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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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들』, 『사랑의 이해』, 『누운 배』 장편소설의 작가이라 머뭇거림 없이 읽은 장편소설이다. 기대한 것보다도 더 많은 기대를 흡족시켜준 작가라 작가의 다른 소설들까지도 궁금해진 작품이다. 진지하고 결연한 얼굴을 가진 준연은 40세 플루트 강사이다. 직장을 정리하고 좋아하는 작곡을 하고 연주도 하고 레슨도 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오랜 시간 연락하지 않았던 어머니가 자궁암이라 치료해야 하는 근심까지도 준연의 삶에 자리 잡는다.

41세 정해원도 미혼이며 주식도 하는 직장인이다. 우연히 플루트를 수강하고자 준연의 학원을 찾으면서 레슨이 끝난 후 위스키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들을 통해서 해원은 강사와 더욱 친근해진다. 강사 준연의 오랜 친구인 조하진을 만나게 되면서 해원은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음악을 그만두고 홀로 위스키를 만드는 일을 하는 여자이다. 준연과 하진이 함께 연주하는 모습, 세명이 위스키를 마시며 나누는 장면들에서 우정과 사랑의 모호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해원의 감정들이 전해진다.

준연과 해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어머니와 연락을 단절한 사연들이 있는데 나름의 사연들도 전해진다. 해원이 처음으로 위스키를 마시게 된 일을 떠올리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집이 남들 눈에는 대궐 같은 집이겠지만 소굴 같은 집이었다는 것과 버티고 끝내 벗어난 것을 회상하게 된다. 책장에 가득한 세계문학전집은 끝까지 읽히지 않았고 아버지가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인용한 책의 문구만이 사업에 쓰임을 다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던진 세계문학전집에 어머니의 이마가 상처 입었던 일까지도 해원에는 두려움과 불안의 원천이 된다. 부모의 이혼과 어머니가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어린 자신이 가졌던 두려움에는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결혼하라는 어머니의 모순적인 언행에 그는 어머니와 단절하게 된다.

남들 눈에는 대궐 같지만 실은 아버지의 소굴 갔던 집에서 버티고 끝내 벗어나게 해준 것도 ... 사랑이었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핑크색 사랑이 아니었다. 피 같은, 선지색의 사랑이었고... 지독한 피로 끝에 고이는 단내 같은 사랑이었다. 181

사랑의 빛깔만큼이나 형체도 각양각색하다는 것을, 감정을 감지하면서도 시작을 두려워하는 이유들과 끝나버리는 이별을 먼저 떠올리는 40대 인물의 감정적인 동요들이 보인다. 사랑이 처음이 아니지만 처음 사랑하는 사람처럼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예감에 도취된 해원의 사랑의 출발선을 세 사람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보이는 사랑에 대해서도 예리함으로 전해진다. 사랑은 명백해서 잔인한 것이라고 떠올린다. 사소한 기억이지만 아들의 기억에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되어버렸던 일이 소환된다. 어머니가 친구에게 반찬을 먼저 주는 행위를 보면서 사랑은 선별적이고 차별적인 것이며 잔인한 것이라고 힘주어 기억한다. 사랑한다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삶과 죽음만큼 전혀 다른 무게이며 상태라고 힘겹게 그날을 떠올리는 인물이 있다. 사랑은 투명했고 벌거벗은 자신을 비췄다고 기억한다. 사랑은 다채롭다. 빛깔도 다르지만 온도도 다르고 모양새도 다르다. 소설의 인물이 떠올리는 어머니에게 아들은 어떤 존재였을지 서서히 한꺼풀씩 벗겨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결혼을 믿지 않는 이유까지도 선명해진다.

