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들의 도시 - 전2권 세트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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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꿈꾸는 책들의 도시" 라는 매혹적인 제목의 이 책은, 차모니아 대륙의 위대한 작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의 장편소설을 독일인 발터 뫼르스가 편집하고 번역한 것이다. 판타지 소설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어서인지, 아니면 나의 상상력이 너무 메말라버려서인지 처음에는 "차모이나 대륙"의 유명한 작가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또 그것을 독일어로 번역했다는 것에 대해 어리둥절해하다가, 책 표지의 작품설명을 보고서야 발터 뫼르스와 차모니아 대륙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차모니아 대륙은 독일작가 발터 뫼르스가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이며 그 곳의 생활과 문화, 물론 그 곳에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의 이야기도 모두 그의 상상력의 소산이다. 마지막 부분에 "발터 뫼르스가 독자에게 붙이는 말" 을 읽으면서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차모니아 문학, 특히 미텐메츠 작품의 충실한 번역가로 소개하는 그의 재치에 즐거운 웃음이 절로 났고, 정말로 발터 뫼르스의 작품이 아니라 발터 뫼르스가 번역한 미텐메츠의 작품을 읽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책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 두 권의 책은 정말로 책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말장난을 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여기에서는 책들이 주인공이며 책과 관련된 사람들만이 이야기에 등장한다. 작가들, 인쇄업자들, 출판업자들, 고서점상들, 책 사냥꾼들, 살아있는 책들, 위험한 책들, 그리고 꿈꾸고 있는 모든 책들. 대부시인이 남겨준 위대한 원고의 작가를 찾아 책들의 도시인 '부흐하임'으로 떠나는 미텐메츠의 위험하고도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눈 돌릴 틈 없이 빠르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작가적 상상력이 어떤 것인지, 현실세계에서 결코 경험하거나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나는 조금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자마자 그 경쾌한 상상의 이야기 속으로 푹 빠져들고 말았다. 미텐메츠가 부흐하임의 지하묘지 안에서 겪는 수많은 일들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군데군데 작가의 상상력이 빛나는 곳에서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가 다시 가야할 때도 있고 피식하고 웃다가 숙연해지기도 하고 주책없이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슬퍼지기도 한다. 특히나 미텐메츠가 부흐링 족과 이별할 때나 그림자 제왕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는 마치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영상들이 눈 앞에 그려져서 잠시 책을 덮었다가 가슴아파하면서 겨우 읽어나가기도 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부족들과 그들이 책에 대해 가지는 다양한 태도들에서 문학과 독자의 관계가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고, 값 나가는 책을 향한 책 사냥꾼들과 고서점상들의 끊임없는 집착과 탐욕을 통해 끝없는 욕망의 무서움을 알게 되고, 책들의 도시인 부흐하임에서 살아가는 작가들의 삶과 오름에 대한 열망을 통해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작가의 열망을 뜨겁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들... 결코 죽은 종이가 아닌, 살아있고 꿈꾸고 씌여지고 읽혀지고 기억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책들의 모습을 통해 과연 나에게 글이란, 문학이란, 책이란 어떤 의미였는지 다시 되새겨보게 된다. 책장 속에 꽂혀져 있는 책들과 오래전에 읽혀져 오랫동안 잊혀졌던 좋은 작품들을 다시 꺼내 쓰다듬어보게 된다. 본문에 나오는 누군가의 말처럼 실로 우리가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문학과 글이 우리네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크고 깊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를 생각하고 꿈꾸게 해주는 고마운 책들에게도 모자람 없는 관심과 사랑을 줘야 하지 않을까.... 더 신중하게 읽고, 더 소중히 간수하고, 더 오래도록 기억함으로써 말이다. 아무런 딴 생각없이, 문법이나 번역, 오자, 탈자, 작가의 주장에 대한 어떠한 비판적 느낌도 없이 오로지 내용에만 푹 빠져서 꿈꾸듯이 책을 읽은 것이 정말 오랫만인 것 같다. 다 읽고 나니 굉장한 꿈을 한 편 꾼 듯한 몽롱한 기분이 드는 것이 마치 꿈 속에서 부흐링 족의 마술에 걸렸던 것만 같다. 현실에 지치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해져서 어떤 상상을 해도 더 이상 상상이 될 수 없을 때, "꿈꾸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으로 가길 바란다. 그 곳에 가면 꿈꾸는 책들이 당신에게 알려줄 것이다. 진짜 꿈 같은 상상이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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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A. M. 파인스 지음, 윤영삼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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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야말로 사랑이 넘쳐나는 시대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아마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회문화적인 영향력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 게다. 그 모든 사랑, 그 다양한 사람들간의 온갖 종류의 사랑 중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이 바로 남녀의 사랑일텐데 그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니.... 정말 매혹적인 제목이 아닌가... 자, 과연 나는 사랑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고 어떤 기대를 지니고 있으며 이 책이 나에게 알려준 사랑의 비밀은 무엇인지. 그 얘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심리학자이다. 인간의 마음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학자로서 인간의 가장 신비한 감정중 하나인 "사랑"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만 저자는 조금 특이하게도 사회심리학자이기도 하면서 임상심리학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이 특이하다는 것은 (물론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객관적 수치로 나타나는 실험의 결과를 중시하는 (좀 더) 과학적인 사회심리학의 연구방법과, 인간 개개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대한 진실한 성찰과 전체로서의 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임상심리학의 연구방법이 그만큼 서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연구경력 덕분에 이 책에서 우리는 사랑을 설명하는 매우 다른 두 가지 시각을 만나볼 수 있으며 그것은 이 책만의 매력적인 강점이다.

