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한 찬양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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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책을 읽을 시간이 많이 부족하고,

읽을 시간이 생겼다고 해도 집중을 하지 못하기가 쉽지 않아서 되도록 짧은 분량의 책을 찾게 되고, 간단하게 읽어낼 수 있는 책들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았다고 해도 그렇게 찾은 책이 쉽게 읽고 치울 수 있는 책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복잡한 기분 속에서 제목이 눈길을 끌어서 집게 된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철학가로서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이름을 알린 버트런드 러셀의 저작이며, 몇몇 주제에 대해서는 조금은 동의가 어렵기는 하지만 다양한 주제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느긋하면서도 진지하게 자신의 고민과 결론들을 전달하려고 하고 있다.

에세이라는 점 때문에 논리적인 정교함 보다는 부담스럽지 않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는데 집중하고 있는 경향을 느끼게 되는데, 조금은 쉽게 전달하려고만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 고민이 쉽게 결론을 낼 수 없는 것들이라 러셀의 결론에 대해서 공감하게 되기도 하고 반박을 하고 싶게 되기도 하다.

게으름을 갖으라고 말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가를 보낼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말해야 좀 더 적절한 의미전달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 대한 에세이를 시작으로 지식에 대해서, 건축을 통한 생활환경과 사회적 변화를 모색하기도 하고, 물신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오해들을 지적하기도 하고 있으며, 냉소주의라는 시대정신에 대해서 준엄한 비판을 하고 있기도 하다.

버트런드 러셀을 개인적인 경험과 일상들에 대해서 감상에 빠져 말하기 보다는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이론적인 정교함을 보이지 않으며 논의하면서 함께 고민해볼 수 있도록 대화를 나누듯이 혹은 조금은 쉽게 접할 수 있는 교양 과목 수업을 하듯이 시대에 대한 비판과 문제의식을 제시하려고 하고 있고, 버트런드 러셀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시대적 / 사회적 문제점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논의를 정리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자본주의 / 근대 사회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획일성이 강해지고 있기만 한 사회구조와 인간과 자연의 문제, 교육과 권위, 이성과 타인에 대한 존중, 서구문명 등 조금은 추상적인 주제를 갖고 논의하기도 하고, 히틀러와 나치-파시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와 같은 당대의 가장 논쟁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고 있기도 하다.

혜성과 영혼에 대해서 논의하는 등의 조금은 개인적인 논의들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앞서 말했듯이 시대에 대한 그리고 사회에 대한 다양한 주제들을 갖고 자신의 생각들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는데, 그의 논의들 대부분이 여전히 논쟁적인 부분도 있고 조금은 공감하기 어렵거나 지나치게 단순화 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게 된다.

이런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 본다면 많은 이들이 좀 더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각들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다는 생각에 날선 비판을 하도록 만들지는 않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그런 방식의 논의가 적절한 방식인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부정적으로 단호하게 결론짓기에는 버트런드 러셀이 함께 고민을 하고자 하는 다양한 주제들이 무척 의미 있는 주제들이라는 점 때문에 조금은 판단을 미루려고만 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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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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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은 특별히 선호하지도 않고, 즐겨 읽지도 않기 때문에 당황스러울 정도로 호들갑스럽게 호의를 보이는 슬라보예 지젝의 평가에 대해서는 별다른 동의를 하지 않게 되기는 하고, 반대로 어째서 그런 평가를 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다.

또한, 그 외의 여러 사회 / 문화적인 평가와 해석을 하려는 학자들이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어째서 그런 관심을 보이는 것인지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에 대해서 높은 평가를 하는 것에 쉽게 동의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탁월한 점을 알면서도 동의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그런 평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 누구도 명확하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 중 ‘오만과 편견’과 ‘맨스필드 파크’ 정도를 읽기는 했지만, 특별히 어떤 특징을 찾아가며 읽거나, 시대적인 풍경을 혹은 각각의 작품들의 차이들을 찾아내며 읽지 못했기 / 않았기 때문에 그저 그 시대의 연예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무신경하게 읽어냈었을 뿐이었다.

당연히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인 ‘설득’ 또한 그런 기분으로 읽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관심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점은 여성의 심리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영국의) 도시에서 조금은 벗어난 교외 지역의 배경을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항상 서로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착각을 함으로써 그들의 관계와 그리고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히게 되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서로의 / 서로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 진실을 알게 되면서 행복한 결론을 찾아가게 된다는 이야기 구성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 정도만을 하게 된다.

물론, 여러 학자들이 논의하듯이 작품에서 다뤄지는 배경과 등장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통해서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근대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런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그런 시대적 환경 속에서의 개개인들의 삶의 태도와 모습들을 알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하나의 연예 소설이기 보다는 일종의 시대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는 진정한 걸작들이라는 평가에 대해서 부정할 수 없는 평가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읽혀지지는 않게 되는 것 같다.

