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 이펙트 -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필립 짐바르도 지음, 이충호.임지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700쪽 가량의 두툼한 부피와 조금은 유치한 느낌이 감도는 제목 때문에 어쩐지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책이었고, 내용도 조잡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서기는 했지만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와 복종에 관한 실험과 함께 가장 악명 높은 실험 중 하나인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진행했었던 저자가 처음으로 실험에 대한 모든 내용을 공개하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저자 나름대로의 이해를 들려준다는 홍보 문구에 호기심이 들어 구입을 하게 되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두근거리는 마음에 구입은 했지만 곧장 책장으로 향하게 되었고 손이 가지는 않았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루시퍼 이펙트를 읽도록 만들게 된 이유는 최근 불거지게-폭로 된 군대 내에서의 온갖 폭력 및 가혹행위에 관한 소름끼치는 소식들을 연이어 접하게 되면서 항상 갖고 있던 인간의 본성과 심리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커지게 되면서, 게다가 (정신분석이 아닌) 사회심리학 적인 접근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좀 더 총체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 저자의 방식이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그동안 몰랐던 내용부터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얘기되었던-악명을 떨쳤던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에 대한 모든 내용이 루시퍼 이펙트를 통해서 최초로 공개되었다는 것과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들은 일부분에 불과했다는 점이었다.

 

워낙 널리 알려진 실험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의 접근과 평가-검토가 이뤄졌던 실험이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그 이유들에 대해서 저자는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공개하지 않았던 내용들을 공개함과 함께 그렇게 전면적으로 공개하게 된 이유로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으로 이후 나타났던 여러 문제들(인권문제, 포로학대, 고문 등등),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알려지게 된 여러 문제들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 사건을 통해서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과 얼마나 비슷한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는지를, 더욱 잔혹한 방식으로 벌어진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가 얼마나 사회시스템이 갖고 있고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응축하고 있는지를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과 정교하게 관련지으면서 논의를 이끌어가고 있어서 무척 흥미롭게 읽혀지게 되었다.

 

어렵지 않게 술술 읽어나갈 수 있도록 쉽고 상세하게 저자는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알려주고 있고,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이 워낙 호기심을 끌게 만드는 실험이었기 때문인지 더욱 집중을 해서 읽게 만들고 있다.

 

우선 저자의 기본적인 입장을 간략하게 설명한다면, 저자는 유대인 학살이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와 같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극단적인 폭력성과 파괴적인 행동이 그런 행동을 보인 행위자들의 개인적인 기질이나 성격적인 부분보다는 행위자들에게 주어진 상황적 힘과 그런 상황을 만들어내게 되는 사회시스템-체계로 인한 요인이 더 크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자신의 생각을 다양한 사례와 실험을 토대로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가 직접 실험을 주관했던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에 대해서 설명해주며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고 저지를 수 있게 만드는 이유들에 대해서 무척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저자의 사회심리학을 밑바탕으로 한 접근은 여러모로 흥미로우며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단순히 실험을 통한 결과들만이 아닌 문학, 영화 및 기타 다양한 예들을 통해서 설명을 해주고 있고 설득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가 악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기질-성격으로 인한 것인지 상황-시스템 때문인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잔혹한 사례들과 그런 수많은 예들 속에서, 실제로 엄청난 잔인함을 보여주었던-스스럼없이 자행했던 이들이 얼마나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이었는지를 알려주며 많은 사람들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던 여러 편견들을(개인적인 문제나 기질 혹은 정신적인 특이성으로 인해서 저지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뒤집으며 그들처럼 우리들 또한 그런 상황의 힘과 사회시스템에 제압당했을 때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를 살펴보고 있고,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고 있다.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분석 그리고 여러 문제점들에 대한 객관적이면서도 솔직하게 회고하고 있는 내용을 통해서는 여전히 충격적이고 인상적인 실험이었던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이 갖고 있는 중요성과 그 실험을 통해서 단순히 실험에 참가한 이들만이 아니라 실험을 전체적으로 관장하는 이들까지 자신들이 만들어낸 상황이지만 그 상황 자체의 힘으로 인해서 휩쓸려지는 놀라운 순간을 자세하게 살펴보고 있다.