준연의 어머니가 젊은 날 아들에게 휴게소 음식을 죄와 결부하면서 사주지 않았던 일과 지금은 맛있게 휴게소 음식을 먹는 어머니를 보면서 해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인물들이 서로 위스키를 마시면서 대화 나누는 내용들이 결코 가볍지가 않다. 오랜 시간 숙성된 사랑들의 선명한 정의들이 되어 소설의 인물들을 통해서 하나씩 들려주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삶을 너무 쉽게 간과해버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너무 깊게 관찰해서 시작조차도 어렵고 시작하면서도 끝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흉터가 많은 손을 가진 하진은 많은 일을 이미 겪었지만 그 어디에서도 자초당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소개되는 인물이다. 생활철학잡지 <뉴필로소퍼 21호>에서 읽은 "손을 움직이는 방식은... 은연중에 진실을 드러낸다."라고 인터뷰한 잔 보그의 글이 생각난다. 정원사의 손, 제빵사의 손, 조련사의 손들이 영국 최고의 흑백 사진작가 티모시 부스의 작품을 통해서 감동을 주었다. "어떤 사람의 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인생과 직업을 통찰할 수 있다고 믿는다."라는 인터뷰 글이 하진의 흉터 많은 손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소설이다.

짐작한 것보다도 더 깊은 시선, 생각한 것보다도 더 풍성한 대화들과 사유한 흔적들이 소설의 인물들을 통해서 새롭게 정리하는 시간이 되어준 멋진 장편소설이다. 정략결혼하는 풍습까지도 작가는 매섭게 꼬집는다. 다들 자식을 팔고 있는 정략결혼처럼 해원이 하진을 팔 거냐고 질문하는 장면도 압도적이다. 이 대화와 질문을 부여잡으면서 누가 어떤 광인이었는지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위스키의 맛을 표현하는 문장들에 그맛과 향을 무한히 상상하게 하는 작가이다. 하나의 사랑을 느끼지 않고 다양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여러 겹을 이루는 감정을 이렇게 잘 전달하며 묘사하는 장면들에 몇 번을 놀라워했는지 모른다.



사랑과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이 제법 눈에 띄는 시대이다. 트렁크 드라마에서도 다르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만큼 이 소설에서도 이들이 나누는 예리한 질문과 정의들을 오랜 시간 사유하도록 이끌었던 작가이다.


흉터 많은 그 손처럼 많은 일을 이미 겪었지만 그 어디에도 자초당하지 않은 사람 88

사랑이란 명백해서 잔인한 것이었다. 오래되고 사소한 기억이 떠올랐다. 179


어머니 / 분명하고 열렬하지만 그만큼이나 선별적이고 차별적이다. 사랑은 늘 오래된 것처럼 선명하니까.사랑한다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 삶과 죽음만큼 전혀 다른 상태, 다른 무게니까. 180


사랑은 투명했다. 적나라하게, 벌거벗은 나를 비췄다. 181

남들 눈에는 대궐 같지만 실은 아버지의 소굴 갔던 집에서 버티고 끝내 벗어나게 해준 것도 ... 사랑이었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핑크색 사랑이 아니었다. 피 같은, 선지색의 사랑이었고... 지독한 피로 끝에 고이는 단내 같은 사랑이었다. - P181

다들 자식을 팔고 ...정략결혼... 결혼부터 은행이 시켜주는 거라고들 하잖아요...준연은 나를 직시했다. 해원씨는 하진을 팔 건가요? - P220

착한 아들 노릇을 했던 것도 다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를 가엾게 여겼으니까,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할 만큼 했고 날 위해 살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걸 위해... 이 나이가 돼서야 뒤늦게 - P174

