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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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서에 대한 편견인지 피곤한 몸상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처음 <행복을 정복>을 읽었을 때는 글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드러나는 러셀의 놀라운 통찰력은 앞 페이지를 다시 펼쳐보지 않을 수 없었고 뭔가를 놓치고 있었다는 불안감에 다시금 책을 읽었다. 그러자 글에 대한 어려움은 순전히 나의 오해임이 자명해졌다. 행복에 대한 러셀의 이해는 그 누구보다 명쾌했고 예리했다. 그는 일상에서 놓쳐버린 행복을 하나씩 집어내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행복에 대한 최고의 책을 고만고만한 고전쯤으로 평가 절하한 체 묻어둘 뻔 했으니 말이다.

 <행복의 정복>은 수동적으로 다가오는 행복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찾고 구해야 할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1장.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에서는 경쟁, 권태, 걱정, 질투, 죄의식, 피해망상 등 우리들이 행복할 수 없었던 이유를 하나하나 짚어보고 그 해결방법을 찾아본다. [2장. 행복으로 가는 길]에서는 행복을 위한 직접적인 방법을 찾아본다.
 러셀은 행복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여건이나 직업과 같은 외부적 환경 못지않게 자신 내부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했다. 자신과 가족에 대한 사랑은 물론 일에 대한 열정, 세상에 대한 폭넓은 관심, 적당한 체념과 절제를 통해 스스로의 행복을 구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향한 행복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바깥 세계로 돌려보라고 권한다. 세상과의 소통을 통해 자신만의 행복을 찾으라고 말한다.자신을 소중히 하되 그 속에 함몰되지는 말라는 것이리라.
 "마음속 깊은 곳의 본능을 좇아서 강물처럼 흘러가는 삶에 충분히 몸을 맡길 때, 우리는 가장 큰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p266)는 말처럼 수용과 채득을 통해 행복을 키워나가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행복, 그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핸드폰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그저 두 눈 크게 뜨고 행복의 열매를 취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막바지 작업에서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손에 쥔 행복을 들고 요리조리 제어보다 길바닥에 떨어뜨리기 일쑤였고, 막상 사용하려고 했을 때 배터리가 떨어진 경우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행복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자신을 돌아보며 세상을 받아들이자. 행복이 흘러들어 고일 수 있는 마음 속 저수지를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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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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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에 도취해야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은 거짓된 행복이며, 충족감을 줄 수 없는 행복이다.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을 완전히 인식하면서 느끼는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충족감을 주는 행복이다.-119쪽

자기기만에 기초한 만족은 결코 확고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진실이 아무리 불쾌한 것일지라도 단호하게 그것을 직시하여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 진실에 입각하여 자신의 삶을 구축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135쪽

행복의 필수조건은 우연히 이웃이 되거나 알고 지내게 된 사람들이 지닌 비본질적인 취미나 욕망에 견주어 자신의 생활 방식을 확립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충동으로부터 비롯한 생활 방식을 확립하는 것에 있다.-150쪽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한 성원임을 자각하고, 우주가 베푸는 아름다운 광경과 기쁨을 누린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뒤를 이어 태어나는 사람들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할 때도 괴로워하지 않는다. 마음속 깊은 곳의 본능을 좇아서 강물처럼 흘러가는 삶에 충분히 몸을 맡길 때, 우리는 가장 큰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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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전3권 세트 - 한국만화대표선
박흥용 지음 / 바다그림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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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주(堅主)라는 이름보다 견자(犬子, 개새끼)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진 그는 맹인 침술사이자 최고의 칼잡이인 황정학으로부터 칼 쓰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황정학이 이몽학을 치료한다는 이유로 견자 곁을 떠나자 산적 이장각과 함께 의적 행세를 하며 나라에 등을 돌린 민심을 확인한다. 이장각이 관군과의 싸움에서 죽자 동요하는 산적패를 떠나기로 결심했고, 때마침 찾아온 스승과 재회한다. 그러나 스승 황정학의 갑작스런 죽음은 자신이 겨눠왔던 '칼'의 의미마저 흔들어놓았다. 결국 견자 자신을 가두고 있던 자존심과 오기를 깨뜨리는 것만이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깨닫고 세상을 향해 다시 걸어간다.
 칼을 통해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던지려던 견자. 그의 서슬 퍼런 칼날은 세상을 향해 자유를 노래한다. 서자라는 신분의 한계마저도 그의 칼 끝 앞에서는 덧없이 흘러가는 구름이었다. 견자는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세상을 향해 달려 나갔다.

