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7
나탈리 사로트 지음, 위효정 옮김 / 민음사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발자크적 세계관을 해제한 작가의 소설 『향성』은 내적 충동에 주목한 최초의 작가라고 평가한 <파리 리뷰>글에 이끌려 구매한 책이다. 디킨스, 발자크, 모파상, 『마담 보바리』가 작품에서도 언급되는 이유들을 마지막 책장을 덮고나서도 조목조목 사유하게 된다.

기성 문학의 규칙을 깨는 글쓰기의 모험이라는 현대문학의 새로운 개척지를 이룬 작가의 소설이다. 첫 문장, 첫 문단, 마지막 문단, 마지막 문장을 무수히 읽지 않을수가 없었다. 번역된 글이 좋아서 오랜 시간 자주 펼쳐서 읽은 문장들이 많았던 작가의 작품이다. '향성'이란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한 본능적 움직임,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움직임, 우리 존재의 은밀한 원천을 이루는 움직임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것을 의미한다.

작정하고 미워하는 것이 힘이 되는 그녀가 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정하고 미워하는 이유는 승리하고 진압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립세의 사계>영화에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 중에 성직자 아들을 위해 여주인공을 작정하고 미워하는 귀부인이 어떤 방식으로 마을 사람들을 주동하여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승리하고 진압하는지 보여준다. 이런 현상들은 현시대에서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어서 소설에 등장한 그녀의 삶과 그녀가 쥔 도구의 힘이 어떤 이유와 방식으로 승리하고 있는지 짐작하게 된다. 그녀의 노예가 되고, 만사의 죄수가 되어 쉼 없이 염탕 당하는 이유의 근원을 설명한다.

그녀는 꼼짝 안 했다. 부동성이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19

여자들을 순종하게 만드는 지휘봉을 휘두르는 그가 이 소설에 등장한다. 여자들이 표현하다만 것을 우물거리고 멍한 시선으로 순종만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적 관습, 익숙한 가르침에 의문조차도 하지 않는 침묵에 익숙한 그녀들이 있다. 상냥한 어조로 말하기, 고개를 드는 자세, 고개를 숙이는 자세 등 많은 것들이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는 사회에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여자들의 모습과 멍한 시선이 거슬리는 이유가 명확해진다. 흔들림 없는 부동성이 자연스럽다고 느끼고 있는 여자들의 삶이 작가의 시선에서는 부자연스럽기만 하다.

무더운 7월 무더위와 침묵 속에서 한 줄기의 냉기는 하나의 파열이 된다. 글쓰기의 모험을 시도한 작가의 도전도 다르지가 않다. 답습된 글쓰기의 모범답안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을 새롭게 구축하고 시도한 그녀의 움직임이 그러하다. 남자들에게 필요한 그녀들의 정통성이 설명되고 무수히 가정에서 학습된 세계에 익숙해진 그녀들의 갇힌 세계가 드러난다. 무심한 눈으로 예쁜 것과 예쁘지 않은 것만을 보는 그녀들의 한계성도 언급된다.

몹시 무더운 7월... 그 더위 속에서, 그 침묵 속에서... 한 줄기 느닷없는 냉기, 하나의 파열이었다. 18

비루한 이해력으로 <말테의 수기>, <율리시즈>같은 지성을 갈구하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차려입기 위해 훈련된 그녀들의 삶도 치열하게 전해진다. 그녀와 생활하는 그의 진실된 마음과 실제적 행동의 간극도 언급되면서 최고의 이해, 진정한 지성이 무엇인지 그의 선택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그녀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금물이 된 이유까지도 언급된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무엇인지 그들이 거주하는 장소에서 설명된다. 진정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이유와 자유의 명확한 경계가 드러난다. "그들은 만족스러웠다. 여기에 있는 것이 좋았고"(14쪽) 사회적 기준을 거스르면서 꿈꾸는 것, 노력하기, 도망가는 것은 금기라고 명명하면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요구하지 않는 것이 삶이라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전한다. 체념하고 건조한 한숨만이 남는 늙음을 부지런히 쓰이고 기한을 채워서 임무를 완수한 낡은 가구와 같다고 명명한다.

