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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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느 순간 갑자기 불현듯 무언가엔 대한 깨달음이나 통찰 혹은 이전과는 다른 생각이나 느낌이 찾아올 때를 "아하 경험(A-ha experience)"이라고 한다.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의 내 느낌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하!". 사랑이라는 주제, 누구나 다 경험하지만 그 누구의 경험도 서로 같지는 않은, 아니 사랑의 당사자 두 명의 경험조차도 같지 않기 일쑤인 그 사랑이라는 것. 아무리 과학적으로 입증하려 해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가슴 절절한 명언을 남겼어도 알려고 할수록 더 모르겠는.. 그 놈의 사랑이라는 것 말이다.

  베스트셀러라면 작품이건, 작가건 경계부터 하게 되는 탓에 이제야 알랭 드 보통을,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며칠간 들고 다니며 읽었더니, 지나다니며 보던 사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아직도 이 책을 안 읽었었냐는 이야기가 많았으나, 그래도 그 중에는 "알랭 드 보통 책 여러 권 봤는데, 이 책이 제일 좋더라구요."라는 기분좋은 이야기가 제일 많았다(한 권을 제대로 선택했다는 만족감!...^^;;).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닌데, 확실히 (좋은) 소설의 매력은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안타깝게 중간에 책갈피를 꽂으며 다른 활동으로 정신을 옮겨야 할 때의 아쉬움은 다시 책장을 펼쳤을 때의 기대와 흥분으로 충분히 보상받으니 말이다.

  책에 관해 얘기하자면, 아니 줄거리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나의 이야기전달실력으로는 별로 흥미로울 것 없는 그저 그런 연애소설이 되고 말 것이다. 우연히 만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과 갈등과 헤어짐, 이 얼마나 얼마나 단순한 줄거리인가 말이다. 기억력을 원망하며 앞 장을 뒤적이게 만드는 복잡한 복선이나, 침을 꼴딱꼴딱 삼키게 만드는 19금 묘사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반전도 없고 우리나라 드라마라면 빠지지 않았을 출생의 비밀이나 불치병, 교통사고 따위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빠져드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들이 없기 때문이다. 어쩐지 얼마 전 남자친구와 다툰 내 이야기 같은 에피소드들과,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떠올리게 하는 갈등의 과정들은 그저 너무 친근한 이야기들이어서 헛웃음을 짓게 할 때가 많다. 하지만 너도 겪고, 나도 겪는 그 흔한, 그러면서도 세상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어 알고 보면 너무나 다들 독특하고 기구한 사랑의 경험들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아하!" 경험을 선사한다. 뭔가 다 알 것 같은데 입 안에서 뱅뱅 맴돌기만 하고 차마 떠오르지 않았던 그 단어들로 바로 그 자리에서 정확히 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알듯 말듯 떠오르지 않아 답답했던 단어를 누군가 정확히 이야기해주었을 때 느껴지는 청량감을 아시는지? 그 싸아~한 청량감을 충분히 맛 볼 수 있는 기회이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자면,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만큼의 적절한 중량감도 내게는 이 책의 큰 매력 중 하나였다. 철학과 정치, 종교, 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개념과 지식들을 연인들의 복잡한 사랑과정에 섞어 버무려 낸다는 것이 위험한 줄타기처럼 위태로워 보일 수도 있는데, 이 책을 보면 그 작업이 얼마나 유쾌하고 진지하게 완성되었는지 알 수 있다. 몇 번이고 곱씹어 보며 내 경험을 돌아보게 만드는 구절도 있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구절도 있다. 바쁜 일정 끝에 오랜만에 손에 잡은 소설 한 권 덕분에, 얼마간은 현실과 상관없이(말인즉슨, 현실의 사랑이 나를 아무리 고달프게 하여도) 마음 가득 시원함을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은 마지막 장에서 과연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지, 우리가 사랑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묻는다. 