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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아침도 출근 지하철 안에서 무표정한 사람들 틈에 끼여 바둥거리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아니, 눈 뜨며 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가 하루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그보다 두 시간쯤 전, 휴대폰의 알람 소리로부터 나의 하루는 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주 5일 근무제의 혜택을 보고,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 직장에 다니고 있는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 할 수 있지만 꿈마다 눈 감는 곳마다 너른 들판과 산 속 맑은 공기를 헤매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천성인가 보다. 그래도 더 높은 곳을 향해 더 큰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만을 부러워하지 않는 다행스러운 가치관 덕분에 내 삶은 엑셀보다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가 더 많다.
월든 호수. 소로우는 왜 그 곳에 통나무집을 지었는가. 나로서는 그 이유를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나야말로 결단과 용기가 부족해 그만큼 버리지 못하고 있을 뿐 마음속에서는 매일 통나무집을 짓고 그 안에 들어가 쉬고 있기 때문이다. 소로우의 글을 읽다가 몇 번이고 그가 가졌던 신념과 결단력에 감탄했다. 첫 장인 "숲 생활의 경제학" 부분이야말로 소로우의 월든 호수 생활을 낱낱이 드러낸다. 누구나가 가장 고민하는 일이지만 선뜻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하는 바로 그 질문, "도대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대답을 그는 속 시원히 낱낱이 드러내 보인다. 비록 워낙 오래 전에 쓰여진 책이라 지금의 경제관념과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아무리 해도 요즘같은 시대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들도 있긴 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비록 비난의 목적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소로우의 차근차근한 말투는 우리가 얼마나 불필요하게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비참하게 보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衣. 食. 住. 얼마나 더 많이 입고, 먹고, 큰 집을 가져야 하는가. 소로우의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단순한 것들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는 동시에, 실은 소로우의 의식주만으로도 충분히 살아내기에 무리가 없다는 것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안다는 것이 행동하는 것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소로우가 이 글을 쓴 것은 150여년 전의 일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우리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환경"이라는 이슈가 케케묵다고 생각되거나 이제는 지겹게 느껴지는 사람들이라면 어차피 들을 귀도 없겠지만.... 물론 소로우는 월든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묻혀 살면서 사람들이 자연환경의 소중함을 경시하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여기지만, 적극적인 환경보호론을 펼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월든 호수의 일부가 되어 생활하는 그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누구라도 그 통나무집에 한 번쯤 불청객이 되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잠시 딴 소리를 하자면,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묘사"에 대해 배우고 작문숙제를 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자연에 관한 묘사라면 소로우의 월든 호수에 관한 묘사가 예문으로 선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듯한 묘사가 무엇인지를 소로우가 알려줄 것이다.
처음의 얘기로 돌아가서 소로우가 월든 호수에 들어간 이유를 말하자면, 그의 입을 통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안타까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p.130> 그저 살아내는 삶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 숲을 택했다고 소로우는 말한다. 그렇기에 남들에게는 한가하고 게으른 실험 정도로만 보였을 숲에서의 생활이 그에게는 매순간 깨달음이었고 소중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내게 들려온 소로우의 목소리는 이런 것이었다. 모두가 월든 호수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인생의 참된 목적이 될 수 없는 외적인 것들을 위해 귀한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인생의 가치가 너무나 소중하기에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는 대신 좀 더 가벼워져야 한다. 인생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스스로 정한 삶의 목표 또한 제각각일 것이나, 자신의 마음 속 어디쯤 월든 호수를 찾아 통나무집을 짓고 쉬어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이후라면 눈이 퍼붓는 한겨울이나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여름날, 찾아오는 이 하나 없어도 자신을 둘러싼 공기를 벗삼아 책 한 권 읽을 수 있는 고독의 여유가 우리에게도 찾아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