다. 누구에게나 잠재된 꿈은 있다. 그 꿈을 빛나게 하는 방법은 식민지 사회가 뿌리 깊게 내려온 학교교육을 답습하는 것만이 아님을 제시한다. 색다른 교육방법이 가난하여도 학업능력이 뒤처질지라도 누구나 배우는 즐거움, 성취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학급당 엄청 많은 인원을 채워 넣고 수업을 한다고 모두가 학업성취도를 올릴 수는 없다. 한 명씩 눈높이에 맞춘 교육이 대안이 된다는 사실이 가장 두드러지게 전해진다. 수학을 직접 가르친 엄마샘이라 한국교육의 문제점도 많이 상기하면서 읽은 내용이다. 빈부격차가 심한 한국사회이다. 부의 불평등은 더욱 극심해진다. 순자산가치와 부채비율은 매년 놀라운 수치를 알리는 한국사회이다. 학교교육은 누구를 위한 교육인지부터 인지해야 한다. 무엇을 가르치는 곳인지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노동력을 키우는 목적이며, 기업을 위한 일꾼을 키우는 시스템이다. 다르게 말하면 잘 살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진짜 잘 살고자 하는 꿈을 가지려면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도 스스로 갈급하면서 찾아내야 하는 사회이다. 자본주의에 물들어서 소비만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 아니다. 제대로 세상 공부를 해야 한다. 학교교육에 대해서도 제대로 인지하면서 자녀교육을 진지하게 확립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희망이 된다.


책내용에서 전해지는 가난, 가난한 부모, 자괴감에 빠진 학교 선생님의 모습들도 인상적이다. 결석하는 학생들이 생겨나는 이유까지도 함께 생각해야 하는 사회이다. 불량 청소년은 불량 부모가 있기에 생겨나는 것이다. 더불어 학교에도 문제가 있음을 이 책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진정한 마음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인지, 돈벌이만을 위한 선생님인지도 질문을 해야 하는 사회문제이다. 한 명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도 마을이 모두 도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모두가 한 명의 아이를 위해 많은 관심과 사랑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희생하고 두 팔을 크게 벌려야 한 명의 아이를 제대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 잠을 자면서 출석 일수만 채우는 학생, 결석하는 학생은 결핍과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학교문제이면서 사회문제가 된다. 더불어 가정문제도 살펴야 하는 총체적인 신호가 된다. 그것에 한국사회는 얼마나 노력하는 학교인지, 선생님인지, 사회인지, 이웃인지도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남는다. 경쟁이 불러놓은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부각되는 내용이 된다. 이 시리즈의 또 다른 시리즈까지도 눈길이 가게 하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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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의 자리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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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의 자리라는 책표지 그림을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야 이해하게 된다. 반전이 마지막까지 자리잡는 스릴러 소설이다. 고등학교 학생과 선생님의 부적절한 관계, 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 등이 추리를 거듭하게 한다. 학생이 죽었다. 목에는 칼자국이 여러 군데 발견되고 학생은 목을 매달고 죽어있는 모습을 선생님은 발견한다. 살리고자 노끈을 끊고 심폐소생술을 하지만 희망이 없는 상황이다. 선생님은 자신의 부적절한 상황이 두렵기만 하다. 죽은 학생을 호수에 던져 넣고 완벽한 정황들을 준비하는 꼼꼼함까지 보인다. 누가 죽였을까? 그는 학생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무책임한 어른들이 자꾸만 어른거리는 이야기이다. 호수에서 발견된 사체는 다현이라는 학생이다. 사기죄로 교도소에 수감되고 그곳에서 자살한 엄마가 있지만 엄마는 자식을 걱정조차 하지 않는 부모이다. 외할머니 집에서 생활한 다현은 할머니가 죽으면서 혼자서 할머니의 집에서 생활중이다. 외할머니 장례식조차도 학교 선생님의 도움으로 진행하게 된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다현은 학교 선생님에게 많이 의지하게 된다.

사기죄 피해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도 소설에 등장한다. 욕망이 너무나도 커져버린 어른들이 무책임하게 사기를 당하게 된다. 자살하고 떠나버린 교무부장 남편의 행동과 선택들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남은 가족들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은 너무나도 큰 파도가 된다. 남겨진 아들은 모범생으로 자라나는 가면속으로 숨어버린다. 엄마가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알기에 더욱 가면 속에 숨어서 모범생으로 생활하지만 실생활은 그렇지 않다.