 

여전히 충격적이고 놀랍기만 한 내용들을 접할 수 있었지만 저자는 단순히 실험의 충격성에 대해서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실험과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내용의 결과들과 결론을 내놓고 있고 여러 사례들을 재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실험의 잘못된 점들과 문제점들을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그로 인해서 더욱 인간의 본성에 관한 흥미로운 논의들을 이끌어냈다는 점 때문에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또한, 최초의 계획과는 달리 점점 더 상황이 만들어내는 힘으로 인해서 예측을 넘어서는 여러 상황-사건들과 그걸 사회시스템과 긴밀하게 연관해서 분석해내려는 시도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을 통해서 얻게 된 고민과 교훈 그리고 반성, 다양한 방식의 관심과 변화된 방식으로의 실험-연구를 통해서 더욱 의미가 깊어지게 되고, 하나의 실험이 여러 논의들로 확장되어가는 과정을 소상히 알려주고 그런 연구들 중에서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충격을 안겨주었던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과 권위에 관한 실험을 함께 관련지어 논의함으로써 더욱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으며,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도 연관시켜 단순히 실험을 통한 결과와 결론만이 아닌 역사적 사례들까지 짜임새 있게 연결시키며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인가? 라는 물음을 갖게 해주고 있다.

 

악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과 함께 상황과 사회시스템-체계의 거대한 힘에 대한 계속되는 강조 이후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을 더욱 흉포한 방식으로 극단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를 세밀하고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저자인 필립 짐바르도의 분석의 특별함-탁월함은 단순히 실험을 통한 결과-결론들을 토대로 다양한 사례와 논의로 확장되도록 의도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과 물음을 내놓고 있다는 점일 것 같은데,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에 관한 내용 또한 단순히 그 사건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만이 아닌 그런 깊은 혼란을 안겨주는 사건이 어떤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벌어지게 되었는지를 폭넓은 관점으로 파악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사회심리학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시스템 자체에 대한 분석까지 시도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더욱 의미 깊고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논의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어떻게 악이 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되도록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고, 어떤 식으로 맞서 싸워나갈 수 있을지를 그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는데, 악에 대한 분석에 비해서는 다소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어떤 식으로 이겨낼 수 있을지를 최대한 정교하게 다듬으려고 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기 위해서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주고 있는, 그리고 상황과 사회시스템이 어떻게 우리들을 휘어잡고 제압하려고 하는지를, 알아채지도 못하고 그 거대한 힘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들을 살펴보며 인간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게 되기도 하지만 그런 사실 자체에 대해서 눈을 돌리지 않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바라봄으로써 좀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고, 조금씩이라도 바꿔나가고 지켜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인상적인 내용이었고, 한동안은 자주 생각나게 될 내용이었다.

 

 

 

참고 : 저자인 필립 짐바르도의 언급에 따르면 필립 짐바르도와 스탠리 밀그램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둘 다 악명 높은 실험을 통해서 명성을 얻었다는 점 때문에 여러모로 그들의 성장과정은 어땠었는지 궁금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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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밝혀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엮음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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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00896457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영화)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58338657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36146675

 

 

 

미국 문학계에서는 신동이라는 표현을 쓰게 될 정도로 총애를 받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국내에서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통해서 많이 알려졌는데, 개인적으로도 그 작품을 통해서 처음 접했었고, 엄청나게 지루하고 믿을 수 없게 길게 읽혀지는 작품이었지만(어쩔 수 없다. 정말 읽는 것이 힘들었었다. , 후반부의 급격함은 놀라웠다) 지루하게 읽혀지다가 후반부의 급격하게 굴러가는 이야기 진행을 통해서는 무척이나 놀라움을 느꼈기 때문에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작가이고 작품이었다.

 

어떤 내용인지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읽었기 때문에 난해하게 읽혀졌다고 볼 수 있는데, 어딘가에서 (아마도 신문을 통해서) 그 작품에 대한 극찬을 접한 다음 별다른 생각 없이 읽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난해한 기분으로 읽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인지 좋은 작품인 것을 알면서도 좋지 않은 기억이 더 큰 것 같고.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글은 기본적으로는 어떤 내용으로 이야기 진행이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정보를 최소한으로 내놓고 있어서 읽는 사람이 어떤 내용인지 알기가 쉽지 않도록 진행시키다가 조각나지고 흩어져 있던 내용들이 갑작스럽게 하나로 모아지면서 놀라움을 느끼도록 의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굳이 그렇게 진행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인상적인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약간의 깜짝쇼처럼(혹은 반전을 극대화해서) 더욱 강렬함을 느끼도록 의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작품의 진행방식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아내인(그리고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함께 미국 문단이 주목하는 젊은 작가 중 하나인)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런 방식의 진행이 여러 고민을 통해서 내려진 결론인 것인지 그게 아니면 좀 더 연출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꿍꿍이인지 궁금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다른 미국의 젊은 작가도 그런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 것인지도 알고 싶어진다.

