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일에 있었던 언어영역(국어) 모의고사를 풀어봤다.
국어에 대한 관심에 비해 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기에 한번쯤 테스트 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했다.
물론 전문적인 국어교육은 고등학교(1991년)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 거의 20년 만에 치러보는 시험이었다.

문제는 생각했던 데로 만만치가 않았다.
문학작품의 일부분을 추려낸 지문이기에 잘 읽혀지지도 않았다.
과학, 철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지문까지 크로스오버 되어 출제되었다.

점수는 100점 만점에 80점, 50문제 중에 40문제를 맞췄다. 고등학교 때 60% 정도만 맞추던 국어시험에 비하면 많이 발전한 샘이다. 그나마 지금까지 읽어온 많은 책들의 영향이리라. 처음 해보는 언어영역 시험치고는 그런 대로 치룬 것 같지만 아직은 좀 부족한 것 같다.
수학능력평가시험의 언어역역이 한 사람의 문학적 소양을 100% 평가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가끔씩 이런 시험을 통해 나의 국어 능력을 테스트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음에는 좀 더 오른 점수를 기대해본다.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 문제지, 답지]
http://cafe.naver.com/gogoji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5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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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사냥꾼>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과일 사냥꾼 - 유쾌한 과일주의자의 달콤한 지식여행
아담 리스 골너 지음, 김선영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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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사과 품종 중 이름 있는 것만 해도 2만 개가 넘는다. 이름 없는 야생품종을 제외한 수치다. 또한 사과 종류 전체는 전부 셀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하루에 사과 하나가 아닌, 각기 다른 사과 하나씩을 먹더라도 평생 먹을 수 있거나 적어도 55년이 걸린다." (p22)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사과, 배, 수박, 참외, 복숭아, 딸기, 감, 귤, 바나나, 포도, 파인애플, 자두... 내가 알고 있는 과일만 하더라도 고작 십여 가지뿐인데 사과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이렇게 많은 종류가 있었다니. 우리가 과일을 너무 무신경하게 대해 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과일 사냥꾼>은 달랐다. 여기에는 과일에 대한 모든 것과 과일에 살고 죽는, 과일마니아들이 총출동한다. 그들에게 과일은 삶의 여유이자 놀이였고 목적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무관심하게 먹어오던 과일에 의미가 더해줬다. 과일 사냥꾼과 함께 과일에 대한 친숙하고도 낯선 탐험을 시작한다.

 과일, 따지고 보면 사과나 배, 수박, 복숭아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종류도 있지만 최근에는 비행기를 타고 온 낯선 과일도 만만찮게 보인다. 특히 망고스틴과 두리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망고스틴을 처음 본 건 시내의 한 뷔페에서였다. 수류탄처럼 생긴 원형의 과일로 적갈색 표면에 이슬이 서려있을 만큼 찬 상태로 진열되어 있었다. 미리 잘라놓은 두껍고 딱딱한 껍질을 반으로 나누면 마늘 같은 하얀 속살이 나오는데 미끈거리듯 다가오는 달콤함이 입속을 타고 녹아내렸다. 우리의 전통적인 과일과는 다른 독특한 맛은 열대지방의 강열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또한 두리안은 어떤가. 그 독특한 생김새만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뾰쪽뾰쪽한 이놈을 처음 봤을 때는 지구상에 존재할 것 같은 않은, 괴기영화에나 나올법한 악마의 모습이었다. 생소한 모습만큼이나 맛도 궁금했지만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아직 맛보지는 못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양파 썩는 냄새 같은 독특한 향기와 의외의 달콤함이 극과 극을 달린다고 했다.

 <과일 사냥꾼>에서는 이 이외에도 수많은 과일들이 등장한다. 지역 청과물 시장에 진열된 과일부터 크기와 이름, 색과 맛을 달리한 열대성 과일까지 그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다. 미국, 중국, 일본, 태국, 보루네오, 그리고 아프리카를 돌며 맛과 향이 독특한 과일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특히 여성의 음부를 닮았다는 독특한 모양의 과일, 코코드메르(coco-de-mer)가 인상 깊다. 인도양의 세이셸 섬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종으로 20,000여 그루 정도의 코코드메르 야자수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무와 열매는 국가에서 엄격하게 관리중이며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부드럽고 푸딩처럼 부들거리는 식감"을 느껴볼 수 없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도 현지로 날아가 오랜 설득과 기다림과 겨우 맛봤다고 했다.

