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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후쿠나가 다케히코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3년 8월
평점 :
소설에 등장한 한 문장에 매혹되어 작가가 궁금해서 읽은 소설이다. 1918년에 태어나 1979년의 생애를 가진 작가는 시집과 단편집, 장편소설 『풍토』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 장편소설 『풀꽃』으로 작가로 알려지게 된다. 서정성이 풍부한 시적 세계와 예리한 문학적 주제들을 다룬 작품들을 다수 발표한 작가이다. 마니치시출판문학상, 일본문학대상도 수상한 작가이다.
읽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작가이다. 고독을 지속적으로 음미하게 하는 주인공은 젊은 남자이며 요양원에 입원한 환자이다. 이 요양원에는 젊은 환자들이 대부분이며 경증 환자와 중증 환자들로 나뉘어 입원 치료받고 있다. 이곳은 지속적으로 관찰되는 생과 사를 나뉘는 경계선의 공간이다. 결과 수치에 따라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하고 죽음이 당도하기도 하는 곳이다. 의대생 환자도 이곳에 있어서 그의 의학지식이 의대생 환자의 두려움은 극도로 예민한 상황이다. 경증 환자이지만 그는 절대로 중증 환자실에서 나가지 않는다. 주인공 환자는 요양원의 모습과 환자들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화자도 이 요양원의 환자이며 시인이다. 쓸거리는 문제가 아니며 뿌리내리는 것이 시라고 말하면서 자신에게는 뿌리를 내릴 만큼의 힘이 없다고 한다. 시 한 줄 쓰는데도 온 힘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의 시집을 펼치면 언제나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응집된 하나의 시와 시어들에는 시인만이 응시한 집요한 시선의 끝이 놀라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온 힘을 다한 시 한 편을 향한 온 힘을 다했음을 이 화자를 통해서 듣게 된다. 이 소설의 작가도 다르지가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장편소설을 집필하였을 긴 시간의 소요를 길게 짐작하게 한다. 읽으면서도 무수히 책표지의 그림을 바라보게 한 소설이다.
누군가에게는 우정, 누군가에는 두려움, 다른 누군가에게는 질투의 원인이었던 한 사람의 태도인 무관심에 주목하게 한다. 환자 대부분의 두려움에 유독 죽음의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는 한 사람, 시오미 시게시가 있다. 그의 정신적 강인함을 뚫어지게 관찰하게 된다. 그에게 당도한 죽음의 그늘은 매우 가깝지만 그에게는 어떤 동요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이 화자의 시선을 끌었고 그에게 우정을 느끼게 된다. 그도 화자처럼 무언가를 쓰고 있다. 소설을 쓴다고 말하는 시오미의 투지에 화자는 감탄하게 된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소설이라고 한다.
시오미가 화자에게 결심에 대해 언급한다. "아무래도 결심이 안 서서 그런데, 내일 아침에 다시 와줄래?" (43쪽) 엄습하는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요양원이다. 시오미는 죽음을 두려워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삶에 대한 불만'이 '죽음의 공포'보다 더 컸다는 것, 사랑하고 있을 때 자신은 살아있었다고 말한다. 사랑하지 않고 있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님을 직시한다.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생명이 있는 눈과 텅 빈 눈을 가진다는 것. 그것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표명하기 시작한다. 시오미를 통해서 사랑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준다. 그의 인생에 단 두 사람이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첫 번째 사랑한 사람과 두 번째 사랑한 사람이 누구였으며 그때의 이야기들이 그가 남긴 두 권의 노트에서 소설로 전해진다.
이 노트는 생전에 집필한 소설이며 화자에게 남긴 노트 두 권이다. 노트를 다 읽고 난 화자는 시오미가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것인지, 의료사고였는지 질문하면서 읽기 시작하면서 마지막 노트를 덮고 나서 화자는 시오미의 죽음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세례를 받아서 그만의 방식으로 죽음을 선택하였음을 짐작하게 된다. 플라톤적 사랑을 하였던 첫 번째 사랑, 두 번째 사랑을 스스로 놓아버린 이유도 소설에서 드러난다. 두 사람에게서 자신이 사랑받지 못했던 것을 시오미는 자각하게 된다.