자유를 찾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 자유를 움켜쥐었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었는데 기대감을 충족시켜준 작품이다. 진정한 삶, 선택한 삶, 자유가 있는 삶, 꿈꾸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그들은 아무것도 더 요구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기다려선 안 되고, 아무것도 요구해선 안 되고,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고, 더는 아무것도 없었고, 이것이었다, "삶"이란. 52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걸을 자유 13

그가 자기들과 다르다 생각한다고 한순간이라도 느끼게 하는 것은 금물... 굽힐 것, 굽힐 것, 스스로를 지울 것 11

"별것 아닌 걸로 차려입기 위해" 달려 누빌 때까지 훌륭하게 훈련된 그녀들 - P44

고립의 감각, 뭔가 불안한 일이 꾸며지는 적대적인 우주 속에 버려졌다는 감각을 들쑤셨다. - P19

그녀는 꼼짝 안 했다. 부동성이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 P19

이제 그들은 늙었고, 완전히 닳았고, " 부지런히 쓰이고 제 기한을 채워서 임무를 완수한 낡은 가구들" - P51

그들은 아무것도 더 요구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기다려선 안 되고, 아무것도 요구해선 안 되고,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고, 더는 아무것도 없었고, 이것이었다, "삶"이란. - P52

거스리고, 꿈꾸고, 기다리고, 노력하고, 도망가는 것은 금물... 살아가기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시간을 지나 보내야 했다. - P52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걸을 자유 - P13

그가 자기들과 다르다 생각한다고 한순간이라도 느끼게 하는 것은 금물... 굽힐 것, 굽힐 것, 스스로를 지울 것 - P11

최고의 이해, 진정한 지성이란 ...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가능한 한 적게 요동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 P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루잠 - 덕자전성시대 덕자의 장편소설
박보미(덕자전성시대) 지음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협찬]

"그동안 알고 있던 것들의 경계가 흐릿해졌다."(7쪽)라는 문장이 압도적인 소설이다. 책표지에서 전해지는 두 세계가 그러하다.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함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내용이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설명할 수 없는 그 세계의 문을 들어선 화자가 경험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떠올리면서 흥미롭게 읽은 소설이다.

현실보다는 그 너머의 세계가 늘 궁금했다. 19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24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고 이해시킬 수 없는 표현이 없는 분명한 경계 너머의 세계가 소설에 등장한다. 모두가 같은 길을 향하고 있는 삶에 질문도 의문도 잃어버린 모습으로 무표정하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인생에 질문을 과감하게 던진다. 대기업에 입사하고 꿈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에 입사하지만 불안에 시달리고 위태로운 상황조차도 외면하면서 번아웃이 오거나 대인기피증을 보이는 증세의 원인을 매만지기 시작한다.

사회초년생 화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공기업에 합격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부당한 직장 대우를 참다가 결국 터져버리면서 소송을 준비하면서 벌어지는 거짓 증언을 한 사람들이 재판이 끝나자 승진하는 특혜를 누리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가해자가 피해자 변호사에게 비밀스럽게 협상을 요구하면서 피해자 의뢰인 변호사가 몰래 돈을 받은 사실도 그루잠이라는 소설에서는 감추지 않고 뒤늦게 화자가 알게되는 세계가 있다.

은밀한 사기사건의 가해자 공인중개사, 뒷돈을 받고 거래한 변호사,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집주인까지도 등장한다. 유독 어른이 보이지 않았던 소설이다. 부모마저도 화자 곁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화자를 출산하다가 사망하고 아버지는 대기업에 다니지만 늘 바쁘게 회사생활을 하면서 딸의 생일이 오히려 축하받는 날이 아닌 눈치를 보고 미안함을 느끼게 하는 아버지만 존재할 뿐이다.