다현은 늘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친구가 없어도, 대화할 사람이 없어도 아무 상관 없다라는 뜻한 얼굴... 아무도... 말을 걸지 않고 걱정해 주지 않고 버려두는 것이리라. 다현은 처절하게 외로운 아이였다. 부서질 듯 약한 아이였다. 작은 상처를 받는 것도 두려워 거짓 외피를 서툴게 두른 것뿐... 117

집에 냄새 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신혼 때에도 반찬 가게에서 산 마른 반찬으로 식탁을 차렸고 그나마도 점차 없어졌다. 집에서 먹는 것은 우유나 견과류가 전부였다. 176

무섭게 굳어버린 얼굴 속에 일그러진 욕망이 있었다. 두려움과 슬픔의 외피를 두른 악마가 도사리고 있었다. 8



45살 교사인 준후의 생각과 행동들을 살펴보게 된다. 다현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모습, 아내와 별거 중인 생활, 자식의 안부를 묻지 않는 모습들도 예의주시하게 된다. 일그러진 자아는 학교 선생님이지만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나 버린다. 도덕적인 것을 벗어버린 교사는 아내에게도, 연인이었던 다현에게도 범죄자의 모습을 보일 뿐이다. 마지막까지 반전이 준비되는 이야기이다. 인간이 가진 욕망이 얼마나 일그러질 수 있는지 소설을 통해서 보여준다.

가면과 가식이라는 범주 안에 안착한 모범생 정은성이라는 학생과 그의 어머니의 범죄행위까지도 놓치지 않게 하는 질문이 된다. 교사 아내의 결혼 생활 모습도 정상적이지 않다. 아내에게 질려버린 남편이 이혼을 생각한 이유도 짐작하게 된다. 홍학의 의미를 소설을 통해서 이해하게 된다. 홍학이 가진 상징성과 동성애, 현재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연인의 모습을 깨닫고 복수하는 것까지 촘촘하게 이해관계들이 넘쳐나는 소설이다.

그중 한 사람만이라도 다른 선택을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328

당연히 죽음을 애도하는 기색은 없었다. (학교) 87

다현의 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엄마, 학교 선생님, 친구. 그들 중에 한 명이라도 다른 선택을 하였다면 다현의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다현의 인생은 비틀리고 추락하면서 사랑마저도 변질되는 상황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복수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선택하게 된 다현을 보게 된다. 더불어 학생의 죽음마저도 학교는 애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숨기고 감추기에 바쁜 학교의 모습은 이 사회와 다르지가 않다.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을 애도조차 하지 못하도록 학교가 방해하는 기사가 떠오른다. 학교가 온전하게 자기 구실을 다하는 사회인지 거듭 질문을 놓지 않게 한다. 견고하지만 단단하지 않은 사회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게 한다. 사건의 배경은 학교이지만 사회 전체를 향해 질문을 하게 된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손을 내밀어 준 사회가 되고 있는지 거듭 돌아보게 한다.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책장은 멈추지 않았고 누가 범인이었는지 궁금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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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설자은 시리즈 1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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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버린 나라 백제와 새롭게 시작하는 신라 시대가 배경이 되는 시대극 추리소설이다. 여러 편의 이야기들은 흥미롭게 사건들을 추리하는 설자은과 옆에서 도움을 많이 주는 인곤이라는 인물의 조합이 멋지다. 반란을 계획하는 무리에게는 가차없이 엄벌을 내리는 신라 왕의 단호함도 이야기를 통해서 전해진다. 출세를 꿈꾸는 설자은 오빠의 계획과 설자은 여동생의 미래를 위해 조언을 하는 모습과 여동생의 심지있는 결단도 전해지는 소설이다. 신라시대 남성과 여성이 치장을 좋아했던 문화가 소설에서도 등장한다. 미려한 모습을 선호한 신라인들의 풍습까지도 놓치지 않고 살펴보게 한다.



당나라로 유학생활을 하는 설자은이 전쟁으로 힘들게 유학생활을 하였음을 알게 된다. 신라로 돌아갈 수 있어서 기뻐하면서 배를 타게 되는데 그곳에서 만나는 인곤이라는 백제 사람과 함께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하게 된다. 미려하지만 차가운 얼굴을 가진 설자은에게 먼저 식객으로 제안을 하면서 다가서는 인곤의 활약도 재미를 더한다. 신라로 돌아가는 배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설자은과 인곤의 활약과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실도 꽤 흥미롭게 전개된다.