   이 책에서는 남녀간의 사랑, 그것도 "사랑에 빠지는 그 설레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가 그리고 왜 하필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가. 늘 신비로운 감정으로만 생각했던 그 강렬한 순간에 대한 심리학적 통찰은 때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또 다시 복잡하게 늘어놓는 듯한] 느낌도 들게 하지만 결국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몇 가지 새로운 진실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사회심리학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실험들은 정말 기발하고 재치있는 아이디어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실험상황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기대가 샘솟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요인으로 인해 우리는 사랑에 빠지기 쉬운 상태로 되는가에 대한 몇 가지 논의를 거쳐, 드디어 "왜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랑에 대한 수많은 속설들, 가지가지 학설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할 상대에 대한 무의식적 선택 속에 존재하는 우리의 불완전함, 갈등요소, 어린 시절의 상처 등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어느 새 그 동안 내가 잊고 있었던 나의 모습과 나의 사랑의 순간들을 다시금 되볼아보게 된다. 사랑과 무의식의 깊은 관계를 설명하는 정신분석학적 논의들은, 비단 사랑에 빠진 남녀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따뜻하고 애틋한 관계를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에서의 인간관계를 보여줄 것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무의식만을 강조하는 정신분석학적 시각에 대해 마뜩찮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지만, 인정하든 안하든 분명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사랑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분석하고 쪼개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사랑 없이 살아갈 인생이 아닌 이상 사랑에 대해 알고자 한다고 해서 크게 잘못될 것은 없다. "사랑, 그 까짓 것" 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당신이 사랑을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제대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은 당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니 말이다. 몇 가지 명언들을 섞어서 마지막으로 이야기하자면, 일단 자기 자신의 숨겨진 모습까지 알고 가장 깊은 마음으로 자신을 사랑해라. 자기 자신에 대한 흔들림 없는 사랑과 믿음이야말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이성관계, 나아가 인간관계를 위한 첫 걸음이라는 것을. 이미 모두 알고 계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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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변화 - 상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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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줄거리는 간단하다. 부부 사이였던 일롱카와 페터는 페터네 집의 하녀였던 유디트로 인해 이혼하게 되고 그 후 페터는 유디트와 재혼한다. 이야기는 남녀관계 특히 부부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사건들에 관한 것이다. 사랑, 결혼,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함, 기다림, 이혼, 재혼. 하지만 전형적이라고 해서 모든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남녀관계의 일은 더더욱.

  산도르 마라이(그저 작가라고 쓰기보다는 한 번쯤 그의 이름을 직접 써보고 싶다)는 이 소설에서 세 명의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롱카, 페터, 유디트의 이야기를 그들 자신의 입을 통해 말하게 한다. 무슨 일이 있을 땐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봐야" 한다는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전개방식은 남녀간의 삼각관계를 다루기에 정말 적절한 것 같다. 우선, 일롱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남편을 섬겼고, 사랑했으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 눈물겨운 투쟁을 벌였던 지난 날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녀는 아직도 자신이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산도르 마라이는 일롱카의 사랑을 <열정적 사랑>이라 말하고 있다. 세 주인공들 중, 관념으로서의 "사랑"에 가장 가까운 행태를 보이는 것도 일롱카이다. 자신의 삶에서 부족했던 치명적인 위험, 삶의 모험, 파괴적인 사랑을 갖기 위해 유디트를 택했지만 결국 좌절하고 사랑에 대한 자신을 잃어버린 페터나, 신분상승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랜 시간의 기다림을 택하고 결국 그 꿈을 이루지만 역시 현실이 된 꿈이 늘 꿈꾸던 그 꿈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미련없이 현실을 선택하는 유디트의 모습은 보통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답을 얻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면 일롱카의 모습에서만 잠시 그 짧은 만족감을 얻을 뿐 다시금 고민만 얻게 되는 것이다.

