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 이대 (외) 베스트셀러 한국문학선 33
하근찬 외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수난 이대 - 하근찬                                                                                
 징용으로 끌려간 탄광에서 한쪽 팔을 잃은 아버지(만도)와 전쟁 중에 역시 한쪽 다리를 잃은 아들(진수)의 만남을 그렸다. 아버지는 자신처럼 불구의 몸이 된 아들을 보자 원망과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착찹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한쪽 팔이 되어 오줌 누는 것을 도와준 진수와, 아들의 한쪽 다리가 되어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아버지는 새롭게 정의된 부자간의 존재감을 깨닫는다. 이대에 걸쳐 대물림되는 수난의 역사가 서로간의 이해와 수용을 통해 화합의 역사로 바뀐 것이다.
 요즘 텔레비전에서는 보수와 진보를 놓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자신의 코앞에 놓인 손익만 생각하다보니 대립이 끊이질 않는다. 좀 더 넓은 시야를 통해 모두가 잘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는 없을까...

 여 제자 - 하근찬                                                                                    
 제목만 봐서는 뭔가 음침하고 야릇한, 19금의 불륜을 연상케 되지만 실상은 열아홉 총각 선생님을 사랑한 열여섯 살 여학생의 로맨스였다. 선생님이라는 넘어설 수 없는 경계는 이성으로서 갖는 애틋함과 뒤섞인 미묘하게 다가왔다. 누구나 한두 번 경험해 봤을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인데다 나 역시 첫 교단이 여고였기에 더 각별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읽다보면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의 원작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본 작품을 수정 보완한 장편 <내 마음의 풍금>도 출판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순박하게 웃던 이병현의 모습과 전도연의 수줍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원작과 오버랩 된 영상이 머릿속에서 또 하나의 스토리를 만든다.

 오발탄 - 이범선                                                                                   
 "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애비 구실. 형 구실. 오빠 구실. 또 계리사 사무실 서기 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 너무 많구나.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 곳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건 가긴 가야한다."
 전쟁 속에서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슬픈 자화상이랄까. 갈 곳을 잃은 철호의 말은 이북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어머니의 독백처럼 공허하게 들린다. 하지만 뚜렷한 목적지라도 있는 어머니에 비해 철호는 그마저도 없이 하루하루를 버텨 나간다. 강도짓으로 경찰에 잡혀간 동생과 몸을 팔아 하루하루를 생활하는 여동생, 둘째를 놓다가 목숨을 잃은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갈 곳 잃은 불발탄이 되어 거리를 나뒹군다.

 학 마을 사람들 - 이범선                                                                        
 TV문학관은 우리나라 소설을 단편 드라마로 만들어 보여주던 옛 텔레비전 프로그램인데 황순원의 <소나기>도 거기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 글 역시 TV문학관에서 본 기억이 난다. 평온하던 시골풍경과 그 마을에 상징물처럼 서있던 '학 나무'의 위풍당당한 모습, 학의 똥을 받으면 그해 시집을 간다는 소리에 너도나도 학 나무 밑을 기웃거리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학 마을에 날아든 학에 변고가 생기자 이네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하지만 순박하게 살았던 마을 주민들은 세상의 변화를 알 턱이 없었다. 인민군이 되어 마을을 다시 찾은 바우는 인민위원장이 되어 급기야 마을의 수호신과도 같은 학을 쏘아 죽였다. "저만큼 땅바닥에 빨래처럼 구겨 박힌 학의 주검"처럼 순박하던 민심도 바닥에 내동댕이 처졌지만 종전과 함께 새로운 희망이 움트기 시작한다.


 치밀한 사건구성과 다양한 테크닉으로 무장된 오늘날의 소설과는 또다른 맛이다. 현란하지는 않지만 구수하게 가슴을 죄어오는 아련함이 좋다. 시골 할머니 댁에서 먹는 청국장 맛이 이런 걸까.
 1987년에 나온 <여 제자>를 제외하고는 1950, 60년대에 나온 소설들이라 형식이나 소재가 다분히 제한적이다. 식민통치와 전쟁, 가난이라는 역사적 격랑을 거쳤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혼란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우리 선배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 www.freeis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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