 <칼>(이외수)이 기억난다. 거기서 칼은 피에 대한 갈구이자 욕망이었고 <칼의 노래>(김훈)에서는 사지를 찾아 춤추는 진혼가가 아니었던가. 그럼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말하는 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켄신>에서는 역날검(칼의 윗면에 날이 있어 일반적인 검법으로는 사람을 배지 못함)을 들고 세상에 뛰어든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칼에 죽었던 원혼들에 사죄하며 칼날을 꺾었다. 견자 역시 칼로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자 했지만 칼끝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돌아봄으로써 칼의 쓰임새를 알아야했지만 그 대가는 냉혹하기만 했다. 견자의 손끝에서 나가떨어지던 목숨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고 사(死)는 단지 자유를 찾는 진행형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만화가 마무리 되는 3권에서도 그는 여전히 피 묻은 칼을 놓지 못했다. 아마도 견자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칼을 쓰지 않고도 이기는, 생(生)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프레임을 뛰어넘는 박진감과 한국적인 멋이 흠뻑 묻어있는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바람에 밀리지 않는 달처럼 오롯이 서 있는 견자의 모습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야 할 우리들의 정체성을 보는 것 같다. 정치의 분열과 왜란이라는 외부의 격변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아 올곧게 걸어간 선지자의 모습을 그려본다. 겉으로 드러난 신분이야 어떻든 각자의 분야에서 꾸준하게 매진해온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달’은 변함없이 밤을 비추고 있지 않았나싶다.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을망정 달빛마저 사그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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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9-20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박흥용씨의 만화 중 최고는 내파란 세이버입니다. 예전에 격주간지 만화(아마 성인 잡지로 알고 있는데 이름이 생각이 잘 안나네요.)에서 연재했던 것인데요. 물론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도 그렇고요. 지금은 내 파란 세이버는 절판이라고 하네요.

saint236 2010-09-20 22:53   좋아요 0 | URL
투엔티세븐입니다. 대원에서 만들었던 성인용 격주간지였고요. 고등학생때 열심히 봤던 기억이...

프리즘 2010-09-27 08:03   좋아요 0 | URL
가끔씩 보는 분야가 만화거든요. 일상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죠. '내파란 세이버'도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다니엘 파울 슈레버 지음, 김남시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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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병자 슈레버의 회고록이 2/3를 차지하며 금치산 선고에 따른 법의학자의 감정서, 이에 대한 슈레버의 항소이유서, 판결문, 옮긴이 해제로 나머지가 구성되어 있다.


 #1. 회상록

 다니엘 파울 슈레버, 전직 고등법원 판사회의 의장까지 지냈다는 이력을 보면 굉장히 집요하고 분석적인 사람일 것 같았다. 그런 철저함이 신경병의 원인이 되어 그를 미쳐버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한 신경병자의 '지독한' 정신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몇 페이지를 넘기자 슈레버의 막강파워에 여간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은 글이되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 슈레버의 개인적인 경험은 조금 이해되다가도 이를 설명하고 회고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좀처럼 읽혀지지 않았다. '검증된 영혼들', '신경첨부', '영혼살해', '광선', '일시적으로 급조된 인간들', '세계구체' 등 단어의 의미는 물론 이를 설명하는 내용들을 이해할 수 없으니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갈 수 없었다. 50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중에 100페이지 남짓 읽은 시점이지만 계속 읽어낼 수 있는 이해력과 인내력이 바닥을 드러냈다. 내 머리가 이상한건지, 슈레버의 머리가 이상한 건지, 글(번역)이 이상한건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 책을 '보이콧'하다! 할 수만 있다면... 보이콧을 인터넷에 찾아보니 "부당한 행위에 대항하기 위하여 정치 ·경제 ·사회 ·노동 분야에서 조직적 ·집단적으로 벌이는 거부운동"이라 설명되어 있다. 물론 이 책 자체가 부당하다거나 읽기를 강요당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서평단이라는 환경에 놓여 있다 보니 어떻게 해서라도 읽어내야 하는 강박관념일 수도 있고, 나만 이해 못했을 때 오는 '쪽팔림'을 염두해 뒀는지도 모르겠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어려운 책이라 하더라도 조금 읽다보면 대략적인 구조는 눈에 들어오기 마련인데 이 책은 몇 줄의 문장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설사 이해되는 문구가 있더라도 다음 단락과 도저히 연결할 수 없었다. 뭔가 잡힐 듯 하다가도 이네 삼천포로 빠져버렸다.
 과연 누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슈레버'라는 멋진 이름 속에 숨겨진 광기를 나의 이해력으로는 판가름하기 힘들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읽으라는 책은 읽으려 하지 않고 보이콧이니 뭐니 하면서 책과는 상관없는 쓸데없는 사설만 늘어놓는 모습이 우습다.
 "슈레버 아저씨, 난 당신 정신의 총체였던 회고록 앞에서 이렇듯 농을 까고 있습니다. 어때요?"