 과일 못지않은 주인공이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과일 사냥꾼이다. 과일에 죽고 사는, 과일에 미쳐버린 이들은 새롭고 진귀한 과일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대가나 위험, 심지어는 불법이나 밀수도 서슴지 않았다. 시장에서 파는 과일만 먹어오던 일반인에게는 미친 짓으로 들릴 이야기들이 여기서는 비일비재했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과일 속에 빠져들게 했을까. 형형색색의 모양과 달콤한 육즙? 아니면 남들이 먹어보지 못한, 갖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소유욕? 혹은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나 돈벌이의 대상, 투자의 목적이었을까? 단순하게 보이는 과일 한 조각에 인간의 애증과 욕망이 서려있다고 생각하니 무섭기까지 했다.

 과일의 인기는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기도 했다. 사과에 포도 향을 입힌 변종 그레이플에 대한 의구심과 만병통치약으로 소개되는 일부 과일들을 예로 들면서 과일 뒤에 숨어 있는 상업주의의 속성을 들여다본다. 우리들의 입맛을 다시게 하는 저렴한 과일이지만 중국에서 들여와 뉴질랜드에서 개발시켜 대박을 터트린 키위처럼 그 경제적 효과는 엄청났다. 향기로운 과일 이면에 숨겨진 신맛처럼 엄청난 부는 자연과 건강을 등에 업고 성장해갔다.
 하지만 과일 산업의 양적 팽창은 과일의 질까지 높이지는 못했다. 우리들에게 오는 과일의 대부분은 성분을 알 수 없는 각종 농약으로 뒤범벅된 체 길러졌고 덜 익은 상태로 수확되었다. 먼 거리를 날아오기 위해 각종 화학첨가물 속에 보관되어 그 신선도를 잃어만 갔고 급기야 우리들은 시각적으로만 그럴듯한 과일만을 즉흥적으로 구입해왔다. 결국 최초 수확된 과일과 우리가 먹는 과일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먹던 과일이 단순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 흔한 사과 한쪽에도 자연의 조화와 농부의 땀,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숨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 생활에 여유가 생긴다면 내 손으로 직접 가꾼 과일을 먹어보고 싶다. 하다못해 야채라도 말이다. 그 속에 녹아있을 자연과 인간의 기운을 온 몸으로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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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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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서에 대한 편견인지 피곤한 몸상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처음 <행복을 정복>을 읽었을 때는 글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드러나는 러셀의 놀라운 통찰력은 앞 페이지를 다시 펼쳐보지 않을 수 없었고 뭔가를 놓치고 있었다는 불안감에 다시금 책을 읽었다. 그러자 글에 대한 어려움은 순전히 나의 오해임이 자명해졌다. 행복에 대한 러셀의 이해는 그 누구보다 명쾌했고 예리했다. 그는 일상에서 놓쳐버린 행복을 하나씩 집어내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행복에 대한 최고의 책을 고만고만한 고전쯤으로 평가 절하한 체 묻어둘 뻔 했으니 말이다.

 <행복의 정복>은 수동적으로 다가오는 행복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찾고 구해야 할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1장.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에서는 경쟁, 권태, 걱정, 질투, 죄의식, 피해망상 등 우리들이 행복할 수 없었던 이유를 하나하나 짚어보고 그 해결방법을 찾아본다. [2장. 행복으로 가는 길]에서는 행복을 위한 직접적인 방법을 찾아본다.
 러셀은 행복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여건이나 직업과 같은 외부적 환경 못지않게 자신 내부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했다. 자신과 가족에 대한 사랑은 물론 일에 대한 열정, 세상에 대한 폭넓은 관심, 적당한 체념과 절제를 통해 스스로의 행복을 구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향한 행복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바깥 세계로 돌려보라고 권한다. 세상과의 소통을 통해 자신만의 행복을 찾으라고 말한다.자신을 소중히 하되 그 속에 함몰되지는 말라는 것이리라.
 "마음속 깊은 곳의 본능을 좇아서 강물처럼 흘러가는 삶에 충분히 몸을 맡길 때, 우리는 가장 큰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p266)는 말처럼 수용과 채득을 통해 행복을 키워나가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행복, 그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핸드폰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그저 두 눈 크게 뜨고 행복의 열매를 취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막바지 작업에서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손에 쥔 행복을 들고 요리조리 제어보다 길바닥에 떨어뜨리기 일쑤였고, 막상 사용하려고 했을 때 배터리가 떨어진 경우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행복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자신을 돌아보며 세상을 받아들이자. 행복이 흘러들어 고일 수 있는 마음 속 저수지를 만들어 보자.


