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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혹시 나처럼 인문사회계열의 책을 읽기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라도 두려워마시라.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비록 흑백 표지사진과 딱딱한 제목의 타이포와 같은 외모가 다소 부담스러운 모양새이나, 그 속을 들여다보니 아빠와 아들이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씌여있다. 그러니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일 수 있겠는가? 아빠가 아들에게 쉽고 명확하고 진실되게 설명하는 것을 독자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단, 그 용이한 독서 후에는 거대한 파장이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수준을 너무 낮추지 말 것!
아빠는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이다. 그의 임무가 무엇이냐 하면 '유엔기구에서 아동 구호와 식량문제에 관련된 일을 처리하고 대책을 세우고 현장에 직접 파견되어 상황에 맞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가끔 아프리카 기아난민의 모습이나 굶고 헐벗은 북한 주민의 모습이 뉴스에 나올 때 그 상황이나 대책에 답을 내놓는 인터뷰 대상자다. 난 솔직히 그런 인터뷰 대상자에 대한 신뢰가 적었다. 나쁘게 표현하면 '착한' 일을 하는 착한 사람은 더러 있지만 그게 그저 착해서만 해결되는 일인가, 말마따나 밑빠진 독 물붓기 아닌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빠, 즉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이 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며,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 모든 손해를 보상받게 된다'라고.
저자는 기아의 실태와 원인, 지원책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오늘날 지구상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지만 하루에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 이처럼 기아 실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데이터는 처음이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짐작가능하듯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에는 부패하고 나태한 정부와 관료가 있고, 그들은 서구 열강과 거대기업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독립국이지만 과거 유럽의 식민지국가가 많았던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기아 원인이 여기에 있으며, 지금까지도 그들의 보이지 않는 종속관계가 이어지면서 종국은 부(富)를 얻고, 속국은 기아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칠레의 아옌데 정부가 자국의 어린이에게 분유를 무상공급하기 위해 분유를 구매하려 한 요청을 거부했던 세계 2위의 식품회사 네슬레와 이를 뒤에서 조정한 미국의 행태가 놀랍지 않은가? 겉으로는 '아름다운 푸른 별 지구'일지언정, 속으로는 자본과 욕망으로 썩어가는 추악한 별이라니!
나의 뇌와 심장을 가장 강하게 충격한 것은 '11장-시장가격의 이면'이다. 조금 길지만 옮겨보겠다. "물론 이른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정해진단다. 그러나 또한 일부 곡물 메이저와 그 밑의 투기꾼들의 조작을 통해서도 결정돼. 덤핑전략이나, 또는 반대로 시장에서 상품을 거두어들이는 전략을 통해서 말이야.(중략) 가격은 단 한 가지 원칙에 복종해. 바로 이윤극대화라는 원칙이지.(중략) 그들의 원하는 것은 오직 매주 수백만 달러를 더 벌어들이는 것이지. 배고픈 자들의 고통? 맙소사, 그들을 위해서는 유엔이 있고 국제적심자가 있잖아 하는 식이란다."
나는 저자의 설명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현재진행형인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FTA협상문제를 생각해보자. 무수한 이론과 의견, 정책 등과 관계없이 현실은 우리나라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사실 이미 개방된 작물도 상당히 많고, 우르과이라운드에서 쌀시장의 단계적 개방이 약속되어 실행중이다. 청포도와 오렌지, 바나나가 흔하디 흔하고, 수입쌀은 대체로 단체급식용이나 사료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상황. FTA를 거론하며 가장 크게 대두되는 이슈는 '농업의 경쟁력'인데, 사실 경쟁력으로 놓고 보면 우리가 농업을 붙들고 늘어질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경쟁력에서 밀리는 것이 사실이고, 또 반도체나 자동차같은 경쟁력있는 제품을 수출하여 그 돈으로 값싼 수입농산물을 수입하면 된다는 논리 또한 그럴 듯 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말했듯이, 국제적으로 농산물 가격은 소수의 메이저배급사 마음에 달렸다. 우리가 싼 값에 먹거리를 들여올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자신하는가? 누가 싼 값에 주겠다고 약속했는가? 우리가 농업을 포기하고 결국 농산물 생산이 불가능한 시기에 맞닥뜨리면 그 때부터 우리의 생존권은 남의 손에 달린다. 쌀 한 톨을 거금을 주고 사겠다고 해도 그들이 주지 않으면 쌀 한 톨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식량안보라는 말이 나오고, 농업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게 아니겠는가. 저자가 시장원리주의를 논하며 이야기한 '무엇이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 무엇이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를 따지지 않은 채 그저 경제합리성이라는 구호만이 난무하고 있다'고 역설한 것을 귀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또 책에서 거론된 세네갈의 경우를 보자. 세네갈의 주식은 쌀. 세네갈은 비옥한 땅과 근면한 농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 오로지 땅콩만을 경작하게 되어 지금까지도 땅콩을 유럽에 수출하고 진짜 그들이 먹어야 하는 쌀은 수입하는 시스템이 고착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해마다 해외 식량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단다. 과연 우리가 경쟁력없는 농업을 포기한 후 후회한들 우리가 먹을 식량을 다시 생산해 낼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이미 논은 논이 아니고, 농민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도시빈민으로 굶주리고 있을 것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오로지 자본과 이익, 욕망과 이해관계를 따라서만 움직이고 있는 이 세상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상황이 지구상의 절반을 굶어 죽게 하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른 척하거나 방관하거나 전혀 알고 알리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기아의 실태를 이처럼 제대로 알지 못했고, 제대로 알아보려는 노력을 해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내가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음을 감사히 여겼을 뿐.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다른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닥쳐야 할지도 모를 일이고, 다행히 그렇지 않다 해도 지구상의 누군가가 당하고 있는 일이라면-더욱이 그렇게 된 원인을 알았다면- 분개하고, 고통을 나누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일 것이다.
저자가 1999년에 집필한 이 책을, 출판이 다소 늦은 감이 있어 아쉽지만, 이제라도 읽었으니 다행이다. 타산지석. 다른 이의 고통을 방관하는 것과 잠재된 우리의 고통을 무시하는 것에 경종을 울린다. 세계의 절반, 우리는 과연 어느 쪽 절반에 서있으며 다른 절반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