<김부장>드라마의 김부장과 딸과 같은 상황이지만 대조적인 아버지 모습이다. 늘 혼자였고 직장생활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을 소송하려고 한다는 딸의 이야기에 화를 내면서 사라진 아버지이다. 그리고 소송도 혼자서 준비하면서 기나긴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을 해내면서 승소하게 된다. 순탄하지 않았던 출생과 직장생활, 50대에 갑자기 전화로 들게 되는 아버지 부고소식, 아버지가 남긴 글과 돈은 너무나도 헛된 것으로 남는다. 진짜 딸에게 필요했던 것들을 한 번도 주지 못했고 딸이 다려준 서툰 다리미질로 준비한 셔츠도 입지 않았던 아버지가 있다.

무언가의 힘이 나를 이끌어주고 있었던 것 같다는 이상한 감각 36

나를 다시 찾은 기분 64

설명할 수 없는 그 세계에서 만난 어머니, 키웠던 강아지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도 아직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어진 삶과 인생에는 무수한 질문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이유는 무엇인지, 사건의 원인을 찾고자 노력하지만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오히려 많은 뿐이다. 퇴사한 이유를 면접관에게 질문받고 그 이유를 없었다는 것을 알면서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화자가 직장상사에게 당한 부당함을 듣고 경찰이 분노할 정도의 일을 당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기에는 벅찬 젊은 날의 이야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소설이다.

문을 닫고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에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겨내야 하고 다시 세상속에서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삶의 기쁨과 행복을 느껴야 한다. 세월이 흘러 80대 된 화자가 기억하는 이야기들도 전해진다. 엄마가 남긴 다이어리의 글이 유일한 어린 소녀가 읽을 수 있었던 글이었고 엄마가 실존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곁에서 자신과 함께 하고 있었음을 마지막 이야기에서 이해하게 된다.

엄마의 글들만이 어린 나에게는 유일한 온기였다. 16

나는 늘 모든 것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31

비겁하게 도망만 다니는 아버지의 삶도 이야기된다. 독재자가 국민을 무차별 학살한 킬링필드와 유골, 수상가옥에 살고 있는 빈민촌, 어린아이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장사하는 상황을 무관심하게 지나치지 않는 화자가 선행을 하는 이유도 드러난다. 불공평한 사회에 질문을 하고 용기를 낸 화자의 선택들에 응원하면서 읽은 이야기이다. 작가의 개성있는 이야기와 주제가 전해지는 몰입도가 높은 소설이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서 가독성이 좋은 소설이며 사회초년생에게는 더욱 도움되는 내용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악의로 다가서는 사람을 분별해야 하는 이유도 매만진 작품이며 용서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했는지도 보여준다. 부록으로 실린 내용과 목차마다 악보도 흥얼대면서 읽은 소설이다. 곡의 분위기만으도 내용이 충분히 전달되는 영화음악과 다름없었던 소설이다.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라 흥미로웠던 소설이다.

누구도 주변을 보지 않았고, 누구도 스스로 멈추지 않았다,

같은 속도, 같은 방향, 같은 방식... 그곳이 유일한 길인 것처럼 67~68


이 세상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153

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225

원망은 상대를 갉아먹기 전에 먼저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 P287

절망 속에서 나아가는 힘... 그래서 용서할 수 있었다. - P288

남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 - P289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 긴장이 풀리고 잠이 쏟아졌다. - P292