 #2. 법의학 감정서

 슈레버의 회상록 부분을 1/3 정도 읽다가 금치산(가정 법원에서 심신 상실자에게 자기 재산의 관리, 처분을 금지하는 일) 항소심을 위해 의학고문관이자 정신병원 의사인 베버 박사가 작성한 법의학 감정서를 먼저 읽었다. 그의 회상록은 나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의 코드였기에 그의 정신에 대한 의사의 감정서(비록 슈레버에 의해 회고록에 첨부되었지만)는 회상록 전반에 걸친 코드를 해독하게 해주는 설명서 같았다. 드디어 독해의 실마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유레카!
 베버의 감정서에는 슈레버의 신경병적인 집착과 과대망상이 어떤 식으로 발전되었으며 어떻게 고착화되었는지 나타내고 있다. 슈레버는 자신과 신을 동일시 해가는 모습을 통해 죽음의 영역까지도 극복해 버린 듯 보였다. 심지어 여성성으로의 변신을 통해 신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신, 죽음과 같은 집착 대상을 제외하고는 지극히 정상적이었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의 정신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고등법원 판사회의 의장까지 맞았던 전문가가 스스로의 정신 속에 지나치게 깊게 함몰되어 가는 과정은 일 속에 파묻혀 집요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껍데기를 보는 것처럼 씁쓸했다.

 이 감정서와 함께 슈레버의 항소이유서와 법원의 판결문도 첨부되어 있다. 책 후미는 뭔가 술술 풀릴 기세다. 회상록 부분의 막막함은 법의학 감정서를 거치면서 서스펜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흥미마져 느끼게 된다.


 #3. 항소이유서, 판결문

 자신에 대한 감정서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다. 앞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느꼈던 난해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더없이 논리적이고 침착하게, 해박한 법적 지식을 바탕으로 신경병자로 생활했던 지난날을 회고하고 대변한다. 결국 재판을 통해 목적(금치산 선고 철회)을 달성한다.
 "드레스던 지방법원 민사 7부는 원고의 항소에 기초해 1901년 4월 13일의 판결을 변경하여, 1900년 3월 13일 드레스텐 행정법원에서 내린 금치산 선고를 철회한다."


 #4. 옮긴이 해제

 옮긴이(김남시)가 알고 있는 회상록 전후의 이야기를 첨부한다. 이 회상록이 슈레버 가문에 의해 대부분 폐기되었다는 것과 프로이트 등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는 것, 그리고 슈레버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슈레버 아버지(모리츠 슈레버)에 대해 "아이들의 자발적 욕구나 의지를 북돋기보다는 이상적 목표를 위해 그를 제한하고 규제해야 하다는 신념의 소유자"라 말하며, 권총 자살한 그의 형과 마찬가지로 슈레버의 신경병도 성장기에 겪었던 폐쇄적이고 엄격한 가정교육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했다. 그리고 고등법원 판사회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겪었던 정신적 스트레스 역시 그를 무너지게 한 중요한 원인이었으리라.

 또한 번역의 어려움도 이야기한다.
 "그에게 작용하고 있는 증상으로서의 언어가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는 점에서 이 텍스트는 일반적인 문학 텍스트와는 구별된다. (중략)
 슈레버 텍스트의 번역자는 이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언어적 증상을 그대로 옮김 - 이는 사실 불가능하다 - 으로써 읽을 수 없는 번역문을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가독성 있는 번역을 위해 텍스트의 언어적 증상들을 임의로 '치유'해야 하는 양자택일에 처한다. (중략)
이 번역은 타협의 산물이다. 슈레버의 증상적 문장을 되도록 그대로 전하려던 처음의 시도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한국어 문장의 끔찍한 비가독성 앞에서 좌절했다. 오랜 고심 끝에 번역문의 가독성을 위해 언어적 징후들을 치유하는 길을 택했다. 긴 문장은 짧게 나누고, 어색한 수동문은 능동으로 바꾸었다."


