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우울 -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
앤드류 솔로몬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이 자신의 기분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다양한 용어들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이 ‘우울’일 것이다. ‘조금 우울하다’, ‘너무 우울하다’, ‘우울해서 죽겠다’라는 식으로 정도의 차이만 둘 뿐 알게 모르게 찾아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해 우리는 ‘우울’이라는 이름을 붙여 부른다. 우울증을 병으로 진단내리고 너무 슬픈 것도 병이 될 수 있음을 일반인들이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실제로 우울증 유병률이 모든 정신장애 중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오죽하면 마음의 감기라 불릴까) 아직까지 우울증에 대한 인식은 많은 경우 지나치게 단순하거나 지나치게 화려한 이해수준에 머물러 있다. 간혹 신문이나 뉴스에서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기사가 나오면 대개 사람들의 첫 반응은 의구심과 안타까움인 것 같다. ‘얼마나 슬펐길래 죽기까지..’, ‘죽을 용기로 더 열심히 살아보려고 해볼 순 없었을까’. 이는 대중들을 충격에 빠뜨리는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인 경우에 더욱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 모든 것이 나보다 나아보이고 미래도 유망해 보이는 사람의 우울증 투병이나 그로 인한 자살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 모순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는 우울증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에서 오는 반응이다. 만일 위의 일들이 우울증 때문이 아니라 치명적인 암세포 때문이었다고 하면 우리는 훨씬 수긍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저자는 우울증이 단순히 지독한 기분상태가 아닌 분명한 실재를 지니고 사람들을 덮쳐오는 무서운 질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하며 이 두툼한 한 권의 책을 통해 확실히 질병으로서의 우울증에 대해 밝히고 있다.

  이 책에는 저자 자신의 투병기뿐만 아니라 우울증에서 살아남은 다양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스토리가 실려 있지만, 이 책은 단순한 투병기가 아니다. 가슴에 와 닿는 진실한 글귀들이 있고 저자의 삶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마음으로 공감하게 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한결같은 저자의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고 (생각보다 매우) 객관적인 시선이다. 자칫 우울해질 수 있는 내용들(우울증에 관한 책이니 당연하다만)에 대한 방대한 양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마음이 크게 심란해지지도 지루해지지도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저자의 차분한 설득력 있는 어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빈곤층의 우울증 치료 필요성이나 우울증에 개입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요인들에 대해 말할 때 저자의 어조는 극히 호소력이 있거나 열의에 가득 찬 운동가의 목소리는 아니지만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부분을 회상할 때의 어조만큼이나 읽는 사람의 마음을 파고든다.

  치료, 중독, 자살, 역사, 가난, 정치 등 간결한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저자는 ‘우울증’ 이라는 주제 자체의 모든 측면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특히 우울증의 원인과 치료법들에 대한 장(章)은 비전문서적으로서는 매우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그가 기울인 노력을 짐작케 한다. 지하철에서 서서 들고 보려면 얼마 안 되어 손목이 아파오는 무게의 두꺼운 책이지만 다 읽고 나면 어느 하나 빠질 내용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드문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우울증이라는 주제에 대한 많은 사실들을 알려주는 것 이외에도 자신이 직접 겪은 체험을 통해 사람들이 우울증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들과 알아야 하는 것들, 그리고 오해하고 있는 것들을 차분히 밝혀나간다. 저자는 정보의 전달과 독자들의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훌륭히 잡아냈다.

  저자가 살고 있는 현대 미국사회에서도 우울증 투병은 신체적 질병의 투병과는 달리 비밀스럽고 남들이 알까 두려운 감추고 싶은 면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중년 주부들의 우울증에 대해서 ‘너무 삶이 편해서 고민이 없다 보니 생기는 병’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나도 보아왔고 우울증 환자를 둔 가족이나 환자 본인도 선뜻 그 문제를 솔직히 내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단 자신의 문제를 주변에 털어놓고 나면 이제껏 몰랐던 투병동지들이 가까운 곳에 얼마나 많이 존재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고 다시 한 번 놀라게 되는 경우도 보아왔다. 우울증은 그만큼 우리 주변에 가까이 와있지만 그에 대해 알고자 하는 노력은 많지 않다. 이 책은 우울증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좋은 책을 찾는 이들에게도 훌륭한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우울한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우울한 내용에 관한 책을 보냐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내 경험상으로는 무언가에 대해 알고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있는 것은 뜻하지 않은 순간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방식으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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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2-14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의 감기... 저도 지독하게 앓았던 적이 있었지요.
하긴 그땐 이 나라가 온통 앓고 있었는지도 모르고요.
한번 읽어보고 싶군요. 잘 읽었습니다.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사치코 2008-02-1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황이라고 해야하나요? 왜갑자기 적지 않은 나이에 이리 방황하고 우울한지 몰라 이책을 선택하였어요,,시켜놓고 기다리는 중이랍니다.
기다리는 중 리뷰를 읽어서 그런지 더욱 와닿고 객관적인 문체 또한 마음에 들어요^^
저도 필독하고 마음의 우울을 날려버렸음 해요,,

frost79 2008-02-19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저는 아직까지 지독하게 앓아본 적은 없지만
가까이에서 지켜봤던지라 그 힘듦을 조금은 알고 있답니다.
책을 추천하는 일은 항상 조심스럽지만,
곁에 두고 보시면 좋을 책이라 생각됩니다. 들러주셔서 감사해요 ^^

frost79 2008-02-19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치코님.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적지 않은 나이인 저도 상쾌하고 명확한 기분보다는
의뭉스럽고 안개에 싸인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 때가 훨씬 많은 것 같아요.
이 책은 정신과적 질병으로서의 우울증을 다루면서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주는 감동과 생각거리도 적지 않습니다.
전 우울증이라는 주제 자체도 좋았지만, 그 어려웠던 경험들을 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저자의 노력과 용기를 생각하면서 열심히 읽게 되더라구요.
사치코님께도 좋은 책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