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상관없다. 어느 쪽이든 여기 아로새겨진 교훈은 여자의 인생에서 남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어릴적부터 이 교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그것과 여자들을 버리고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탈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둘 중 무엇도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여자들. 더군다나 어머니는.어머니의 유난스런 자기도취로부터 벗어나리라 단단히 마음먹었건만, 세월이 쌓이면서 나의 다혈질적이고 심각한 성격이 실은 애정에 굶주린 어머니의 호들갑과 다를 바없음을 알았다. 더 나아가, 우리 모녀에게 자기 극화는 행동의 대체물이라는 것도 알았다. 어머니 뿐만 아니라 내 안에도 안톤 체호프적 인 우유부단함이 춤추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머니처럼 되었으므로 어머니를 떠날 수 없었음을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 P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