제 배로 나은 자식에게도

잔혹한 인간들이 많지만 49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모든 일에서 소외되는 것 75

죽는 것보다 못한 혼인 218

하라는 대로 잘 따르던

예전의 너는 어디로 사라진 것이냐? 234



죽은 오빠를 대신해서 유학생활을 한 설자은은 남자로 위장해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여성임을 알고도 비밀을 보호해 주는 인곤의 모습과 설자은의 오른팔과 왼팔이 되는 이 남자의 활약과 서로 화합하는 모습이 꽤 재미있다. 어떤 사건도 범인을 맞추지 못했을 만큼 추리하는 모습에 빠져들게 된다. 단서를 찾고 추리하는 이 두 사람의 맹활약을 4편의 사건을 통해서 전해진다. 사흘 먹지 않아도 허기를 느끼지 않게 된 다음날이라고 전하는 문장과 제 배로 나은 자식에게도 잔혹한 인간들이 많다면서 추리하는 모습에 작가의 폭을 더욱 넓게 바라보게 된다.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 전개와 인물들의 촘촘한 등장에 범인을 찾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여성이 살아가는데 제외되고 선택받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던 시대이다. 모든 일에서 소외되는 여성의 삶이 자주 언급된다. 설자은 여동생인 도은의 삶을 통해서도 언급되며 길쌈을 준비하는 여성들의 많은 사연들에는 여성이 부당하게 혼인을 하고 결혼생활을 하고 있음을 엿보게 된다. 결혼생활이 죽는 것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의 삶을 펼쳐놓는 이야기를 놓치지 않게 한다. 하라는 대로 하는 여동생이 순종하지 않자 오빠가 여동생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도 예의주시하게 된다. 순종하고 복종하는 가르침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여성에게는 기회조차 없는 시대에 설자은이 남자의 모습으로 활약하는 수많은 추리 사건들은 의미심장한 주인공으로 자리잡는다.

놓친 게 무엇이지?

어디까지 거슬러올라가야 하지?

확인하지 않은 겉가지가 있나?...

눈 안에 형형한 빛이 보였다. 211

잃은 것을 잃은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괴롭지요.

무엇을 잃었는지 아는 쪽이 낫습니다. 172

한 생이 끝난 듯한 감회가 일었다. 11



탐욕과 비리, 부정행위로 사건의 중심에 자리잡는 매잡이의 탐욕스러운 모습도 기억하게 한다. 왕의 무덤처럼 무심해 보이는 모습도 예의주시하게 된다. 무심한 모습이 어떤 의미들을 상징하는지 우리는 알기에 왕의 모습은 더욱 섬뜩해진다. 관찰력이 뛰어나고 지력이 있는 설자은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리게 된다. 시리즈로 출간되는 소설이라 계속 만날 수 있는 시리즈이다.

추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놓친 것, 확인하지 않은 겉가지가 있었는지도 다시금 의심하는 모습, 형형한 눈빛으로 추리하는 모습을 무수히 상상하면서 읽게 하는 이야기이다. 인생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알면서 살아가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도 언급된다. 자신이 무엇을 잃고 살아가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인생은 괴로운 것이라고 말하는 대화 내용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재미있는 소설 속에서 예리한 시선을 끄집어내는 대화들에 지긋하게 여러 번 삶을 돌아보게 하는 글귀들에 감동도 받았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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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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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하는 작가의 소설집이라 눈길이 머물렀다. 바닥 타일 기술을 배우고 주물 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한 작가이다. 공포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출간된 책들도 눈길을 끈다. 총 10권의 소설집들까지도 책표지가 낯설지가 않다. 길지 않은 단편소설들이 24편으로 수록된 소설집이다. 기괴하고 기묘한 이야기들이 하나씩 전해진다.

『지옥으로 간 사이비 교주』에서 등장하는 악인들과 악마가 눈길을 끈다. 지옥에서도 권력을 가진 주인공의 최후 모습에 악마들은 낄낄거릴 뿐이다. 지옥에 있는 악인들은 주저앉아야 했던 이유가 전해진다. 죽어서도 악인들이 꿈꾸는 욕망과 행태가 변함없이 전해지는 짧은 소설이다.

『444번 채널의 동굴인들』에서는 인간이 무엇인지 꼬집는 소설이다. 잊고 살면 안 되는 것들도 쉽게 잊고 살아가는 형태를 기묘한 사건인 동굴인들 사건을 통해서 전해진다. 444번 채널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잊지 않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강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신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주저앉았고, 악마들은 낄낄거렸다. 326

처음 몇 달간은 동굴인들을 기억했다.

