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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코스트
테스 게리첸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11월
평점 :
은퇴한 사람들이 있다. 젊은 날 함께 활약하였지만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은둔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은퇴한 지금 삶의 터전을 자리 잡은 이곳은 살고 싶은 곳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아야 하는 곳이었다. 살고 싶은 곳이 아닌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치밀하게 준비한 곳이다.
매기라는 60대 여성이 터전을 잡은 곳은 블랙베리 농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다. 그녀가 2년 전에 이곳에 이사를 왔으며 은퇴한지 16년이 된다. 그녀가 정부의 일을 하였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이야기되면서 그녀가 하였던 일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일이라는 것도 감지된다. 위장된 직업, 완벽한 위장된 삶이 그녀의 일이었다. 사라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녀는 살아남은 사람들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60세가 된 지금, 나는 나의 몫 이상의 것을 축적해 왔다 15
수년 동안 나 자신을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관심을 끌지 않게 교육했고 노력했다. 24
그녀가 평범한 노년을 살고 있지만 사실은 극도의 긴장감과 불안이 현존하는 모습이다. 마을에 장을 보러 갈 때, 그녀가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일행들과도 젊은 날 업무의 연장과 같은 습관들이 여전히 엿보인다. 평범한 모습이지만 그들은 대체 어떤 일을 하였던 것이었는지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다.
이웃에 사는 사람에 대해서도 미리 조사하고 안전한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한 후에 이사한 매리이다. .루터 윤트라는 MIT 기계공학 교수였던 이웃과 14살 손녀가 매리의 이웃에 살고 있다. 커피를 좋아하며 손녀의 어머니가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여 손녀를 키우고 있다. 손녀는 외할머니에게서 홈스쿨링으로 교육을 받고 닭장에서 수확한 계란들은 순수하게 손녀의 자산이라고 한다. 매리가 포획한 여우 한 마리의 사체에도 손녀는 전혀 놀라지 않는다. 가축을 키우면서 목격한 수많은 죽음으로 손녀는 나이답지 않게 의연하게 여우의 죽음을 보게 된다.
그래도 안타깝긴 해요. 이 여우는 그저 먹고살려고 한 것뿐일 텐데요.
우리 모두 그렇지 않나요? 17
여우의 죽음을 보면서도 이들이 서로 나누는 대화가 의미심장하다. 그저 먹고살려고 한 것, 우리도 모두 그렇다는 사실을 복선처럼 소설에서 만나게 된다. 수많은 죽음들이 엑스트라처럼 이름 없는 존재들로 나타났다고 사라진다. 여우처럼 그들도 먹고살고자 명령에 복종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어스러진 손이 암시하는 것만큼 끔찍한 고통을 겪고 나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손이 어스러진 상태로 죽은 사체가 매리의 집 진입로에 버려져 있었다. 사체를 발견한 사람은 택배기사이다. 경찰은 현장에 도착하였고 매리는 이웃이었던 루터의 연락을 받고 모임에 있다가 집으로 향하게 된다. 도착하여 사체를 살핀 매리는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그러한 모습을 경찰서장인 조가 예리하게 감지하게 된다. 조는 매기의 예기치 않은 모습을 간과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죽은 자를 추궁하며 조사하는 동안 조는 매리라는 살아있는 그녀를 의문스럽게 조사하기 시작한다.
왜 진입로에 시체가 버려졌는지 102
누군가가 애써 재건한 내 인생을 모두 불태워버리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것 67
누가 왜 자신의 집 진입로에 시체를 버렸는지 점점 미궁 속으로 들어간다. 어떤 암시일까. 시체는 오늘 처음으로 자신의 집에서 만난 사람이다. 그녀가 사라진 옛 동료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지만 경찰에게는 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녀의 삶, 그녀의 직업, 그녀의 일들이 전부 비밀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옛 동료의 소식은 생존한 사람들에게도 적잖은 놀라움이며 위협으로 전해진다. 일상적이지 않은 일을 하였던 이들이다. 비밀스러운 일을 하였던 매기는 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지 궁금해지면서 책장은 멈추지 않는다.
정원에서 수확한 말린 타임과 오레가노 다발들이 머리 위의 기둥에 매달려 있다. 18
추리소설이지만 전원생활하는 사람들이 누구의 도움 없이 통나무집을 스스로 짓고 살아가는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과 말린 타임과 오레가노 다발들이 머리 위에 매달린 풍경을 한없이 떠올리는 행복도 즐기게 된다. 긴장되는 사건과 긴박함에도 전원의 느림과 소박함들을 마주할 수 있었던 소설이다.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라 기대하였으며 기대감을 충족시킨다.
관광지에서 만난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과 이들이 약속을 하는 것은 전혀 무의미한 것임을 암시하는 매기와 대니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전개되는 이야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이 지닌 의미들과 상징성들도 유추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역 주민들이 승객들을 '오늘의 어획물'이라고 말하면서 관광객의 돈은 환영하고 그들로 인해 생기는 교통체증과 번잡함은 기뻐하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적으로 전해진다. 우리는 누구의 오늘의 어획물이 되고 있는지도 살펴보게 하는 문장이다.
