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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ㅣ 이학문선 1
안토니오 네그리 & 마이클 하트 지음, 윤수종 옮김 / 이학사 / 2001년 11월
평점 :
분명 ‘신자유주의’로 통틀어 설명할 수 있는 자본의 새로운 지배 방식은 그리고 그에 따라 변화된 환경(경제-정치-사회-기술 등)은 그로 인해서 정확한 기준을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과거라고 말할 수 있는 이전 시기와는 달라진 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변화된 환경에 대한 수많은 논의들과 그에 따라 ‘포스트’와 ‘탈’이라는 단어가 달라붙어서 사용되는 온갖 논의와 이론들은 변화된 환경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위해서 혹은 이전의 것들을 부정하거나 다른 제안을 내놓기 위해서 쓰이게 되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런 변화된 환경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제안이자 21세기에 맞게 업데이트 된 ‘공산당선언’인 것 같은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의 ‘제국’은 가장 암울하고 절박한 시기에 쓰여진 혁명에 대한 (좌절감 속에서도 낙관을 잃지 않은) 모색일 것이다.
네그리/하트는 기본적으로 21세기는 기존의 제국주의 시대와는 다른 시대이며 엄청난 기술발전과 재편성된 정치-사회-경제적 구성으로 인해서 더 이상의 특정한 외부가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제국이 되어버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제국에 대해서 매우 구체적인 무언가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들도 그런 구체적인 제시에 대해서는 곤혹스러워하고 있고 그저 그동안과는 전혀 달라진 환경으로 인해서 어떻게 기존의 것들이 다른 방식으로 다뤄지고 논의되어야 하는지를 논의하고 있을 뿐이다.
뚜렷하게 포착되지 않는 흐릿한 윤곽을 그들은 보고 있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런 변화된 환경에 대해서 그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논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논의 과정이 매우 상세하면서도 논의에 대한 결론에 가서는 조금은 설득력이 부족해지고 있기 때문에 혹은 조심스럽게 논의에 대한 결론과 대안 제시에 대한 조심스러운 검토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이고 과감한 제안을 바라고 있는 사람이라면 핵심이 없는 수식어로 가득한 매뉴얼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적극적으로 변화된 환경에 대해서 그리고 혁명의 가능성에 대해서 논의하고는 있지만 결론에 가서는 자신들조차 제국이라는 것에 대한 명쾌한 확신-제안을 보여주지-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인상적이고 통찰력으로 가득하면서도 그것이 구체성을 갖고 있는 논의인지 의심스럽게 만들고 있고, 마치 예언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있다. 그들로서는 안타까울 수 있겠지만 그들이 자초한 것 같다.
기존과는 달라진 환경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으로 가득하고 그 곤혹스러움을 현대 철학자들의 논의들을 통해서 돌파하려고 하고 있는 네그리/하트의 논의는 결국 더 이상의 외부를 찾을 수 없는 혹은 어떠한 뚜렷한 대안을 찾을 수 없는 현재에 대한 급진적인 도약/돌파를 위한 과감한 시도로 가득한 것 같다.
근대부터 시작된 진보와 미래에 대한 믿음을 철저하게 비판했던 아도르노의 논의들과 어떠한 외부도 존재할 수 없으며 우리는 모두 권력의 틀 속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푸코의 논의로 대표되는 철학적 논의와 함께 소련-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중국-자본주의로의 전향으로 대표되는 좌절은 어떠한 제안-대안도 설득력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아가는 혁명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그 곤혹스러움과 좌절감 속에서 새로운 대안을 그리고 과감한 제안을 내놓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가장 논쟁적인 결과물인 것 같다.
들뢰즈/가타리의 논의에 많이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네그리/하트의 논의로서만 다루기는 어렵기도 할 것이고, 20세기 후반에 적극적으로 다뤄지는 다양한 논의들을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좀 더 상세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흥미로운 입장이고
놀라운 통찰력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인상적인
일종의 현재에 대한 포괄적-구체적인 검토와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논의에 대한 내용으로서는 구체성이 부족하고 예언적인 성향이 크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논의를 통해서 좀 더 다양한 논의들과 의견들이 제시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 깊은 시도인 것 같다.
이제 남은 것은 이를 통해서 얼마나 더 큰 용기를 갖고 전투에 임할 것이냐이다.
고민은 좌절이 아닌 도약과 돌파로 실천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네그리/하트의 ‘제국’은 일종의 새로운 다짐처럼 읽혀지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