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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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가격표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이런 식의 글에 범접할 수 없는 정보량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단하고 여길 때가 있었다. 그런데 범접할 수 없는 정보량보다 글 자체의 아름다움에 반하기를 여러 차례 하다보니,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일종의 사회흐름서? 에 이전의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생명 가격표라는 제목이 무섭고도 처연해서 집어 들었다.

 

돈이냐 생명이냐, 아이를 낳아도 될까와 같은 생명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것에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정작 내용은 똑같은 재난 속에서도 누군가는 생명의 가격표가 높아 구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모른 채 죽어가고 있는 불균형을 이야기하고 있어, 이론이 아닌 현실의 무참함이 나를 깨웠다. 생명의 소중함, 존귀함을 믿고 있는 내게, 현실은 성비 불균형, 장애아 가 생명에 가격을 붙여서 상대적으로 쓸모가 없다고 여기기에 낙태된다고 보여주니, 나는 이 세상에 사는 생명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에 대한 고귀함은 정말 말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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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김신회 지음 / 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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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김신회 지음

 

보노보노를 이렇게 진지하게 쓸 수 있을까? 진지함 앞에서는 조용하고 숙연해진다.

 

나 에세이 좋아하는 사람이었네. 갈수록 에세이를 많이 읽네. 누군가를 기다리며, 휘뚜루마뚜루 걸쳐서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좋아했구나.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미워하면 미워하는 대로 그저 받아들인다. 우리도 그렇게 살면 얼마나 편할까. 너무 속상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상처는 말로 표현한다고 해서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간밤에 술에 취해 진상을 부렸을 때, 너 때문에 창피해 죽는 줄 알았다는 말 대신, 너 어제 제법이더라 라고 말해주는 것.]

 

[고난이란 지나가는 법이 없고 노력해도 이겨낼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어서일까.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게 실감 난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있다. 그 힘든 시기는 거기에서 그만하기도 하고, 되풀이 되기도 한다. 나는 너에게 슬픔의 고래를 질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할퀴었다. 드디어 내 우위에 섰다는 듯이.

마음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면 된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런데 너만은 그 말을 하기 전에 안아주길 바랬다. 누구에게 소리지르지도, 누구 앞에서 울 자격도 없는 사람인 것 같아서,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는 것 같아서 차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단 한번 누구에게 울며불며 매달린 것이, 너는, 너만은 나를 이해해줄 거라는 내 마음이 뭉개졌다.

너만은 그러지 않을거라는 마지막 믿음이었나. 너는 이미 오래전에 나를 버렸는데. 남편과 스피커폰을 켜고 내 힘든 이야기를 물어보다가 들을 거 다 듣고 나서는 듣는둥 마는둥 저녁에 구워먹을 삼겹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수화기 너머의 너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 같은 건 없는 거였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건 아마도 현실을 인정하게 하는 나의 몸이 하는 마지막 부림이었으리라. 나에게 남은 건 없다고. [그동안 이만큼의 미련을 끌어안고 살았던 건가 싶어서 허무하면서도 속 시원했다.]라고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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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라토 칸타빌레 문지 스펙트럼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정희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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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라토 칸타빌레

마르그리트 뒤라스

정희경 옮김

 

 

보통빠르기로 노래하듯이를 뜻하는 모데라토 칸타빌레

 

왜 이 책을 샀는지, 그날 왜 이 책을 집어 들어서 넘겼는지, 모르고 중요하지 않다.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내가 있을 뿐이다.

 

사랑에 대한 갈구, 그것이 현실을 이중으로 만들게 하는 욕망

당신을 사랑해서 죽였고, 나도 곧 옆에 눕겠다.

, 명예, 그런거 생각하지 않고 나도 그곳의 한자락을 느끼고 싶다.

나는 그것을 대리 취한다.

여전히 나는 여기에 있다.

 

현실적인 대사 속에서 왜 그리도 몽환적인지,

어느 것 하나 내 것인게 없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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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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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

케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20년 전의 글이 마치 어제의 내가, 오늘의 당신이 있어서, 현대적인 문체에 놀라서, 지금의 나를 더 없이 나타내서 놀라고, 아득해지고, 명쾌하면서도 울렸다.

 

이른 시기부터 작가로 사랑받았던 캐럴라인 냅의 삶은 그저 사람이었다.

