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상징
칼 융 외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1996년 7월
평점 :
품절


  요즘은 시간이 많아져서, 마음껏 책을 천천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마음이 편할 때면 으레 오래 전에 사 두고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이 편안함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으로 선택하게 된다.  "인간과 상징"을 책꽂이에서 꺼내 들고 아래쪽에 찍힌 구입날짜의 소인을 확인했다. 97년 12월 30일. 아마도 고3 마지막 겨울방학에 대학 입학을 앞두고 심리학에 관한 진지한 책을 한 권 선택했던 것이 이 책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때도 읽어보려고 했을 것이고, 대학 시절에도 몇 번이고 방학 때면 '읽어야지'하는 마음으로 잡고 했는데 결국 지금에서야 보게 되었다. 세월의 힘이라는 것이 정말 대단해서, 내가 7년 전보다 지식의 양이 곱절로 증가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어렵게만 여겨지던 이 책을 이제는 스스로 질문해가며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저 허투루 지낸 세월같아 보여도 시간은 고맙게도 지혜의 깊이를 더해주며 지나갔나 보다.

  심리학이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서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을 주창하고 있는 현실에서, 사실 프로이트나 융과 같은 학자의 이론을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증명할 수도 없고 공식화할 수도 없고, 가장 중요하게는 실험할 수가 없는 "무의식"이라는 존재는 마음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풀리지 않는 물음표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반면, 융은 프로이트 학파에서 분화되어 나온 그 어떤 학파 정도로만 아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었다. 프로이트의 저서들을 여러 권 읽으면서 무의식의 존재를 규명하고 그 무시 못할 영향력을 만방에 공표한 프로이트의 업적과 그의 학자적 능력에는 경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가 설명하고 있는 무의식은 무언가 인간적인 면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융은 내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융의 이론은 원형, 아니마, 페르소나 등과 같은 몇 개의 어휘로 설명되는 개념이 절대 아니다. 융의 원형, 융의 아니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그 용어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해야만 했던 풍부한 신화, 종교와 문화학, 상징학, 역사를 또한 이해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프로이트보다는 융의 이론을 이해하는 일이 훨씬 어려웠던 것 같다.

  프로이트와 융의 차이점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무의식과 꿈에 대한 견해만 살펴보아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책에도 설명되듯이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그야말로 온갖 원초적인 충동과 본능적 성향들이 난무하는 그 어떤 것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뜨거운 냄비의 형국을 지니는 반면, 융의 무의식은 우리에게 지각되지는 않지만 분명한 나름의 질서가 존재하는 풍부한 상징의 세계이다. 프로이트의 꿈은 의식수준에서 억압된 각종 충동들(대개가 성충동)이 무의식의 힘을 빌어 왜곡된 모습으로 충동을 해결하곤 하는  장이지만, 융에게 있어 꿈은 때로는 의식의 지나친 일방성을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태고의 상징들로 표현함으로써 그 일방성을 보상하고자 하는 의지이고 때로는 우리 마음속의 갈등 혹은 나아갈 길을 은유적인 표현들로 나타내보이는 꽤 훌륭한 나침반이기도 한 것이다.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 중 어느 것이 진실에 더 가까운지는 현재로선 알 수도 없고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이 책에서 얻은 바가 무엇인지 얘기해야 할 것이다. 나는 분명히 책에 대해 편식하는 습관이 있다. 나의 편독은 저자의 신념이 가득차 있는,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확고한 신념의 목소리로 내 귀를 울리는 책들에 대한 것이다. 융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무의식과 꿈을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 평생을 연구한 사람이다. 그 연구를 위해서 학문의 경계는 중요하지 않았고 신화, 상징학, 동양학, 종교, 인류학 거기에 기본적으로 바탕이 되어있던 과학과 의학까지 모든 분야를 섭렵해 나갔다. 나를 비롯한 이 책의 독자들이 겪는 당혹감과 어려움은 바로 우리는 이러한 방식의 사고에 익숙치 않음을 드러내는 반증이라 생각된다. 진정 '인간'을 생각하고 '인간'을 위한 학문을 하고자 했던 그에게는 '분석심리학'이라는 학파의 이름이 너무나 좁게 느껴진다. 책의 구성에 관한 한, 서양미술사 관련서를 제외하고는 내가 그동안 만나 본 책 중 가장 풍부하고 멋진 삽화들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두고 싶다.

  혹자는 이 책의 번역자가 심리학, 혹은 정신의학의 전문가가 아닌 점을 들어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융 박사가 일반적인 독자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전문가가 아닌 존 프리먼씨에게 책 집필과정의 여러 진행문제를 맡겼듯이, 이윤기씨 또한 일반적인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번역을 위한 최고의 번역가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심리학 전공자들조차 이해하기 어렵게 번역된 전문가의 글보다는 훌륭한 일반 번역가의 글이 마음에 더 와닿는 법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인간이니 무의식이니 하는 문제까지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삼 천 년의 세월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깨달음도 없이 깜깜한 어둠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리"라고 괴테가 말했었다. 하루를 살아도 진정한 나의 모습을 알기 위한 노력으로 사는 것과,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모습으로 일생을 살아내는 것은 결코 작은 차이는 아닐 것이다. 물론,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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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승보 2004-12-1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조동일 교수를 아시는지요? 아마 아시겠지요. 그 분에 대해서 한번 깊이 연구해보시는게 어떨까 권유해 드립니다. 융 못지않은 대석학이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전 도올 김용옥과 조동일 교수를 우리나라 2대 천재라고 간주하고, 그 둘의 각각 50권이 넘는 전작들과 씨름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그럼 좋은 일 가득하시길요. ^^;

frost79 2004-12-20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 감사합니다.. 서재에 들러보니 반갑게도 같은 해, 같은 도시 출생이네요..^^ 학문에 뜻을 세우고 계신다니 괜시리 반갑고 부럽습니다. 전 아직까지도 뜻 둘 곳을 몰라 헤매는 날이 더 많답니다..^^ 조동일 교수님에 대한 추천도 감사합니다. 그 분에 대해 얼핏만 알았을 뿐인데 님의 말씀 듣고 나니 저서 한 권쯤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얼마 남지 않은 한 해 행복하게 보내시구요. 79년생 양띠 화이팅입니다!!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