그 당시의 급격한 계급 / 계층의 이동,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들 / 낙오하는 지배계급의 모습들,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이해와 시대의 모습들,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조금은 근심을 담아내며 내리는 끝맺음까지.

그냥 연예 소설로서만 평가하기에는, 그리고 그렇게 읽어내기에는 조금은 색다른 모습들이 그리고 시대의 모습들이 무척 인상적으로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저 남녀 사이의 사랑을 그리고 흔하고 흔한 오해와 화해를 다루고 있기만 하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운 시각을 갖게 되기는 하지만 그렇게 읽혀지게 된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마도, 제인 오스틴의 작품의 장점은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더욱 각광을 받게 되고 관심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그처럼 읽는 이의 의도에 따라서 작품 자체를 무척 다양한 방식으로서 논의를 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렇게 새로운 생각과 시각을, 다른 관점에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갖고 있는 특징과 의미를 찾도록 끊임없이 무언가를 의문스럽게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는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에 대한 지지를 떠나서... 그런 평가가 충분히 가능한 것 같다는 점에 대한 동의일 것이다.

참고 :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읽어냈기 때문에... 라는 핑계를 드러내고 싶기도 하고, 실제로도 그랬었기 때문에... 라는 변명을 하고 싶기는 하지만 그런 좋지 않은 일들의 겹침을 떠나서 읽는 동안 내용을 너무 자주 끊어서 읽었기 때문에 ‘설득’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가능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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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한길그레이트북스 22
마루야마 마사오 지음, 김석근 옮김 / 한길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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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무척 좋지 않은 시기에 읽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읽지 못하고 그저 대충 훑어보는 수준에 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마라야마 마사오의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은 그처럼 대충 읽어버리기에는 무척 중요한 논의들이 많다는 점에서 좋지 않은 시기에 읽게 된 것이 원망스럽기만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읽기 좋은 시기라는 것도 딱히 없을뿐더러, 그런 시기에 읽었다고 해도 분명 이해되지 못하는 점들이 많아서 온갖 투정을 부렸을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이런 개인적인 (별 것 아닌) 악조건 속에서 읽게 되었다는 점으로 인해서 마루야마 마사오가 당시 얼마나 시대적 / 상황적 악조건 속에서 이런 논의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조금은 섣부른 이해가 가능하게 되기도 했던 것 같다.

마루야마 마사오에 대해서는 특별히 들어본 적이 없었고,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지식으로 인해서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을 정도로 전혀 아는 바가 없었는데, 이처럼 사전 지식이 없이 그의 논의를 접하게 된다면 조금은 어떤 연관 관계 속에서 논의를 하게 되었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수 있었는데, 굉장히 상세하고 장황하다고 말할 정도로 길고 긴 추기와 보주를 통해서 어떤 상황으로 인해서 그리고 어떤 목적과 의도 속에서 자신이 그런 논의를 했는지 무척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있어서 각각의 글들의 배경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읽어나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고 있다.

하나의 일관된 주제 속에서 글들이 정리된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흩어져 있던 글들을 몇 가지의 주제 속에서 엮어내고 있는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은 크게 세 가지 주제 속에서 글들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2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하고 있는 일본의 파시즘에 대한 여러 논의들인데, 국가주의의 논리 구조에 대해서, 일본 파시즘 운동의 역사적 과정, 군국주의자들의 정신구조와 형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논의, 우익운동과 현실주의에 대한 논의까지 다양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일본의 파시즘에 대한 여러 각도로의 해석과 비판 그리고 논의라는 점에서는 일정한 일관성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독일의 나치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비교하며 일본의 파시즘을 분석하고 있고, 그밖에도 여러 학자들의 논의들과 미국과 소련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검토하면서 일본의 파시즘에 대해서 그리고 그 파시즘 사회의 역사적 과정과 실제 주도 세력들의 정신구조와 형태에 대해서 매우 예리하고 예민하게 분석을 하고 있다. 때로는 무척 조심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세하고 정교하게 자신의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난해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기는 하지만 그만큼 철저할 정도로 일본의 파시즘을 해부하겠다는 목적을 두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어떤 식으로든 최대한 명확한 분석을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두 번째로는 정치사상과 이론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는 내용인데, 마루야마 마사오에게 큰 영향을 준 학자인 래스키에 대한 상세한 논의와 파시즘이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 발생되고 사람들을 현혹시키게 되는지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고, 국가주의, 군국주의, 파시즘에 대한 각각의 차이점과 특징과 특성들에 대해서 검토를 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좀 더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그리고 철학적인 검토를 하고 있는데, 정치와 정치학에 대해서, 권력과 도덕에 대한 역사적 변화, 지배와 복종 그리고 저항의 문제, 실천과 저항 그리고 입장과 태도의 문제까지 매우 다양하고 쉽게 다룰 수 없는 문제와 논의들을 때로는 간략하게 그리고 기본적인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제시하며 논의를 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이 구체적인 논의들에서 추상적인 논의들로 진행되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마루야마 마사오는 단순히 그런 방향이라고 볼 수 없도록 지속적으로 자신이 그리고 일본이 경험한 파시즘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가 논의하고 있는 내용들이 그저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논의가 아닌 무척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논의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분량의 글들로 이뤄져 있기는 하지만 무척 밀도 있는 논의들이 많아서 읽는데 까다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파시즘을 실제로 경험하였기 때문에 좀 더 예민하고 정교하게 검토하고 있으며, 그 논의들 속에서 끊임없이 실천의 문제를 그리고 입장과 태도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무척 고민스럽게 자신의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마루야마 마사오의 고민들로 인해서 쉽게 파악할 수 없고, 정리할 수 없는 논의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도록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았다.

