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나서 글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이야기가 숨통을 열고 스스로 나아가게하려면 이 사람들과 사건들에서 멀찍이 물러나야 한다는 걸 알았다. 간단히 말해, 내 이야기에  더  자유로운 연상을 허용해 줄 유용한 관점이 필요했다. 내가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놓쳤던 점은,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닌 서술자에게서만 이런 관점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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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상관없다. 어느 쪽이든 여기 아로새겨진 교훈은 여자의 인생에서 남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어릴적부터 이 교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그것과 여자들을  버리고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탈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둘 중 무엇도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여자들. 더군다나 어머니는.어머니의 유난스런 자기도취로부터  벗어나리라 단단히 마음먹었건만, 세월이 쌓이면서 나의 다혈질적이고 심각한 성격이  실은 애정에 굶주린 어머니의 호들갑과 다를 바없음을 알았다. 더 나아가, 우리 모녀에게 자기 극화는 행동의 대체물이라는 것도 알았다.  어머니 뿐만 아니라 내 안에도 안톤 체호프적 인 우유부단함이 춤추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머니처럼 되었으므로 어머니를 떠날 수  없었음을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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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든 소설가든 회고록 작가든 자신에게 어떤 지혜가 있다는 확신을 독자에게  심어주어야 하며, 이 지혜를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정직하게 쓴다. 자전적 이야기를 쓰는 작가는 여기에 더해 서술자의 신뢰성까지  독자에게 납득시켜야 한다.-19쪽
이 조지 오웰은 경험과 관점, 그리고 지면 가득 풍기는 개성이 성공리에 합쳐진 결과물이다.  그의 존재감이 워낙 강하다 보니 우리는 서술자를 아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렇듯 우리가  서술자를 알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서술자의 능력이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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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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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입한 시립도서관에서 11월부터 회원에게 교보문고 전자도서관에서 전자책을 무제한 다운 받을 수 있게 해준다. 예산 소진시까지라는 단서가 있긴 하지만 이게 왠 떡이냐.
소설을 잘 읽지 않으므로 아는 작가가 많지 않은데 전자도서관 상단에 떠 있길레 다운받았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나무의 일생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나무의 수령은 대체로 길기 때문에 나무는 몇 백년에 걸쳐 주변의 변화를 묵묵히 보아 넘긴다. 마을이 생겼다 없어지거나 사람들이 늙어서 죽는 것을 보고, 전쟁도 겪고.
내가 사는 동네도 원 마을이 없어지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곳인데 군데군데 공원에 당산나무들이 있다. 그 나무들을 볼 때마다 그 책 생각이 났고 저 나무들도 마을이 생기고 사라지고 애들이 태어나고 노인들이 죽는 것을 다 봤겠구나 생각했었다. 작가의 말을 보니 작가도 그런 생각을 했었나 보다. 나 같은 사람은 생각만 하는데 소설가는 그걸 소설로 풀어내는구나.
4대에 걸쳐 내가 선택한 적이 없는 운명을 대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그냥 감수하거나, 증오하거나, 이유를 찾는다.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것 같지만 각자의 상황은 다르다.
인간의 삶이 그렇다. 각자 감당할 몫이 있고, 사는 방식도 다르다. 작가는 환멸과 절망이 가득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고 말하는 것 같다. 수퍼맨처럼 세상을 구할 수는 없어도 네 옆의, 네가 구할 수 있는 한 사람, 단 한 사람은 있다고. 그게 중요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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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나라, 심지어 일년만에 없어진 나라도 있다. 우체국도 없는데 우표를 발행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땅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열강들의 땅 따먹기에 희생되는 작은 나라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우울해진다.

또 하나는 우표 수집입니다. 오래된 우표라고 다 모으지는 않습니다. 제 목표는 1840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우표‘페니 블랙‘이 발행된 이래로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국가와 정권에서 발행된 우표를 하나씩 다 모으는 것입니다. 저는 사용하지 않은 새 우표에는 별흥미가 없습니다. 손을 많이 틴 우표, 세월이 묻어나는 우표일수록제겐 귀중합니다. 저는 이따금씩 우표들을 꺼내, 냄새를 맡아보고 어루만져봅니다. 핥아볼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퍽퍽해진 고무풀, 전분, 아교의 맛이 납니다. 어떤 경우에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저보다먼저 누군가가 핥으면서 남긴 듯한 맛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래전지구 어느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먼저 느꼈던 인상들이 스쳐가고, 저도 함께 그 느낌에 젖어봅니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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