그러나 1년, 2년, 사람들은

더 이상 444번 채널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궁금하지 않았다. 317

전 인류는 피곤을 모르게 되었다.

인간의 하루 활동 시간이 23시간으로 길어졌다. 232



『흐르는 물이 되어』에서는 인간의 욕망과 과욕이 전해진다. 활동하는 시간과 쉬어야 하는 시간이 엄연하게 필요하다. 쉬지 않고 일하는 인간, 쉬지 못하게 하는 사회, 노인과 미성년자들을 노동시장에서 활용하는 현대사회는 이상한 나라이다. 노인의 기준을 법으로 정한 것과 노동시장에서 죽을 때까지 일하라고 규정하는 노인 일자리가 위태로운 사회이다. 활동성이 부족한 노동자들을 활용하는 나라의 정책이 정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매번 느끼게 된다. 노동시장에 있으면 안 되는 노동력들이 한국 사회는 무분별하게 쓰임을 다하는 사회이다. 이 소설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엿보인다. 인류는 피곤을 모르면서 하루 활동 시간을 23시간으로 활용하는 인류가 등장한다. 기묘하지만 기묘하지 않은 한국 사회가 오버랩되는 순간이 된다.

『식인 빌딩』에서는 이기적인 주장과 합리적인 주장이 대립을 이룬다. 다수를 이룬 소수의 희생이 제시되면서 사형수의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 작은 디스토피아에 대해서도 이야기된다.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 절망을 인지한 사람들,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까지도 예리하게 꼬집는다. 지금도 이름 없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다수가 안락하게 생활을 하고 있음을 고찰하게 된다. 위험을 무릅쓰면서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살펴보게 한다. 소방대원의 죽음, 노동자들의 죽음들이 하나둘씩 상기된다. 노동하는 작가의 시선에 떠오른 이야기에서 압축된 한국 사회와 인간성을 보게 된다. 이질적이고 이기적인 인간, 완전하다고 믿는 믿음이 허상이기도 하다는 진실까지도 보게 된다. 부조리한 사회의 모습들을 작가만의 소설로 탄생한 24편의 이야기들에서 예리함을 관찰하게 된다. 허구이지만 낯설지 않은 우리 사회의 모습들이 연거푸 보였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주장. 합리적인 주장 201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사형수의 인권, 작은 디스토피아, 희망과 절망, 희생의 강요까지 202

『인간 재활용』이야기도 긴 잔상을 남긴다. 많은 돈으로 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과 딸을 다시 살려내고자 노력하는 아버지의 재력과 의지는 어떻게 좌절되었는지 진실이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딸이 다시 살아나지 못했던 이유와 공모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밝혀진다. 다시 살아날 기회를 가지고자 가장 먼저 죽여야 했던 한 사람이 있었고 그 괴로움을 호소하고자 아버지 꿈에 나타나지만 아버지는 딸의 부탁을 무시해버린다. 기회가 왔을 때 확률적으로 기회를 가지고자 선택하는 인간의 모습과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의 의지로 인해서 무수히 잘려나가는 딸의 신체들도 의미심장해진다. 기발한 이야기들이 무수히 전해져서 읽을 때마다 매번 새로웠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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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진하는 밤 문학과지성 시인선 589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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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워크

뒤로 걷고 싶다 ...

누군가가 두 팔을 벌린 채

내 등을 안아주려고 서 있는 대까지

무사히 도착하고 싶다 ...

'그쪽으로 가지 말고 이리 와봐' 하면서

영원히 나를 기다린 것 같다... 52

나는 대체로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고...

지금부터 뒤로 걷는 거다 부드러운 스텝으로 저쪽 모퉁이까지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구두를 벗고 재킷을 벗고 콧수염을 떼는 거다 53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했는데 지금부터는 뒤로 걷고 싶다고 고백한다. 누군가가 두 팔을 벌린 채 자신을 안아주려고 서 있는 대까지 뒤로 걷고 싶다고 한다. 무사히 도착하고 싶다는 고백이 간절하다.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 쉽지만 뒤로 걸으면서 누군가에게 안기는 그 도착점은 안전할까.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 누군가가 있을까. 누군가가 곧 우리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뒷걸음질을 치는 것도 안전하다는 것을, 안아줄 수 있는 타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앞으로만 걷는 발걸음도 있지만 뒷걸음질도 안전하다는 것을, 안아주는 온기를 가득히 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뒷걸음을 할 수 있도록 모퉁이가 되어주는 우리. 변장하였던 것들을 하나둘씩 벗어던져도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리가 많아졌으면 한다. 구두를 벗고, 재킷을 벗고, 콧수염도 떼어도 두 팔 벌려서 안아주는 우리가 되고 싶다.