일본 우익운동이 보여준 여러 모습들이

지배와 복종, 권력에 대한 논의들이

태도와 실천 그리고 현실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들이

지금 한국에서 여전히 중요한 논의들이라고 생각되고,

그가 다루고 있는 태도와 현실주의에 대한 시각에서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반성하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 속에서 읽게 되었고, 읽는 동안 많은 내용들을 이해하지는 못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물음과 대답 그리고 반성을 하게 되도록 만들고 있다.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다음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근심어린 고민들을 더 이해해가며 읽어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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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이산의 책 9
가라타니 고진 지음, 김경원 옮김 / 이산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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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크리틱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18774250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만이 아니라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그리고 사상가로서 대접을 받고 있는데, 그렇게 그의 영향력이 커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저서 중 하나인 ‘트랜스크리틱’은 개인적으로도 무척 인상적인 저서였고, 그의 저서 중 처음으로 접한 저서이기도 했다.

발표 당시가 아닌 지금 생각해 본다면, 기존에 갖고 있었던 생각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는 논의들을 많이 제공했던 ‘트랜스크리틱’에 대한 일종의 서장과 같은 혹은 기본적인 개념도나 구상과도 같은 느낌이 드는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은 이미 발표한지 꽤 오래되기는 했지만(1978년) 가라타니 고진의 논의의 시작과 같은 저서일 것이고, 앞서 말했듯이 뒤돌아 생각한다면 ‘트랜스크리틱’의 논의가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을 했는지를 알 수 있는 솔직한 고백처럼 그리고 소개서처럼 읽혀질 것 같다.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에서 그리고 세계적으로 마르크스에 대한 논의가 점점 더 적어지고 있던 그리고 마르크스에 대한 논의에 대해 더 이상의 가능성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해지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서 마르크스를 논의하기 시작했고, 마르크스의 논의가 갖고 있는 독특성과 그로 인한 여러 오해들에 대해서 다양한 학문과 사상가와 연구자들의 논의들을 함께 검토하며 자신의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의 논의는 다른 마르크스에 대한 논의들에 비해서 비교적 마르크스에 대한 논의에서 많이 거론되지 않는 마르크스의 저서들도 언급하며 최대한 종합적인 방식으로 마르크스를 검토하려고 하고 있고, 기존의 논의들에 비해서는 조금은 다른 관점과 시각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무척 독특한 해석을 그리고 제안과 논의를 하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마르크스의 박사 논문(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부터 논의를 시작하며 마르크스는 근본적인 전복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미세한 차이’에 대해서 논의를 했었다고 강조하며 그의 논의가 갖고 있는 그 미세함에 대해서 그리고 독서가 / 해독가로서의 마르크스를 논의하고 있고, 우리가 어떻게 마르크스를 오해하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며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이후 ‘트랜스크리틱’에서 좀 더 본격적인 / 구체적인 논의를 하는 이동과 장소, 차이나 외부 혹은 바깥과 같은 개념으로서 설명하는 여러 생각들과 해석들에 대해서 아직은 덜 다듬어진 상태로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은 무척 간단하게 이해를 해도 가능할 것 같은 마르크스의 논의들을 상당히 상세하고 복잡하게 파고들고 있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마르크스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그리고 여러 마르크스에 대한 논의들을 접했던 사람들도 익숙하지 않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기 때문에 조금은 헷갈림을 느끼며 가라타니 고진의 논의를 접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은 자신만의 마르크스의 논의를 접근하기 위해서 소쉬르의 언어학과 정신분석, 여러 고전 철학자들과 현대 철학자들의 논의들을 비교하며 논의를 진행하고 있고, 자신의 생각들을 대략적으로 정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기는 하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논의들을 많이 제시하며 어떻게 마르크스를 폐쇄적인 이해가 아닌 가능성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마르크스에 대한 논의 중 가장 긍정적인 시각으로서 마르크스를 논의하고 있는 저작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은, 말 그대로 마르크스가 갖고 있던 시각과 해석 그리고 읽음을 통해서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이해하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며 그런 방식과 의미로서 마르크스가 보여주었던 탁월함과 통찰력을 다시금 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로서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을 읽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의 짧은 분량의 논의들은 일본의 학자들과 문학가들에 대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나쓰메 소세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처음 접하는 인물들이라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앞선 마르크스에 대한 논의와 느슨하게 관련되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는 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은 논의 자체는 비슷한 관점을 찾을 수 없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도르노 /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과 구성에서는 유사한 느낌도 들게 되는 것 같다.