 ( www.freeis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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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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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에 도취해야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은 거짓된 행복이며, 충족감을 줄 수 없는 행복이다.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을 완전히 인식하면서 느끼는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충족감을 주는 행복이다.-119쪽

자기기만에 기초한 만족은 결코 확고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진실이 아무리 불쾌한 것일지라도 단호하게 그것을 직시하여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 진실에 입각하여 자신의 삶을 구축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135쪽

행복의 필수조건은 우연히 이웃이 되거나 알고 지내게 된 사람들이 지닌 비본질적인 취미나 욕망에 견주어 자신의 생활 방식을 확립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충동으로부터 비롯한 생활 방식을 확립하는 것에 있다.-150쪽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한 성원임을 자각하고, 우주가 베푸는 아름다운 광경과 기쁨을 누린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뒤를 이어 태어나는 사람들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할 때도 괴로워하지 않는다. 마음속 깊은 곳의 본능을 좇아서 강물처럼 흘러가는 삶에 충분히 몸을 맡길 때, 우리는 가장 큰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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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전3권 세트 - 한국만화대표선
박흥용 지음 / 바다그림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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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주(堅主)라는 이름보다 견자(犬子, 개새끼)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진 그는 맹인 침술사이자 최고의 칼잡이인 황정학으로부터 칼 쓰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황정학이 이몽학을 치료한다는 이유로 견자 곁을 떠나자 산적 이장각과 함께 의적 행세를 하며 나라에 등을 돌린 민심을 확인한다. 이장각이 관군과의 싸움에서 죽자 동요하는 산적패를 떠나기로 결심했고, 때마침 찾아온 스승과 재회한다. 그러나 스승 황정학의 갑작스런 죽음은 자신이 겨눠왔던 '칼'의 의미마저 흔들어놓았다. 결국 견자 자신을 가두고 있던 자존심과 오기를 깨뜨리는 것만이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깨닫고 세상을 향해 다시 걸어간다.
 칼을 통해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던지려던 견자. 그의 서슬 퍼런 칼날은 세상을 향해 자유를 노래한다. 서자라는 신분의 한계마저도 그의 칼 끝 앞에서는 덧없이 흘러가는 구름이었다. 견자는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세상을 향해 달려 나갔다.

 <칼>(이외수)이 기억난다. 거기서 칼은 피에 대한 갈구이자 욕망이었고 <칼의 노래>(김훈)에서는 사지를 찾아 춤추는 진혼가가 아니었던가. 그럼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말하는 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켄신>에서는 역날검(칼의 윗면에 날이 있어 일반적인 검법으로는 사람을 배지 못함)을 들고 세상에 뛰어든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칼에 죽었던 원혼들에 사죄하며 칼날을 꺾었다. 견자 역시 칼로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자 했지만 칼끝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돌아봄으로써 칼의 쓰임새를 알아야했지만 그 대가는 냉혹하기만 했다. 견자의 손끝에서 나가떨어지던 목숨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고 사(死)는 단지 자유를 찾는 진행형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만화가 마무리 되는 3권에서도 그는 여전히 피 묻은 칼을 놓지 못했다. 아마도 견자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칼을 쓰지 않고도 이기는, 생(生)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프레임을 뛰어넘는 박진감과 한국적인 멋이 흠뻑 묻어있는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바람에 밀리지 않는 달처럼 오롯이 서 있는 견자의 모습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야 할 우리들의 정체성을 보는 것 같다. 정치의 분열과 왜란이라는 외부의 격변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아 올곧게 걸어간 선지자의 모습을 그려본다. 겉으로 드러난 신분이야 어떻든 각자의 분야에서 꾸준하게 매진해온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달’은 변함없이 밤을 비추고 있지 않았나싶다.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을망정 달빛마저 사그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 www.freeis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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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9-20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박흥용씨의 만화 중 최고는 내파란 세이버입니다. 예전에 격주간지 만화(아마 성인 잡지로 알고 있는데 이름이 생각이 잘 안나네요.)에서 연재했던 것인데요. 물론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도 그렇고요. 지금은 내 파란 세이버는 절판이라고 하네요.

saint236 2010-09-20 22:53   좋아요 0 | URL
투엔티세븐입니다. 대원에서 만들었던 성인용 격주간지였고요. 고등학생때 열심히 봤던 기억이...

프리즘 2010-09-27 08:03   좋아요 0 | URL
가끔씩 보는 분야가 만화거든요. 일상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죠. '내파란 세이버'도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