주인공은 여러 가지 문장을 통해 복잡한 교훈들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짐작하듯이 결국 자신의 사랑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말해질 수 없을 것이다. 하긴, 교훈을 얻는다는 일 자체가 어쩌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알랭 드 보통의 말대로 "우리가 바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우리가 현자가 되지는 않았다". 결국 새로운 사람과 시작하는 사랑은 이전 경험에서 얻은 학습과 교훈이 적용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라운드가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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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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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선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묘한 감동을 준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잠시 와 계시던 외할머니에게서 처음 6.25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약간은 복잡하고 심란했던 그 느낌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그저 나에게는 너무 먼 옛날 이야기였고, 책이나 TV,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사건이었는데 어느 날 밤 옆에 누워 뒤척이시던 외할머니에게는 너무도 생생한 젊은 날의 고통스런 기억이었던 것이다. 6.25 전쟁이 일어난 지 고작해야 몇 십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전쟁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온 몸으로 겪어낸 사람들이 생존해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데도, 내가 겪지 않았기 때문에 어쩐지 그 큰 사건은 나와는 영영 무관하게만 느껴졌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그저, 외할머니가 그 전쟁을 실제로 겪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그러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외할머니의 젊은 시절, 엄마가 갓난아이였던 시절에 대해 상상해보게 되었고 외할머니의 한숨섞인 생생한 경험담을 들으면서 마치 내가 누워있는 곳이 마을 뒷산 커다란 나무 둥치 아래이고 아랫마을로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에 그 날 밤 내내 잠을 설쳤었다. 그 날 밤 일은 내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되었고 덕분에 나는 어른들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듣는 일이 전혀 따분하거나 지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름대로 깨닫게 되었다. 그 분들이 살아낸 시대는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 전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나의 외할머니가 무관하지 않듯이.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관련되어 있는 일일수록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이야기보다 외할머니의 옛날 이야기가 내게 더 깊이 각인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이다. 당시에 나는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을 먼저 읽은 후였는데, 우연히(아니면 선생님의 권유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12권이나 되는 조정래의 아리랑을 읽고 나니 누구인지도 모르는 '김 산' 이라는 사람에 대해 '님 웨일즈'라는 외국인(그 때나 지금이나 묘하게도 내게는 요정이름처럼 느껴진다)이 쓴 한 권짜리 책에 대해 흥미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책 읽기를 10년 가까이 미뤄왔는데, 막상 손에 잡고 나서는 이틀만에 읽어버렸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외할머니의 전쟁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그 날 밤이 생각난다. 나와 상관없게만 느껴지던 이야기들, 사람들, 그들의 삶들. 하지만 나와 전혀 무관하지 않았음을. 

