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사에는 참전 군인들의 삶이 존재한다.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은 일상으로 무사히 귀환하였을까? 온전한 가정으로 돌아왔는지 살펴보게 된다. 넷플릭스 영화로 만난 이 영화는 아버지와 딸이 산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모습들이 이어진다. 먹고 자고 비가 내리면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는 이유들이 그들에게는 생존게임이었음을 보여준다. 산에서 두 사람이 왜 생활하고 있었는지도 작품은 서서히 드러내면서 참전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현재도 위협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갈 만큼 영혼이 파괴되어 있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전해진다.


아내는 보이지 않고 청소년 딸과 산에서 생활하고 사회적 부적응자로 생활하는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부녀의 모습이 계속 영상미로 고발한다. 왜 그의 영혼은 참전하기 이전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일까. 전쟁의 여파는 딸의 삶에도 큰 파동을 일으킨다. 한 사람의 삶으로 끝나지 않고 아내와 자식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쟁에 참전한 군인은 일상 복귀에 실패하였다. 전쟁의 당위성은 참혹한 결과만을 남긴다. 헬리콥터 소리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그는 현재도 전쟁터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공간을 분별하지 못할 정도로 그의 영혼은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했던 것일까. 말하지 않는 침묵에는 그가 전쟁터에서 경험한 것들을 함축하면서 전쟁과 관련된 것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실패자로 귀환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가 나무를 벌목하는 작업장에서도 부적응하는 모습이 안타깝게 전개된다. 그가 그곳에서 도망가는 것과 그곳에서 떠나고 싶지 않다는 딸의 반응과 선택을 묵묵히 전하는 영화이다.


파괴된 영혼들은 젊은 군인들이었다. 그들의 죽음, 그들의 상실된 신체, 영혼의 파괴는 전쟁의 결과로 통계된다. 무엇도 살릴 수 없는 파괴된 젊은이들로 남는다. 전쟁과 군인은 죽음과 훈장, 메달, 위령탑의 이름을 남기는 것으로 정당성을 강요하지만 문학과 영화 예술가들은 전쟁 옹호자들이 틀렸다고 무수히 고발한다.

자살로 마감되는 사라지는 참전 군인의 죽음은 숫자로 통계 되고 집계되는 단순한 사회적 손실로 치부되어서는 안되는 사회적 문제이다. 미국에서 국민들이 전쟁을 거부하는 상황에 정치권의 선택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도 함께 생각하였던 작품이다.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안과 겉>을 읽었다. 작가의 아버지가 열의에 가득 차서 참전한 군인이었고 그는 머리에 총알을 맞고 일주일 동안 신음하고 앞을 보지 못하다가 사망하였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남겨진 아내와 자식의 가난을 그는 회상하면서 빼앗긴 남편과 아버지를 글로만 남기게 된다.

지금도 총기의 정당성과 누구를 향하는 총알이었는지 역사에 기록되는 시대이다. 돈의 가치, 성장의 가치, 생명의 가치 정도는 무의미하다고 치부하는 극소수의 선택과 정당성이 부각된다. 일상의 행복을 권력이 빼앗을 수는 없지만 현실은 그들이 보통의 사람들을 위협하면서 교활하게 그들이 끌어안고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허게 된다. 그들이 기뻐하는 것에는 누군가의 죽음도 포함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군대가 하는 짓이야말로 도둑질이지.

너희 아버지를 데려가고,

우리 아버지를 데려가는 거...

저 위의 모든 부자 나치들 692

이 나쁜 새끼들...

이 예쁘장한 나쁜 새끼들...

내 속의 찰과상이 보여?...

나를 침식하는 게 보여?...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누릴 자격이 없으니까. 745

너를 벌하지 마.

벌과 고통...

행복도 있을 터였다.

그것이 글쓰기였다. 750


책도둑 / 문학동네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에 있는 것 463

인생을 허비하고...

깨닫고...

어리석고 하찮은 존재에게

자신의 모든 꿈을 걸었음을...