이 세상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 P153

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 P225

누구도 주변을 보지 않았고, 누구도 스스로 멈추지 않았다, 같은 속도, 같은 방향, 같은 방식 - P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상 속의 삶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창시절 아버지의 직업적 추락과 소문으로 성장기를 보낸 화자가 40여 년 동안 생존 여부를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 있는 아버지의 그때의 일을 추적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조각처럼 기억속에 남은 그 시절의 아버지와 지켜보면서 방황하는 아버지의 혼돈의 시기를 혼자서 눈물 흘리며 견디고 있었던 어머니를 회고한다. 현재 화자도 아내의 제안으로 별거 중인데 아내가 남편에게서 느끼고 있는 거리감의 원인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대화하면서 남편의 일상까지 침투한 그날의 아버지 사건에서 마주할 것들을 묵시적으로 지지한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린 사건으로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의지하면서 암묵적으로 견딘 날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주었을지 짐작하게 된다. 아무도 찾지 않았던 사라진 아버지이다. 지금도 아버지 사건을 추적하지만 아버지를 찾는 것이 아님을 명시하면서 관련 인물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현재 자신의 상태,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그는 안개같은 상황에서 살아냈고 견디며 살아왔음을 짐작하게 된다.

아내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지 않도록 살아냈을 결혼생활을 감지한 아내는 화자인 남편에게 자신은 떠나지 않을 거라고 믿음을 보여준 후 그의 결혼생활도 긴장감과 불안이 감돌지 않는 생활로 안착한다. 무의식속에 잠재된 학창시절에 버려진 어머니와 자신이 현재 아내에게서 또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한 흔적들과 현재 부부가 별거를 시작한 원인을 찾고자 그날의 아버지 사건을 추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끔씩 아버지의 불안증세는 암묵적인 신호탄이 되면서 아내인 화자 어머니는 남편의 상황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하고 견디는 시간들이 아들에 의해 전해진다. 성적 취향에 도취하여 비밀모임과 파티를 즐긴 대학교수였던 아버지의 사적인 생활이 아들의 기억속에서도 감추지 못하는 사건들로 남겨진다. 그러한 남편의 일탈을 감지하고 눈물을 흘리는 아내의 모습, 자신들을 버리고 사라진 남편을 더 이상 찾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았던 이유들도 이야기된다.

아내가 있고 가족이 있는 남편들이 성적 취향에 도취되어 사랑을 하면서 위태로운 가족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들도 아버지를 닮아서 같은 성적 취향이 아닐지 자문하면서 성장하지만 이성을 사랑하면서 아들도 태어난 가장이 되어 가족을 영원히 지키고 싶어하지만 멀어진 남편의 상황을 감지하면서 별거를 제안하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어떤 환경에서 양육되고 성장했는냐는 중요해진다. 화자가 원했던 삶은 무너져 버렸지만 4부에서 펼쳐지는 상상 속의 삶은 그가 원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현실은 극명하게 전개되고 아버지가 사라진 날에 함께 극장에서 본 영화와 일탈하는 아버지의 일상을 기억하면서 아들은 종합적으로 아버지를 퍼즐처럼 맞추기 시작한다.

프루스트의 7권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과 마르셀 프루스트의 『쾌락과 나날』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욕망한 모든 것을 꽃피게 하지만 소유는 모든 것을 시들게 한다." "르 데지르 플뢰리, 라 포세시옹 플레트리 투트 쇼즈." (88쪽)과 평생 여러 번 읽을 수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다른 나이에 읽으면 다른 방식으로 읽히는 책이라는 화자 아버지의 이야기도 만나게 된다.

