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작하였던 것보다도 질감이 촘촘한 소설이다. 빠르게 읽을 줄 알았는데 여러 날 여러 순간 몇 번을 멈추었는지 모른다. 작가가 소설에서 던지는 질문들은 수많은 돌계단이 되면서 오랜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작품으로 남는다. 점점 묵직하게 질문들이 많아질수록 차별과 편견이 만들어놓은 사회적 문제는 정치적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놓치지 않게 된다. 누군가를 자신들의 아래에 깔아놓고 이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대물림하는 사회적 문제는 역사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성별, 세대, 인종, 국가, 종교로 분류된 인간을 오랫동안 바라보았을 작가의 깊은 시선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파란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가정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살펴보게 된다. 더불어 학교라는 사회적 집단에서 교사가 파란 피부를 가진 학생을 평등하게 대우하였는지도 밀착해서 관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스쿨버스에서 차별을 받는 주인공은 그것을 피하고자 일부러 걸어가게 되지만 집단 폭력을 당하는 사건까지 일어나게 된다.
성별로 분류되는 사회, 인종으로 분류된 사회, 국가로 분류되고 정치적 취향으로 분류될수록 사회는 대립과 마찰음이 구석구석에서 번져나기 시작한다. 작고 큰 마찰음들이 폭력과 영혼에까지 깊은 상처를 오랜 시간 남긴다는 것을 우리는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다양한 사연들을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어떤 이는 젊은 여성이며, 어떤 이는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하다. 이들의 죽음은 살해라는 방식으로 참혹한 결과로 다양하게 남겨진 이들에게 그리움을 남기게 된다.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다시 되돌리지 못하기에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가 지금 무엇을 노력하여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소설로 남는다.
연대가 아닌 고립의 방식으로 분류된 수많은 인간들을 보게 하는 소설이다. 차별과 계급화로 분열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을 확대경으로 주인공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서 일깨우기 시작한다. 수직적 사회를 수평적 사회로 연대하는 힘이 왜 필요한지 차분히 하나씩 자극을 주는 소설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되었던 수직적 사회를 수평적 사회로 이끌어야 하는 이유를 확인하게 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귀 기울이게 된다.
누가 무엇을 위해 이 사회에 차별과 계급화를 구축하였는지부터 차분히 인지할수록 극소수가 구축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인류의 문제들을 일본의 관동대학살과 난징대학살,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중국의 티베트학살, 미얀마의 로힝야족학살, 수단의 다르푸르학살과 연결해서 고찰하게 된다. 참전한 군인이 고통을 잊고자 마약을 하게 되는 악순환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접근하면서 영혼이 고장난 참전 군인의 참상을 이 소설에서도 확인하게 된다. 『면도날』,『카시지』, 『도둑신부』,『눈먼 암살자』,『반쪼가리 자작』,『태고의 시간들』, 『낮의 집 밤의 집』 등을 떠올리게 한다. 수많은 작가들이 소설을 통해서 전쟁의 참상과 참전 군인들이 어떻게 영혼이 파괴되는지 고발한다. 군사 보복과 억지 명분으로 아이들과 여성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하는 것은 결코 정당성을 잃게 된다.
이 소설에서도 전쟁과 다름없는 차별과 편견의 방식으로 미성년이 어떻게 혹독하게 살아갔는지 주인공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파란 피부를 가진 아들에게 발언하는 폭언과 차별, 도망간 베트남 엄마가 아들에게 "잘 지내니?"라고 한국어로 물었을 때 "잘 모르겠어요."라고 영어로 말했다가, 다시 한국으로 대답한 이유를 가볍게 지나치지 못하게 된다. 모국어를 버리고 생존을 위해 선택한 영어가 무심결에 나올 정도로 이 아이는 얼마나 혹독한 환경에서 치열하게 버티고 있었는지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건들에 파란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용의자로 지목되고 교회의 교인들조차 아이를 보호하기는커녕 산불을 낸 범인으로 지목한 것은 교리와도 일치하지 못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아버지도 교회생활과 집에서의 생활은 매우 다른 삶을 보여준다. 교회에서 보이는 교인의 삶과 집에서의 그의 삶은 아주 이질적이다. 아들은 그러한 아버지를 보면서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도 짐작하게 되는 작품이다.
낙인찍힌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혹독한 삶인지 소설을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파란 피부는 질기고도 잔인한 방식으로 차별과 편견 속으로 가두어 버린다. 우리가 사회 속에서 무의식 속에서 길들여진 이러한 차별과 편견들이 무엇인지도 차분히 떠올려보게 한다. 남녀 차별, 종교적 차별, 인종 차별, 출생지역 차별 등이 존재한다. 계략적으로 구획된 수많은 분류 속에 존재하는 우리는 무임승차권을 가진 집단인지 부당한 차별과 편견에 무수히 피해를 보는 민족인지도 고찰하게 된다. 아시안인이라 세계여행을 다니면서 경험하게 되는 무수히 많은 인종차별에 우리들도 파란 피부를 가진 주인공과 다름없는 존재임을 확인하게 된다. 파란 피부는 곧 우리들 모두의 이야기로 존재하며 언제든지 당할 수 있는 무차별적인 의혹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파란 피부를 가진 이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작가의 말을 통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보게 해준다. 수직적 사회가 아닌 수평적 사회가 대안이며, 고립이 아닌 연대로 힘을 주는 사회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희망적인 사회이며 세계라는 것을 이 소설과 작가를 통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문학은 힘을 준다. 절망보다는 희망을 불어넣는 에너지가 존재한다. 암담한 사회이지만 그래도 다시 따스한 입김을 불어넣고자 주변을 살피게 한다. 하나의 따스함, 하나의 보살핌, 하나의 관심이 이 사회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거라고 믿게 한다. 트럼프, 박근혜, 이명박 등이 언급되는 만큼 정치역사도 함께 언급되는 소설이다.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에게 가하는 폭행에 대해서도 언급되는 작품이다. 데이트 폭행, 가정폭력에 무력하게 익숙해지는 여자가 없어야 하는 이유도 소설의 장면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된다. 베트남 엄마가 미국 이민에 합류하지 않았던 이유도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아내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언급하였지만 무시하는 남편의 태도에 처음으로 자신이 찾는 꿈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가는 베트남 엄마의 모습도 함께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으로 남는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곳에 속할 수 있는 현자가 아니었다. 나는 개인이었다. 작고 어린 파란색이었다. 나는 더 이상 백인을 우러르지도, 흑인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선망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았다. 인간을 무채색으로 만들고 나면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 일터와 인간관계의 지친 사람들, 애국심과 규율로 무장한 펑크에 숨어 떨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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