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탐구하기 청개구리 문고 28
이하은 지음, 김성영 그림 / 청개구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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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여전사의 전설 속으로 [첫사랑 탐구하기]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면 아이들이 사춘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키가 훌쩍 크고 부쩍 어른스러워진 아이를 보며 어떻게 대해줘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급격히 말수가 줄어들고 혼자 무언가를 하고자 하며 비밀이 많아진 것 같은 내 아이.

예전처럼 조잘조잘 무엇이든 떠들어주었으면 좋겠는데 몸이 커진 만큼 이제 스스로 곧 자립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지 엄마의 간섭을 눈에 띄게 싫어합니다.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해결책 중 가장 나은 것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어떻게?가 문제죠.

 

[첫사랑 탐구하기]라는 책을 함께 읽고 도란도란 얘기 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슬금슬금 싹트기 시작하는 핑크빛 풋풋한 첫사랑에 대한 감정이라든지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이라든지 등등의 보따리를 꺼내기에 딱 좋은 소재랍니다.

 

주인공 미랑이는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입니다.

(딱 우리 아이와 같은 또래라 처음부터 심하게 감정 이입되는 엄마~)

봄방학이 끝나고 서울에서 김해로 전학을 왔죠. 모든 것이 낯선 상태지만 학생회장이자 방송부원인 황지후가 옆집 마당에서  외발 자전거를 타는 걸 본 뒤로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바야흐로 이웃집 남자아이와 첫사랑을 시작하려는 중이죠.

 

 

 

"아빠, 우리 옆집에 사는 황지후 말이야 혹시 전설에 나오는 황세 장군 후손일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아빠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25

 

 

살풋 떠오르는 솜사탕 같은 첫사랑을 아빠에게 살짝쿵 드러내 보이는 데서는 아이다운 순수함이 엿보이네요. 미랑이는 아빠와 동네 구경을 하다 봉황대에서 황세 바위를 보고 황세 바위에 얽힌 전설을 읽게 됩니다.

 

김해는 예전에 6가야 중에서 금관가야에 속했던 지역이며 철갑옷으로 무장한 가야 무사를 모티브로 한 박물관이며 김수로왕릉 등 유명한 유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김수로 왕과 허황옥 왕비의 이야기로 만드는 축제도 해마다 열리곤 하는데요, 황세 바위 전설은 저도 처음 접합니다.

전설의 내용은 이렇네요.

황정승과 출정승의 친분으로 의형제를 맺었던 황세와 출여의. 하지만 여의는 사실은 여자였답니다. 어느날 황세가 여의에게 오줌 멀리누기 시합을 하자고 제의하자 여의는 삼대 줄기로 위기를 모면하는데, 그 시합을 한 곳이 바로 황세바위라고 해요. 자랄수록 여인의 태가 나는 여의는 자신이 여인임을 밝히고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후 신라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황세는 왕의 명으로 유민공주와 결혼을 하죠. 여의는 첫사랑 황세를 그리워하다 죽고 황세도 뒤따라 죽습니다. 공주는 유민산으로 출가하여 중이 됩니다.

 

여의에게 남장을 시킨 이유는 뭘까? 황세는 왜 의미없이 죽었을까?

가야는 뛰어난 철기 문화를 가졌는데도 왜 황세는 약하게 표현되었을까?

미랑이는 황세 바위 전설이 사랑을 너무 쉽게 다루는 데, 그리고 가야가 약하게 표현되었다는 데에 의문을 품습니다. 마침 선생님으로부터 가야 역사 보고서를 써오라는 특별 과제를 받고 바로 '황세 바위 전설'을 주제로 탐구를 시작합니다.

 

독특한 관점으로 역사 유적을 바라보고 역사에 흥미를 가진 미랑이가 참 대단해 보입니다.

무엇이든 관심이 있어야 탐구할 마음이 생긴다는, 참으로 기본적인 원리를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네요.

미랑이의 끈기 있는 탐구로 다시 태어날 황세 바위 전설이 참으로 기대되는 와중에,

미랑이와 황지후 사이에 여주라는 떨떠름한 인물이 끼어드네요.

순조로운 첫사랑은 좀 재미가 없나요? ^^

어린 시절부터 지후의 친구였다는 여주는 방황하는 청소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헤쳐나가야 할 텐데, 미랑이에게는 좀 헤쳐나가기 어려운 관문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첫사랑 탐구하기]는 김해 황세 바위 전설을 매개로 해서 가야 역사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고, 더불어 사춘기 청소년들의 사랑과 우정을 재미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동화라는 장치는 역사 속 인물을 실제로 만나본다면 어떨까, 하는 판타지도 자연스럽게 해소시켜 줄 수 있습니다. 쑥 튀어나와 내 손을 잡는 가야 여전사의 손에 이끌려 새로운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오래간만에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동화 속 이야기에 푹 빠져볼 수 있었답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툭 건드려주고 사춘기에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들을 이렇게 상상과 역사 이야기로 버무려 놓으니 아이들이 이 책을 후루룩 읽어낼 것 같아요.

시크한 척, 무심한 척 책을 읽고 난 우리 딸아이는 겉으론 표정에 변화가 없네요.

이제 마음 속에서 이 책 이야기가 한껏 발효되고 무르익고 나면 슬슬 아이의 간지러운 곳을 긁어보려고요.

새침하게 첫사랑 이야기만 나와도 "그런 거 몰라."하고 말을 딱 끊던 아이인데, 조금은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겠죠.

엄마인 저는 우리 아이의 첫사랑 대상을 알고 있는데~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데~

 

더불어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탐구 동기를 일깨워주는 것이 현장체험에서 곧바로 생기는 호기심이라는 것도 배워갑니다. 집이 부산이니 당장 김해로 달려가 동네 놀이터처럼 친근한 거리에 있는 김해 박물관, 대성동 박물관을 거쳐 봉황대, 김수로왕릉까지 쭉 구경하고 싶네요. 해마다 치러지는 가야 문화 축제도 참여해야겠구요. 벌써 마음이 들썩들썩 바빠지네요.

좋은 책 한 권은 이렇게 몸과 마음을 바쁘게 만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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