현재 아버지가 어디에서 누구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지, 어떤 질병인지,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지도 전해진다. "진정한 낙원은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이다"라는 프루스트의 구절을 남긴 아버지의 메모가 강열하게 남는다. 그가 잃어버린 것들이 낙원들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나면서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낙원을 잃어버린 남자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들의 고요한 분노와 허무주의는 현재 결혼생활에까지 휘갈기는 폭풍의 전야처럼 찾아오지만 현명한 아내와 사랑하는 가족을 지켜내려는 화자의 의지가 전해지면서 회복하게 된다. 그 무엇에도 기대와 희망을 가지지 않는 자세,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세와 오늘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그의 태도도 기억에 남는다. 지키고 싶은 가족, 함께 하고 싶은 가족을 지켜내면서 살아가는 하루라는 진정한 의미가 마지막 문장 그가 무의식속에 흘리고 있는 눈물로 답해지는 소설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치스러운 습관을 지적한다. 형편에 맞지 않는 삶, 빚에 허덕이고 있는 현실을 자각하면서 이사를 해야한다고 만류하지만 아버지는 동조하지 않는 사치스러운 파티를 이어간다. 60대 중반 숙모의 따뜻한 선한 미소와 온화함과 평온함도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 삶이 아름다운 것인지 등장인물들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거의 매일 우리가 형편에 맞지 않게 살고 있다고. 점점 더 빚더미에 올라앉고 있다고 한탄... 정말로 해야 할 일은 이사라고. 213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버릴 거라는 걱정 때문에 평생 끊임없이 두려움을 느끼며 살았다고. 346


거의 매일 우리가 형편에 맞지 않게 살고 있다고. 점점 더 빚더미에 올라앉고 있다고 한탄... 정말로 해야 할 일은 이사라고. - P213

60대 중반 평온함. 따뜻하고 선한 미소. 온화함 - P94

진정한 낙원은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이다. 프루스트 구절 - P423

우리는 무엇에도 기대를 걸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뿐... 오늘만큼은 좋은 날... 오직 그 생각만 하고 있었다. - P441

아버지의 직업적 추락, 뒤따른 거짓된 혐의들, 온갖 소문과 구설 속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 P12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P350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버릴 거라는 걱정 때문에 평생 끊임없이 두려움을 느끼며 살았다고. - P3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욘 포세 소설들을 『아침 그리고 저녁』 소설에 이어서 다시 읽으며 노르웨이 순뫼레 문학상 수상, 멜솜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이 작품을 다시 읊조린 여름날이다. "시적 언어와 침묵으로 직조해 낸 고독한 영혼의 아득한 초상"이라는 출판사의 작품 설명에 다시금 공감하며 삶과 사랑, 죽음을 관조하게 된다.

희곡도 다수 발표한 작가의 독특한 시적 흐름을 음미하면서 작가가 응시한 특별한 시선의 끝에 머무르게 되는 소설이다. 작은 섬에서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성장한 청년은 풍경화가가 되기 위해 독일로 유학길을 떠난다. 후원자의 도움으로 그림을 공부한 이 청년은 지금 하숙집 침대에 누워 지도교수의 평가에 불안하여 여전히 침대에 누워만 있는 장면으로 이야기로 시작된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청년이지만 현재는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려움과 불안에 침식되면 어떤 영혼이 되는지 이 소설 청년의 삶과 그림을 통해서 보여준다. 반복되는 문장이 예사롭지가 않게 감지되면서 그의 이상한 말에 겁을 먹은 청년이 사랑한 하숙집 과부의 딸이 등장한다. 술집에서 그의 이상한 말을 듣는 화가들의 모습에서도 청년의 영혼이 불안하다는 것이 전해진다. 청년에게만 보이는 하얗고 검은 천의 너울거림과 청년이 대화하는 상대는 현실적 존재가 아님을 보여준다.

지난날 아버지와 함께 참석한 종교적 모임의 원형적 좌석에서 침묵적인 모임에 대해서도 청년은 회상한다. 희고 검은 천이 청년의 삶에 깊게 동행하기 시작한다. 청년의 내면, 영혼이 어떤 양상을 띄고 있는지 대변하는 장면들이다. 누나가 청년의 눈동자가 검은색으로 변하는 것을 관찰하면서 청년의 영혼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한다. 검게 변한 눈동자는 거친 언행과 감정적 동요를 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어떤 존재에 자신을 내어주느냐에 따라 현재의 내가 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자본주의가 요동치는 현대사회에서 소비지향주의를 자극하는 문화 흐름 속에서도 미니멀라이프를 고수하고 지향하는 사람들의 조용하고도 잔잔한 움직임은 단단하게 움직인다.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는 절제, 만족, 풍요를 지향하는 미니멀리즘이다. 고집스럽게 지향하고 있는 미니멀라이프는 이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만족스러움을 드러낸다. <맨 끝줄 청년>드라마에서도 이 소설과 다름없는 인물을 마주하게 된다. 쉽게 감정에 동요되지 않는 평온함과 여유로움과 통찰력을 가지도록 이끄는 주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이다.