소중함이란 말 역시 경험을 필요로 했다. - P137

우리는 한 인생에서 오직 한 사람만 될 수 있어요. - P214

흉터 많은 그 손처럼 많은 일을 이미 겪었지만 그 어디에도 자초당하지 않은 사람 - P88

사랑이란 명백해서 잔인한 것이었다. 오래되고 사소한 기억이 떠올랐다. - P179

어머니 / 분명하고 열렬하지만 그만큼이나 선별적이고 차별적이다. 사랑은 늘 오래된 것처럼 선명하니까.사랑한다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 삶과 죽음만큼 전혀 다른 상태, 다른 무게니까.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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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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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의 인터뷰 글을 읽었다. 작가가 어떤 상황에서 집필한 소설이었는지도 들려주었기에 펼친 작품이다. 부르면 찾아가는 게 내 일이라고 말하는 화자가 있다. 그에게 일이 섭외되었고 섭외한 남자는 화자를 집에 초대하게 된다. 남자의 초대를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일을 섭외한 의뢰인은 임경주이며 전직 물리치료사이다. 의료사고로 직장이었던 병원에서 퇴사를 강요당하게 된다. 경주에게는 아버지가 있다. 빚쟁이로 몰리게 한 아버지로 인해 그는 질주하는 기차처럼 살았다고 한다. 타인의 빚을 연대하는 책임은 누구의 잘못일까. 아직 어린 나이에 빚이 무엇인지도 모를 나이에 그는 아버지의 빚을 갚아나가는 젊은 청춘이 된다. 『구의 증명』이라는 최진영 소설에서도 아들은 부모의 빚을 무겁게 갚아야 하는 삶을 젊은 나이에 시작한다. 태어남과 부모라는 사슬이 이렇게 질기고 무겁게 억누르는 존재로 시작한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소설의 흐름을 짐작하게 된다.

질주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보다 살려는 마음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평화롭다는 사실은 얼마나 참혹한 현실이었을지 충분히 떠올리게 한다. 살려는 마음이 사라지면 평화가 온다는 그 마음, 동요되었던 복잡하고 휘몰아치는 감정들이 평온해지는 것은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경주에게는 늦둥이 동생인 승주가 있었다. 지금은 죽어서 경주에게 잃어버린 결과물이라는 상징이 되어버린 남동생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동생인 승주의 죽음은 그에게 모든 것이었음을 설명한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이 없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결과물이라고 말할 만큼 그의 상황은 텅 비어버린 상황임을 전한다.

희망이라는 언어가 사기꾼의 언어라고 말하는 이유, 실체 없이 의미만 수십 개인 언어가 희망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희망이 사기꾼의 언어가 되어버렸다는 것은 얼마나 참혹한 현실인지 직시하게 된다. 그러한 인물이 화자에게 일을 의뢰한다. 그는 무엇을 의뢰한 것이며 화자는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인지도 궁금해진다.

경주의 집에 초대되어 첫 방문한 느낌은 고적하고 질서정연하다는 느낌으로 일축된다. 작가가 경주가 머무르는 그 집의 공간을 여러 번 언급하면서 표현한다. 그리고 공달이라고 부르는 앵무새의 존재도 드러나기 시작한다. 경주에게는 죽은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는 남한테만 착한 아버지였고 경주인 아들에게는 전혀 그런 아랑을 베풀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누군가에는 한없이 착하지만 가족에게는 한없이 냉정한 사람이 존재한다. 그러한 부자관계의 숙제는 오롯이 정을 전혀 받지도 못한 가족들이 품어안으면서 살기도 하는데 경주가 그러하다. 아버지가 차갑게 드리운 그늘 같은 삶과 빚에 경주는 질주하는 기차가 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웠음을 보여준다. 화자와 경주의 만남, 경주가 의뢰한 일, 화자가 하는 일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경주와 경주 아버지의 상호성을 언급하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부자연스럽고 아들을 마당 잣나무처럼 보았던 아버지, 아버지를 울타리 정도로 보았던 아들이 있다. 그 울타리는 누구나 넘보고 누구나 뛰어넘는 울타리였다니 얼마나 가치가 없는 아버지였는지 적절하게 표현하는 부자 사이이다.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했던 경주가 선택한 것과 그가 의뢰하는 일의 의미는 어떤 일을 계획하는 것이며 어떤 욕망이 드리우는지 소설은 이야기된다.

경주의 늦둥이 동생 승주는 어머니에게 버려진 아이이다. 승주가 긴 세월 어머니가 떠난 후 움켜쥔 것이 상실감도 아니며 슬픔도 아니었음을 뒤늦게서야 형은 알게 된다. 그것은 암흑 같은 허무이며, 진흙탕 같은 무력감이었다는 것을 너무나도 늦게 깨닫게 된다. 현실로 회복될 거라고 믿었지만 남동생 승주는 형의 험준한 말에 가출하고 노숙자로 굶어죽었음을 알게 된다. 승주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경주는 자신도 승주와 다를 바 없는 비슷한 유의 인간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승주와의 차이점이라면 세상에서 돈을 벌었다는 차이만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두 형제가 감당하였던 감정들의 가해자들은 누구였는지 소설은 보여준다. 사라져야 했던 별이 되었던 승주, 경주의 등장은 소설에서 어떤 의미로 전개될지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인물이다.

