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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밝혀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엮음 / 민음사 / 2009년 3월
평점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책)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00896457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영화)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58338657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36146675
미국 문학계에서는 신동이라는 표현을 쓰게 될 정도로 총애를 받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국내에서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통해서 많이 알려졌는데, 개인적으로도 그 작품을 통해서 처음 접했었고, 엄청나게 지루하고 믿을 수 없게 길게 읽혀지는 작품이었지만(어쩔 수 없다. 정말 읽는 것이 힘들었었다. 단, 후반부의 급격함은 놀라웠다) 지루하게 읽혀지다가 후반부의 급격하게 굴러가는 이야기 진행을 통해서는 무척이나 놀라움을 느꼈기 때문에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작가이고 작품이었다.
어떤 내용인지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읽었기 때문에 난해하게 읽혀졌다고 볼 수 있는데, 어딘가에서 (아마도 신문을 통해서) 그 작품에 대한 극찬을 접한 다음 별다른 생각 없이 읽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난해한 기분으로 읽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인지 좋은 작품인 것을 알면서도 좋지 않은 기억이 더 큰 것 같고.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글은 기본적으로는 어떤 내용으로 이야기 진행이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정보를 최소한으로 내놓고 있어서 읽는 사람이 어떤 내용인지 알기가 쉽지 않도록 진행시키다가 조각나지고 흩어져 있던 내용들이 갑작스럽게 하나로 모아지면서 놀라움을 느끼도록 의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굳이 그렇게 진행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인상적인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약간의 깜짝쇼처럼(혹은 반전을 극대화해서) 더욱 강렬함을 느끼도록 의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작품의 진행방식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아내인(그리고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함께 미국 문단이 주목하는 젊은 작가 중 하나인)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런 방식의 진행이 여러 고민을 통해서 내려진 결론인 것인지 그게 아니면 좀 더 연출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꿍꿍이인지 궁금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다른 미국의 젊은 작가도 그런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 것인지도 알고 싶어진다.
어쩌면 서로 작품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내린 결론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엄청나게...’는(‘사랑의 역사’도 마찬가지지만) 정돈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되던 이야기들이 마지막에 가서야 한꺼번에 정리되면서 혼란스럽기만 했던 이야기들이 사실은 무척 치밀하게 구성된 이야기 진행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도록 만들고 있고, 그걸 깨닫게 되면서 다시금 읽었던 내용들을 살펴보게 만드는... 그리고 그걸 살펴보기가 조금은 부담스러워 대충 훑어보게 만들며 흥미로운 시도이고 작가-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런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첫 작품인 ‘모든 것이 밝혀졌다’ 또한 ‘엄청나게...’와 비슷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좀 더 이야기를 분할시켜서 진행시키고 있고, ‘엄청나게...’처럼 시각적인 방식으로도 접근하려는 시도를 무척 조심스럽게(‘엄청나게...’는 상대적으로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하고 있다.
‘엄청나게...’가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9/11 테러를 중요한 사건으로 다뤄내고 있기 때문에 미국인-뉴욕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중심에 놓고 있는 작품이라면, ‘모든 것이...’는 유대인이라는 정체성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사건을 중심에 놓고 진행되고 있는 작품이고, 좀 더 암울하고 그렇기 때문에 비극성에 대한 강조와 함께 반대로 비극을 조금은 비스듬히 보려는 듯 (‘백년간의 고독’과 같은) 남아메리카의 환상문학(혹은 비사실적인 방식의 이야기 진행)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우선, 어쩌면 단순한 이야기로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인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엄청나게...’와 마찬가지로 이야기 진행을 다양하게 나눠놓고 여러 각도에서 진행시켜 혼란스러움을 혹은 제대로 짜 맞추기가 쉽지 않게 만들어놓고 있는데, 유대인 조너선이 2차 세계대전 중 자신의 할아버지를 구해준 여성을 찾기 위해서 우크라이나에 찾아오고, 그런 조너선을 안내하게 된 우크라이나 청년인 알렉스와 그의 할아버지인 알렉스가 함께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마을을 찾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런 기본적인 이야기 진행 과정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마을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의 역사를(그리고 조너선 집안의 역사를) 조너선이 쓰고 있는 소설을 통해서 들려주고 있고, 거기에 청년 알렉스가 조너선에게 보내는 소설을 통해서는 그들의 여정과 2차 세계대전에 있었던 침묵하고 숨기기만 했던 비극들을, 그리고 청년 알렉스가 조너선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는 나눠서 진행되는 이야기들에 대한 언급과 비평, 혹은 이야기 속에서 다뤄지지 않은 내용들에 대한 보완이 이뤄지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다른 이야기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개별적인 이야기들이 조금씩 다른 이야기에 영향을 주거나 서로 보완을 해주면서 이야기는 진행되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혀지게 된다.
어쨌든 ‘모든 것이...’는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에 개입되면서 진행되기 보다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결국 하나의 전체로 완성되는 방식인데, 형식에 대한 고민이이라기 보다는 방법적인 측면에서 많은 고민이 이뤄진 느낌이 크고 그래서인지 (당시로서는) 첫 작품을 통해서 여러 방식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하고 노력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엄청나게...’를 통해서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조금은 까다로운(처음 접한다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많이 헤매게 된다) 이야기 진행 방식을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에 덜 어렵게 읽어나갈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그가 의도한 효과들을 최대한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조각나져 있고 무슨 의도인지 솔직하게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만들어내는 놀라움은 감탄하게 만들게 되면서도 굳이 이처럼 복잡하게 구성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스럽게 느껴진다.
‘엄청나게...’에서도 느꼈지만 분명 글쓰기만큼은 탁월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기는 하지만 뭔가 너무 영리하게 군다고 해야 할까? 감정적으로도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지만 너무 머리를 써서 이야기를 꾸며놓고 있어서 읽는 과정에서 피곤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게다가 마무리는 비극과 슬픔으로 가득해서 무척 무거운 기분으로 책을 내려놓게 된다.
젊은 작가이기 때문에 더욱 어둡고 무거운 결말로 향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다른 작품을 과연 읽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식으로 그가 성장할지 관심을 갖게 된다.
그나저나...
항상은 아니겠지만 자주 남아메리카 환상문학에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들은 존재하지 않는 지역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존재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쉽게 자신의 생각대로 구성시킬 수 있고 쌓아놓을 수 있었던 것인가? 그게 아니면 다른 의도 또한 있는 것인가?
참고 : 1. 역자의 글을 통해서 처녀작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접했다. 처녀작이라는 말을 여전히 쓰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2. 2차 세계대전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이고 두고두고 반복해서 기억해야만 하는 엄청난 비극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자행하는 비극에 대해서는 과연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런 의미에서 유대인들 또한 역사로부터 어떤 교훈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피해의식만 넘치는... 물론, 모든 유대인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하지만 그들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비극을 본다면 그들을 무슨 수로 옹호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2차 세계대전 중에 있었던 수많은 비극들은 유대인들의 비극으로 인해서 여전히 감춰지고 알려지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3. ‘모든 것이...’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원작보다 영화를 먼저 접하기는 했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나질 않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았었던 것 같다. 본지도 오래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