영혼을 전부 쏟아부었음을... 281


면도날 세계문학전집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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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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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단편소설들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그중 하나인 『퀴큰 나무 숲의 밤』 소설이 인상적이다. 사제가 살았던 언덕 위의 집에 그녀가 살고 있다. 이미 사제는 죽었고 사제와 사촌인 그녀는 사제와 인연이 있었다. 낯선 언덕의 집에 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용맹한 여자라고 설명된 그녀의 사연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옆집의 사내가 그녀에게 살던 곳이 그립지 않냐고 질문을 하는데 그녀는 나무가 그립다고 말한다. 나무는 마가목을 의미하는데 커다란 마가목 장작을 너무나도 갖고 싶어하면서 장작이 탈 때 냄새와 열기를 그녀는 상상하기도 한다. 더불어 노래까지도 떠올리면서 마가목 장작의 의미는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소설 제목과도 접목할 수 있게 된다.

살고 있던 곳을 떠난 그녀는 지금 언덕의 집에서 청소를 한다. 소독하고 창유리도 닦고 굴뚝 청소도 한다. 좋은 일이 생기지 않았던 일들을 지워내듯이 그녀는 언덕의 집을 청소한다. 문득 사제가 지옥에 갔을지 생각도 한다. 사제가 마가릿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서서히 드러난다. 결혼하자고 약속하고 아이를 낳자고 말했던 사제는 갑자기 사제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의미없는 사람처럼 그녀를 무심하게 스쳐지나친다. 그녀는 돌변한 사제의 모습에 질문을 하고자 하다가 홀로 감당해야 하는 사건을 경험하게 되면서 불행이 그녀를 덮치게 된다. 혼자 감당하였을 여자의 임신, 출산, 아들의 죽음을 마가릿은 홀로 온몸으로 받아들였음을 짐작하면서 영아 돌연사도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난날들을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신부의 아이를 가졌던 여자, 혼자 사는 여자, 옆집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이다. 언덕의 집에서 사는 그녀는 사람들의 병과 유령을 쫓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그녀를 호의적으로 생각한다. 점을 봐주는 집시 여인이 그녀의 지난날들을 남김없이 점쾌를 봐주면서 죽은 아들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제대로 말해주면서 그녀는 치유받기 시작한다. 생명을 잉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녀에게 꿈이 예지해준 것처럼 그녀에게 다시 아이를 임신할 수 있는 만남과 아기가 태어나면서 그녀와 그에게도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호감을 가진 그와 그녀의 새로운 기회의 땅인 아기는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해준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두 사람의 집은 깨끗해지고 주님의 행하심과 신비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사랑하지 않고 사랑받지 않는 사람들은 어둠과 같은 밤을 보내게 된다. 그녀도 그도 그렇게 어두운 밤으로 시간을 채워갔음을 보여주면서 두 사람이 사랑하고 잉태한 아이를 키우면서 주어진 기회를 서로가 붙잡았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더 이상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고 적의적인 상대로 그녀를 위험하게 대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그들의 의도와 적의를 알고 그 마을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아이 아빠인 그는 이미 그녀가 언젠가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녀의 떠남을 놀라워하지 않는다.

불행을 경험한 그녀는 누구도 헤치지 않을 것이며 누군가 자신을 헤치려고 하면 떠날 것이라고 다짐하였던 그녀이다. 그녀가 누군가를 헤치지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떠나버리게 한 이유가 된다. 소설의 마을 사람들에 해당되는 이들이 누구이며, 그녀는 누구인지 둘러보게 하는 작품이다. 그녀의 삶에 지키지 못한 약속을 한 젊은 신부의 무모한 모습과 임신한 아기를 책임지지 못한 신부의 행동, 사제가 죽어서 지옥에 갔을지 생각하는 그녀와 출산의 고통과 배에 남긴 제왕절개 흉터는 그녀의 지울 수 없는 큰 상흔이며 그녀의 새로운 사랑과 기회에도 고백해야 하는 지난 과거가 된다. 가족에게서 외면당하고 부정당하면서 혼자 감당한 그녀의 젊은 날들의 무수한 시간은 소설은 언급하지 않지만 용맹한 여자라고 단언한 표현에서 그녀는 충분해진다.

