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혀 -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권정현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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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의 허허벌판, 꿈결같은 생과 사의 군무[칼과 혀]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겪어보지 않더라도 총탄이 난무하고 폭탄이 펑펑 터지는 살벌함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순 있다.

기록물이나 그 시대의 참상이 담긴 소설, 영화 등의 매체를 통해 접하는 것인데, 그것들은 뭐랄까, 내내 살풍경하고 건조한 바람 맛이 난다.

간혹 전우애나 울컥하는 충성심, 안타까운 연인들의 이별 등을 통해 눈시울을 붉히는 적은 있으나 오감 모두를 찌릿하게 건드리지는 못한다.

[칼과 혀]는 그러니까, 흑백의 무성영화에 비로소 색과 소리를 입힌 전쟁 이야기라고나 할까.

 

한중일 삼국이 지리멸렬하게 얽혀 돌아가던 동아시아의 어두운 시절, 일본은 만주에 괴뢰국을 세운다.

1945년 일제 패망 직전의 만주, 이제 곧 있으면 스러져 없어져 버릴 그 허망한 나라에서 맞닥뜨린 세 인물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비린내 풍기는 도마 위에서 생애 첫날을 맞이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요리사가 된 광둥요리사 첸

제 19대 관동군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 그는 거대한 제국의 허울 좋은 주인이자 공포와 비명을 감춘 천수각의 성주이자 매끼 맛깔나는 음식에 목말라하는 요리애호가이자 예술비평가라 스스로를 평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리는 만주에서 요리사와 손님으로 만난 이 둘은 누가 봐도 갑과 을의 관계이지만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전쟁터에서는 갑과 을이지만 요리를 매개로 만났을 때는 '칼과 혀'의 불꽃 튀는 접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에 있어서는 무능하며 당장 민간인으로 전역시켜야 옳은 이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 다른 이름으로 '모리'는 칼을 차고 있지만 뜻밖에 요리 앞에서는 한없이 연약한 인물로 자신의 껍데기를 벗어놓는다.

황궁 요리사가 되겠다며 어슬렁거리던 첸은 모리 앞에 끌려오고 목숨을 건 미션을 완성시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다.1분 안에 불 사용 없이 오로지 칼의 실력만으로 모리의 입맛을 충족시킬 것. 첸은 '송이'를 구해 와서 모리의 혀를 녹인다.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인물은 청진이 고향으로 위안부가 되었다 풀려나 첸의 아내가 된 길순이다.

 

 

'길순'이라는 이름의 여인이 읊조리는 독백이 작고 휑한 회오리바람을 몰고 온다.

 

첸은 광둥을 지키기 위해 조직된 지하 자경단원이었어. (...)전쟁이 나면 멍청한 남자들일수록 으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정의를 짊어지고 불속으로 뛰어들길 주저하지 않잖아? 그건 때가 되면 규칙적으로 여자들에게로 찾아오는 이름 모를 일본 병정들이나, 남부식 권총 하나로 세상의 부조리를 끝낼 수 있다고 믿는 내 오빠나, 도마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첸이나 모두 매한가지야. 그래서 난 사내들을 믿지 않아.-92

 

살육의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매일 아침마다 오늘 먹을 것을 생각하거나 중국 황제가 회갑연에서 먹었다던 만한취엔시를 재현해 내라거나 하는 모리의 미식 취미는 바람만 불면 흩어져 버릴 봄날의 벚꽃잎처럼 허무하기 그지 없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그래도, 요리를 맛보고 기대하고 요리를 논하는 과정에서 칼과 혀의 날카로움이 만나 그 예리함을 중화시키려는 여림이 엿보인다.

요리와 모리 살해가 주요 이슈인 만큼 이 셋이 이루어내는 긴장감과 중간중간 등장하는 요리에 대한 묘사가 이 책의 백미다.

 

아쉽지만 고추탕은 더 매웠어야 한다. 무언가를 입에 넣어 씹는 순간은 인간이 자신의 생 앞에서 가장 진실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매운맛을 견뎌낸 소고기들이 혀에 부드럽게 녹을 때 비로소 고통조차 달콤해진다. 적들이 넘실거리며 국경을 넘어와 온몸이 무거운 사슬갑옷을 입은 것처럼 거북해질 때도 나는 한 끼의 식사 앞에서 여유를 부릴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다리를 베고 누워 먹던 분고규의 평화를 아직도 기억한다.-122

 

첸과 모리와 길순. 그들은 원래 목숨을 거둬야 할 사이지만 칼로 혹은 다른 무엇으로 서로의 혀를 잘라낸다.

요리를 맛보지 못하지만 말은 할 수 있도록...

맛보는 것과 말하는 것 중 하나를 거두어야 한다면 무엇을 거두게 할 것인가.

요리사임에도 불구하고 첸은 맛보는 것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말이 닿지 못해서 벌어진 참혹한 전쟁인데도 결국은 말로 복구해내고 상처를 어루만지고 새로운 세상을 구현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칼과 혀의 강렬한 대비, 혹은 비유 혹은 은유...

그 자리에 무엇을 대신 넣어 해석해야 할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최고의 광동 요리사가 내놓는 음식에도 먹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듯이 이 책의 진가는 한 번, 두 번, 세 번 곱씹으면서 알아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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