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승환의 노래를 참 좋아한다. 1집부터 해서, 이오공감, 라이브앨범 모두 거의 다 갖고 있다. 하지만 요즘같은 세상에서는 온 마음을 다 바닥에 놓아두고 그냥 "노래만, 음악만" 듣는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처럼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아무 것도 안하면서 방 안에서 노래만 듣고 있기가 민망해진 것도 대학생이 되면서 부터였던 것 같다. 걸으면서, 혹은 어딘가로 향해 가면서 달리 무엇을 할 수 없는 시간에만 음악을 듣게 된 것도 아마...

무작정 걷고 잠자리에 누워 혼자 생각할 일이 많았던 어느 한 달간의 여행 동안, 무료함을 달래려는 목적으로 MP3 player를 가져가게 되었다. 곡 선정은 동생에게 부탁한 채로 말이다. 동생 녀석, 자그마한 MP3에 많이도 곡을 넣어주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힙합음악, 댄스곡에서부터 나름대로 내 취향을 고려해 준 발라드 음악까지 두루두루... 그 중에서 이 한 곡. 여행 후반에는 거의 이 곡만 듣게 되었다. 낯선 곳에서의 여행이라는 상황이 주는 뜻모를 우울한 감상이 더해져서였는지 몰라도 이 곡의 멜로디, 특히나 이 곡의 가사.. 왠만한 시 못지 않게 나의 감성을 자극한다. 사랑에 관한 온갖 정의가 난무하고 어딜 가나 채이는 게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역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슬픔조차 아름답게 만드는 힘 또한 사랑이다.


내 오랜 낡은 수첩 빛 바래진 종이 위에

분홍 글씨 그대 이름 내게 남아선 안 되는......


그 뒷모습 따라가보는 엄마 잃은 아이처럼

그대 손을 놓쳐버린 그 거리를 나 기억 못하네


많은 시간이 흘러서 우리 살아가는 작은 세상 몇 바퀴를 돌아

그대가 내 삶의 시작이었다는 뒤늦은 고백도 갈 곳이 없네


어쩌면 어김없이 지나는 가을 그 긴 옷자락

가려지는 슬픈얼굴 서로서로 비밀이 되가네


혹시 시간이 지쳐서 우리살아가는 동안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대가 내 삶의 끝이 돼 주기를 바라는 내 사랑 보여주겠네


먼 옛날 눈물로 지새던 밤 그대 기억도 못할 약속 가슴에 남아

혹시 시간이 흘러도 우리 살아있는 동안 다신 볼 수 없다 해도

그대의 태양이 다 지고 없을 때 말없이 찾아가 꽃이 되겠네

내 사랑 영원히 잠드는 잔디 위에 꽃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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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암흑뿐인 곳에 빛을 던지기 위해 노력하는 당신에게 사의를 표하고자 한다. 삶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자 한다. 그 목적을 위해 행동하는 당신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바이다.

   모든 사람이 풍족하게 먹게 되기를, 모든 사람이 치유받기를, 모든 사람이 사랑받기를.

-존 로빈스 "음식혁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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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니까 프로이트와의 논쟁에서 나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 일반적인 이론을 세우기 전에 우리가 다루어야 하는 살아 있는 인간에 대해 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개인이야말로 유일한 현실이다. 그 개인에서 분리되어 인류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향하면 향할수록 우리가 오류에 빠질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요즘 같은 사회적 동란과 변화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개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너무 많은 것들이 개인의 정신적, 혹은 도덕적 자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른 눈으로 세상의 모든 일들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한 인간의 현재뿐만 아니라 그의 과거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신화나 상징의 이해가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2.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종교 상징들이 맡고 있는 일몫이다. 푸에블로 인디언은 스스로를 <아버지 태양>의 아들이라고 믿는다. 이 믿음은 그들의 존재를 한정된 존재에서 넘어서게 하고, 삶에 대단한 시야와 목표를 제공한다. 바로 이 믿음이 그들에게 마음껏 자기 인격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부여하고 완전한 인간으로서 한살이를 살게 해준다. 그런데 우리 문명인은 어떤가? 문명인은 자기야말로 아무런 내적 의미도 없는 인생을 사는 열등한 존재,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들에게 견주어 푸에블로 인디언은 훨씬 만족스러운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자기 존재에 대단한 의미가 있다는 느낌은, 한 인간을 단순히 소유하고 소비하는 존재로부터 보다 나은 존재로 도약하게 한다."