다시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떠난 마거릿의 이유와 선택에는 타인의 나쁜 마음들이 원인으로 시작한다. 왜 타인을 헤치려고 하는 마음과 말, 행동들이 넘쳐나는 것인지 소설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된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살았던 그녀의 단호한 마음은 결국 푸른 들판을 걸어가게 한다. 푸른 들판을 걷고 걸어가고 있는 무수히 많은 여자들이 지금도 있고 과거에도 있었을 것이다. 악행을 답습하는 우매한 무리가 아닌 누군가를 헤치지 않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소설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폭언, 폭행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는 카인의 후예임을 확인하는 것임을 보여준 작가이다. 단란한 구성원이 되지 못하고 해체되었던 그녀의 지난날들의 신부와 부모님이 있었으며 그녀가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 마을 사람들의 악의가 또다시 그녀를 푸른 들판을 걷게 하였음을 소설은 멋지게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다.



여자가 마을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던 이유가 드러나면서 적당한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정선인지도 의문스러워진다.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소문들이 얼마나 그녀의 삶을 명확하게 설명한 것들이었는지도 다시 확인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는지 작가는 사실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학교가 얼마나 쓸모없는 것들을 가르쳤고 모유를 먹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는지도 언급한다. 과소비하고 간음하며 방탕한 삶을 사는지도 꼬집는다. 생각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단상을 이렇게 시원하게 묘사하는 작가의 소설에 반해버린 이유 중의 하나가 된다. 언덕의 집에 살았던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 문장들이 답해준다. 홈스쿨링 하는 이유와 나름의 설득력은 부족함을 없어지면서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여야 하는 이유가 된다.


이 소설은 짧은 소설이지만 힘이 있는 작품이다. 자두와 감자를 구분 못하는 인생은 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지는 작품이다. 잘 자고 검소하게 사는 것의 의미도 강조되는 소설이다. 후회와 슬픔의 무의미, 배신하는 과거의 의미를 곱씹지 않아야 했을 그녀만의 삶의 방식도 눈에 띄었던 소설이다.



아이가 태어났다. 두 집이... 깨끗해졌다. 238


주님의 행하심은 정말로 신비로웠다. 239



젊은 사람들은 물고기를 못 잡고 우유에서 크림을 분리하는 법도 몰랐다. 그들은 엄마 젖도 못 먹어본 아이들을 데리고 자기 형편에 과분한 차를 몰고 다녔고. 기회만 생기면 간음을 저질렀다. 사실 기회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았다. 맥주도 병째 마셨고 미국과 프라하에 다녀와서 피자를 찾았으며... 자두와... 감자도 구분 못했다.
- P193

무엇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이미 일어난 과거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였다. 과거는 곧잘 배신을 했고, 천천히 움직였다...후회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고 슬픔은 과거를 다시 불러올 뿐이었다.

잘 자고 검소하게 먹었고 바닷가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왔다.
- P194

아이가 태어났다. 두 집이... 깨끗해졌다. - P238

주님의 행하심은 정말로 신비로웠다 - P239

인간 세상을 내다볼 때는 많은 것을 견뎌 내고 살아남은 여자처럼 엄격한 시선이었다.40살도 채 안 되었지만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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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베 얀손의 <두 손 가벼운 여행>, 아니 에르노의 <사건>,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를 민음사의 쏜살문고로 읽었다. 책 디자인이 작아서 기억나는 책들이였는데 쏜살문고 시리즈라는 사실은 민음사 2025년 세계문학 일력 어플리케이션을 매일 이용하다가 알게 되었다. 책과 작가만 기억하였는데 쏜살문고까지 제대로 알게 되면서 어떤 책들이 있는지 모두 알아보는 시간도 가지는 새해이다.















짐이 가벼운 여행의 장점 84

여행.여행.이리로 왔다가 또 저리로 갔다가...