★ 얼굴이라도 보고 와야겠어

모가지가 두 개는 되어야 겨우 버틸 수 있는 얼굴,... 솜으로 채워진 얼굴, 얼굴을 베고 잠든 베개,

자그마한 구명보트가 이마에 정박해 있는 얼굴, 두 손을 가슴에 올리고 심장의 박동을 느낄 때 오늘도 실패했구나 생각하며 경련이 이는 얼굴, 빗물받이처럼 두 귀가 쇠구슬을 같은 눈물을 모으는 얼굴, 보고 있는 것들이 모조리 통과되고 있는 얼굴,... 뒤통수 뒤로 숨는 얼굴 64~65

수많은 얼굴들이 있다. 솜으로 채워진 얼굴은 어떠한 얼굴일까. 얼굴을 베고 잠든 베개는 더욱 압도적이다. 뒤통수 뒤로 숨은 얼굴과 오늘도 실패했구나 생각하며 경련이 이는 얼굴도 다르지가 않다. 두 귀가 눈물을 모으는 얼굴은 어떤 얼굴인지도 상상하게 된다. 생명을 살리는 구명보트도 작기만 하다. 그 작은 구명보트가 이마에 정박해 있는 얼굴은 어떤 하루를 보냈던 것일까. 이 모든 얼굴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작은 아이들부터 청소년들, 청년들, 비정규직, 계약직, 무거운 발걸음과 한숨을 가득히 담고 바쁜 걸음으로 살아가는 도시인들이 떠오르게 된다. 모두가 이와 같은 얼굴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99%을 이루는 대다수의 현대인들의 얼굴이 이 시어들이 된다.

촉진하는 밤의 시집의 시들을 오랜 시간 무거운 발걸음으로 읽게 한다. 묵직한 무게감들을 버겁게 느끼게 한다. 시인의 시집을 처음으로 읽으면서 몇 번을 감탄하게 한다. 여러 번 다시 읽게 되는 시들이다. 올해의 시집 인기 순위에 자리잡은 시집이라 주문하였고 또 다른 시집들까지도 눈길이 가게 된다.




★ 우리의 활동


매사에 입술을 열 때마다 애를 써야 한다

선의와 호의를 두 배 세 배 열 배로 담기 위해서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해지니까

슬픔을 나누기 위해서 달려왔으나

우리가 나누는 것은 축복일지도 몰랐다

설사 간간이 울먹인다 해도

...

윤곽만 겨우 남은 지난 일화가 손끝에 잡혔다가 바스라져간다 34

...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다

튼튼하고 둥근 올가미를 두 손에 들고서

검고 깊은 볼모로서 35


입술로 말을 한다. 말에는 선의와 호의를 담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러한 노력이 담기지 않는 말은 검은 올가미가 된다. 깊은 올가미가 된다. 올가미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검고 튼튼한 죽음이 된다. 슬픔을 나누는 타인인지도 살펴야 한다. 외롭게 홀로 남겨지도록 무관심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는 시어가 전해진다. 말을 할 때마다 애를 써라고 시인은 강하게 전한다. 말 한마디가 슬픔을 나누기를, 검은 물이 흐르는 말이 되어서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세우는 올가미가 되지 않는 말이 되도록 우리의 활동, 우리의 말을 클로즈업시킨다.

<스위트홈>시즌 1에서 괴물이 되는 사람들을 영상미로 보았다. 시집에서는 시어가 전달하는 상징성으로 따가운 매가 되어 우리들의 말들을 단단하게 살피게 한다. 하루하루가 노력해야 하는 삶의 여정이다. 매순간 노력하지 않으면 오물로 뒤덮인 삶의 흔적을 남기기 쉽기에 시인의 시들을 통해서도 매진하게 된다. 든든한 동행자가 되어준 시인이며 시집이다. 밤이 상징하는 어둠을 여러 편의 시들을 통해서 깊게 조우하게 한다. 어떤 말을 하였는지, 어떤 선택들을 하였는지, 어떤 방향성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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