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전 박헌영
박종성 지음 / 인간사랑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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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시대에 혁명을 꿈꾼 자 [평전 박헌영]

 

 

 

 

인상적인 표지다.

저자 방종성이 직접 그린 인물화라고 한다.

혁명가의 전신을 바로 보려 애쓰다 다 그리지 못하고 옆얼굴 아니면 눈가 표정 쯤 그리려다 멀어져갔다는 말로 저자는 겸손을 표한다.

사실 박헌영은 영화에 등장했던 '박열' 만큼이나 생소한 인물이다.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우리 역사의 어느 틈에 끼워넣어야 하는 인물인가?

 

중간쯤 읽어가다 보면 박헌영을 연구했던 이들의 평가 중에 

 

"만일 김일성이 아니라 박헌영이 북의 지도자가 되었다면 20세기 후반의 우리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박헌영의 복권을 제기하는 것은 현존하는 평양의 정치체제를 전면 부정하는 것과 곧장 이어지지 않는다. 그 둘은 맥락이 다른 문제이거니와 엄연히 60년 넘게 전개되어 온 역사적 과정을 그 누구도 지워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라고 평한 손석춘의 말이 나온다.

 

김일성에 견줄 만한 '혁명가'로 박헌영을 꼽는다면, 그는 우리의 근대사에 있어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인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주의 체제에 경도된 이가 아니었기에 막스나 엥겔스의 이름만 들어도 눈살을 찌푸렸던 나다.

그러나 주의는 주의고 역사는 역사다.

주의와 역사를 하나로 품기에는 배움이 너무도 짧아 외면하려 했던 내 저장고에 박헌영 하나를 더 채운다고  머리가 터지지는 않겠지.

'평전'이라 하여 위인전과 비슷한 전개를 기대하지는 말라.

평전과 위인전은 다르고, 특히나 박종성의 평전은 시대별 종단보다 주제별 횡단에 주력한 것이므로 색다른 읽기를 제공한다.

 

 

 

1900년에 태어나 56년(그의 생몰 연도는 정확치 않음)을 살다간 그의 삶의 여정을 저자는 전기적 방법으로 압축, 재구성하는 작업을 했다.

박헌영을 대중적, 국제적 인물로 인식, 확장하는 사회과학적 노력은 저자가 평전을 서술한 형식으로 드러난다.

사랑-투옥-고문-유학-이별-재건-월북-전쟁-재판-숙청이라는 주제로 주르륵 그의 삶을 꿰어놓았다.

 

시간적 순서, 혹은 시대별 서술에 따르지 않아 뒤죽박죽이지 않을까, 혼란스럽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책을 읽어가면서 차츰 해소된다.

주제별로 한 인물을 파악하는 것도 나름 매력 있고 재미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인문학자임에도 문학적 소양을 드러내는 작가의 글쓰기 방식에 조금은 익숙해져서인지(^^) 가끔씩은 긴 호흡의 글에 중독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암울한 시대에 혁명을 꿈꾸었지만 끝내 혁명에서 멀어지고 말았다.-32

 

저자는 박헌영 연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맨 앞에 내놓는다.

 

출생과 부친에 대한 존재론적 강박, 여인들과의 이어지는 인연과 '문학'의 힘, 사랑의 굴절과 좌절, 자녀의 출산과 가족구성의 지속적 단절, 정치적 '글스기'와 '말하기'의 편차, 혁명 동지들과의 동행과 이별, 거침없는 저항과 도전의 역정, 월북과 전쟁의 파노라마, 재판과 죽음의 곡절 등 글감의 꼭지들이야 그의 삶의 마디만큼 간단치가 않다. 아울러 그의 삶에 대하여 느끼는 부담 역시 단순한 의지만으론 깨기 어렵다./

첨예한 진영논리에 그를 다시 '가두려 함'은 도그마의 경직성에 물든 혁명가의 만년을 지속적으로 방임하거나 때로 난자하려는 정치적 편의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의 미움을 언어와 노선으로 은폐하는 작업도 속절없이 되풀이할 일은 아니다.-114

 

정치적인 길을 가면서도 '문학'에 기대었던 박헌영의 모습은 의외다.

'자조 섞인 한탄' 일 망정, 동시대 민중들의 갈등과 대립을 문학적 상상에 녹여내고 시름을 흘려보낼 요량으로 문학을 도구로 사용했던 것이었다.

 

 

일본에서 사회파 추리의 대명사로 불리던 마쓰모토 세이초는 보편적인 테마로 인간을 묘사하고 역사와 사회의 어둠을 파헤치려 했다. "내용은 시대를 반영하고, 그 사상의 빛을 받아 변모해 간다."라는 신념으로 작품을 써나갔던 그는 픽션, 논픽션, 평전, 고대사, 현대사 등으로 창작 세계를 확장시켰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한때 군인으로 종군했던 경험을 살려 <북의 시인 임화>를 썼다.

 

박헌영을 읽다 마쓰모토 세이초를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의외의 접점이 생겼네~

춘원, 횡보, 임화에서 마쓰모토 세이초로 이어지는 시대의 질곡을 더듬으면 박헌영의 생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강점기 조선의 폭력통치, 해방공간의 미군정체제, 김일성체제와의 중첩적인 경쟁을 박헌영의 정치활동을 제한한 세 개의 꼭짓점으로 놓는다하니, 대체적인 시대 흐름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시대의 흐름 속 한 인물을 여러 관점에서 파헤치려는 저자의 노력을 높이 산다.

 

 

6차례에 걸친 박헌영의 월북을 한 눈에 보기 쉽게 정리한 도표다.

월북이란 단어를 편협한 시각에서 보지 않는다면, 민중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는 혁명을 꿈꾸었던 한 이상주의자의 도저하고 '결기'에 찬 시도로 볼 수 있겠다.

외세와의 긴밀한 연계 없이는 뿌리 내리기 힘든 과업, 계쏙 잃어야 얻을 수 있는 파워 폴리틱스 앞에서 깊고 무거운 번뇌를 거듭했던 지도자의 발자취로 읽으라 권한다.

 

 

정녕 사회혁명을 꿈꾸었지만 홀로 서두르기만 하던 조급한 모더니스트

간단없는 역사단절에도 계급전복과 민족해방을 도모하려 한 애끓는 로맨티시스트-469

 

저자는 인간 박헌영의 삶을 하나의 테두리 속에 가두는 것을 무엇보다 꺼리면서도 극찬과 혹평의 사이에서 그를 건져내는 것이 우선이라 하며 진보와 보수의 다툼 속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그' 만한 사람이 또 있었는지, 그런 인물이 지금도 있는지.

거친 광야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없는 나라에 '그'처럼 나설 자 있는지를  묻는다.

중국과 미국,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지금의 우리나라의 상황을 지켜보며 답답한 가슴을 하루에도 몇 번씩 치는 우리다.

'초인'을 기대하는 바, 우리의 역사 속에서 어떤 이가 '초인'에 가까웠는지 다시 한 번 되짚어보게 되는 시점이다.

 

 

 

 

#평전 박헌영, #인간사랑,#투쟁,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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