매번 똑같어요.집에 갔다가는 돌아오고,

돌아갔다가 다시 집으로. 86



















그저 사건이 내게 닥쳤기에,

나는 그것을 이야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 삶의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아마도 이것뿐이리라. 나의 육체와 감각

그리고 사고가 글쓰기가 되는 것 79



















극장에 갔었다...

어떻게 검열에 통과되었는지 놀라웠다.

상인은 다 사기꾼이고,

그 자식들은 난폭한 행동에 추태를 일삼고... 신문쟁이들...

그들은 욕설만 퍼붓고 있으며,

작가는 독자에게 자기를 보호해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네 관리들 중에는 돼지 같은 놈들이 있다.

농사꾼들은 극장에 가지 않는다...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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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눈동자는 인물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가면이었다는 얼굴과 눈동자로 표현되는 문장도 등장하지만 영혼을 모두 감추기는 어려운 만큼 한강 소설집인 <여수의 사랑>중의 <진달래 능선>에 등장하는 주인 황씨의 모습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넷플릭스 영화 <흔적 없는 삶>에서도 다르지가 않다. 참전한 군인의 황폐한 영혼을 다루는 영화를 보면서 서머싯 몸 작가의 <면도날> 세계문학전집 소설이 생각나면서 파괴된 영혼이 얼마나 오랜시간 부유하면서 현재의 삶을 살지 못하는지 보여준다.

언급한 세 작품들의 공통점은 인물들의 영혼이 왜 파괴되었는지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눈과 얼굴, 삶은 예전의 것을 찾지 못한다. 다른 듯 닮아있는 이들의 영혼은 누구에 의해서 파괴되었고 현재를 살지 못하게 되었느냐가 관건이 되면서 작품들의 작품성은 예사롭지 않게 부각된다.



면도날 소설에서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시체더미가 등장한다. 프랑스 군인은 십자가 아래 망자들이 되어서 살아있는 우리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살아서 목격하고 경험한 것들이 온전히 행복하다고 회상하기는 어려워지면서 천국과 지옥이 생과 사로 나뉜다면 어디가 천국인지 지옥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된다.

평온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꿈꾸지만 일그러진 욕망에 훼손된 폭력들을 지금도 무차별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현실이다. 비폭력주의와 폭력주의를 거침없이 목격하면서 폭력에 피해를 당한 이 시대의 자식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글과 걱정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을 확인할수록 이 소설의 가치가 높아진다.

폭력은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는 것임을 소설을 통해서, 황폐해진 참전 군인들의 영혼을 통해서 보여준다. 전쟁과 폭력은 소수집단에 의해 이용되는 허상일 뿐이며 분별력을 잃고 행동하는 무리의 폭력은 평화주의의 반대편임을 확인하게 된다.



<중증외상센터>드라마도 자본주의라는 폭력성을 아낌없이 고발하는 작품이다. 국익을 위해 싸운 참전 군인의 총상에 국민을 살리는 것보다 손익계산을 하면서 닥터헬기를 보낼 수 없다고 참모들이 말하는 장면이 섬뜩해진다. 참전 군인의 희생은 어떤 가치였는지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질문을 하게 된다.

거침없는 자본주의에 누구도 예외가 없는 상황에서 돈의 가치에 누락되고 장례를 논의하자는 대책 회의 장면도 예사롭지 않은 명대사가 된다. 살리는 것보다 죽음이 쉬운 자본주의의 진짜 모습이 거침없이 드러나면서 죽이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위험한 생각을 고발하고 있다.