 

어쩌면 서로 작품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내린 결론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엄청나게...’(‘사랑의 역사도 마찬가지지만) 정돈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되던 이야기들이 마지막에 가서야 한꺼번에 정리되면서 혼란스럽기만 했던 이야기들이 사실은 무척 치밀하게 구성된 이야기 진행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도록 만들고 있고, 그걸 깨닫게 되면서 다시금 읽었던 내용들을 살펴보게 만드는... 그리고 그걸 살펴보기가 조금은 부담스러워 대충 훑어보게 만들며 흥미로운 시도이고 작가-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런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첫 작품인 모든 것이 밝혀졌다또한 엄청나게...’와 비슷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좀 더 이야기를 분할시켜서 진행시키고 있고, ‘엄청나게...’처럼 시각적인 방식으로도 접근하려는 시도를 무척 조심스럽게(‘엄청나게...’는 상대적으로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하고 있다.

 

엄청나게...’가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9/11 테러를 중요한 사건으로 다뤄내고 있기 때문에 미국인-뉴욕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중심에 놓고 있는 작품이라면, ‘모든 것이...’는 유대인이라는 정체성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사건을 중심에 놓고 진행되고 있는 작품이고, 좀 더 암울하고 그렇기 때문에 비극성에 대한 강조와 함께 반대로 비극을 조금은 비스듬히 보려는 듯 (‘백년간의 고독과 같은) 남아메리카의 환상문학(혹은 비사실적인 방식의 이야기 진행)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우선, 어쩌면 단순한 이야기로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인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엄청나게...’와 마찬가지로 이야기 진행을 다양하게 나눠놓고 여러 각도에서 진행시켜 혼란스러움을 혹은 제대로 짜 맞추기가 쉽지 않게 만들어놓고 있는데, 유대인 조너선이 2차 세계대전 중 자신의 할아버지를 구해준 여성을 찾기 위해서 우크라이나에 찾아오고, 그런 조너선을 안내하게 된 우크라이나 청년인 알렉스와 그의 할아버지인 알렉스가 함께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마을을 찾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런 기본적인 이야기 진행 과정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마을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의 역사를(그리고 조너선 집안의 역사를) 조너선이 쓰고 있는 소설을 통해서 들려주고 있고, 거기에 청년 알렉스가 조너선에게 보내는 소설을 통해서는 그들의 여정과 2차 세계대전에 있었던 침묵하고 숨기기만 했던 비극들을, 그리고 청년 알렉스가 조너선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는 나눠서 진행되는 이야기들에 대한 언급과 비평, 혹은 이야기 속에서 다뤄지지 않은 내용들에 대한 보완이 이뤄지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다른 이야기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개별적인 이야기들이 조금씩 다른 이야기에 영향을 주거나 서로 보완을 해주면서 이야기는 진행되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혀지게 된다.

 

어쨌든 모든 것이...’는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에 개입되면서 진행되기 보다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결국 하나의 전체로 완성되는 방식인데, 형식에 대한 고민이이라기 보다는 방법적인 측면에서 많은 고민이 이뤄진 느낌이 크고 그래서인지 (당시로서는) 첫 작품을 통해서 여러 방식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하고 노력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엄청나게...’를 통해서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조금은 까다로운(처음 접한다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많이 헤매게 된다) 이야기 진행 방식을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에 덜 어렵게 읽어나갈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그가 의도한 효과들을 최대한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조각나져 있고 무슨 의도인지 솔직하게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만들어내는 놀라움은 감탄하게 만들게 되면서도 굳이 이처럼 복잡하게 구성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스럽게 느껴진다.

 

엄청나게...’에서도 느꼈지만 분명 글쓰기만큼은 탁월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기는 하지만 뭔가 너무 영리하게 군다고 해야 할까? 감정적으로도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지만 너무 머리를 써서 이야기를 꾸며놓고 있어서 읽는 과정에서 피곤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게다가 마무리는 비극과 슬픔으로 가득해서 무척 무거운 기분으로 책을 내려놓게 된다.