청년의 삶에 깊게 동행하는 희고 검은 천은 상징성을 부여한다. 영혼을 누구에게 주느냐에 따라 삶도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고 어떤 가방과 소지품을 들고 다니고 집을 구경하면 라이프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삶의 주인은 내가 되어야 한다. 의도적인 흐름에 동요되지 않는 영혼의 집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도록 이끌어준 작가의 소설이다.

불안과 초조함에 침식된 청년, 의심과 망상으로 삶이 편린되는 날들, 편견과 오해로 얼룩진 영혼이 어떻게 무너지고 회복되지 못하는지 소설을 통해서 보여준다.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 청년이 어떤 곳에서 생활하게 되는지도 소설은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이 청년이 혼자 있고 싶어하고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통제하지 못하는 우울한 아이였다고 누나는 회상한다. 주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 독단적으로 존재하면서 가족을 위한 손길도 거부하는 아이가 누나를 그린 그림에서 어떤 표현을 하였는지도 세밀하게 전해진다. 어린 시절 청년의 그림은 아름다운 그림이었지만 지금 섬에서 그리는 그림은 거칠다고 감상한다. 정신세계가 그림에서도 고스란히 감지되면서 그의 영혼이 불안과 초조에 침식되었는지 보여준다. 고흐의 그림도 떠올리게 된다. 고흐가 그린 그림을 시간적 흐름으로 소개한 책이었는데 이 소설의 청년을 떠올리게 된다.

재능을 타고났지만 어떤 영혼에 갇혀서 침식되느냐에 따라 삶도 달라진다는 것을 작가는 보여준다. 빛과 어둠이 무엇이며, 삶을 흔드는 것이 현재 무엇인지 차분히 짚어보게 하는 작품이다. 종교인이 누구이며 어떤 성향을 띠는 사람들인지도 설명한다. 종교는 경이롭고 빛이지만 종교인은 왜 꽉 막힌 사고로 종교를 빛나지 않게 하는 것인지도 고찰하게 한다. 종교가 빛날 수 있도록 종교의 진정한 의미와 진실에 집중할 수 있는 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도 묵직하게 목소리를 전한다.

<립세의 사계> 영화에서 종교인들의 폭언과 폭행, <아웃랜더> 넷플릭스 시리즈에서도 두드러지는 질문이 종교인들의 모습이다. 마녀사냥하는 군중의 아우성에는 종교인들이 존재하였음을 화면에 가득히 전하는 이유에 집중하게 된다. 종교인의 흠결이 종교에까지 흙탕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종교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들을 찾게 되는 여러 작품들을 떠올리면서 읽은 소설이다.



침묵을 지키며

착한 척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일 이해하고

타인에게 존중받는 사람이길 원했다. 354

생각이 꽉 막힌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를 종교인이라고 부르니까! 361

종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로움과 빛이다. 369























검은 눈동자는 희고 검은 천으로 변해 내 입을 향해 다가왔다. 천이 내 입술을 덮쳤다. 희고 검은 천이 내 입술을 눌렀다. 나는 얼른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 P176

천이 내 입속을 가득 채우면 나는 사라질 것이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 P123

생각이 꽉 막힌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를 종교인이라고 부르니까! - P361

침묵을 지키며 착한 척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일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존중받는 사람이길 원했다. - P354