소설의 화자인 이해상이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을 하려면 의뢰인의 내면 언어의 볼륨을 올려야 한다고 설명하는 인물이다. 롤라라는 커뮤니티가 등장한다. 해상은 롤라의 커뮤니티에 접속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 이유는 돌아와서 허무했고 후회했으며 부질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한동안 정체성 혼란에 시달렸다는 것까지도 설명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러한 상황들과 후유증은 상징성을 띈다. 현실이 행복하지 않다면 불행하고 고통과 고달픈 삶을 선택할 수도 있겠다는 것은 상당한 암시를 시사한다.


지금 상황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결과물이고.

승주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나는 승주의 죽음으로. 44

나는 롤라의 커뮤니티에 접속하지 않습니다... 돌아온 후엔 후회했고. 부질없고 허무했거든요. 한동안 정체성 혼란해 시달리기도 했고. - P22

행복에 내성이 생겨 도무지 행복하지 않다면, 불행하고 고통스럽고 고달픈 삶을 택할 수도 있겠다. - P20

승주가 움켜지고 있는 건 상실감이나 슬픔이 아니었다. 암흑 같은 허무요, 진흙탕 같은 무력감이었다. - P32

나를 향할 땐 마당 잣나무 보듯 했다. 나도 아버지를 울타리 정도로 여겼으니까. 누구나 넘볼 수 있고 누구든 뛰어넘을 수 있는, 울타리 같지 않은 울타리. - P32

남한테만 착한 아버지는 내게 그런 아량을 베풀지 않았다. - P51

내게 희망이란, 실체 없이 의미만 수십 개인 사기꾼의 언어가 되었다. - P52

살려는 마음이 사라지면 평화가 온다. - P45

아버지 덕에 빚쟁이가 됐을 때 나는 질주하는 기차처럼 살았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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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작곡하고 플루트 레슨을 하며 생활하는 40세 남자가 있다. 41세 플루트 수강생인 화자가 레슨을 하는 이 남자와 위스키를 마시며 대화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학원을 운영하는 작곡가의 대화들 중의 몇 문장이다. 이 두 남자에게는 공통된 것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한 사연과 어머니들의 삶, 40대라는 나이에 미혼인 이들의 사연이 전해진다.

작가의 전작들을 읽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는 소설들이라 기대하면서 읽고 있는 <광인> 장편소설이다.

위대한 작품들이 위대한 이유. 우리가 누구인지 ...시간과 삶은 어떤 것이고...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절실한 것은 무엇인지,...일깨워주니까요. - P19

예술은 어떤 것보다 거짓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보다 진실할 수 있어요. - P19

좋은 사람이란 그 한 사람만 있어도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죠...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살 수는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잘, 열심히 살 수는 없어요. 그게 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고... 싫은 사람에게도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낼 수밖에 없는 거에요.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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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후쿠나가 다케히코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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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등장한 한 문장에 매혹되어 작가가 궁금해서 읽은 소설이다. 1918년에 태어나 1979년의 생애를 가진 작가는 시집과 단편집, 장편소설 『풍토』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 장편소설 『풀꽃』으로 작가로 알려지게 된다. 서정성이 풍부한 시적 세계와 예리한 문학적 주제들을 다룬 작품들을 다수 발표한 작가이다. 마니치시출판문학상, 일본문학대상도 수상한 작가이다.