3. "심리학은 가치요인(곧 감정)을 고려해야 하는 유일한 과학이다. 감정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이 감정이 곧 마음의 현상과 생명을 연결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심리학은 종종 과학적이 아니라는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이렇게 비난하는 것은, 감정도 고려해야 하다는 과학적이고 실제적인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4. "실제적인 용어를 빌어 말한다면, 인간존재라고 하는 것은 개개의 본능, 배고픔, 권력, 성, 적자생존, 종의 보존같은 일정한 목적에 부합되는 매커니즘 내에서는 만족스럽게 설명될 수가 없다. 그 까닭은 인간의 주된 목적은 먹는 것, 혹은 마시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내적 심리현실은 이러한 욕구를 초월해 살아 있는 신비를 드러내고자 하는데, 그 유일한 방법이 바로 상징을 통한 표현이다."

 

= "인간과 상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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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상징
칼 융 외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1996년 7월
평점 :
품절


  요즘은 시간이 많아져서, 마음껏 책을 천천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마음이 편할 때면 으레 오래 전에 사 두고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이 편안함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으로 선택하게 된다.  "인간과 상징"을 책꽂이에서 꺼내 들고 아래쪽에 찍힌 구입날짜의 소인을 확인했다. 97년 12월 30일. 아마도 고3 마지막 겨울방학에 대학 입학을 앞두고 심리학에 관한 진지한 책을 한 권 선택했던 것이 이 책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때도 읽어보려고 했을 것이고, 대학 시절에도 몇 번이고 방학 때면 '읽어야지'하는 마음으로 잡고 했는데 결국 지금에서야 보게 되었다. 세월의 힘이라는 것이 정말 대단해서, 내가 7년 전보다 지식의 양이 곱절로 증가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어렵게만 여겨지던 이 책을 이제는 스스로 질문해가며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저 허투루 지낸 세월같아 보여도 시간은 고맙게도 지혜의 깊이를 더해주며 지나갔나 보다.

  심리학이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서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을 주창하고 있는 현실에서, 사실 프로이트나 융과 같은 학자의 이론을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증명할 수도 없고 공식화할 수도 없고, 가장 중요하게는 실험할 수가 없는 "무의식"이라는 존재는 마음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풀리지 않는 물음표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반면, 융은 프로이트 학파에서 분화되어 나온 그 어떤 학파 정도로만 아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었다. 프로이트의 저서들을 여러 권 읽으면서 무의식의 존재를 규명하고 그 무시 못할 영향력을 만방에 공표한 프로이트의 업적과 그의 학자적 능력에는 경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가 설명하고 있는 무의식은 무언가 인간적인 면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융은 내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융의 이론은 원형, 아니마, 페르소나 등과 같은 몇 개의 어휘로 설명되는 개념이 절대 아니다. 융의 원형, 융의 아니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그 용어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해야만 했던 풍부한 신화, 종교와 문화학, 상징학, 역사를 또한 이해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프로이트보다는 융의 이론을 이해하는 일이 훨씬 어려웠던 것 같다.

  프로이트와 융의 차이점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무의식과 꿈에 대한 견해만 살펴보아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책에도 설명되듯이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그야말로 온갖 원초적인 충동과 본능적 성향들이 난무하는 그 어떤 것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뜨거운 냄비의 형국을 지니는 반면, 융의 무의식은 우리에게 지각되지는 않지만 분명한 나름의 질서가 존재하는 풍부한 상징의 세계이다. 프로이트의 꿈은 의식수준에서 억압된 각종 충동들(대개가 성충동)이 무의식의 힘을 빌어 왜곡된 모습으로 충동을 해결하곤 하는  장이지만, 융에게 있어 꿈은 때로는 의식의 지나친 일방성을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태고의 상징들로 표현함으로써 그 일방성을 보상하고자 하는 의지이고 때로는 우리 마음속의 갈등 혹은 나아갈 길을 은유적인 표현들로 나타내보이는 꽤 훌륭한 나침반이기도 한 것이다.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 중 어느 것이 진실에 더 가까운지는 현재로선 알 수도 없고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이 책에서 얻은 바가 무엇인지 얘기해야 할 것이다. 나는 분명히 책에 대해 편식하는 습관이 있다. 나의 편독은 저자의 신념이 가득차 있는,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확고한 신념의 목소리로 내 귀를 울리는 책들에 대한 것이다. 융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무의식과 꿈을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 평생을 연구한 사람이다. 그 연구를 위해서 학문의 경계는 중요하지 않았고 신화, 상징학, 동양학, 종교, 인류학 거기에 기본적으로 바탕이 되어있던 과학과 의학까지 모든 분야를 섭렵해 나갔다. 나를 비롯한 이 책의 독자들이 겪는 당혹감과 어려움은 바로 우리는 이러한 방식의 사고에 익숙치 않음을 드러내는 반증이라 생각된다. 진정 '인간'을 생각하고 '인간'을 위한 학문을 하고자 했던 그에게는 '분석심리학'이라는 학파의 이름이 너무나 좁게 느껴진다. 책의 구성에 관한 한, 서양미술사 관련서를 제외하고는 내가 그동안 만나 본 책 중 가장 풍부하고 멋진 삽화들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두고 싶다.