종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로움과 빛이다. - P3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협찬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욘 포세의 장편소설이다. 책장의 책먼지들을 청소하면서 다시 펼친 이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 장편소설은 더 깊어지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수많은 십자가들이 도심에 가득하지만 도시생활에 지친 수많은 사람들의 한숨과 불안, 두려움이 더 짚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소설에 등장하는 구두장이의 친절과 선함을 대조하지 않을수가 없다. 무신론자 비슷하게 보였던 구두장이가 화자 가족들에게 보여준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빛인지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1부와 2부로 나뉘면서 화자의 출생과 화자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태어나는 순간의 초초함과 기다림, 불안과 기쁨이 혼재하는 시간을 작가만의 문체로 아름답게 그려낸다.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면서 이름의 의미까지도 차분히 들려주기 시작한다. 기대와 기쁨으로 아기가 태어나지만 삶은 녹록지 않아 배고픔과 힘겨움이 인생에 깊게 드리우지만 아내와의 사랑과 결혼, 아이들의 출생과 양육의 고단함과 힘겨움 속에서도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의 기쁨이 있었던 이유들이 전해진다.

이제는 아내마저 죽고 혼자 집으로 귀가하는 시간이 헛헛한지도 들려주기 시작한다. 고단하고 힘겨운 삶이지만 돌아갈 집에 있는 아내의 존재 유무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다. 혼자 살고 홀로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 작가는 화자를 통해서 보여준다. 화려한 인물도 아니고 유명하지도 않았던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간 삶이지만 죽음을 앞둔 시점에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차분히 자신의 탄생과 사랑, 인생을 돌아보기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쓰임을 다하였는지도 돌아보면서 나이들고 자신의 무게를 유지하면서 돌아보기 시작하는 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들려준다. 탄생과 죽음, 아침과 저녁은 그러한 의미들로 독자들과 호흡하기 시작한다. 느닷없이 갑자기 찾아온 죽음 앞에서도 고요하게, 의연하게, 담담하게 죽음과 삶을 홀연히 받아들이는 화자를 만나게 된다.



특별하지도 않고 평범한 순간, 공간, 물건, 경험들을 발견하는 기쁨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들려준다. 다르게 보는 식견, 경험들을 많이 누리는 사람이 부자라는 것을 작가의 소설을 통해서 발견한다. 이사를 하게 되면서 새로운 거주지를 찾고자 새로운 집들을 많이 보았던 경험에서도 배운 것들이 많다. 더불어 이삿짐 견적을 의뢰하면서 방문한 직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지금까지 견적을 보았지만 이렇게 짐이 없는 집은 처음이네요."이다. 미니멀라이프가 얼마나 경이롭고 행복한 경험이며 보물인지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소유한 것들을 정리하면서 살아가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소설의 구두장이처럼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화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확인하며 종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이 소설의 구두장이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구두장이. 그는 무신론자 비슷하게 비쳤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구두장이는 친절하고 선한 사람이었다. 52


에르나(아내)가 아직 살아 있다면, 그렇다면 신이 나서 집으로 갈 텐데. - P103

아버지... 자애롭고 선한 사람이었으며,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애써 일했다. - P119

요한네스는 싱네를 바라보며 벅찬 사랑을 느낀다. - P134

평소와 다름없는 물건들인데 왠지 귀해 보이며 금빛으로 반짝인다... 다르게 보고 경험하는 것 - P44

자신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쓰였는지, 모든 것이 그 자신처럼 나이 들어, 각자의 무게를 지탱하며 거기 서서, 전에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고요를 내뿜고 있다... 물건들은 제각기 지금까지 해온 일들로 인해 무겁고, 동시에 가볍다. 가름할 수 없을 만큼. - P43

구두장이. 그는 무신론자 비슷하게 비쳤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구두장이는 친절하고 선한 사람이었다. - P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