둘 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기도 하다.

‘트랜스크리틱’이 좀 더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상세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명확성과 상세함을 보이기 전, 그런 인식의 전환이 틀을 잡기 전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마르크스를 논의하고 있는 가라타니 고진의 논의는 어떠한 가능성을 그리고 도약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확연함은 덜하지만 더 많은 열린 논의들이 가능할 수 있기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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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로맨스 희곡 전집 - 희곡 대산세계문학총서 77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상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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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의 공작 페리클리스

겨울 이야기

심벌린

폭풍 / 템페스트

두 귀족 사촌 형제

 

 

 

 

셰익스피어를 무척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흔히 말하는 4대 비극이나 기타 몇몇 작품들만 읽었을 뿐이라 셰익스피어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크게 알고 있는 것은 없었다. 솔직히 그가 몇 편의 작품을 남겼는지도 그의 대표작들이 어떤 작품들이 있었는지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이 그저 그의 걸작들을 통해서 그의 작품들에 큰 놀라움과 감동을 얻었을 뿐이다.

 

우연하게 구한 셰익스피어의 로맨스 희곡 전집은 그의 걸작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덜 알려진(그나마 ‘폭풍 / 템페스트’ 정도가 많이 알려졌다)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고, 그가 작품 활동 후기에 공개한 작품들로 이뤄져 있다.

 

로맨스 희곡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흔히들 생각하는 남녀 사이의 달콤한 사랑이라는 로맨스가 아닌 여러 복잡한 감정들과 사건들을 하나의 작품 속에 담아내면서 행복한 마무리를 짓는다는 의미에서의 로맨스 희곡이라고 분류되고 있으며, 이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으로 대표되는 근대 소설과 대조되는 당시의 문학 분위기와 연관해서 그리고 셰익스피어 개인의 작품 활동 과정과 관련되어 여러 생각들을 해볼 수 있도록 해주고 있는 옮긴이의 해설을 우선 읽어본 다음에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는다면 좀 더 흥미로운 읽기가 가능할 것 같다.

 

위에 설명한 로맨스 희곡의 이야기 구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셰익스피어의 후기작들인 로맨스 희곡들은 이전의 걸작들이 보여주던 엄청날 정도의 힘이 느껴지는 분위기와 위압감에 비해서는 소품처럼 느껴지게 되거나 보다 가벼운 분위기를 느끼게 되기는 하지만 여러 감정과 분위기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조금은 다채롭다는 인상을 느끼게 되고 있고, 이야기 구성이 (개인적으로는 자주 떠올리게 되는) 그리스 / 로마 고전들에 많은 영향을 받은 느낌이 여전히 느껴지고 있다.

 

물론, 영문학 전공자나 셰익스피어 전공자들은 좀 더 상세하게 많은 것들을 논의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전 걸작들에 비해서는 이야기 구성에서 다채롭게 만들어내기 위해서 조금은 집중력이 그리고 완성도가 허술하게 되는 경향이 있었었고, 분위기 자체가 들쭉날쭉한 느낌이 들어서 어정쩡한 분위기라는 생각이 앞서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셰익스피어이고 그렇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탁월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분명 있기 때문에 읽는 동안 재미 반 아쉬움 반의 기분을 느끼며 읽게 되었다.

 

이야기 구성에서는 역시나 인간의 여러 감정들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구성시키고 있고, 오해와 질투 그리고 사랑과 함께 여러 감정들을 적나라하게 작품을 통해서 드러내놓고 있으며, 셰익스피어는 내용과 대사들을 통해서 걸작들에서 보여주었던 통찰력 까지는 아닐지라도 인간의 감정이 갖고 있는 오묘하고 애매한 그 묘한 모습들을 격렬하게 표출하도록 만들어내고 있다.

 

각각의 작품들이 독립적인 내용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개별적인 이야기 구성들이 어느 정도 유사한 성향도 있고, 그 유사함과 각각의 다른 특성들을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좀 더 흥미롭게 읽어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옮긴이의 해설에서 지적되었던 부분들과 함께 번역의 과정에서 고민했다는 문장 구조에서의 근본적인 차이들을 생각해본다면 좀 더 여러 생각들이 가능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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