  김산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던 1905년에 태어났다. 잔혹한 시대가 시작되던 해의 운명을 타고났던 것일까, 그의 생애는 조국의 신음소리 만큼이나 깊고 위태로웠던 것 같다. 반항다운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죽음과 고통을 신의 뜻으로,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기독교의 무력함에 실망과 좌절을 느끼고 행동하는 혁명가의 길로 뛰어든 어린 소년은 무정부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를 거쳐 항일전사로서의 마지막 길을 정비하던 중 억울한 처형으로 33년의 인생을 마감한다. 중국혁명과 공산주의, 중국공산당의 역사에 대한 많은 지식 없이도 '김산'이라는 또 하나의 가명으로 풀어낸 이 사람의 인생이야기에 빠져드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이 사람의 삶이 곧 그 거대한 역사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의 활동을 통해 중국 공산당의 활동을 알 수 있고, 소비에트가 어떻게 성립된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며, 그의 사상이 변화되고 발전되는 과정을 통해 그 시대의 정신이 무엇이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고, 그가 평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바는 혁명과 자유와 독립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말해준다. 거친 시대의 격랑에 휩쓸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배반하지 않는 그의 변함없는 모습은 어찌 보면 순진하리만큼 고집스럽다.

  영웅적인 자화자찬이 아니어서 더욱 이 책에 마음이 끌리고 이 책의 주인공에게 정이 가는 것일 게다. 김 산은 자신이 겪었던 사건과 자신이 이루어낸 혁명의 성과들을 이야기하지만 그 톤은 결코 거만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과 역사와 연애와 결혼에 대한 자신의 고민들을 숨김없이 드러냄으로써 자신도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고민하고 부대끼는 한 명의 젊은이에 지나지 않음을 고백한다. 그 고백이 너무나 꾸밈없어서 과연 이 순진한 젊은이가 혁명의 선봉장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겪어내고, 그 숱한 위험을 무릅쓰며 수많은 지하조직을 이끈 혁명가가 맞는가 싶을 때도 있다. 분명 그에겐 이상주의자의 면모가 있었다. 전쟁과 혁명의 틈바구니에서 인간의 가장 추악한 잔인함과 배신의 행태들을 접하면서도 끝까지 신념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얼마간은 그의 이러한 면모 때문일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이었는지 실패였는지 하는 가볍지 않은 주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대표적인 공산주의 국가였던 소련과 중국의 현재, 그리고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의 실상을 접하고 있는 나로서는 만일 그가 1938년에 죽지 않고 광복을 맞았더라면 그의 정치사상과 신념은 과연 그로 하여금 어떤 길을 택하게 했을까 궁금해진다. 아니면,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지 5년만에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는 원수가 되어버린 조국의 모습을 보는 것이 그에겐 죽음보다 더 힘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삶의 다양한 위치에서 크고 작은 나름의 투쟁을 벌이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하지만 "투쟁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고, 그 투쟁의 대립물 속에 나와 인간생활의 일치가, 나와 인간역사의 통일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나는 얼마나 치열하게 나의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가 살았던 33년. 이제 나는 그 나이가 멀지 않았다. 혁명가에게는 감옥에 있지 않는 자유의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운 1년 동안 몇 년의 일을 해내야 한다던 자신의 말처럼, 김산의 33년은 다른 사람들이 66년을 살아도 해내지 못했을 일들로 가득차 있다. 물론, 한 사람의 인생이 그의 생전의 성과로만, 그가 이룬 일로만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들을 얼마나 소중하고 후회없이 보내는지에 대한 평가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던져야 할 피할 수 없는 질문일 것이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시간과 장소의 안락함,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이 자유와 선택의 권리들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나의 부모님, 그들의 부모님, 또 그들의 부모님과 그들의 부모님. 김산의 말대로 그들 모두가 역사이다. 물론 이 순간의 나도.

["한 사람의 이름이나 짧은 꿈은 그 뼈와 함께 묻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의 마지막 저울 속에서는 그가 이루었거나 실패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어지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라 할지라도 이 객관적 사실은 바꿀 수가 없다. 그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사람이 역사라고 하는 운동 속에서 점하는 자리를 빼앗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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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 인격 - 24개의 인격을 가진 한 남자의 처절한 투쟁의 기록
캐머론 웨스트 지음, 공경희 옮김 / 그린비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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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중인격장애(지금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고 불린다)는 정신장애 중 가장 신비롭고도 극적인 장애로 여겨진다. 히치콕의 고전물 '싸이코'에서부터 최근까지 다중인격장애를 다룬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만 봐도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을 여타 동물과 구분짓는 가장 본질적인 특징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아(self)" 혹은 "정체감(identity)" 즉,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안다는 것이기에 이런 기능이 분열되어 여러 명의 자기 자신을 갖게 되는 이 병이야말로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것이다. 다중인격장애의 병리적 특성 자체가 드라마틱하고, 일반인의 상식과는 어긋나는(그래서 신비롭게도 느껴지는)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서 이 병에 대해 지켜보거나 영화를 보는 일은 긴장감 있고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이 병을 직접 겪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렇듯 자신의 상태가 신기하고, 자신의 삶이 영화같다고 느껴질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적나라하게.

   어떤 직장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그 직장에서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묻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생생하듯이, 어떤 질병이나 장애에 대해 생생한 정보를 듣고 싶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병을 겪고 있는 사람의 얘기를 듣는 것이다.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과는 반대로, 실제에서 다중인격장애를 겪었던, 혹은 겪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접하기는 쉽지 않다. 다중인격장애라는 진단을 내리기까지의 어려움도 큰 데다가, 우울증처럼 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주는 의미는 더욱 크다.