읽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작가이다. 고독을 지속적으로 음미하게 하는 주인공은 젊은 남자이며 요양원에 입원한 환자이다. 이 요양원에는 젊은 환자들이 대부분이며 경증 환자와 중증 환자들로 나뉘어 입원 치료받고 있다. 이곳은 지속적으로 관찰되는 생과 사를 나뉘는 경계선의 공간이다. 결과 수치에 따라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하고 죽음이 당도하기도 하는 곳이다. 의대생 환자도 이곳에 있어서 그의 의학지식이 의대생 환자의 두려움은 극도로 예민한 상황이다. 경증 환자이지만 그는 절대로 중증 환자실에서 나가지 않는다. 주인공 환자는 요양원의 모습과 환자들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화자도 이 요양원의 환자이며 시인이다. 쓸거리는 문제가 아니며 뿌리내리는 것이 시라고 말하면서 자신에게는 뿌리를 내릴 만큼의 힘이 없다고 한다. 시 한 줄 쓰는데도 온 힘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의 시집을 펼치면 언제나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응집된 하나의 시와 시어들에는 시인만이 응시한 집요한 시선의 끝이 놀라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온 힘을 다한 시 한 편을 향한 온 힘을 다했음을 이 화자를 통해서 듣게 된다. 이 소설의 작가도 다르지가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장편소설을 집필하였을 긴 시간의 소요를 길게 짐작하게 한다. 읽으면서도 무수히 책표지의 그림을 바라보게 한 소설이다.

누군가에게는 우정, 누군가에는 두려움, 다른 누군가에게는 질투의 원인이었던 한 사람의 태도인 무관심에 주목하게 한다. 환자 대부분의 두려움에 유독 죽음의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는 한 사람, 시오미 시게시가 있다. 그의 정신적 강인함을 뚫어지게 관찰하게 된다. 그에게 당도한 죽음의 그늘은 매우 가깝지만 그에게는 어떤 동요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이 화자의 시선을 끌었고 그에게 우정을 느끼게 된다. 그도 화자처럼 무언가를 쓰고 있다. 소설을 쓴다고 말하는 시오미의 투지에 화자는 감탄하게 된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소설이라고 한다.

시오미가 화자에게 결심에 대해 언급한다. "아무래도 결심이 안 서서 그런데, 내일 아침에 다시 와줄래?" (43쪽) 엄습하는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요양원이다. 시오미는 죽음을 두려워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삶에 대한 불만'이 '죽음의 공포'보다 더 컸다는 것, 사랑하고 있을 때 자신은 살아있었다고 말한다. 사랑하지 않고 있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님을 직시한다.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생명이 있는 눈과 텅 빈 눈을 가진다는 것. 그것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표명하기 시작한다. 시오미를 통해서 사랑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준다. 그의 인생에 단 두 사람이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첫 번째 사랑한 사람과 두 번째 사랑한 사람이 누구였으며 그때의 이야기들이 그가 남긴 두 권의 노트에서 소설로 전해진다.

이 노트는 생전에 집필한 소설이며 화자에게 남긴 노트 두 권이다. 노트를 다 읽고 난 화자는 시오미가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것인지, 의료사고였는지 질문하면서 읽기 시작하면서 마지막 노트를 덮고 나서 화자는 시오미의 죽음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세례를 받아서 그만의 방식으로 죽음을 선택하였음을 짐작하게 된다. 플라톤적 사랑을 하였던 첫 번째 사랑, 두 번째 사랑을 스스로 놓아버린 이유도 소설에서 드러난다. 두 사람에게서 자신이 사랑받지 못했던 것을 시오미는 자각하게 된다.

시오미에게 삶은 고독으로 가득하였지만 사랑한 추억과 경험이 그를 살게 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를 떠나버린 사랑한 사람들과 그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었던 그 사람들의 이유들도 소설에 드러난다. 상대가 무겁게 느끼는 삶의 무게가 사랑보다도 압도하였던 것이다. 제국주의에 젊은 군인들은 징병되어 시오미의 지인들이 젊은 나이에 의무관으로 죽고, 군함과 함께 죽었다는 것도 언급된다. 과학의 발달과 무기의 발달로 전쟁은 지금도 지속되며 기독교가 전쟁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문제도 시오미는 연인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강조한다.

시오미는 하느님을 스스로 거부한다. 시오미가 기독교를 거부한 이유들도 조목조목 열거된다. 기독교의 문제들을 펼쳐놓으면서 시오미가 지적한 사안들을 무시하면 안 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사랑하고 있을 때 나는 살아 있었다는 문장은 강열하게 각인된다. 사랑할 때 생명의 충족감이 있고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황홀감도 종종 찾아왔다고 시오미는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행복감이었고 불타오르는 영혼의 환희였다는 것을 기억한다.