  페터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이야기의 배경과 관점은 완전히 달라진다. 유디트와도 헤어지고 난 훨씬 뒤에 시작되는 페터의 이야기는 "사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일롱카의 이야기와는 달리, 좀 더 오래되고 훨씬 깊은 곳에 위치한 자기 자신의 내면에 관한 것이다. 그의 어린 시절, 부모님의 양육방법, 시민계급의 권리와 의무, 유디트에게 갈 수 밖에 없었던 그의 마음....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그의 깊은 독백을 듣고 있다 보면, 페터의 사랑을 <용기없는 사랑>이라고 말해야 할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물론, 그의 사랑은 일롱카나 유디트의 그것에 비하면 용기없는 것이었다. 가끔은 비겁하기도 했고 스스로를 변호하려는 듯한 노력도 엿보인다. 하지만 페터가 살아지내온 환경과 그를 둘러싼 사회의 모습을 알게 되면 그의 사랑하는 방식, 그 자신도 뒤늦게 깨달아버린 인간 존재로서의 쓸쓸함에 안타까워지는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 원인이자 결과, 그 중심축에 서 있는 유디트는 책을 읽는 내내 궁금증을 유발시키다가 마지막에 드디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유디트의 이야기는 이 전체사건에 대한 전혀 새로운 시각이다. 페터와 헤어진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유디트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일롱카와 페터를 사이에 두고 벌였던 기다림과 만남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소녀시절 하녀일을 시작했던 자신과 "온갖 것을 모두 구비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관념"으로 대비되는 페터의 귀족계급, 즉 상류사회와의 극명한 차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그 안에는 젊은 주인에 대한 숭배와 두려움을 느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이것도 사랑의 한 형태라면..), 유디트의 시선은 페터와 결혼한 이후에도 여전히 상류사회의 마님이 아닌, 침실에서조차 그의 수발을 드는 하녀로서의 시선에 머무른다. 유디트가 동경했고 결국엔 그 중심에 서게 되었던 상류사회의 숨겨진 모습들, 전쟁을 겪는 와중에 깨닫게 된 그들과 자신의 메워질 수 없는 간극에 대해 유디트는 일견 단순해보이지만 예리한 눈빛으로 그 모든 것을 알아보고 "어떤 방식으로든" 이해한다.  

  유디트의 이야기까지 듣고 나서 책을 덮으면 처음 "사랑"의 모습이라고 느꼈던 일롱카의 애닯은 모습뿐만 아니라 페터의 마음, 유디트의 욕망까지 결국 모두 "사랑"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남녀의 사랑과 결혼의 이야기는, 결국 한 인간과 그를 둘러싼 문화,역사,사회적 환경 모두가 뒤엉켜 있는 것이라는 것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세상에 사람이 이토록 많을진대 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모습은 또한 얼마나 다양할 것인가. 그리고 한 사람이 그토록 다양한 경험과 환경으로 이루어진 존재인데, 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만남과 사랑은 얼마나 많은 다른 생각과 다른 기대를 품고 있을 것인가. 주인공의 이야기에서 잠깐 한눈을 팔아 산도르 마라이라는 작가의 삶에 관심을 가진다면, 이 책을 읽는 시선은 좀 더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그의 망명생활과 결국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끝마친 삶을 알고 나면, 유디트의 이야기 속에 조금은 자세히 등장하는 이 이야기의 제4의 주인공이라 할 만한 작가 "라자르"의 삶에 몰입하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의 모든 주인공들이 그렇듯이, 산도르 마라이 자신도 결국 자신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쟁의 포화 속에 남겨진 라자르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장면은 그래서 더욱 생생하고 더욱 가슴아프다. 그 모든 차이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며 기대하고 실망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그들의 동상이몽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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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네. 영웅정신은 아니더라도 용기가 필요한 법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영심이 강하고 나약하고 두려움이 많아서 사랑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다네. 사랑을 주면서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맡기고 비밀을 털어놓으면서는 더욱 부끄러워하지. 인간은 원래 애정을 필요로 하며 애정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슬픈 비밀, 나는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네." ㅡ p. 257

"하지만 영혼이 혼자 있고 싶은 욕구로 넘치는 날, 쓸모없거나 거짓되거나 사소한 것을 모조리 영혼 안에서 내모는 것 말고는 더 이상 바라는 게 없는 날이 온다네...... 새로운 것을 향해서가 아니라 산속을 향해서, 외로움과 죽음을 향해서. 그것은 인간의 마지막 여행일세. 인간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어......특정한 삶의 단계에 이르면 이러한 갈망이 몹시 강해지면서 갑자기 외로움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게 되네. 그것은 귀에 익은 소리일세. 바닷가에서 태어난 사람이 시끌벅적한 도시에서 살다가 어느 날 밤, 꿈속에서 바닷소리를 듣는 것과도 같아. 목적 없이 혼자서 산다는 것.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나누어주고 길을 떠나는 것. 영혼을 깨끗이 정화하고 기다리는 것."  ㅡ p. 391