   캐머론 웨스트는 24개의 서로 다른 인격체를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전형적인 다중인격장애이다. 전형적이라 함은, 그의 발병원인과 그가 겪는 증상들, 그리고 치료절차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생생하게 다중인격장애의 틀에 들어맞는다는 뜻이다. 각기 다른 사람 24명을 만나거나 기억하는 것도 보통의 우리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자신 안에서 그 수많은 목소리들의 주인공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절망감을 상상해보라. 그의 삶이 극적이긴 하지만, 영화나 소설의 그것처럼이 아닐 것은 분명하다. 남들에게는 쉽게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 자신에게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 되었을 때, 과연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무너지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지....  더군다나 그의 해리장애를 촉발시킨 어린 시절의 끔찍한 성적 외상경험들이 중년이 된 그에게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력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끔찍한 일들을 겪으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작은 남자아이가 결국 자기를 지키기 위해 자기 자신을 분리시킬 수 밖에 없었던 그 절박함이, 스물 네 번이나 자신을 쪼개고 또 쪼갤 때까지 겪어야 했을 그 고통이 책을 읽는 내게도 전해져왔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처음에도 잠시 언급했듯이 "과연 자아(self)란, 정체성(identity)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 하게끔 만드는 책의 주제 때문이다. 극단적인 장애의 형태를 띠지는 않더라도, 자기 자신의 통합된 정체감에 대한 고민은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과연 통일적인, 하나의 나 자신은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그런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내가 아는 나인지 내가 모르는 나인지. 캐머론 웨스트의 장애를 보면서 인간의 인간다움이 도대체 얼마나 복잡한 모습으로까지 나타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그가 장애를 극복해나가는 눈물겨운 노력들을 읽어나가면서 인간의 강함이 얼마나 위대한 힘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설같은 흥미와 재미에 덧붙여, 많은 것을 남겨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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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6-05-09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4개의 서로 다른 인격체. 아....24명의 이름을 외우기도 어려운데, 24명으로 쪼개져서 살아야 하는 캐머론이란 사람은....도대체, 정말, 얼마나 절박한 상황들을 겪었을까요? 캐머론의 삶을 읽으면서 혹시 재미있을까봐 걱정이 되네요. 보관함에 넣었어요.^^

frost79 2006-05-09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실 읽으면서, 누군가의 실제 삶을 그저 영화처럼 소설처럼 흥미롭게만 여기게 되면 어쩌나 했는데.. 읽다 보니, 오히려 차라리 영화나 소설이었으면 싶더라구요..^^; 읽다 보면 마음아프기도 하고, 그의 상처에, 그 상처를 치유하려는 고된 노력에 감동까지 느껴지실 수도 있답니다. 전 그랬거든요~ 걱정말고 한 번 읽어보세요. ^^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 -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매트 리들리 지음, 김한영 옮김, 이인식 해설 / 김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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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일궈낸 천재들이나 혹은 완전한 반대편에서 범죄사에 길이 남을 잔인한 범행을 저지른 범인들을 대하게 될 때 자연스레 갖게 되는 의문이 있다. "과연 저 사람들이 그토록 뛰어나게 혹은 악하게 된 것은 그렇게 타고났기 때문인가 아니면 부모와 사회가 그 사람에게 미친 영향 때문인가?"

