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여자들 - Dear 당신, 당신의 동료들
4인용 테이블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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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미래는 그 언니 [일하는 여자들]

 

 

 

여성들이 대학을 다니고 사회에 진출하고 각자 제 몫을 하기 시작한지도 꽤 되었건만, 아직까지 '유리천장'이니 '성차별'이니 하는 말들이 나돌아 다니고 있는 건 왜일까?

우리나라 특유의 유교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여성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고 움직일라 치면 곳곳에서 반발하는 글들이 쑥 올라와 '페미니즘 논쟁'으로 번지기 일쑤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조금은 변화의 움직임이 보일 텐데, 너무도 꽉 막힌 서로간의 단절이 답답하기만 한 요즘이다.

이제는 상대하기 버거워서, 또 예의 그 고리타분한 도식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논쟁이 귀찮아서 페미니즘의 'ㅍ' 자도 보기 싫어질 지경이다.

내가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그 당연한 이치가 여자, 남자의 카테고리로 양분되는 순간 어렵고 혼란스럽고 입 밖에 내면 싸움이 되는 논리로 변질되어 버렸다.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여성이거나 약자이면 더.

어릴 때 영화 <에이리언>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리플리는 엄마나 선생님 같은 내 주변의 여자들과는 달랐다. 그는 항해사였고 자신을 희생했고 심지어 우주선에서 고양이까지 구해 나왔다. 나에게 미래는 그 언니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현명하고 기민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감 있게 누군가를 보호하려 애쓰는 사람들. 지금도 그런 걸 꿈꾼다.-179

 

[일하는 여자들]은 '4인용 테이블'이라는 독특한 네임의 저자가 '퍼블리'라는 유료 컨텐츠 플랫폼에서 디지털 콘텐츠로 발행한 내용을 종이로 옮긴 것이다.

 

[일하는 여자들]은 또 "젊은 남성이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선배 남성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 서사는 차고 넘치도록 많다. 성공한 여성의 사례를 보거나 듣는 게 같은 여성에게는 정말 중요하다. 이런 책 어디 없을까?"

황효진 에디터가 개인 SNS에 남긴 질문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경력 단절이 특히 심한 여성의 세계에서 '성공한' 선배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을 대변하는 듯하다.

언제까지나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입장에 서 있으면서 제대로 큰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결혼과 육아의 큰 고비가 닥칠 때마다 물러서야만 했던 여성들.

이제 [일하는 여자들] 속에 나오는 당당한 언니들을 보며 앞으로의 갈 길을 설계해 나갔으면 좋겠다.

 

 

 

[일하는 여자들]은 기본적으로 인터뷰 형식으로 채워져 있다.

기자로, 에디터로, 프리랜서로, 디자이너로 일하는 여자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말을 담아낸다.

그들은 "이런 시대에는 프로답게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본인 스스로 물어보고 결정했다면 그걸로 된다"

"독보적인 구성원들 사이에서 혼자 별로인 사람이고 싶지 않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소리 내서 말하고 지치지 않아야 한다."

 

등등 각자의 위치에서 지치지 않고 일하며 얻어낸 깨알같은 진리를 차분한 어조로 털어놓는다.

어찌 보면 센 언니라 오해 받는 부분도 있지만 그건 '생존'하려다 보니 뒤집어 쓴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각각의 인터뷰 끝에는 <OBJECT STORY> 코너에서 각자의 개성 혹은 살아온 흔적을 말해주는 물건을 소개한다.

 

 

 

그가 이 부츠를 유독 즐겨 신는 건, 일반적인 부츠 형태가 아닌 일본의 전통 신발을 변형한 앞코 포인트가 마음에 들어서이기도 하고 8센티미터의 높은 굽치고는 발이 무척 편해 장시간 이동하기에 무리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신기하게도 그와 취향이 맞고 생각이 비슷한 동료들은 이 부츠를 하나씩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러 평범한을 거부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의 지난 행적을 돌이켜보면 대부분 쉬운 길, 혹은 평범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고 자신의 취향이 반영되는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해왔다. 이 부츠는 그런 그의 에티튜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223

 

스스로 지닌 애착 있는 물건조차 남과는 다른 걸 선택하는 이들이다.

평범하지 않은 길,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기에 지금까지 '일하는 여자들'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건, 바꾸어 말하면 평범한 여성들은  어지간해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래도, 에이리언의 리플리 같은 언니가 미래라고 말하며 자신의 길을 걷는 '선배'들이 있기에 그 흔적을 더듬어 가면서 꾸준히 일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번듯한 직장에 힘들게 입사해서 금방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결혼, 출산 외에도 사내 성추행, 성희롱 덕분이었다는 얘기가 반복해서 나오는 부분을 읽으며 새삼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런 고질적인 병통이 요즘의 '미투 운동'과 기조를 같이 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서로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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