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진하는 밤 문학과지성 시인선 589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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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워크

뒤로 걷고 싶다 ...

누군가가 두 팔을 벌린 채

내 등을 안아주려고 서 있는 대까지

무사히 도착하고 싶다 ...

'그쪽으로 가지 말고 이리 와봐' 하면서

영원히 나를 기다린 것 같다... 52

나는 대체로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고...

지금부터 뒤로 걷는 거다 부드러운 스텝으로 저쪽 모퉁이까지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구두를 벗고 재킷을 벗고 콧수염을 떼는 거다 53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했는데 지금부터는 뒤로 걷고 싶다고 고백한다. 누군가가 두 팔을 벌린 채 자신을 안아주려고 서 있는 대까지 뒤로 걷고 싶다고 한다. 무사히 도착하고 싶다는 고백이 간절하다.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 쉽지만 뒤로 걸으면서 누군가에게 안기는 그 도착점은 안전할까.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 누군가가 있을까. 누군가가 곧 우리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뒷걸음질을 치는 것도 안전하다는 것을, 안아줄 수 있는 타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앞으로만 걷는 발걸음도 있지만 뒷걸음질도 안전하다는 것을, 안아주는 온기를 가득히 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뒷걸음을 할 수 있도록 모퉁이가 되어주는 우리. 변장하였던 것들을 하나둘씩 벗어던져도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리가 많아졌으면 한다. 구두를 벗고, 재킷을 벗고, 콧수염도 떼어도 두 팔 벌려서 안아주는 우리가 되고 싶다.




★ 얼굴이라도 보고 와야겠어

모가지가 두 개는 되어야 겨우 버틸 수 있는 얼굴,... 솜으로 채워진 얼굴, 얼굴을 베고 잠든 베개,

자그마한 구명보트가 이마에 정박해 있는 얼굴, 두 손을 가슴에 올리고 심장의 박동을 느낄 때 오늘도 실패했구나 생각하며 경련이 이는 얼굴, 빗물받이처럼 두 귀가 쇠구슬을 같은 눈물을 모으는 얼굴, 보고 있는 것들이 모조리 통과되고 있는 얼굴,... 뒤통수 뒤로 숨는 얼굴 64~65

수많은 얼굴들이 있다. 솜으로 채워진 얼굴은 어떠한 얼굴일까. 얼굴을 베고 잠든 베개는 더욱 압도적이다. 뒤통수 뒤로 숨은 얼굴과 오늘도 실패했구나 생각하며 경련이 이는 얼굴도 다르지가 않다. 두 귀가 눈물을 모으는 얼굴은 어떤 얼굴인지도 상상하게 된다. 생명을 살리는 구명보트도 작기만 하다. 그 작은 구명보트가 이마에 정박해 있는 얼굴은 어떤 하루를 보냈던 것일까. 이 모든 얼굴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작은 아이들부터 청소년들, 청년들, 비정규직, 계약직, 무거운 발걸음과 한숨을 가득히 담고 바쁜 걸음으로 살아가는 도시인들이 떠오르게 된다. 모두가 이와 같은 얼굴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99%을 이루는 대다수의 현대인들의 얼굴이 이 시어들이 된다.

촉진하는 밤의 시집의 시들을 오랜 시간 무거운 발걸음으로 읽게 한다. 묵직한 무게감들을 버겁게 느끼게 한다. 시인의 시집을 처음으로 읽으면서 몇 번을 감탄하게 한다. 여러 번 다시 읽게 되는 시들이다. 올해의 시집 인기 순위에 자리잡은 시집이라 주문하였고 또 다른 시집들까지도 눈길이 가게 된다.




★ 우리의 활동


매사에 입술을 열 때마다 애를 써야 한다

선의와 호의를 두 배 세 배 열 배로 담기 위해서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해지니까

슬픔을 나누기 위해서 달려왔으나

우리가 나누는 것은 축복일지도 몰랐다

설사 간간이 울먹인다 해도

...

윤곽만 겨우 남은 지난 일화가 손끝에 잡혔다가 바스라져간다 34

...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다

튼튼하고 둥근 올가미를 두 손에 들고서

검고 깊은 볼모로서 35


입술로 말을 한다. 말에는 선의와 호의를 담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러한 노력이 담기지 않는 말은 검은 올가미가 된다. 깊은 올가미가 된다. 올가미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검고 튼튼한 죽음이 된다. 슬픔을 나누는 타인인지도 살펴야 한다. 외롭게 홀로 남겨지도록 무관심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는 시어가 전해진다. 말을 할 때마다 애를 써라고 시인은 강하게 전한다. 말 한마디가 슬픔을 나누기를, 검은 물이 흐르는 말이 되어서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세우는 올가미가 되지 않는 말이 되도록 우리의 활동, 우리의 말을 클로즈업시킨다.

<스위트홈>시즌 1에서 괴물이 되는 사람들을 영상미로 보았다. 시집에서는 시어가 전달하는 상징성으로 따가운 매가 되어 우리들의 말들을 단단하게 살피게 한다. 하루하루가 노력해야 하는 삶의 여정이다. 매순간 노력하지 않으면 오물로 뒤덮인 삶의 흔적을 남기기 쉽기에 시인의 시들을 통해서도 매진하게 된다. 든든한 동행자가 되어준 시인이며 시집이다. 밤이 상징하는 어둠을 여러 편의 시들을 통해서 깊게 조우하게 한다. 어떤 말을 하였는지, 어떤 선택들을 하였는지, 어떤 방향성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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