 

소심하다, 소극적이다, 낯을 가린다, 수줍어한다는 것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보는 사람들이 싸가지 없는 사람으로 보이게도 하고

 

혼자 사는 결혼 적령기를 지난 여성이 그 시기를 지나오면서 겪는 사회의 눈빛을 견뎌야 한다는 것

 

친구, 가족, 직장 등에 대해서 이렇네 내 마음을, 당신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은 느리게 걸어가는 내가 있는 사회 덕분에 현실감있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뒤쳐져 있다는 건 시간을 뛰어넘어서 좋다.

 

나는 어리숙하고 뒤쳐진 것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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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의 맛 -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차려 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 한국어 품사 교양서 시리즈 1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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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의 맛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다쳐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

김정선 지음

 

[하물며 사람이 지난 자리야. 시친 듯 지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친 듯 지난 사람도 있고, 공그른 듯 지나는가 하면 기운 듯 지나기도 하며, 때로는 온통 누비고 다니는 사람도 있으리라.

 

때로는 마음의 근육이나 관절도 접질리고 겹질려 옴짝달싹 못하게 될 때도 있다. 우울감이 심해지면 남자는 몇 날 며칠을 새벽녘까지 잠들지 못하고 힘들어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천장이 마치 활짝 갠 하늘처럼 새파랗게 보이더라고. 이미 병원 치료까지 받아 본 지인은 그럴 때가 더 무서운 거라고 잔뜩 겁을 주었지만, 어쨌든 남자에게 그날은 우울감으로 늘 우중충하던 궂은 날들 속에서 반짝하고 활짝 갠 어느 날이었다.

 

앞으로 고꾸라졌지만 아직 거꾸러진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그때가 되면 이 지질한 삶도 그만 걷어치울 수 있겠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전철역으로 내려가는데 반대편에서 지인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몸을 돌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거술러 올랐다. 몇 걸음 오르고 나서 내가 바보짓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몸을 돌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 다음 반대편으로 옮겨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 지인과 인사를 나누었다. 괜스레 내 마음이 다 오그라든다.

 

오목한 곳엔 물이든 흙이든 괴기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 또한 그렇게 오목해질 때가 있는 모양이다. 마음속에 무언가 괴어 흘러넘칠 것만 같을 때가 있으니까. 남자가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마침내 흘러넘치는 것을 막을 수 없어서.

 

엉엉 꺼이꺼이 울었다. 덕분에 한 가지 배운 건 있어요. 그렇게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는 말. 믿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마치 신물까지 다 게워냈을 때처럼 몸의 기운은 물론 마음의 기운까지 다 빠져나가 껍데기만 남은 느낌이더라고요.

 

봄날 아침에 눈떠서 물 한 모금 마시고 밖으로 나가면 앞집 감나무와 대추나무에 어느새 연둣빛 새순이 눈튼게 보인다. 세상엔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모습들도 많고 내가 미처 눈뜨지 못해 알지 못하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봄날에 눈트는 새싹을 볼 수 있다면 눈 뜨고 보지 못할 것들을 봐야 하는 괴로움도, 세상일에 눈뜨지 못하고 미련스럽게 구는 나 스스로도 얼마든지 참아 줄 수 있다. 새싹이 눈틀 때 나또한 눈뜨면 그만이니까.

 

삶에 주어진 시간은 함부로 당길 수도 늦출 수도 없죠. 몸으로 좁히지 못하는 거리를 마음으로만 다그며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는 시간

 

 

자꾸 뒤처지다 보면 자신이 뒤쳐져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물건처럼 여겨지기도 하겠다. 어느새 쉰을 코앞에 둔 나이가 되었다. 딱히 이뤄 놓은 것도 없이 사십대를 지나게 생겼다. 먹고살다 보니 그리되었다. 말해놓고 보니 이런 말을 앞으로 얼마나 더 하게 될까 싶어 민망해진다. 먹고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핑계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그럴듯한 핑계 아닌가. 먹고살다 보니, 또는 가족을 먹여 살리려다 보니 먹고사는 일이 무슨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느껴진다. 가장 기본적인 일인데 가장 높이 들린 귀한 목적처럼 여겨진다고나 할까. 참담한 일이다. 혹여 그것이 신성불가침이 아니라 치외법권 지역같은 곳은 아니었을까. 도망가 숨기 딱 좋은 곳

 

바람이 부는 순간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라지만, 가슴속에 부는 바람은 여전히 무수한 가지들처럼 몸부림치고 있다. 뿌리를 뽑아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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