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떨어져 지내다가 집으로 오랫만에 돌아오게 되면,

할 일도 없는데 새벽 늦게까지 잠이 오지를 않는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짧고, 그 시간이 너무 아쉬워서

차마 잠들지 못하는 것 같다.

괜시리 부모님이 주무시는 방문도 한 번 열어보고,

언니와 동생이 자고 있는 방문도 한 번씩 열어보고,

먹지도 않을 거면서 냉장고 문도 한 번 열어보고,

그러다가 겨우겨우 애써서 잠이 들고

다음날 아침의 식구들의 부산한 움직임 속에서

거실의 텔레비전 소리와 가족들의 목소리와 엄마의 음식하는 소리 속에서

눈을 뜰 때....

외롭지 않다...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내 가족..

떨어져 지내고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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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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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읽는 노철학자의 지혜'라는 이 책의 머릿말과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제목에 매혹당해 이 책을 구입했다(요즘 나에게 '게으름'이라는 단어만큼 환상적으로 다가오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아니면 불행히도) 이 책은 제목에 이끌려 책을 고르는 나의 도서구입행태에 대한 확신을 다시 한 번 주었다. 

버트란드 러셀이라는 철학자에 대해, 그의 철학이나 사상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상태였지만 이 작은 책 한 권으로도 나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책에서 그가 얘기하고 있는 것들 중에는 이미 시대에 맞지 않게 되어버린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이미 30년이 훨씬 지났으니 그가 생전에 했던 얘기가 현재의 상황과 다르다는 것은 사실 당연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나 서구의 문명에 관한 그의 생각을 읽다보면 그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세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떠올려 볼 수 있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첫 글에서, 모든 사람이  하루에 4시간만 일한다면 모두에게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면서 충분한 여가를 즐길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한편 그가 경계하고 있는 공산주의적 색채를 띠기도 하는 이러한 주장은 실상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너무나 긍정적인 기대를 품는 듯한 생각이 들게도 하지만, 모두가 편해지기 위해 발전한 현대의 생산 방식하에서 일하는 사람은 과로하고 실업자는 점점 늘어나고만 있다는 그의 설명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건축에 대한 몇 가지 생각'에서도 러셀은 유사한 모습을 그려낸다. 공동생활과 공동체에 좀 더 투자하고 의지함으로써 가정이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는 그의 주장과 그에 대한 청사진은 역시 이상적인 사회주의의 긍정적 역할에 대한 그의 확신의 결과이다.  특히나 이 장에서는 러셀이 여자의 독립과 아이에 대한 훌륭한 교육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서는 교육의 중요성을 보다 본격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데, 아이들에 대한 호의와 진정한 배려의 마음을 설파하는 데서 그의 교육자적 성품이 잘 드러난다.  이 책에서 러셀은 정치적 의견 특히 파시즘과 공산주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전달하는데에도 여러 장을 할애하고 있다. 파시즘과 공산주의, 개성의 말살과 획일성을 그토록 경계하면서도 '사회주의를 위한 변명'이라는 장에서 러셀은 진정한 사회주의야말로 인류의 행복을 위한 최고의 적응책이라고 항변한다. 그가 지지하는 사회주의가 어떤 것이며 어떻게 달성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긴 하지만 흥미로운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부분은 '무용한 지식과 유용한 지식'이었다. 요즘처럼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지식만이 각광받는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특정 정보가 아니라 전체의 시각에서 본 인생의 목적에 관한 지식이라는 러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색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고 전체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늘 세상에서는 '무용한 지식'으로 천대받아왔던 종류의 것들이다. 사실 효율성의 시각에서라면 이 책 또한 '무용한 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책 본문의 내용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또 한 부분은 바로 책 맨 뒷부분에 실린 우드하우스 교수의 발문이다. 훌륭한 책을 만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 책을 훌륭하게 이해하고 써내려간 서평을 읽는 것 또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러셀의 단편에서 놓치고 간 부분에 대한 느낌까지 마무리하게 해주는 그의 발문까지 더해 이 책에는 매력적인 글 15+1편이 실려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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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 2004-05-23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으르게 사는 즐거움' 도 추천합니다~

