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문 안에서 - 나쓰메 소세키 최후의 산문집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문학의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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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의 셰익스피어’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그런 명성에 비해서는 많이 접하지 못했었고, 국내에서도 체계적으로 그의 저작들을 출판하지도 / 논의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특별히 불만스러운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일본 문학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아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접하려고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고, 그나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 정도만 읽어보았을 뿐이고,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두 작품을 읽었어도 특별한 인상을 갖지 못했기 때문인지 소세키의 작품은 일본인들만이 좀 더 제대로 된 감상을 할 수 있는 정서를 전달하고 있는 작품이거나 내가 소세키에 대한 극히 부정적인 성향의 독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세키의 작품에 큰 관심이 없었었고, 그의 다른 작품을 접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는데, 우연하게 건네받은 ‘유리문 안에서’를 통해서 다시금 소세키를 접하게 되었고, 소설이기 보다는 산문이고 수필인 ‘유리문 안에서’가 그의 대표작들 보다 좀 더 인상적이고 흥미를 갖도록 해주기 때문에 아마도 이번에도 엉뚱한 것에 더 호감을 갖는 유별남을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세키가 죽기 일 년 전에 아사히신문에 연재하던 글들을 모은 ‘유리문 안에서’는 신문에 기고하는 글이라는 점으로 인해서 간략하고 짧은 내용들로 이뤄져 있고, 개인적인 추억과 회고, 죽음 등 다양한 주제를 갖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소세키 본인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솔직하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는, 단호함 보다는 곤혹스러움이 묻어나는 소세키의 글은 모든 것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고, 그 어떤 것 하나도 소홀함을 보이지 않는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시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좀 더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의 내용들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시대적인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나 반대로 그런 혼란 속에서 보다 일상을 그리고 자신의 기억과 추억을 더듬는 모습에서 시대의 광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침잠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반적으로는 소세키 본인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고, 삶의 끝자락이었기 때문에 글이 전반적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고 있고, 글로써 삶을 정리하는 것 같다는 사후적인 평가를 하게 된다. 이런 평가는 이미 소세키의 죽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들게 되는 평가이기는 하지만 이런 평가를 막을 수도 없을 것 같다.

 

소세키의 문학 세계와는 조금은 다른 분위기의 글인 것 같지만 소박하고 명료한 문장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동일하기도 한 것 같다.

 

물론, 소세키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평가를 접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게 ‘유리문 안에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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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를 뒤로 빼지마 - 엘지카드 노동조합 이야기
손낙구 지음, 신한카드(구 엘지카드) 노동조합 기획 / 후마니타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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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하자면,

항상 세상에 관한 온갖 것들에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책을 통해서 혹은 여러 경험과 미디어를 통해서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마다 큰 좌절감을 갖게 될 때가 많다.

 

그저 아는 척하고,

알고 있는 척만 하고 있을 뿐이지,

정작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혹은 알아야 하는 것들은 전혀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만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엘지카드 노동조합이 어떻게 갑작스럽게 그들에게 닥친 고난을 영리하게 이겨냈는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의자를 뒤로 빼지마’는 얼마나 아는 것이 없이 살아가는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만들어주는 내용이었고 시간이었다.

 

2000년대 초에 벌어진 ‘카드 대란’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일련의 경제적 불안감과 혼란스러운 상황들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신용’에 대해서 엉망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사람들이 부도덕하며 책임감이 없는지를 (항상 그렇듯)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이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돌이켜 본다면 어쩐지 미국에서 일어난 ‘금융 대란’과 일정부분 유사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책이 전하려고 하는 의도가 그것을 비교하며 검토하려는 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비교는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다른 논의에서 다뤄져야 할 것 같다.