 사실 그의 회상록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하지만 회고록에 첨부된 법의학 감정서를 통해서나마 그에게 일어났던 정신적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신경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면 <법의학 감정서>나 <옮긴이 해제> 부분을 먼저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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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남영신 지음 / 까치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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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는 어렵다. 정확한 단어와 문법을 통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맞춤법을 틀리는 경우가 많았고 앞뒤 연결이 되지 않는 문장도 허다했다. 이상야릇한 표현은 글의 의도를 희미하게 만들었고 정리되지 못한 성급함만 남겨버렸다.
 불분명한 표현과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을 쓰면서도 이를 찾아보고 공부해보려는 노력은 늘 게을렀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문장들을 보면서 국어 공부에 대한 필요성은 느꼈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올바른 표현에 대한 필요성과 국어공부에 대한 내 가능성도 확인할 겸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를 펼쳤다.

 국어의 어려움은 먼저 조사에 있었다. 조사는 명사에 붙어 주어나 목적어 등의 기능을 하게 만드는 요소로 '이/가, 은/는', ‘에’, ‘에서’와 같이 그 정확한 의미와 기능을 혼동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훈 작가 역시 <남한산성>을 쓸 때 조사 하나로 며칠씩이나 고민했다고 한다.
 <조사>에서는 그 의미와 올바른 사용법을 알기 쉬운 예문을 통해 설명한다. 가령 주어라든가 새로운 정보가 있을 때는 '이/가'를, 주제어나 서술어에 있으면 '은/는'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며 여러 예문을 곁들여 설명한다. 그리고 간단한 문제를 통해 자신의 국어실력을 확인해볼 수도 있다.
 계속해서 <어미>에서는 '고, 며', '므로, 으로'의 차이점을, <호응>에서는 주어와 서술어의 제약 관계를, <생략>에서는 주어나 서술어, 조사의 지나친 생략으로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를, <축약>에서는 지나친 수식이나 한자어 남용으로 인한 모호함에 대해 살펴본다. <높임말>과 <시제>에 대한 중요성도 지적한다.

 이 책에 인용된 수많은 문장들은 내 독해력에 대한 그 동안의 오해를 일부 해소시켜줬다. 몇 번을 되짚어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은 나의 무지를 드러내는 표식 같았다. 하지만 내 독해력과는 무관하게 문장 자체의 오류도 상당히 많았다. 조사와 어미가 잘못 사용되거나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되지 않는 문장,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지나친 은유는 글을 이해하기 어렵게 했다. 이렇게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 비문은 유명 작가의 소설, 산문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기성 작가부터 글쓰기에 대한 바른 이해를 요구한다. "정확한 문장과 개성 있는 문체"를 위해 평생을 공부하라고 충고한다. 문학적 글쓰기가 문법적 글쓰기와 전적으로 동일할 수는 없겠지만 글을 표현함에 있어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지 싶다.

 그래도, 국어는 어렵다. 글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문장이 엉성해지고 문장의 구성에 신경쓰다보면 글이 막히기 일쑤다. 내가 쓴 글을 읽을 때 느끼는 어색함도 결국에는 엉터리 문법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저자는 "바른 문장이 아름답다"라는 말로 책을 마무리하면서 "한국어를 지금보다 훨씬 정교하고 정확한 언어로 다듬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어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저자의 말을 들으니 주관적인 느낌에 의존해 아무렇게나 써온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문법책이나 사전, 글쓰기 책을 찾아보며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갔어야 했는데 말이다.
 지금 쓰는 이글에도 온갖 엉터리 문법과 알 수 없는 미문으로 가득할 것이다. 십여 년 가까이 써왔던 엉터리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처지겠냐 마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겠다. 머릿속 생각을 체계적으로 풀어놓을 수 있는 능력과 함께 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기술도 배워야겠다.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를 한번 읽고 밀쳐버릴 것이 아니라 손닿는 곳에 가까이 두고 읽고, 또 읽으며 공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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