죽은 사람은, 정말로 죽은 사람처럼 보여. 82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처럼 살아가는 인물들이 주변에 공존하고 있음을 살펴보게 하는 것이 소설이며 영화이다. 면도날 소설과 여수의 사랑 소설집의 <진달래 능선>에도 등장하며, 영화 <흔적 없는 삶>과 <중증외상센터>드라마에서도 병원장과 기조실장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인간적인 사람임을 알려주는 작품들이다.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본연의 영혼을 저버리고 괴물이 되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항문외과 과장이 치열하게 내면과 싸워서 인간성을 회복하는 장면들에 희망은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매일 어제의 자신과 싸워야 한다고 하는 글이 떠오르면서 오늘도 무엇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지 짚어보게 하는 작품들이다. 악의적인 것은 쉽고 거짓말하는 것도 쉬워 보인다. 사기꾼을 분별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이유까지도 드러나면서 날카로운 분별력이 필요한 시대임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세상에 사랑하는 젊은 연인들만큼 아름다운 모습은 없으리라 37

사랑이 없는 세상은 바싹 마른 건조한 사막과 다름없기에 사랑의 가치는 더 중요해진다. 혐오와 차별, 무시와 폭력으로 얼룩진 분쟁의 현장은 더 이상 희망을 꿈꾸기가 어려워진다.



사람을 규정하는 등가 법칙에 대해서도 소설은 언급한다. 반면 누군가는 스스로가 택한 삶의 방식과 강인함과 장점이 비범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사회규범에 무분별하게 익숙해지는 것과는 대조적인 자의적인 영혼이 되는 노력이 왜 필요한지 여러 작품의 작가들은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서 강조한다. 우리는 어떤 인물로 오늘을 살고 있는지 자문하게 한다. 거칠고 힘든 자갈길이지만 강인함으로 거듭나는 영혼을 지키는 사람인지 질문하도록 이끌어준다.


그가 택한 삶의 방식이나 그만이 지닌 강인함과 장점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에게 점점 더 커다란 영향을 끼쳐... 매우 비범한 인간이 하나 살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지도 10

태어난 지역, 아파트나 농가, 어릴 적 하던 놀이, 민간 속설들, 먹는 음식, 공부한 학교, 좋아하는 스포츠, 읽은 시들, 믿는 신 등이 그 사람을 만든다. 이러한 모든 요소가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규정한다. 12







그가 택한 삶의 방식이나 그만이 지닌 강인함과 장점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에게 점점 더 커다란 영향을 끼쳐... 매우 비범한 인간이 하나 살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지도 _ 면도날 세계문학전집 - P10

태어난 지역, 아파트나 농가, 어릴 적 하던 놀이, 민간 속설들, 먹는 음식, 공부한 학교, 좋아하는 스포츠, 읽은 시들, 믿는 신 등이 그 사람을 만든다. 이러한 모든 요소가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규정한다._면도날 세계문학전집

세상에 사랑하는 젊은 연인들만큼 아름다운 모습은 없으리라 - P37

죽은 사람은, 정말로 죽은 사람처럼 보여.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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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 원작만화 <조명가게> 드라마를 보면서 등장하는 명대사들을 들으면서 이 책을 몇 차례나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의 공통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와 사고의 범주로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임사체험을 경험한 그들은 그들만의 경험을 잘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명가게>드라마에서도 우리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들과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실존 인물이다. 희망을 가져볼 수 없는 상황인 중증 질병에 해당하는 암을 기적처럼 이겨낸 그녀만의 이야기들이 책에서 전해진다. 의사들도 이해하기 힘든 기묘한 일들이 그녀에게서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완치되는 기적들을 그녀가 직접 보여주기 시작하고 있음을 책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나는 더 이상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그저 ‘허용할’ 뿐이다.


의사와 간호사들, 병원 직원들도 이해하기가 힘든 기적적인 치유의 과정들을 그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그녀가 경험한 임사체험은 그녀를 어떻게 변화시키는 동기가 되었고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버려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자문하도록 이끄는 내용으로 남는다.

책을 읽고 무수히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분명하고도 뚜렷하게 각인되는 하나가 분명해지는 책이 되어준 내용이 있다. 그녀의 몸에 있는 암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한다.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고 있는 이러한 현상에 의사들과 간호사들도 놀라움을 감추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녀를 치유해 준 것은 무엇이며 무엇에서 시작한 치유였는지 저자는 책을 통해서 전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몸을 아프게 한 암의 발병 원민부터 그녀는 짚어내는 과정부터가 중요한 암 예방법으로 전해진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는지부터가 암의 치유의 출발선이 된다.



