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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 이펙트 -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필립 짐바르도 지음, 이충호.임지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700쪽 가량의 두툼한 부피와 조금은 유치한 느낌이 감도는 제목 때문에 어쩐지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책이었고, 내용도 조잡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서기는 했지만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와 복종에 관한 실험과 함께 가장 악명 높은 실험 중 하나인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진행했었던 저자가 처음으로 실험에 대한 모든 내용을 공개하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저자 나름대로의 이해를 들려준다는 홍보 문구에 호기심이 들어 구입을 하게 되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두근거리는 마음에 구입은 했지만 곧장 책장으로 향하게 되었고 손이 가지는 않았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루시퍼 이펙트’를 읽도록 만들게 된 이유는 최근 불거지게-폭로 된 군대 내에서의 온갖 폭력 및 가혹행위에 관한 소름끼치는 소식들을 연이어 접하게 되면서 항상 갖고 있던 인간의 본성과 심리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커지게 되면서, 게다가 (정신분석이 아닌) 사회심리학 적인 접근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좀 더 총체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 저자의 방식이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그동안 몰랐던 내용부터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얘기되었던-악명을 떨쳤던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에 대한 모든 내용이 ‘루시퍼 이펙트’를 통해서 최초로 공개되었다는 것과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들은 일부분에 불과했다는 점이었다.
워낙 널리 알려진 실험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의 접근과 평가-검토가 이뤄졌던 실험이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그 이유들에 대해서 저자는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공개하지 않았던 내용들을 공개함과 함께 그렇게 전면적으로 공개하게 된 이유로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으로 이후 나타났던 여러 문제들(인권문제, 포로학대, 고문 등등),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알려지게 된 여러 문제들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 사건을 통해서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과 얼마나 비슷한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는지를, 더욱 잔혹한 방식으로 벌어진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가 얼마나 사회시스템이 갖고 있고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응축하고 있는지를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과 정교하게 관련지으면서 논의를 이끌어가고 있어서 무척 흥미롭게 읽혀지게 되었다.
어렵지 않게 술술 읽어나갈 수 있도록 쉽고 상세하게 저자는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알려주고 있고,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이 워낙 호기심을 끌게 만드는 실험이었기 때문인지 더욱 집중을 해서 읽게 만들고 있다.
우선 저자의 기본적인 입장을 간략하게 설명한다면, 저자는 유대인 학살이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와 같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극단적인 폭력성과 파괴적인 행동이 그런 행동을 보인 행위자들의 개인적인 기질이나 성격적인 부분보다는 행위자들에게 주어진 상황적 힘과 그런 상황을 만들어내게 되는 사회시스템-체계로 인한 요인이 더 크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자신의 생각을 다양한 사례와 실험을 토대로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가 직접 실험을 주관했던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에 대해서 설명해주며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고 저지를 수 있게 만드는 이유들에 대해서 무척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저자의 사회심리학을 밑바탕으로 한 접근은 여러모로 흥미로우며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단순히 실험을 통한 결과들만이 아닌 문학, 영화 및 기타 다양한 예들을 통해서 설명을 해주고 있고 설득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가 악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기질-성격으로 인한 것인지 상황-시스템 때문인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잔혹한 사례들과 그런 수많은 예들 속에서, 실제로 엄청난 잔인함을 보여주었던-스스럼없이 자행했던 이들이 얼마나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이었는지를 알려주며 많은 사람들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던 여러 편견들을(개인적인 문제나 기질 혹은 정신적인 특이성으로 인해서 저지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뒤집으며 그들처럼 우리들 또한 그런 상황의 힘과 사회시스템에 제압당했을 때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를 살펴보고 있고,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고 있다.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분석 그리고 여러 문제점들에 대한 객관적이면서도 솔직하게 회고하고 있는 내용을 통해서는 여전히 충격적이고 인상적인 실험이었던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이 갖고 있는 중요성과 그 실험을 통해서 단순히 실험에 참가한 이들만이 아니라 실험을 전체적으로 관장하는 이들까지 자신들이 만들어낸 상황이지만 그 상황 자체의 힘으로 인해서 휩쓸려지는 놀라운 순간을 자세하게 살펴보고 있다.
여전히 충격적이고 놀랍기만 한 내용들을 접할 수 있었지만 저자는 단순히 실험의 충격성에 대해서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실험과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내용의 결과들과 결론을 내놓고 있고 여러 사례들을 재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실험의 잘못된 점들과 문제점들을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그로 인해서 더욱 인간의 본성에 관한 흥미로운 논의들을 이끌어냈다는 점 때문에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또한, 최초의 계획과는 달리 점점 더 상황이 만들어내는 힘으로 인해서 예측을 넘어서는 여러 상황-사건들과 그걸 사회시스템과 긴밀하게 연관해서 분석해내려는 시도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을 통해서 얻게 된 고민과 교훈 그리고 반성, 다양한 방식의 관심과 변화된 방식으로의 실험-연구를 통해서 더욱 의미가 깊어지게 되고, 하나의 실험이 여러 논의들로 확장되어가는 과정을 소상히 알려주고 그런 연구들 중에서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충격을 안겨주었던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과 권위에 관한 실험을 함께 관련지어 논의함으로써 더욱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으며,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도 연관시켜 단순히 실험을 통한 결과와 결론만이 아닌 역사적 사례들까지 짜임새 있게 연결시키며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인가? 라는 물음을 갖게 해주고 있다.
악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과 함께 상황과 사회시스템-체계의 거대한 힘에 대한 계속되는 강조 이후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을 더욱 흉포한 방식으로 극단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를 세밀하고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저자인 필립 짐바르도의 분석의 특별함-탁월함은 단순히 실험을 통한 결과-결론들을 토대로 다양한 사례와 논의로 확장되도록 의도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과 물음을 내놓고 있다는 점일 것 같은데,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에 관한 내용 또한 단순히 그 사건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만이 아닌 그런 깊은 혼란을 안겨주는 사건이 어떤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벌어지게 되었는지를 폭넓은 관점으로 파악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사회심리학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시스템 자체에 대한 분석까지 시도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더욱 의미 깊고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논의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어떻게 악이 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되도록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고, 어떤 식으로 맞서 싸워나갈 수 있을지를 그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는데, 악에 대한 분석에 비해서는 다소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어떤 식으로 이겨낼 수 있을지를 최대한 정교하게 다듬으려고 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기 위해서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주고 있는, 그리고 상황과 사회시스템이 어떻게 우리들을 휘어잡고 제압하려고 하는지를, 알아채지도 못하고 그 거대한 힘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들을 살펴보며 인간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게 되기도 하지만 그런 사실 자체에 대해서 눈을 돌리지 않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바라봄으로써 좀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고, 조금씩이라도 바꿔나가고 지켜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인상적인 내용이었고, 한동안은 자주 생각나게 될 내용이었다.
참고 : 저자인 필립 짐바르도의 언급에 따르면 필립 짐바르도와 스탠리 밀그램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둘 다 악명 높은 실험을 통해서 명성을 얻었다는 점 때문에 여러모로 그들의 성장과정은 어땠었는지 궁금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