사랑하지 않는 기독교, 사랑이 없는 다툼과 전쟁, 욕망들을 무수히 목도한다. 중세교회의 역사과 전쟁에는 기독교가 자리잡는다. 마녀와 화형, 종교전쟁에는 사랑하라는 가르침에 위반되는 살인을 역사에 남긴다. 총과 무기를 들고 적이라고 적시된 대상을 죽일 것인지, 내가 죽을 것인지 고뇌하는 시오미의 진지한 질문은 생과 사의 갈림길이 된다. 상대를 죽일 것인지, 내가 죽일 것인지, 내가 죽을 것인지 무기를 손에 쥔 군인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옮은 것일까. 젊은 러시아 군인이 폭탄이 투하되기 직전에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담긴 생전 모습의 기사가 기억난다. 전쟁과 젊은 군인들의 수많은 죽음은 누구 시작한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그들의 죽음, 그들의 짧은 생애만큼 이 소설의 시오미가 살았던 짧은 생애와 실패한 사랑, 죽음을 함께 고찰하게 한다.

소설은 매끄럽다. 풀과 풀꽃에 대해 언급한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소설을 펼칠 때마다 생각한 소설이다. 모든 인간은 풀이며 영광은 풀꽃과 같다는 것을 소설과 함께 음미하게 하는 작품이다. 꺾여버린 풀꽃의 의미까지도 진중하게 전해진다.


미국의 기독교인은

신과 민주주의를 위해 승리를 기도하고,

영국의 기독교인은

신과 왕을 위해 승리를 기도하고,

일본의 기독교인은

신과 천황을 위해 승리를 기도한다지만

그 신은 대체 어떤 신인 걸까?

그 기독교인은 전쟁을 멈추기 위해

무엇 하나 하지 않았어.

그런데도 기독교인의 영혼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237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꽃과 같다.

_ 베드로 전서 1장 24절






나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한 것은 아니다... 내 불안을 주로 이루고 있었던 것은 죽음의 공포보다도 오히려 삶에 대한 불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떠나갔다. 하지만 사랑하고 있을 때 나는 살아 있었다. 그때는 생명의 충족감이 있었고,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황홀감이 종종 나를 찾아왔다. 그런 행복은 어디로 갔을까. 그 불타오르는 영혼의 환희는 어디로 갔을까. - P63

쓸거리 같은 건 문제가 아니야. 뿌리내리는 것, 그게 시야. 나한테 뿌리를 내릴 만큼의 힘이 없어. 시 한 줄 쓰는데도 온 힘을 다해야 해. - P26

내게는 우정을, 가쿠시나 아저씨 같은 사람에게는 두려움을, 료에게는 질투를 불러일으킨 원인이었을 것이다. - P23

기독교가 싫어진 것은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야.왜 반대하지 않는 걸까?
- P237

미국의 기독교인은 신과 민주주의를 위해 승리를 기도하고, 영국의 기독교인은 신과 왕을 위해 승리를 기도하고, 일본의 기독교인은 신과 천황을 위해 승리를 기도한다지만 그 신은 대체 어떤 신인 걸까? 그 기독교인은 전쟁을 멈추기 위해 무엇 하나 하지 않았어.그런데도 기독교인의 영혼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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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ulashin, 출처 Unsplash



여름바다와 그곳에 있는 카페가 있다. 그 카페에서 판매하는 감귤 빙수의 맛을 떠올려보는 겨울이다. 더불어 시럽만 뿌린 사탕수수 빙수의 맛과 패션프루트 빙수의 맛, 단판과 말차 시럽을 뿌린 단팥 빙수까지도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다. 인공색소가 없는 빙수의 깨끗한 맛을 음미할 수 있는 그 바닷가의 카페의 다양한 빙수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설이다. 그 바닷가와 카페의 빙수들은 여름소설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바다의 뚜껑』이라는 요시모토 바나나 작가의 소설이다.