그녀가 성장한 나라의 종교와 부모의 성향이 그녀를 어떻게 억압하고 강요하였는지부터 살펴보면서 그녀는 자신을 아프게 한 암의 발병 원인을 찾는다. 엄격하고도 강요된 규율들이 그녀를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어떤 영향력을 억압하였는지 문화와 종교, 사회적 관습부터 살펴보게 된다.

한국도 다르지가 않는 사회이다. 남녀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같은 조건이지만 사회적으로 차별화되는 사회문화는 여전히 고수되는 상황이다. 부당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여전히 실존하는 한국사회이다. 하지만 여성작가들은 문학을 통해서 한국 사회가 여전히 얼마나 부당한 성차별과 가부장제에 희생되는 여성들의 역사가 우리들의 가정에서 여전히 실존하고 있는지 매섭게 꼬집는 여러 작가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한강 작가, 권여선 작가, 최은영 작가, 박서련 작가, 이슬아 작가가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이 작가들의 책들을 읽다가 작가가 작품으로 발현하는 응집되는 목소리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엘리프 샤팍 장편소설 『이브의 세 딸』에서 "중앙 집권적인 권위가 적으면 적을수록, 자유는 더 커집니다!" (166쪽) 문장이 말하듯이 가정과 사회, 국가의 권력과 권위가 어느 정도 부여되느냐가 관건으로 남는다. 권위와 자유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 우리는 현대사를 직접 목격하면서 더욱 통찰하게 된다.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격노하고 있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었는지 확인하게 된다.

인도라는 사회와 국가도 이 책을 통해서 한 뼘 알아가는 시간이 된다. 부모와 국가가 강요하는 것들이 그녀를 어떻게 아프게 하였고 암으로 발병하게 되었는지 문제들을 직시하게 한다. 가부장제가 어떤 문제들을 양산하고 결과적으로 비혼주의, 비출산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도 한국은 사회적 문제로 뒤늦게 문제를 파악하는 상황이다. 그녀는 이러한 사회적인 악습과 규범들과 싸우다가 암이 발병하였음을 자각하게 된다.



출처 : 인스타그램 



이외에도 관습에 대해 언급하는 서머싯 몸 작가의 세계문학전집 『달과 6펜스』, 크리스티앙 보뱅의 『흰옷을 입은 여인』 에세이, 남들보다 튀는 여자들의 목을 쳐라는 모나 숄레의 인문사회학 책 『마녀』 책도 상기시키는 내용들이다. 이슬아 작가 소설 『가녀장의 시대』, 한강 작가 소설 『채식주의자』, 권여선 작가 소설 『각각의 계절』, 최은영 작가 소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구병모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 등이 가부장제를 다루는 소설들로 기억에 남는다.

두려움이 어떻게 자신을 위협하고 아프게 하였는지도 상기된다. 두려워한 것들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진지하게 짚어보게 한다.

'나를 사랑하라'는 그녀의 엄중하고도 진실한 말에 다시 집중하게 하는 책이다. 이 말은 이기적인 의미의 사랑을 뜻하지 않는 의미이다.

이외에도 원자와 분자, 쿼크 등의 의미들도 사랑이라고 전한다.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랑의 범주를 넘어서는 확장된 의미로 설명된다. 하느님에 대한, 신에 대한 존재가 아닌 '존재의 상태'를 의미한다. <조명가게> 드라마를 보면서 다시 펼친 도서는 놓치고 있었던 것들은 없었는지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다행히 저자가 강조한 내용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매번 상기하면서 살아왔음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어주면서 책 내용을 다시 덮어쓰고 더 깊게 호흡하는 기회가 된 책이다.


내 삶을 만들어가는 창조자가 아니라

상황의 희생자였다.

병조차도 어느날 우연히 내게 '닥친' 외부 사건이었다.
































내가 치유된 것은 내 파괴적인 생각들을 다른 생각으로 고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생각들이 그저 말끔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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