   인간이 타고난 본성에 따라 결정되는 선천적 존재인지 아니면 출생 이후의 양육과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후천적 존재인지에 관한 질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중요한 주제였다.  비단 정치학, 생물학, 유전학, 심리학, 사회학 등등의 전문분야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많은 학자들 뿐만 아니라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이 문제는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떠오른다. "내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지능의 결과인가 아니면 내 노력의 결과인가, 우리 아이의 부산한 성격은 내 양육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아이의 타고난 성향 때문인가" 등등...  약 100여 년에 걸쳐 격렬하게 달아올랐던 논쟁의 결과물은, 격렬했던 논쟁만큼이나 명료하고 똑 부러지는 정답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내심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내용인 듯 싶다. 유전학과 생물학, 심리학과 사회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 인간이 인간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에는 유전의 영향과 환경(양육)의 영향이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밀접하게 상호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이제는 별 무리 없이 인정하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유전학 분야에서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밝혀냈다는 소식은 우리를 흥분시키지만 말이다. 공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밝혀졌다고 해서 그 유전자의 존재가 그 사람의 공격성 정도를 결정짓는 결정적, 유일한 요인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거의 없다는 얘기이다.

   매트 리들리가 이 책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내용도 바로 이런 것들이다. 본성론자와 양육론자의 양편에서 들고 나왔던 강력한 주장들과 그에 맞서는 반대편의 주장들, 그리고 각 진영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내세웠던 수많은 증거들과 실험들을 꼼꼼히 살피면서 저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하지만 아주 단호하게 우리를 이분법적 관점에서 끌어내린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저자가 무엇을 주장하는가"를 살피는데 있지 않다. 왜냐면 결론은 이미 대부분의 우리가 동의하고 있는 본성과 양육의 상호작용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책의 재미는 "저자가 어떻게 주장하는가"를 살펴보는데 있다. 자신의 연구가설을 증명하는 논문을 작성할 때 가장 중요한 절차 중에 하나는 관련개념들과 비슷한 가설에 관한 이전의 연구논문들을 살펴보는 리뷰( review)작업인데, 매트 리들리의 이 책은 "본성과 양육 논쟁에 관한 집중적인 리뷰"라고 보여진다.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간 이루어졌던 논쟁을 정리하면서 리들리는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자신의 주장(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밖에 없는...)을 일관되게 이야기한다.  지나치게 반복되는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 얘기에 조금 지루할 수도 있지만, 유인원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지능, 정신분열증, 결정적 시기, 학습,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이슈들을 각 장에서 다룸으로써 그러한 지루함의 가능성을 줄여준다. 또한 각 진영에서 전개되는 갑론을박의 논쟁들과 설계자의 통찰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독창적인 여러 실험결과들은 적지 않은 즐거움이 될 것이다.

   인간의 성격 특성이나 지적 재능 등이 오로지 유전자에 의해서나 환경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결론보다는 양측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결론은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또 다른 면에서는 걱정스럽기도 하다. 3만여 개의 유전자는 인간의 다양한 특성을 나타내기에 너무 부족한 숫자라고 말했던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 이제 환경과 유전자가 주고받는 상호영향과 유전자의 발현가능성을 결정짓는 유전자 내부 체계에서의 수많은 조합가능성을 고려할 때 과연 어떤 행동의 발생요인이나 발현요인을 얼마만큼의 확신을 가지고 결론지을 수 있을지 말이다. 이 순간에도 나는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이 부모님이 내게 물려주신 유전자와 내게 주어졌던 환경 중 어느 부분에 더 크게 기인하는지를 잠시 생각해보았다. 책에 인용되었던 새러 홀디의 말대로 이분법 자체가 유전자에서 비롯되는 하나의 본성일지도 모르겠다.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에게 상호작용이란 단어가 경험적 진리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가보다.