인공색소가 없는 빙수, 깨끗한 빙수의 맛을 전하는 소박함을 추구하였던 소설 속의 빙수 가게이다.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작가를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빙수 가게가 있다. 유리그릇에 담긴 달콤함이 가득하게 전해진다. 세상의 시끄러움과 다툼의 현장은 얼마나 우리가 사는 곳을 차지하고 있는지 생각할수록 악함이 선함을 이기고 강하다는 것을 여실히 목도하게 된다.

복잡한 도심생활에 지친 인물이 남쪽 섬에 여행을 가서 운명처럼 만난 소박한 빙수 가게가 있다. 성공적인 삶이라고 믿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 이 가게는 어떤 곳이며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깨닫게 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며 우정의 소중함과 진짜 행복을 볼 수 있는 힘도 가질 수 있도록 비추어 주는 소설이다. 도시 생활자의 지친 현실, 잠들지 않는 도시의 노동자로서의 삶은 진짜 행복인지 질문을 하게 된다.

전혀 아름답지 않은 인간들의 욕망들은 일그러진 모습으로 악취나는 것을 향수로 포장하고 희귀한 것들로 자신들을 드러내면서 미화시키지만 결코 그것들이 선하고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 그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 것들이 『에코의 위대한 강연』 책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추에 대한 강연이다. 소설에서도 작가는 세상이 선하고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일은 소박하고 눈에 띄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소박함의 미학, 눈에 띄지 않게 존재하고 있는 아름다운 것을 부단히 노력하면서 매일 찾고 발견하여야 한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도 확인한다. 자본주의는 소비의 미학을 부추기면서 자극하지만 진짜 아름다운 것은 그러한 소비지향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모두의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은 어떤 의미이며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퇴근 후 휴대폰을 전혀 만지지 않는다는 분의 일기를 읽으면서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잡은 문명이 얼마나 파괴적이며 삶을 피폐하게 하는지 일깨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빙수 가게의 가치가 일상 속에서도 빛나기를 희망할수록 선택과 선택되지 않을 것들이 무엇인지 차분히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의도하고, 자긍심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작가는 조용한 목소리로 힘주어 말한다. 머리를 써서 여러가지로 고민하면 정말로 이루어지는 것들이 무엇인지도 보여주면서 인간이 가진 엄청난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도 소설은 보여준다.

겨울에 펼친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이다. 사람을 만날 때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근원을 본다는 것에 대해서도 작가는 소설에서 말한다. 분위기와 목소리, 냄새 등 상대의 전부를 감지하는 것이 사람을 본다는 것이다. 곧바르고 강한 것을 보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도 들려준다. 풍경을 바라보면서 탄성을 지르며 하느님의 기분을 알 것 같다고 말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강한 질문으로 남는다. 강하지만 휘어지고 약해 보이지만 강한 것의 가치들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펼치는 소설이지만 전혀 가볍지 않고 가벼워 보일 뿐이다. 빙수 가게 주인이 가진 소신과 가치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무심해 보이지만 전혀 무심하지 않는 것, 주인이 가진 생각들에 매료되는 소설이다. 탐욕으로 싸우는 싸움이 얼마나 흉측한지도 보여준다. 할머니의 죽음은 그리움으로 차곡히 추억되면서 그 시간들을 이겨낸 이야기도 들려준다.

치유해 주는 바다가 있다. 상처받고 힘들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지만 저마다 치유받는 것을 찾게 되는데 이 소설에서는 바다가 그러한 의미이다. 여름바다에 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주인공들이 있다. 돈을 얼마나 가지면 만족하게 되는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기도 하다. 돈에 대한 생각들도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이야기하면서 독자들에게도 진짜 행복이란 무엇인가, 진짜 돈을 얼마나 가지면 만족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세상이 선하고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일은 소박하고 눈에 띄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

의도하고, 자긍심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고,

머리를 써서 여러가지로 고민하면 정말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이 경치, 정말 엄청나네.

하느님의 기분이 어떤지 알 것 같아...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사실 얼굴은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근원에 있는 것을 본다.

분위기와, 목소리, 그리고 냄새...... 그 전부를 감지한다...

곧바르고 강한....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봐주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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