시오미에게 삶은 고독으로 가득하였지만 사랑한 추억과 경험이 그를 살게 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를 떠나버린 사랑한 사람들과 그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었던 그 사람들의 이유들도 소설에 드러난다. 상대가 무겁게 느끼는 삶의 무게가 사랑보다도 압도하였던 것이다. 제국주의에 젊은 군인들은 징병되어 시오미의 지인들이 젊은 나이에 의무관으로 죽고, 군함과 함께 죽었다는 것도 언급된다. 과학의 발달과 무기의 발달로 전쟁은 지금도 지속되며 기독교가 전쟁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문제도 시오미는 연인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강조한다.
시오미는 하느님을 스스로 거부한다. 시오미가 기독교를 거부한 이유들도 조목조목 열거된다. 기독교의 문제들을 펼쳐놓으면서 시오미가 지적한 사안들을 무시하면 안 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사랑하고 있을 때 나는 살아 있었다는 문장은 강열하게 각인된다. 사랑할 때 생명의 충족감이 있고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황홀감도 종종 찾아왔다고 시오미는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행복감이었고 불타오르는 영혼의 환희였다는 것을 기억한다.
사랑하지 않는 기독교, 사랑이 없는 다툼과 전쟁, 욕망들을 무수히 목도한다. 중세교회의 역사과 전쟁에는 기독교가 자리잡는다. 마녀와 화형, 종교전쟁에는 사랑하라는 가르침에 위반되는 살인을 역사에 남긴다. 총과 무기를 들고 적이라고 적시된 대상을 죽일 것인지, 내가 죽을 것인지 고뇌하는 시오미의 진지한 질문은 생과 사의 갈림길이 된다. 상대를 죽일 것인지, 내가 죽일 것인지, 내가 죽을 것인지 무기를 손에 쥔 군인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옮은 것일까. 젊은 러시아 군인이 폭탄이 투하되기 직전에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담긴 생전 모습의 기사가 기억난다. 전쟁과 젊은 군인들의 수많은 죽음은 누구 시작한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그들의 죽음, 그들의 짧은 생애만큼 이 소설의 시오미가 살았던 짧은 생애와 실패한 사랑, 죽음을 함께 고찰하게 한다.
소설은 매끄럽다. 풀과 풀꽃에 대해 언급한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소설을 펼칠 때마다 생각한 소설이다. 모든 인간은 풀이며 영광은 풀꽃과 같다는 것을 소설과 함께 음미하게 하는 작품이다. 꺾여버린 풀꽃의 의미까지도 진중하게 전해진다.
미국의 기독교인은
신과 민주주의를 위해 승리를 기도하고,
영국의 기독교인은
신과 왕을 위해 승리를 기도하고,
일본의 기독교인은
신과 천황을 위해 승리를 기도한다지만
그 신은 대체 어떤 신인 걸까?
그 기독교인은 전쟁을 멈추기 위해
무엇 하나 하지 않았어.
그런데도 기독교인의 영혼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237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꽃과 같다.
_ 베드로 전서 1장 24절
나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한 것은 아니다... 내 불안을 주로 이루고 있었던 것은 죽음의 공포보다도 오히려 삶에 대한 불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떠나갔다. 하지만 사랑하고 있을 때 나는 살아 있었다. 그때는 생명의 충족감이 있었고,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황홀감이 종종 나를 찾아왔다. 그런 행복은 어디로 갔을까. 그 불타오르는 영혼의 환희는 어디로 갔을까. - P63
쓸거리 같은 건 문제가 아니야. 뿌리내리는 것, 그게 시야. 나한테 뿌리를 내릴 만큼의 힘이 없어. 시 한 줄 쓰는데도 온 힘을 다해야 해. - P26
내게는 우정을, 가쿠시나 아저씨 같은 사람에게는 두려움을, 료에게는 질투를 불러일으킨 원인이었을 것이다. - P23
기독교가 싫어진 것은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야.왜 반대하지 않는 걸까? - P237
미국의 기독교인은 신과 민주주의를 위해 승리를 기도하고, 영국의 기독교인은 신과 왕을 위해 승리를 기도하고, 일본의 기독교인은 신과 천황을 위해 승리를 기도한다지만 그 신은 대체 어떤 신인 걸까? 그 기독교인은 전쟁을 멈추기 위해 무엇 하나 하지 않았어.그런데도 기독교인의 영혼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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