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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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소품문에서 배운다 [문장의 온도]

 

얼마 전 끝난 TV 드라마 [사랑의 온도]가 참으로 인상깊었다.

남녀의 엇갈림은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오고 또 어느샌가 오해는 풀리기 마련이지만 그런 서로의 엇갈림을 '온도차'라고 설정한 점이 신선했다.

그러다면 [문장의 온도]란 어떤 의미에서 붙인 제목일까?

 

저자는 조선 최고의 에세이스트이자 독서가인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 속 소품문 속에서 문장을 뽑아왔다.

 

[이목구심서]는 제목 그대로 이덕무가 평소 듣고 보고 말하고 생각한 것들을 글로 옮긴 책이고, [선귤당농소]는 '선귤당'에서 크게 웃는다는 뜻처럼 일상생활 속 신변잡기와 잡감에 대해 쓴 것이다. 글을 감상하다 보면 그가 살아가면서 느꼈던 삶의 다양한 온도가 문장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6

 

사랑의 온도에서는 주로 '엇갈림'에 초점을 두었다면, 문장의 온도에서는 좋은 문장을 읽었을 때 독자에게 일어나는 변화에 중점을 둔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따뜻해지거나 뜨거워지거나 시원해지거나 차가워진다는 것이다. 일상이 너무 심심하고 변화가 없어서 자극적인 문장, 상황을 즐기기 위해 추리소설을 주로 읽었는데 이제는 한층 차분한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하고 싶었다.

급격히 일희일비하는 것보다 좀 더 내 속으로 침잠해서 안으로부터의 내 변화를 꾀하고 싶었다.

이덕무의 문장들은 조선 시대의 문장, 즉 오래된 문장은 고루하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준다.

옛 선현들의 틀에 박힌 문장을 본받아 교훈를 곱씹고 훈계를 늘어놓는 식의 문장이 아니었다.

눈을 들어 보이는 모든 것, 마음을 열면 들리는 모든 것에 관심을 둔다.

그 당시 유행했던 '고문'이 아니라, '고문'에 비하면 너무나 하찮고 소소한 일상의 일들을 집어 올려 크게 눈 뜨고 보게 하면서 '소품'을 하나의 경지에 올려 놓는다.

길지 않은 짤막한 글들은 자투리 시간을 내어 읽기에 좋고 한 꼭지의 글만 읽어도 금세 마음이 풍성해진다.

자그적인 일들을 소재로 놓고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가 금세 차갑게 식어버리게 만드는 추리소설과는 확연한 온도 차이가 있다.

어쩜 이리도 작은 일에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시야가 넓어질 수 있을까.

지하철에서 책을 펴서 읽고 있는 동안에는 주위의 소음이 일시적으로 '소거'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

차분한 정경, 일상에서 언제든지 마주칠 수 있는 풍경들 속으로 쉽게 빨려들어갈 수 있었고 더불어 엮은 이의 곁들임 설명으로 새로운 안목을 열 수 있었다.

 

아정, 형암, 청장관 등 호가 많기로 유명한 이덕무는 '책만 보는 바보' 라는 뜻의 '간서치'로도 유명하지만 매화를 좋아해 '매탕'이라는 자호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일 년 내내 언제 어느 곳에서나 매화의 풍모와 아취를 즐기고 싶어 인조 매화 즉 '윤회매'를 만들기도 했다. 매화꽃 피고 차 끓는 소리 들리는 정경을 잘 포착한 글에서 한동안 푹 쉬어가고 싶어졌다.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 굴리기를 좋아할 뿐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또한 여의주를 자랑하거나 뽐내면서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35

연암 박지원이 <낭환집 서문>에 베껴 쓰기도 한 글, 말똥구리와 여의주 이야기는 또한 우열과 존귀와 시비의 이분법에 길들어 있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약초 밭두둑 난간의 금봉화가 새벽 비에 붉은 색깔이 가셔 버렸다. 어린 게집종이 꽃을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세속의 먼지에서 벗어난 통달한 선비가 이 모습을 보고 눈동자를 활짝 열며 말했다. "패왕 항우가 우미인과 울며 이별할 때 바로 이와 같았을 것이다."-76

금봉화는 지금의 봉선화다. 색이 빠진 봉선화를 보며 우는 아이를 보고 항우와 우미인의 고사를 떠올리며 공감하는 선비. 아재 공감이라고 할까~ 하나의 장면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마음을 쓰는 모습이다. 많은 이들이 이같이 공감하며 살아간다면 험한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을 텐데...

 

이덕무의 '소품'은 짧고 간략하지만 넓게 연관지어 생각한다면 니체의 철학과도, 루소의 에밀과도 맞닿을 수 있다. 어제를 고찰하고 내일을 통찰하는 지혜를 얻을 수도 있다.

이덕무의 '소품'은 글이란 마땅히 온몸으로 쓰는 것이다, 를 직접 보여 준 본보기다.

확 달궈지지는 않지만 은은히 온기를 내뿜으며 읽는 내내 따스함 속에 잠기도록 해 주는 [문장의 온도]를 읽어보시라. 맑은 향기가 어디서부턴가 서서히 내 몸을 감싸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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