 

얼마 전이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는 느낌이 드는 시기이기는 하지만 한때는 잘 나갔던 ‘엘지 카드’가 어떻게 성장가도를 달렸고 위기에 봉착했는지를 간략하게 다룬 다음 얼마나 급작스럽게 몰락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며 가장 책임이 있어야 하는(하지만 실상은 최소한이라는 책임감도 없는) 대주주(잘나고 잘나신 구씨 일가)들이 자신들만의 이익만을 챙기고 ‘손 털고’ 떠난 뒤 남겨진 이들이 어떻게 함께 뭉쳐서 재건을 이루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엘지 카드에 대한 이야기는 약간이라도 기억이 나지를 않기 때문에 얼마나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어떻게 그들이 추운 겨울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어가면서 읽어가면서도 황당한데 직접 당한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지 그리고 두려웠을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제목만으로는 쉽게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의자를 뒤로 빼지 말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가면서 그들이 경험하게 되는 ‘노조’에 대한 의미를 보다 실감나게 느껴지게 되었고, 노동조합이 생소하고 무섭게만 느껴졌던 이들이 어떻게 노조를 구성하고 흔히 떠오르게 되는 복장(붉은 색 머리띠와 조끼)을 하고 구호를 외치게 되는지를 시간 순으로 담아내며 단순히 멀게만 느껴졌던 노동조합이 얼마나 자신들에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와 함께 그 중요성을 스스로 깨닫게 되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위에서 말 했듯이 엘지 카드 노조는 다른 일반적인 노조들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점들이 있고(많고), 그런 점들에 대한 지적은 금속노조에 많은 시간을 몸담고 있었던 저자를 통해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종의 관성화 되어버린 노조 운영에 대한 대안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으며, 항상 밀려나가고 고립되기만 했던 최근의 노동운동이 거둔 멋진 성취들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가장 추웠던 2000년대 초의 겨울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내용이 될 것 같다.

 

마무리에서는 엘지 카드 노동조합이 갖고 있는 타 노동조합과의 차이점들에 대해서 그리고 엘지 카드 노동조합 활동의 특성들을 대해서 간략하게 다루고 있고, 최근 들어서 점점 늘어만 가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와 ‘콜센터’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들이 겪고 있는 힘겨움에 대해서 사실감을 담아내어 설득력 있게 읽는 사람에게 그들의 어려움들을 전달하고 있다.

 

우연하게 접하게 된 책이고,

별다른 생각 없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인상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고,

아마도 앞으로도 가끔씩 다시 들춰보거나 생각해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알아야 할 것들을 모르면서 살아가는지를 떠올리며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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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열전
허경진 엮음 / 웅진북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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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를 통해 조금씩 생겨난 조선 시대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서 간간히 조선 시대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게 되었지만 특별히 뜻하고 있는 것이 없어서 그저 관심으로만 남겨져 있었을 뿐 어떤 책도 잡히가 않았었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허경진의 ‘평민열전 - 19세기 평민시대에 쓰여진 평민전기’는 그동안 중고교 시절을 통해서 알게 된 (흔히들 말하는) 위로부터의 역사가 아닌 조선시대를 살아간 널리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평민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몇몇 인물들은 평소에도 이미 들었던 이들도 있었지만 무척 생소한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들을 통해서 조선 시대의 평민들의 삶에 대해서 조금은 접근하게 된 것 같다.

 

최소한 노력은 한 것 같다.

 

널리 알려진 이들의 삶을 다루지 않고 있고, 저자인 허경진이 접한 평민들의 이야기들 중 선별된 인물들의 삶을 모은 내용이기 때문에 특정한 주제를 갖고 있다고는 볼 수 없고, 인물들의 특성에 따라 구분을 두고 있기 때문에(선비, 열녀, 효자, 화가 등) 읽는 이의 관심에 따라 순서를 달리해서 읽어나가도 문제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단순히 다양한 평민들의 삶을 모아둔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흥미가 생기는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면 될 것 같다.

 

조선 시대의 지식인들에 의해서 그들의 삶이 다뤄졌다는 점에서는 이미 일반적인 사람들이라고는 볼 수 없기는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들에 비해서는 조금은 숨겨져 왔었던 이들의 삶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며, 간간히 이미 알고 있던 이들의 삶을 다루는 내용에서는 몰랐던 부분들도 새롭게 알게 될 수 있기 때문에 혹은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오해했던 부분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내용을 읽어가면서 국어로 번역된 문장들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어쩐지 예스럽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불필요하게 장식적인 단어들을 최소화 하여 무척 단단한 느낌의 문장과 글귀들을 접할 수 있었기에 앞으로도 조선 시대와 관련된 책들을 접할 때 문장과 글귀의 구성과 구조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갖게 될 것 같다.