 

젊은 작가이기 때문에 더욱 어둡고 무거운 결말로 향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다른 작품을 과연 읽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식으로 그가 성장할지 관심을 갖게 된다.

 

그나저나...

항상은 아니겠지만 자주 남아메리카 환상문학에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들은 존재하지 않는 지역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존재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쉽게 자신의 생각대로 구성시킬 수 있고 쌓아놓을 수 있었던 것인가? 그게 아니면 다른 의도 또한 있는 것인가?

 

 

 

참고 : 1. 역자의 글을 통해서 처녀작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접했다. 처녀작이라는 말을 여전히 쓰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2. 2차 세계대전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이고 두고두고 반복해서 기억해야만 하는 엄청난 비극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자행하는 비극에 대해서는 과연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런 의미에서 유대인들 또한 역사로부터 어떤 교훈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피해의식만 넘치는... 물론, 모든 유대인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하지만 그들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비극을 본다면 그들을 무슨 수로 옹호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2차 세계대전 중에 있었던 수많은 비극들은 유대인들의 비극으로 인해서 여전히 감춰지고 알려지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3. ‘모든 것이...’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원작보다 영화를 먼저 접하기는 했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나질 않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았었던 것 같다. 본지도 오래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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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지음 / 책벌레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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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유럽을 중심으로) 중세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생각나게 될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를 뒤늦게 읽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주변 사람들이 많이 추천을 해서 읽어볼 생각을 했었지만 어쩐지 손이 가지 않아서 미루게 되었는데, 너무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집중해서 읽지 못하기는 했지만 대충이나마 읽어보게 되었다.

 

요즘에는 책을 읽으면서 집중을 하면서 읽게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저자인 리오 휴버먼은 미국에서는 널리 알려진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하고, 그의 대표작인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전세계적으로도 자본주의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지금과 같은 체제-체계-구조로 이뤄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가장 명쾌하고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꽤 오래된 책이지만(1930년대 말에 출판되었다)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자본주의를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으로 꼽히는 것 같다.

 

자본주의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고 발전하게 되었는지에 관해서 분석해보려는 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리오 휴버먼 또한 좌파적-진보적 시각 속에서 자본주의의 시작과 발전과정을 살펴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에 관해서 부정적인 시선 속에서 자본주의를 바라보고 있다.

 

(유럽의) 봉건제에서 어떤 식으로 자본주의로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는 내용과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변화들을 두루 살펴보고 있는데, 이미 이런 내용들을 다른 책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고, 알고 있던 내용들을 좀 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순서 없이 알고 있던 내용들을 좀 더 정돈시켜 알도록 해주고 있기 때문에 좋았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고통 받고 핍박받은 이들에 관한 내용들과 가혹한 노동조건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힘겹게 만들었고, 분노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내용들, 투쟁과 억압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미 여러 번 접한 내용들이지만 여전히 함께 분노하게 만들고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수많은 모순들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만든다.

 

2차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직전에 발표된 내용이라서 그런지 조금은 허전함을 느끼게 만드는 끝맺음이었지만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즘에 대해서 무척 불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리오 휴버먼의 통찰력을 알 수 있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본주의가 그렇게 만만한 체제-체계도 아니고 세상이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가 바라보듯이 명쾌하고 명확하게 다뤄지기가 어려운 복잡함으로 가득하기는 하지만 저자의 단호한 입장을 받아들이며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 것인지를, 그리고 어떻게 지금과 같은 사회가 구성되었는지를 알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있어야지만 변화를 모색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의미 있는 내용인 것 같다.

 

역사적 흐름에 대해서나

경제학과 관련된 이론적 논의에 대해서나

많은 내용들을 쉽게 잘 간추려서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입문서로 부족함이 없는 내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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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의 남작 이탈로 칼비노 전집 3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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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책 중 하나로 항상 꼽게 되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저자인 이탈로 칼비노는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도시들말고는 읽어본 책이 없기 때문에 어떤 작가라고 말하기도 머뭇거려지고 어떤 작품세계를 갖고 있는 작가인지에 대해서도 말할 것이 궁색해지기만 했던 작가였다.

 

물론, 그렇게 이름으로만 알고 있는 작가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한두명으로 끝나겠나)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워낙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대해서 자주 감탄해왔었고, 그렇게 요란스럽게 칭송하는 책의 저자에 대해서 정작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인 것 같았다.

