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이산의 책 9
가라타니 고진 지음, 김경원 옮김 / 이산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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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크리틱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18774250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만이 아니라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그리고 사상가로서 대접을 받고 있는데, 그렇게 그의 영향력이 커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저서 중 하나인 ‘트랜스크리틱’은 개인적으로도 무척 인상적인 저서였고, 그의 저서 중 처음으로 접한 저서이기도 했다.

발표 당시가 아닌 지금 생각해 본다면, 기존에 갖고 있었던 생각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는 논의들을 많이 제공했던 ‘트랜스크리틱’에 대한 일종의 서장과 같은 혹은 기본적인 개념도나 구상과도 같은 느낌이 드는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은 이미 발표한지 꽤 오래되기는 했지만(1978년) 가라타니 고진의 논의의 시작과 같은 저서일 것이고, 앞서 말했듯이 뒤돌아 생각한다면 ‘트랜스크리틱’의 논의가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을 했는지를 알 수 있는 솔직한 고백처럼 그리고 소개서처럼 읽혀질 것 같다.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에서 그리고 세계적으로 마르크스에 대한 논의가 점점 더 적어지고 있던 그리고 마르크스에 대한 논의에 대해 더 이상의 가능성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해지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서 마르크스를 논의하기 시작했고, 마르크스의 논의가 갖고 있는 독특성과 그로 인한 여러 오해들에 대해서 다양한 학문과 사상가와 연구자들의 논의들을 함께 검토하며 자신의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의 논의는 다른 마르크스에 대한 논의들에 비해서 비교적 마르크스에 대한 논의에서 많이 거론되지 않는 마르크스의 저서들도 언급하며 최대한 종합적인 방식으로 마르크스를 검토하려고 하고 있고, 기존의 논의들에 비해서는 조금은 다른 관점과 시각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무척 독특한 해석을 그리고 제안과 논의를 하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마르크스의 박사 논문(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부터 논의를 시작하며 마르크스는 근본적인 전복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미세한 차이’에 대해서 논의를 했었다고 강조하며 그의 논의가 갖고 있는 그 미세함에 대해서 그리고 독서가 / 해독가로서의 마르크스를 논의하고 있고, 우리가 어떻게 마르크스를 오해하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며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이후 ‘트랜스크리틱’에서 좀 더 본격적인 / 구체적인 논의를 하는 이동과 장소, 차이나 외부 혹은 바깥과 같은 개념으로서 설명하는 여러 생각들과 해석들에 대해서 아직은 덜 다듬어진 상태로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은 무척 간단하게 이해를 해도 가능할 것 같은 마르크스의 논의들을 상당히 상세하고 복잡하게 파고들고 있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마르크스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그리고 여러 마르크스에 대한 논의들을 접했던 사람들도 익숙하지 않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기 때문에 조금은 헷갈림을 느끼며 가라타니 고진의 논의를 접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은 자신만의 마르크스의 논의를 접근하기 위해서 소쉬르의 언어학과 정신분석, 여러 고전 철학자들과 현대 철학자들의 논의들을 비교하며 논의를 진행하고 있고, 자신의 생각들을 대략적으로 정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기는 하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논의들을 많이 제시하며 어떻게 마르크스를 폐쇄적인 이해가 아닌 가능성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마르크스에 대한 논의 중 가장 긍정적인 시각으로서 마르크스를 논의하고 있는 저작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은, 말 그대로 마르크스가 갖고 있던 시각과 해석 그리고 읽음을 통해서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이해하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며 그런 방식과 의미로서 마르크스가 보여주었던 탁월함과 통찰력을 다시금 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로서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을 읽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의 짧은 분량의 논의들은 일본의 학자들과 문학가들에 대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나쓰메 소세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처음 접하는 인물들이라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앞선 마르크스에 대한 논의와 느슨하게 관련되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는 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은 논의 자체는 비슷한 관점을 찾을 수 없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도르노 /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과 구성에서는 유사한 느낌도 들게 되는 것 같다.

둘 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기도 하다.

‘트랜스크리틱’이 좀 더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상세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명확성과 상세함을 보이기 전, 그런 인식의 전환이 틀을 잡기 전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마르크스를 논의하고 있는 가라타니 고진의 논의는 어떠한 가능성을 그리고 도약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확연함은 덜하지만 더 많은 열린 논의들이 가능할 수 있기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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