 

또한, 각각의 인물들의 삶을 다룰 때 그들의 삶을 길고 장황하게 다루지 않고 간략하게 다루면서도 그들의 삶 혹은 인물 됨됨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을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하는 점에서는 앞으로도 관심을 갖고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하나의 인물의 삶을 길고 상세하게 다룸으로써 집요하게 파고드는 서구의 이야기 구성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내용을 구성하고 있어, 이런 방식의 이야기 구성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좀 더 생각해보고,

좀 더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할 것 같다.

 

많은 것들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정작 내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의 역사와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관심 했던 것 같다.

 

앞으로도 조금씩 찾아 읽어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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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이학문선 1
안토니오 네그리 & 마이클 하트 지음, 윤수종 옮김 / 이학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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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신자유주의’로 통틀어 설명할 수 있는 자본의 새로운 지배 방식은 그리고 그에 따라 변화된 환경(경제-정치-사회-기술 등)은 그로 인해서 정확한 기준을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과거라고 말할 수 있는 이전 시기와는 달라진 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변화된 환경에 대한 수많은 논의들과 그에 따라 ‘포스트’와 ‘탈’이라는 단어가 달라붙어서 사용되는 온갖 논의와 이론들은 변화된 환경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위해서 혹은 이전의 것들을 부정하거나 다른 제안을 내놓기 위해서 쓰이게 되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런 변화된 환경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제안이자 21세기에 맞게 업데이트 된 ‘공산당선언’인 것 같은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의 ‘제국’은 가장 암울하고 절박한 시기에 쓰여진 혁명에 대한 (좌절감 속에서도 낙관을 잃지 않은) 모색일 것이다.

 

네그리/하트는 기본적으로 21세기는 기존의 제국주의 시대와는 다른 시대이며 엄청난 기술발전과 재편성된 정치-사회-경제적 구성으로 인해서 더 이상의 특정한 외부가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제국이 되어버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제국에 대해서 매우 구체적인 무언가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들도 그런 구체적인 제시에 대해서는 곤혹스러워하고 있고 그저 그동안과는 전혀 달라진 환경으로 인해서 어떻게 기존의 것들이 다른 방식으로 다뤄지고 논의되어야 하는지를 논의하고 있을 뿐이다.

 

뚜렷하게 포착되지 않는 흐릿한 윤곽을 그들은 보고 있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런 변화된 환경에 대해서 그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논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논의 과정이 매우 상세하면서도 논의에 대한 결론에 가서는 조금은 설득력이 부족해지고 있기 때문에 혹은 조심스럽게 논의에 대한 결론과 대안 제시에 대한 조심스러운 검토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이고 과감한 제안을 바라고 있는 사람이라면 핵심이 없는 수식어로 가득한 매뉴얼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적극적으로 변화된 환경에 대해서 그리고 혁명의 가능성에 대해서 논의하고는 있지만 결론에 가서는 자신들조차 제국이라는 것에 대한 명쾌한 확신-제안을 보여주지-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인상적이고 통찰력으로 가득하면서도 그것이 구체성을 갖고 있는 논의인지 의심스럽게 만들고 있고, 마치 예언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있다. 그들로서는 안타까울 수 있겠지만 그들이 자초한 것 같다.

 

기존과는 달라진 환경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으로 가득하고 그 곤혹스러움을 현대 철학자들의 논의들을 통해서 돌파하려고 하고 있는 네그리/하트의 논의는 결국 더 이상의 외부를 찾을 수 없는 혹은 어떠한 뚜렷한 대안을 찾을 수 없는 현재에 대한 급진적인 도약/돌파를 위한 과감한 시도로 가득한 것 같다.