 

나에게 있어서 이탈로 칼비노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라는 위대한 책의 저자라고만 말하게 되었고, 그렇게만 알고 있는 작가였다. 그리고 그건 뭔가 좀 이상한 것 같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지 이탈로 칼비노의 다른 소설들에 대해서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얼마 전 중고서점에서 구하게 된 나무 위의 남작은 그렇게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던 이탈로 칼비노에 대한 관심을 조금은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탈로 칼비노의 우리의 선조들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인 나무 위의 남작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비해서는 (당연히) 덜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읽는 재미를 만들어내고 흥미로운 이야기 진행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대한 각별함 때문에 실망하며 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책이 잘 읽혀지지 않았는데, 건성으로 읽어가다가 점점 더 놀라움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경험하면서 감탄하며 책을 덮게 된 것 같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라는 시대적 배경으로 이탈로 칼비노는 (다분히) 감정적인 선택에 의해서 나무 위로 올라가 생활하게 된 코지모를 주인공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이야기들과 함께 시대적 배경과 긴밀하게 연관을 맺게 되는 이야기들, 그리고 어쩐지 숨겨진 의미가 있어 보이는 몇몇 상징적인 설정들과 의미심장한 내용들은 단순히 우화로 읽혀지기 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싶어지게 된다.

 

옮긴이의 상세한 해설 덕분에 그런 적극성은 더욱 부채질해졌지만 아쉽게도 옮긴이처럼 감춰진 의미들을 찾아내진 못해서 그저 우화를 통해서 그 당시의 시대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하고 지금 시대를 곁눈질하게 된다는 말 정도만 꺼내게 될 것 같다.

 

여러 사람들이 거듭해서 지적되는 상상력으로 채워진 설정들과 이야기들이 일정하게 역사적 사실들과 긴밀한 관련을 맺어가면서, 하나의 우화로 다뤄질 수 있는 내용들이면서 여러 생각들을 하도록 만드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게 읽혀지게 되는 것 같다.

 

주인공인 코지모의 동생이 형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꺼내면서 진행되는 나무 위의 남작은 어째서 코지모가 나무 위로 올라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나무 위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가게 되었는지를, 처음에는 감정에 휩쓸린 선택이었을 뿐이고 고집스럽게 그 선택을 고수하던 코지모였지만 그 고집스러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세상에 대한 관조와 이해를 하려고 하게 되었는지를, 여러 경험을 통해서 어떻게 세상으로부터 거리감을 갖으면서도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는지를 빼어나게 담아내고 있다.

 

그 인상 깊은 순간들을 어렵지 않게 설득시키고 재미로 가득하게 읽혀지도록 만드는 재주가 놀랍기만 할 뿐이고, 거기에 자연스럽게 숨겨진 의미들을 깨닫게 만드는 능력 또한 감탄하게만 만들 뿐이다.

 

처음에는 별난 설정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나무 위로의 올라섬이 어떻게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야기의 이어짐을 보여주는지 감탄하며 읽게 되었는데, 타고난 이야기꾼인 이탈로 칼비노가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에 여러 의미들을 겹쳐놓는 것에 성공함으로써 더욱 위대한 작가로 평가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쉽게 읽혀지지만 세상에 대한 통찰력은 비범함으로 가득하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 끼어들기도 하고, 하나의 우화이면서 역사적 순간을 패러디-모방하기도 하고 재평가하기도 하면서 이탈로 칼비노는 다양한 방식으로 읽혀질 수 있도록 그리고 여러 의미들을 생각해보도록 알게 모르게 의도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설정과 그 설정을 갖고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훌륭함 덕분에 무덤덤하게 읽혀지면서도 읽는 재미를 조금씩 느꼈을 뿐이었는데, 점점 더 이야기가 탄력을 받고 빠른 속도로 이끌어지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순간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단지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저자로 기억하기에는 그의 글재주는 더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 있는 것 같다.

 

조금씩이라도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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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Watchmen 1 시공그래픽노블
Alan Moore 지음,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참고 : http://acomics.co.kr/archives/17835#.U8rq4UDSxNY

참고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78144072

 

 

지금까지 발표된 수많은 (걸작) 그래픽 소설들 중에서 단연 최고 중의 최고로 손꼽히는 작품이고, 단순히 그래픽 소설들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추켜세워질 뿐만 아니라 그래픽 소설을 넘어서 문학작품으로서 평가되기도 하는(하지만 앨런 무어는 그런 식으로 평가된다면 무척 기분이 상할지도 모르겠다. 앨런 무어는 오직 그래픽 소설이라는 방법론을 통해서만 ‘왓치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퉁명스럽게 말할 것 같다) 앨런 무어의 ‘왓치맨’은 그 명성으로 인해서 너무 큰 기대를 갖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이 될 것 같다.