"사람들은 대부분 갈구하는 것,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을 절대로 인간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리려 하지 않네. 우리가 함께 살면서부터 우리의 지난 세월을 열병처럼 뒤덮었던 견디기 어려운 긴장은 사라지고 없었어. 우리는 서로에게 단순히 남자와 여자, 신체적인 약점과 일상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인간에 지나지 않았어. 그런데도 그녀는 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나를 원했네. 내가 성직자나 다른 세상에서 온 숭고한 존재이길 바랐어. 그러나 나는 다만 희망을 버리지 않은 외로운 인간에 지나지 않았지." ㅡ p. 423

"자네가 아직 모른다면 꼭 말해주고 싶은 게 있네. 진실한 사랑은 언제나 아주 위험하다네. 내 말은 진실한 사랑의 목적이 행복, 목가적인 삶, 마주 잡은 두 손,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꽃피는 보리수나무 아래를 거니는 산책, 베란다의 아늑한 등잔불, 라벤더 향기 그윽한 안식처라 아니라는 뜻일세. 그것은 생활이지 사랑이 아니네. 사랑은 더 진지하고 위험한 불꽃을 피우며 타오르네. 이 파괴적인 정열을 체험해보고 싶다는 소원이 어느 날 싹튼다네. 이보게,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 사랑을 통해서 더 많은 건강과 안식과 만족을 누리려는 게 아니라 파멸의 위험을 무릅쓰고서 오로지 완벽하게 '존재'하고 싶어진다네." ㅡ p.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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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그 작가 아니? 혹시 그 사람이 쓴 책을 읽어본 적 있어? 나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읽었어. 비밀, 그래, 행여나 내 인생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을까 싶어서 샅샅이 읽었지. 그러나 결국 답을 찾지는 못했어. 그런 비밀들에는 원래 답이 없기 마련이거든. 오로지 우리의 삶만이 답변을 한단다. 그것도 이따금 아주 기습적으로."   ㅡ p. 21

"원래 그렇게 많은 애정을 쏟아서는 안 되는 법이야. 그 누구한테도,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애정을 쏟아부으면 안 돼. 사랑은 모두 사납게 날뛰는 이기심의 표현이야."  ㅡ p. 37

"인간이 고통을 통해 정화되고 순화되며 더욱 현명해지고 이해심이 많아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야. 오히려 고통 속에서 인간은 차갑게 냉정해지면서 무관심해진단다. 운명이 무얼 의미하는지 생전 처음으로 깊이 이해하게 되면, 오히려 침착해지는 법이야. 침착해지면서 이상하게도 외로워지고 불안해지지." ㅡ p.72

"내가 뭘 느꼈냐고? 내 운명은 내가 책임진다는 것. 모든 게 나한테 달려 있다는 것. 내 인생에서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호박이 저절로 넝쿨째 굴러 들어오길 기다릴 수는 없다는 것." ㅡ p. 87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언제나 상대방의 영혼을 빼앗으려 하는데, 그것은 죄입니다....... 자매님의 갈망과 사랑이 헌신적인 것이며, 자매님이 당연히 행복을 누려야 마땅하다고 그렇게 확신합니까? 그렇다면 여기에서 더 이상 무릎 꿇지 말고 삶이 자매님을 보낸 곳으로 가십시오. 맡은 일을 하면서 삶의 명령을 기다리십시오.   ㅡ 노신부가 일롱카에게 " ㅡ p. 103

"삶에는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아. 일들이 일어날 뿐, 그게 전부야." ㅡ p. 201

"세상만사가 보이지 않는 시곗바늘에 맞추어 일어나지 않나 싶어. 인간은 말이야, 사건이나 상황이 결정을 내린 후에야 비로소 '결정'을 내릴 수 있어. 단 한순간이라도 먼저 '결정'을 내리게 되면 자의적이고, 무의미하고, 비인간적이며, 어쩌면 비도덕적일 수도 있어. 삶은 뜻밖의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결정을 내리거든. 그러면 모든 게 너무 단순하고 자명해." ㅡ p. 223

"어느 날, 나는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 일어나 앉아서 미소를 지었어. 더 이상 마음이 아프지 않았어. 그리고 서로에게 맞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지. 지상에도 천상에도 없어. 그런 사람, 오직 나한테만 맞는 유일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다만 이런저런 사람들만이 존재하고, 모든 사람들은 서로 조금씩 맞는 면이 있지만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과 꼭 맞아 떨어지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지. 완벽한 사람은 없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세상에 둘도 없는 기적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빛만큼 어둠을 지닌 사람들만이 존재할 뿐이야," ㅡ p.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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