 

근대부터 시작된 진보와 미래에 대한 믿음을 철저하게 비판했던 아도르노의 논의들과 어떠한 외부도 존재할 수 없으며 우리는 모두 권력의 틀 속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푸코의 논의로 대표되는 철학적 논의와 함께 소련-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중국-자본주의로의 전향으로 대표되는 좌절은 어떠한 제안-대안도 설득력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아가는 혁명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그 곤혹스러움과 좌절감 속에서 새로운 대안을 그리고 과감한 제안을 내놓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가장 논쟁적인 결과물인 것 같다.

 

들뢰즈/가타리의 논의에 많이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네그리/하트의 논의로서만 다루기는 어렵기도 할 것이고, 20세기 후반에 적극적으로 다뤄지는 다양한 논의들을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좀 더 상세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흥미로운 입장이고

놀라운 통찰력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인상적인

일종의 현재에 대한 포괄적-구체적인 검토와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논의에 대한 내용으로서는 구체성이 부족하고 예언적인 성향이 크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논의를 통해서 좀 더 다양한 논의들과 의견들이 제시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 깊은 시도인 것 같다.

 

이제 남은 것은 이를 통해서 얼마나 더 큰 용기를 갖고 전투에 임할 것이냐이다.

고민은 좌절이 아닌 도약과 돌파로 실천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네그리/하트의 ‘제국’은 일종의 새로운 다짐처럼 읽혀지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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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 - 개정판
호메로스 지음, 유영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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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와 함께 언제까지나 많은 이들의 영감을 자극할 그리스 문학의 정점에 서 있는 또다른 주인공인 오디세우스는 그가 겪은 온갖 고난과 모험으로 인해서 그리고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영리함으로 인해서 수없이 반복되며 해석되고 있고, 다양한 의미로서 다뤄지고 있는 인물인데, 아마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에 관해서는 점점 더 다양하고 풍부한 의미와 해석이 더해지기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오디세우스는 우리들 모두를 대변하는 존재일 것이고,

실제로도 그는 인류-남성을 대표하는 존재로서 자주 다뤄지고 있는데,

한명의 남성이고,

아들이며,

남편이면서 연인인,

지배자이면서도 노동자인 오디세우스에 대한 평가를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근대-탈근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조차도 자주 언급하고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의미와 해석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에 대한 지속적인 검토가 이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집 떠나서 죽도록 고생하다 결국 꿈에도 그리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로 구성된 ‘오디세이아’는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는 이야기 속에서 신화와 우화 그리고 당시 시대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으며, 한명의 주인공을 내세우는 소설적 구성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매우 인상적인 작품으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일리아드 / 일리아스’와 함께 호메로스의 대표작이면서도 두 작품의 차이는 꽤 거리감을 갖고 있는데, 어째서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인지는 누구도 쉽게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항상 그렇듯이 그리스 신들은 사건에 직접적 / 간접적으로 지속적으로 개입하고 있고, 그들이 만드는 고난과 함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도움 속에서 오디세우스와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다양한 고난 / 경험을 하고 있고, 이를 견뎌내며 자신들을 그리고 가족-공동체와 아내를 지켜내고 있다.

현란하다는 말이 나오게 되는 장황한 대사들과 함께 오디세우스가 겪는 다양한 모험은 상상력을 자극하거나 졸음을 밀려오기에 충분할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든 서구 문학의 원형으로서 그 매력을 뽐내고 있다.

이제는 정작 실제 작품에 대한 내용보다 하나의 해석으로서 그리고 은유로서 더욱 자주 다뤄지게 되어버렸지만 항상 그렇듯이 작품을 실제로 접함으로써 좀 더 적절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에 이어지는 해석에 대한 각자의 평가가 뒤따를 것이다.

참고 : 아마도 ‘오디세이아’에 대한 가장 철저한 해체와 냉소적인(혹은 암울한) 해석은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다룬 해석일 것이다. 워낙 널리 알려진 해석이고, 난해하면서도 꽤나 흥미로운 해석이기 때문에 ‘오디세이아’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한번쯤 찾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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