 

그래픽 소설의 영역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는 그래픽 소설에 대해서 많은 이해가 없음에도 충분히 공감되는 평가일 것 같고, 그림과 글로 구성된 작품을 넘어서 좀 더 유기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작품이기도 할 것 같다.

 

그래픽 소설에 대해서 좀 더 이해가 깊은 사람들이 더 호들갑스럽고 자세하게 설명해줄 것 같으니 이 위대한 작품에 대한 장황한 칭송은 이쯤에서 그쳐도 될 것 같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왓치맨’을 원작을 통해서 접하기 보다는 영화를 통해서 거꾸로 접하는 경우게 된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느린 호흡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느슨한 진행을 이유로 들어) 영화에 비해서 야박한 평가를 내릴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반대로 세세한 내용들까지 다뤄지고 있고,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여러 방식으로 작품을 이해해볼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원작의 탁월함을 반복해서 얘기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진행의 순서상으로는 영화와 조금은 다른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영화나 원작이나 크게 차이가 없으며, 영화가 원작을 좀 더 압축시켜서 진행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어렵거나 헷갈리게 만들면서 읽혀지진 않고 있다.

 

코미디언의 죽음과 그 죽음에 대해서 의문스러움을 느낀 로어셰크가 코미디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뤄내고 있는 ‘왓치맨’은 영화에서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대해서 원작에 비해서는 덜 상세하게 다뤄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원작을 보게 된다면 좀 더 등장인물들의 관점들과 세상에 대한 시선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로어셰크의 경우 일기를 통한 독백으로 사회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혐오를 계속해서 강조하면서 어째서 그렇게 뒤틀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깊숙이 탐구하고 있는데, 나중에 다뤄지는 정신과의사와의 면담이 더해지면서 코미디언의 냉소적인 입장과 닮은 것 같으면서도 무척 다른 입장을, 외골수 적이면서 상처투성이의 내면을 어떻게 삐뚤어진 방식으로 사회로 향하도록 했는지를 알도록 만들어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을 잠시 바라보도록 만들고 있다.

 

이처럼 ‘왓치맨’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사람들에 따라서는 견디기 어려운 작품으로 생각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진행 도중 별도의 내용들(회고록의 발췌, 기사, 인터뷰, 보고서 등등)을 통해서 좀 더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해주고 있고, 작품이 진행되는 시점 이전의 과거에 대해서 그리고 ‘왓치맨’의 세계관을 좀 더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내용들도 있어서(그게 아니면 장황한 설명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생략하기 위한 경우도 있다) 무척 복잡한 성격의 작품으로 이해되도록 유도하고 있기도 하다.

 

여러 방식으로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다지 친절한 작품은 아닌 것 같다.

 

코미디언의 죽음으로 인해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그와의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며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되짚고 있고, 그런 거슬러 올라오는 과정을 통해서 등장인물들의 개성과 성격 그리고 특징들을 강조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고 확장시키고 있기도 한 것 같다.

 

영화를 통해서는 등장인물들의 감수성과 내면에 대해서 조금은 단편적으로만 이해될 수 있었던 내용들이 그래픽 소설을 통해서는 좀 더 공감하게 만들고 있고, 그들의 고독과 우울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게 되기도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앨런 무어는 그래픽 소설만이 그가 원하는 수준만큼 깊이 있게 등장인물들의 감정을(또한 이야기를 통한 자신의 생각들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1권의 후반부에서 자세하게 다뤄지는 닥터 맨해튼이나 로어셰크에 관한 내용들을 생각한다면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닥터 맨해튼의 고독이나 

로어셰크의 어둠이나 

 

오직 그래픽 소설을 통해서만 더 그들의 내면으로 파고들 수 있을 것 같다.

 

 

참고 : ‘왓치맨’의 다른 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검은 수송선 이야기는 빼버렸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좀 더 암울함과 비극성을 강조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만족스럽게 ‘왓치맨’의 이야기와 결합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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