frost79 2004-05-23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읽어볼께요. ^^
 

'일찍이 알렉산드리아 박물관은 티몬 같은 염세가에게 뮤즈의 조롱 안에서 모이를 쪼는 책벌레들을 위한 것으로 보인 바 있는데, 오늘날 연구 도서관이 외부 인사들에게 그러한 식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의 문명은 그러한 책벌레들 덕분에 앞으로 나아갔고 또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 '세상 모든 책벌레들의 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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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서재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로이 매클라우드 외 9명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세계사 속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니 어쩌면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어떤 시대나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내 생각엔 33세의 나이로 요절한 위대한 제왕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그가 건설한 도시 알렉산드리아가 바로 그러한 경우인 것 같다. 처음에는 이 책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 물론,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다. 특히 수많은 장서들이 도서관에 입성하기까지의 다양한 경로(책 주인이 필사본만 얻어갈 수 있어도 다행이었다는..섬뜩한..^^;)와 그 과정에 드러나는 권력자들의 욕망,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거쳐간 쟁쟁한 시대의 인물들의 이야기까지. 하지만 이 책은 비단 도서관만이 아닌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의 다양한 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알렉산드리아의 문화, 예술, 사회정황 등 그 어떤 하나의 테마로도 훌륭한 주제가 될 법한 이야기들이 알차게 들어있다.

하나의 테마를 놓고 여러 명의 저자가 각기 자신의 전문분야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는, 다양한 측면이라는 점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반면, 정작 그 테마의 정체에 대해서 모호해지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구성방식의 장점을 훨씬 더 살리고 있는 것 같다. 알렉산드리아의 극장이야기나 신플라톤주의에 관한 장들은 기본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깊고 장황하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지만 책의 흐름을 놓칠 정도는 아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한 만큼 조금 더 신중하게 읽는다면 얻을 수 있는 지식도 적지 않다. 이 책의 저자들은 고대 도서관의 옛 터에 초현대적인 국제도서관을 건설하려는 프로젝트를 돕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친구들'이라는 조직의 시드니 지부 회원들이다. 각 장을 읽다보면 저자들이 알렉산드리아와 그 시대에 대해 얼마나 큰 애정을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기억하고 그 줄기를 이어가려는 움직임에 마음으로나마 참여하게 된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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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스 -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형선호 옮김 / 동방미디어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처음 발행된 것이 2001년 1월. 그 뒤로 3년 동안 31쇄를 발행했으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았음에 틀림없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았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랫만에 들른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나는 갑자기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우선 내가 발견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책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미국사회의 새로운 기득권계층에 대한 저자의 발견이라는 거창한 주제로 일관되어 있지만 오랜 기간 대중을 상대로 글을 써온 저자의 경력 때문인지 독자를 지루하게 하는 법은 거의 없다. 위트섞인 문장을 구사하는 방법이나 결코 사람을 질리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주장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줄 아는 능력은 저자의 강점인 동시에 이 책의 강점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선택했던 또 다른 이유를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가 읽기에 이 책은 처음에는 독자를 현혹시키면서 책을 읽어나가게 만들지만, 다 읽고 나면 결코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겼던 것 같다. 저자는 서문에서 스스로 자신의 책에는 많은 통계 자료나 이론이 등장하지 않으며 그저 쉬운 방식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분명 저자는 소비, 문화, 직업생활, 종교생활, 정치생활을 아우르는 전반적인 사회문화적 삶의 패턴에 대해 꽤나 많은 인용자료들(통계자료는 없을지라도)과 함께 자신의 설명을 이론화하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무언가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의 목적이 미국사회의 새로운 기득권계층인 이른바 '보보'들에 대한 이론적 규명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저자가 쉬운 방식으로 사회현상을 개괄적으로 짚어보겠다고 한 것이 책에서는 무척이나 확고한 이론의 모습으로 읽는 이들을 매료시킨다.

 미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한 나로서는 '보보스'라는 계층이 정말로 역사속에서 변증법적 '합'과 같이 '정'과 '반'을 거쳐 등장하게 된 새로운 기득권계층인지를 논의할만한 위치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물론 저자가 여러 번 인정하기는 했지만, 스스로 보보 문화의 옹호자이자 보보의 일원이라고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저자의 글이기에 조화와 화합을 내거는 완벽한 계층처럼 그려지는 이 책의 보보에 대해서는 독자들 스스로의 판단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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