  혹자는 이 책의 번역자가 심리학, 혹은 정신의학의 전문가가 아닌 점을 들어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융 박사가 일반적인 독자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전문가가 아닌 존 프리먼씨에게 책 집필과정의 여러 진행문제를 맡겼듯이, 이윤기씨 또한 일반적인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번역을 위한 최고의 번역가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심리학 전공자들조차 이해하기 어렵게 번역된 전문가의 글보다는 훌륭한 일반 번역가의 글이 마음에 더 와닿는 법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인간이니 무의식이니 하는 문제까지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삼 천 년의 세월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깨달음도 없이 깜깜한 어둠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리"라고 괴테가 말했었다. 하루를 살아도 진정한 나의 모습을 알기 위한 노력으로 사는 것과,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모습으로 일생을 살아내는 것은 결코 작은 차이는 아닐 것이다. 물론,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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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승보 2004-12-1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조동일 교수를 아시는지요? 아마 아시겠지요. 그 분에 대해서 한번 깊이 연구해보시는게 어떨까 권유해 드립니다. 융 못지않은 대석학이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전 도올 김용옥과 조동일 교수를 우리나라 2대 천재라고 간주하고, 그 둘의 각각 50권이 넘는 전작들과 씨름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그럼 좋은 일 가득하시길요. ^^;

frost79 2004-12-20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 감사합니다.. 서재에 들러보니 반갑게도 같은 해, 같은 도시 출생이네요..^^ 학문에 뜻을 세우고 계신다니 괜시리 반갑고 부럽습니다. 전 아직까지도 뜻 둘 곳을 몰라 헤매는 날이 더 많답니다..^^ 조동일 교수님에 대한 추천도 감사합니다. 그 분에 대해 얼핏만 알았을 뿐인데 님의 말씀 듣고 나니 저서 한 권쯤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얼마 남지 않은 한 해 행복하게 보내시구요. 79년생 양띠 화이팅입니다!! ^o^
 
왜 사는가 1 - 무량 스님 수행기
무량 지음, 서원 사진 / 열림원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바쁜 하루일과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진철안, 혹은 약속도 없고 특별히 할 일도 없이 집에서 뒹굴거리던 어느 순간.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사는 게 뭔지.. '. 이 책은 예일대 졸업생 무량스님이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걸어야 했던 긴 여정을 숨김없이 들려주고 있다.  가감없이 말하자면 '왜 사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아니다. 그저 미국의 명문대 졸업생이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되고 더군다나 캘리포니아의 사막 한복판에 한국식 절을 짓고 있다는 이야기. 그 숨겨진 사연이 궁금했던 것이 첫번째 이유였다. 무엇이 이 사람의 인생을 이런 방향으로 이끌어는지.. 두 권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무량스님은 스스로 원하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만족하는 삶을 찾아낸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크고 작은 사회의 요구에 맞춰 바쁘게 살다보면 어느 덧 인생의 중턱에 도달해서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뒤늦게 묻게 되는 대부분의 현대인에 비한다면 말이다.

  두 권의 책을 통해 나는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무량이라는 스님의 삶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스님은 간략하지만 담담하게 자신의 상처와 고통 그리고 많은 실수들과 약점들을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스스럼없이 밝혀두고 있다. 솔직한 이야기는 그의 삶에 공감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그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 저자는 불교라는 특정종교에 귀의한 종교인이고 이 책에서도 불교의 깊은 가르침들을 독자에게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시도는 무량스님이 삶으로, 체험으로 깨우치게 된 생생한 이야기들로 다가와 읽는 사람에게도 충분한 깊이의 감동을 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무량스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첫 번째로는 한국문화에 대한 스님의 지극한 사랑이다.  스님이 파란 눈의 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내외국민을 막론하고 미약해져가는 우리 전통문화에 힘을 실어주고 자부심을 안겨주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뿌듯해진다는 무량스님이시니 말이다. 그 든든하고 고마운 마음을 이루 말할 데가 없다. 또한 무량스님은 우리에게 이제는 자연과 함께 살아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분이다. 태고사를 짓는 과정과 그 안에서의 생활모습에서 자연환경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스님의 모습은 또 하나의 뭉클함이다.

  무량스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나에게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생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을 함에 있어서 스님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방향 하나를 일러주었다. '나'만을 위한 삶은 행복한 삶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태고사에서 '평화의 종'이 울리는 소리를 듣게 될 날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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