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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4월
평점 :
'세상을 읽는 노철학자의 지혜'라는 이 책의 머릿말과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제목에 매혹당해 이 책을 구입했다(요즘 나에게 '게으름'이라는 단어만큼 환상적으로 다가오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아니면 불행히도) 이 책은 제목에 이끌려 책을 고르는 나의 도서구입행태에 대한 확신을 다시 한 번 주었다.
버트란드 러셀이라는 철학자에 대해, 그의 철학이나 사상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상태였지만 이 작은 책 한 권으로도 나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책에서 그가 얘기하고 있는 것들 중에는 이미 시대에 맞지 않게 되어버린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이미 30년이 훨씬 지났으니 그가 생전에 했던 얘기가 현재의 상황과 다르다는 것은 사실 당연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나 서구의 문명에 관한 그의 생각을 읽다보면 그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세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떠올려 볼 수 있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첫 글에서, 모든 사람이 하루에 4시간만 일한다면 모두에게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면서 충분한 여가를 즐길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한편 그가 경계하고 있는 공산주의적 색채를 띠기도 하는 이러한 주장은 실상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너무나 긍정적인 기대를 품는 듯한 생각이 들게도 하지만, 모두가 편해지기 위해 발전한 현대의 생산 방식하에서 일하는 사람은 과로하고 실업자는 점점 늘어나고만 있다는 그의 설명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건축에 대한 몇 가지 생각'에서도 러셀은 유사한 모습을 그려낸다. 공동생활과 공동체에 좀 더 투자하고 의지함으로써 가정이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는 그의 주장과 그에 대한 청사진은 역시 이상적인 사회주의의 긍정적 역할에 대한 그의 확신의 결과이다. 특히나 이 장에서는 러셀이 여자의 독립과 아이에 대한 훌륭한 교육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서는 교육의 중요성을 보다 본격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데, 아이들에 대한 호의와 진정한 배려의 마음을 설파하는 데서 그의 교육자적 성품이 잘 드러난다. 이 책에서 러셀은 정치적 의견 특히 파시즘과 공산주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전달하는데에도 여러 장을 할애하고 있다. 파시즘과 공산주의, 개성의 말살과 획일성을 그토록 경계하면서도 '사회주의를 위한 변명'이라는 장에서 러셀은 진정한 사회주의야말로 인류의 행복을 위한 최고의 적응책이라고 항변한다. 그가 지지하는 사회주의가 어떤 것이며 어떻게 달성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긴 하지만 흥미로운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부분은 '무용한 지식과 유용한 지식'이었다. 요즘처럼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지식만이 각광받는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특정 정보가 아니라 전체의 시각에서 본 인생의 목적에 관한 지식이라는 러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색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고 전체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늘 세상에서는 '무용한 지식'으로 천대받아왔던 종류의 것들이다. 사실 효율성의 시각에서라면 이 책 또한 '무용한 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책 본문의 내용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또 한 부분은 바로 책 맨 뒷부분에 실린 우드하우스 교수의 발문이다. 훌륭한 책을 만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 책을 훌륭하게 이해하고 써내려간 서평을 읽는 것 또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러셀의 단편에서 놓치고 간 부분에 대한 느낌까지 마무리하게 해주는 그의 발문까지 더해 이 책에는 매력적인 글 15+1편이 실려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