이 마을 사람들이 겨울에 어떻게 생활하면서 보내는지도 예리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술을 많이 마시고 살을 찌우고 서로의 신경을 거스르는 일만을 겨울에 하면서 생활한다. 짤막한 한 문장이지만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명확한 표현이다. 우리의 계절들은 어떤 모습들로 차곡히 채워지고 그려졌는지 돌아보게 하는 작가이다.
잘못된 선택을 지속하면서 유지하는 것은 정답이 되지 못한다. 그러한 잘못된 선택은 언제든지 바꾸고 제자리를 찾도록 용기를 내고 의지를 가져야 한다. 철학자의 철학만 존재하고 실천이 뒤따르지 않았던 철학자에 대해 언급하는 책을 읽었는데 그가 떠오른다. 지각만 존재하고 각성이 존재하지 않는 삶은 무의미한 것과 다름없기에 은희경의 『중국식 룰렛』의 문장도 다시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다.
여우 사냥을 한 매기에게 다른 포식자가 곧 들이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대화를 나누는 이웃이 있다. 그것이 곧 세상의 이치라고 말하면서 이들은 이 대화를 수긍한다.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단면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닌 총체적으로 사회적 현상까지도 유추하면서 이해하게 되는 장면이다. 매기가 한 방에 여우를 사냥한 일은 매기를 드러내는 큰 사건이 된다. 이러한 매기를 감지하는 사람들이 매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뒤따라가면서 만나게 되는 추리소설이다.
의사인 청년이 배냥여행을 하면서 만난 매기와 나누는 대화도 인상적이다. 기업이라는 세계와 관계를 맺지 않는 청년 의사는 은행 계좌에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기업을 배제한 삶을 선택한다는 것을 잠시 생각해 보자. 너무나도 촘촘하게 삶을 움켜쥔 기업들이 드러난다. 그런데 은행 계좌와도 무관한 삶을 선택한 청년의사이다. 기업이 아닌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청년의사가 낯설었다. 관성의 법칙처럼 선택하고 살아간 날들에 큰 물음표를 던지는 청년의사이다.
화려한 불빛, 높은 빌딩보다는 적막하지만 평온한 시골마을을 여행 다녀오면서 긴 잔상이 남았는데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거듭 자문하게 된다. 기업을 배제한 삶을 온전하게 청년의사처럼 살아갈 수는 없을 듯하지만 그래도 청년의사를 오랫동안 기억하면서 살고 싶다고 느끼게 된다. 작은 실천이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들을 3가지 정해보는 시간도 가지게 한 인물이다. 의문을 가지지 않고 답습하면서 살아왔던 기업에 대한 의문점들을 작가가 마주서게 한다.
전쟁과 난민캠프는 언제나 존재할 거라고 매기와 대니는 대화한다. 이들이 한치의 의문을 가지지 않고 단정하는 이유에 우리는 놀라워해야 한다. 전쟁과 난민캠프는 타자의 이야기로 존재하지 않는다. 곧 우리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멸해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는 기분이다. 제국주의 성향이 강해지는 인물들의 정치는 위험한 경고이다. 세계적으로 두드러지는 이러한 정치인들의 등장은 매번 우려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국제정세를 알리는 뉴스는 더욱 긴장감이 감돈다. 어떤 흐름으로 전쟁과 군인, 죽음과 난민들이 존재하고 있는지 무관심이 아닌 관심으로 바라보게 된다. 두 인물이 나눈 대화에는 전쟁과 난민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명제가 거짓이 아닌 참이 되고 있다는 것에 깊은 한숨을 쉬게 된다.
한꺼풀만 벗기면 시원해질 것 같은데 도통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사건은 계속 일어나면서 점점 하나씩 퍼즐처럼 맞추어지는 하나의 퍼즐 조각들을 주워 담다 보면 완성된 그림이 되는 소설이다. 작가가 멋지게 조각된 퍼즐들에 숨겨진 진실과 이야기들은 추리소설이라는 한 획만으로만 보지 않게 하는 전체적인 그림이 멋지게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소설을 읽는 묘미에 빠져들게 하는 작품이다. 추리소설을 오랜만에 읽어서 더욱 조바심이 강하게 생겼던 소설이다. 왜 사건이 일어났고 그녀는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면서 뒤따르는 이야기들에 푹 빠져들게 한 작품이다. 다시 추리소설들을 기웃거리게 만든 신간 소설이며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다.
이곳 사람들은 겨울에는 무엇을 하는지... 살이 찌고 술을 부어라 마시고 각자가 서로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거 38
전쟁과 난민캠프는 언제나 존재할 겁니다. 맞아요. 너무도 잔인한 진실이죠. - P80
기업이라는 세계와 관계를 맺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은행 계좌에 아무것도 없는 이유 - P80
정원에서 수확한 말린 타임과 오레가노 다발들이 머리 위의 기둥에 매달려 있다. - P18
그래도 안타깝긴 해요. 이 여우는 그저 먹고살려고 한 것뿐일 텐데요. 우리 모두 그렇지 않나요? - P17
아마 다른 포식자가 곧 들어닥칠 겁니다. 그것이 세상 이치죠. - P21
언제든 잘못된 선택은 바꿀 수 있어. - P41
지역 주민들은 승객들을 ‘오늘의 어획물‘이라고 불렀다. 마을 주민들은 그들이 가져오는 돈은 기꺼이 환영했지만 그들이 가져오는 교통체증과 번잡함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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