* 책의 원제가 "Nature via Nurture(양육을 통한 본성)"인데, "본성과 양육"으로 번역된 이유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본성과 양육"은 언뜻 들었을 때 예전의 Nature vs. Nurture 를 떠올리게 하는데 말이다. 이분법을 쉽게 지각하고 받아들이는 우리의 본성적 경향에 충실하기 위한 환경적 노력이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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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 전2권 세트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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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는 책들의 도시" 라는 매혹적인 제목의 이 책은, 차모니아 대륙의 위대한 작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의 장편소설을 독일인 발터 뫼르스가 편집하고 번역한 것이다. 판타지 소설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어서인지, 아니면 나의 상상력이 너무 메말라버려서인지 처음에는 "차모이나 대륙"의 유명한 작가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또 그것을 독일어로 번역했다는 것에 대해 어리둥절해하다가, 책 표지의 작품설명을 보고서야 발터 뫼르스와 차모니아 대륙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차모니아 대륙은 독일작가 발터 뫼르스가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이며 그 곳의 생활과 문화, 물론 그 곳에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의 이야기도 모두 그의 상상력의 소산이다. 마지막 부분에 "발터 뫼르스가 독자에게 붙이는 말" 을 읽으면서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차모니아 문학, 특히 미텐메츠 작품의 충실한 번역가로 소개하는 그의 재치에 즐거운 웃음이 절로 났고, 정말로 발터 뫼르스의 작품이 아니라 발터 뫼르스가 번역한 미텐메츠의 작품을 읽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책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 두 권의 책은 정말로 책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말장난을 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여기에서는 책들이 주인공이며 책과 관련된 사람들만이 이야기에 등장한다. 작가들, 인쇄업자들, 출판업자들, 고서점상들, 책 사냥꾼들, 살아있는 책들, 위험한 책들, 그리고 꿈꾸고 있는 모든 책들. 대부시인이 남겨준 위대한 원고의 작가를 찾아 책들의 도시인 '부흐하임'으로 떠나는 미텐메츠의 위험하고도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눈 돌릴 틈 없이 빠르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작가적 상상력이 어떤 것인지, 현실세계에서 결코 경험하거나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나는 조금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자마자 그 경쾌한 상상의 이야기 속으로 푹 빠져들고 말았다. 미텐메츠가 부흐하임의 지하묘지 안에서 겪는 수많은 일들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군데군데 작가의 상상력이 빛나는 곳에서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가 다시 가야할 때도 있고 피식하고 웃다가 숙연해지기도 하고 주책없이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슬퍼지기도 한다. 특히나 미텐메츠가 부흐링 족과 이별할 때나 그림자 제왕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는 마치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영상들이 눈 앞에 그려져서 잠시 책을 덮었다가 가슴아파하면서 겨우 읽어나가기도 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부족들과 그들이 책에 대해 가지는 다양한 태도들에서 문학과 독자의 관계가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고, 값 나가는 책을 향한 책 사냥꾼들과 고서점상들의 끊임없는 집착과 탐욕을 통해 끝없는 욕망의 무서움을 알게 되고, 책들의 도시인 부흐하임에서 살아가는 작가들의 삶과 오름에 대한 열망을 통해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작가의 열망을 뜨겁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들... 결코 죽은 종이가 아닌, 살아있고 꿈꾸고 씌여지고 읽혀지고 기억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책들의 모습을 통해 과연 나에게 글이란, 문학이란, 책이란 어떤 의미였는지 다시 되새겨보게 된다. 책장 속에 꽂혀져 있는 책들과 오래전에 읽혀져 오랫동안 잊혀졌던 좋은 작품들을 다시 꺼내 쓰다듬어보게 된다. 본문에 나오는 누군가의 말처럼 실로 우리가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문학과 글이 우리네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크고 깊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를 생각하고 꿈꾸게 해주는 고마운 책들에게도 모자람 없는 관심과 사랑을 줘야 하지 않을까.... 더 신중하게 읽고, 더 소중히 간수하고, 더 오래도록 기억함으로써 말이다. 아무런 딴 생각없이, 문법이나 번역, 오자, 탈자, 작가의 주장에 대한 어떠한 비판적 느낌도 없이 오로지 내용에만 푹 빠져서 꿈꾸듯이 책을 읽은 것이 정말 오랫만인 것 같다. 다 읽고 나니 굉장한 꿈을 한 편 꾼 듯한 몽롱한 기분이 드는 것이 마치 꿈 속에서 부흐링 족의 마술에 걸렸던 것만 같다. 현실에 지치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해져서 어떤 상상을 해도 더 이상 상상이 될 수 없을 때, "꿈꾸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으로 가길 바란다. 그 곳에 가면 꿈꾸는 책들이 당신에게 알려줄 것이다. 진짜 꿈 같은 상상이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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