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고다 아야 지음, 차주연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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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그림이 눈길을 오랜시간 이끌었다. 출간되어 30년이 지나도록 사랑받고 있는 책이라는 문구에 또 한 번 흔들렸다. 작가가 타계한 후 출간된 유작이었기에 더 마음이 움직였다. <씨네21> 이다혜 기자와 식물 세밀화가 이소영의 추천도서이기도 하다. <퍼펙트 데이즈>영화의 주인공 히라야마의 머리맡엔 놓인 책이라는 영화까지 시청하게 만든 책이다.

많은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지만 가문비나무의 세대교체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작가의 마음을 이끌었던 자문비나무의 갱신에 대해 전해진다. 몇 백 년을 살았던 나무가 쓰러져서 생을 다했지만 죽은 나무 위해서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 씨앗이 발아하고 살아남아서 다음 세대 세대교체를 하고 있는 정경을 작가는 숲에서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이야기이다.

숲의 정적과 고요를 떠올리게 한다. 생존의 허락을 받은 행복한 씨앗이 어떤 환경에서 자생하고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지 이 글에서 전해진다. 정말 강하고 운 좋은 소수만이 생존이 허락받았음을 보게 된다. 자생하고 있는 모양새가 일자 모양이라 작가는 글쓰기로 기록한다. 조화로운 나무의 품격, 이끼가 나무의 수의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이끼를 헤집고 죽은 나무의 온도, 단단함과 부스러지는 것을 전한다. 의외의 온기를 느끼면서 작가는 죽은 나무의 감정을 느끼며 나무의 숨긴 감정을 찾는 여정이 얼마나 의미 깊은 작업인지도 전한다.

나무의 나이를 숲에서 전문가에게서 설명을 들으면서 인간의 수명이 얼마나 비루한지도 비교한다. 웅장한 시간을 보냈을 나무의 샘플과 그루터기를 보면서 인간이 버틴 삶의 여정은 어떤 뒷모습을 남길지도 숙고하게 한다. 다채로운 사유로 이어지게 하는 나무와 연관된 글이다. 작가가 자문비나무의 세대교체를 목도하고 새롭게 배운 하나의 깨달음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일깨운다.

난잡하지 않고 위압감이 없는 나무의 세대교체는 이 시대에도 적잖은 의미를 상징한다. 나무학자들의 책들을 꾸준히 읽으며 나무의 경의로운 공존과 공동체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무는 자신의 생애만큼 중량감으로 자태를 돋보인다. 인간의 생애는 살아온 삶만큼 어떤 무게감을 가지면서 살아가는지 질문을 아낌없이 던지게 된다. 죽은 나무가 다음 세대를 위해 온기를 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추악한 생애가 아닌 그리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 냉혹한 존재가 아닌 온기가 흐르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이유들이 즐비해지는 글이다.

숲과 같은 세상에서 우리의 뿌리는 어떤 상태인지, 청아하고 평안한 품격인지, 난잡하고 위압감을 상징하는 품격인지도 질문을 아끼지 않는 가문비나무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매일 산책하면서 나무의 뿌리와 가지, 잎들을 무수히 바라볼수록 이 책의 내용도 자주 상기하게 될 것이다.



홋카이도의 자연환경은 열악하다. 싹이 터도 나무로 자라지 못한다. 하지만 쓰러져 죽은 나무 위에 안착해 싹을 틔운 씨앗은 행복한 씨앗이다. 수월하게 자랄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11

약한 존재는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다. 열악한 조건에 적응할 수 있는 정말 강하고 운 좋은 소수의 몇 그루만 겨우 생존을 허락받는데... 300~400년쯤 된 나무도 있다. 12

생사의 경계, 윤회의 무참함... 그렇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죽음의 순간은 찰나다. 죽은 후에도 이처럼 온기를 품을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 - P25

온기. 분명히 따뜻했다. 새로 자란 나무의 뿌리 아래서 보송보송했고 온기를 품고 있었다. - P23

뿌리는 의외로 단단하게 구성되어 있다... 오로지 살겠다는 일념으로 용맹함을 숨기지 않았다. - P19

나무란 이처럼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다...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나무가 숨긴 감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 P24

자연의 동반자는 조화롭게 공존한다. 굵기와 높이가 비슷한 나무가... 그 사이사이에 그보다 작고 가는 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섞여 있었다. - P16

위압감은 없었지만 난잡함을 거부하는 품격이 있다. 청아하고 평안한 그런 품격이었다. 쉽사리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품격이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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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2-24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7년 10월을 돌아봅니다. ‘달팽이’라는 이름으로 수수하게 숲책(생태환경책)을 펴내는 곳에서 《나무》라는 이름을 투박하게 붙인 책을 선보였습니다. 군말도 군더더기도 없이 오롯이 ‘나무’라고만 이름을 붙인 책을 내놓을 수 있구나 싶어 놀랐고, 둘레에 이 책을 사읽으라고 여쭐 적에 도무지 사읽는 이웃을 만나지 못 해서 쓸쓿던 일이 떠오릅니다.

요즈막에 여러 이웃님이 《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을 사읽는 이야기를 곧잘 들으면서 “설마 그 《나무》가 겉갈이만 하고서 다시 나왔나?” 싶었는데, 다른 펴냄터에서 나왔군요. 옮긴이도 똑같으니 줄거리도 똑같을 테지요.

비록 2017년에는 눈여겨보거나 품는 사람이 드문 나머지 그리 못 읽히고 사라져야 했지만, 새롭게 나와서 읽힐 수 있으니 반가우면서도 조금은 허전합니다. 나무는 하루아침에 번쩍 자라지 않는 터라, 이 책 《나무》도 마치 나무살이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띄엄띄엄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네철을 누리면서 느긋이 읽고 살필 적에 비로소 “왜 ‘나무’라고 투박하게 이름을 붙여서 내놓았는”지 시나브로 느낄 만하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