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사냥하라[마쉬왕의 딸]

[마쉬왕의 딸]은 2015년에 나왔던 책 [룸]의 후속작인가 싶을 정도로 놀랍게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룸]은 한 남자에게 유괴되어 7년간 세상과 단절된 채 살면서 아들을 낳아 키우다 어렵사리 구출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쉬왕의 딸]은 아마도 자연스레 그 이후를 연상하게 되는 기묘한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진다.
물론 여러 가지 세세한 정황은 다르지만 큰 줄기는 비슷하다.
한 남자가 어린 여자아이를 유괴했다. 딸아이를 하나 낳아 키운다. 엄마와 아이가 탈출한다.
아빠는 동화(그림 동화 혹은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마쉬왕'같이 잔혹하다 해서 마쉬왕이라 불린다.
세상의 온갖 관심을 다 받고, 아이의 외조부모는 사연을 팔아 돈벌이를 한다.
외조부모도, 엄마도 죽었다.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자라게 된 아이-주인공은 자라서 결혼을 한다.
딸아이 둘을 낳는다.
그러던 어느날,
"마쉬왕"이 감옥에서 두 교도관을 죽이고 탈옥한다.
"마쉬왕의 딸" 헬레나는 남편과 자신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버지를 찾기로 결심한다.
도심과 떨어진 숲에 살면서 열매로 잼을 만들어 팔던 헬레나는 아버지의 탈옥 소식을 듣고 고민에 빠진다.
아직 남편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은 마쉬왕의 행방을 마쉬왕의 딸에게 묻는다.
과거 아버지의 마수에서 벗어나 탈출을 감행하고 외조부모와 함께 산 뒤로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아버지였는데.
총을 챙겨 들고 마쉬왕을 찾으러 떠나는 마쉬왕의 딸은 동화 속 이야기의 주인공과 참 많이도 닮았다.
이집트 공주였던 어머니와 바이킹족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마쉬왕의 딸은 "슈렉"의 피오나처럼 낮과 밤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낮에는
아름다운 여자아이였다가 밤에는 개구리로 변신한다. 성격도 생긴 것과 같이 극과 극을 달리며 홱홱 바뀌는지라 한 몸에 두 개의 성격이 번갈아
드나든다.
동화 속에서 선과 악의 묘한 공존을 보여주는 마쉬왕의 딸은 현실에서 '아버지'라는 존재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어쩔 줄 몰라하는 헬레나로
분한다.
이야기는 현실과 과거를 자주 왔다갔다 하는데, 총을 들고 사냥꾼이 되어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현실의 헬레나는 매 순간순간 숲속 외딴
오두막에서 함께 살았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억을 떠올린다.
주변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은 채 반사회적으로 살았던 그 시절의 아버지를 헬레나는 '나르시시스트'로 기억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안하무인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미화되어서였는지, 아직 선과 악의 비교대상이 없었기 때문인지, 헬레나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손재주 많은 예술인이었고
엄격하지만 이야기로 상상력을 채워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사냥꾼의 손에 잡힌 토끼처럼 달아날 생각조차 못하던 어머니가 가여워보인다는 생각이 들 즈음 나타난 스노모빌의 사나이 덕에 세상을
향한 창을 활짝 열게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납치했고 강간했으며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마쉬왕의 딸답게 호전적인 의지를 불태우며
적극적으로 탈출한다.
어린 소녀를 납치해 14년 동안 감금한 악명 높은 범죄자, 제이콥 홀브룩, 마쉬왕은 이제 자신만 바라보게 키웠던 마쉬왕의 딸에게
사냥당한다.

그 괴물은 먹을 때마다 몸집이 커졌고, 그래서 배부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괴물을 죽이지 않았떠라면, 온 마을이 파멸했을
것이다.
나는 방아쇠를 내렸다.
아버지는 웃었다.
"너는 날 쏠 수 없다, 반지이-아가와아테야아.(작은 그림자)"-367
결말은 처음부터 나 있는 이야기 구조였기에 이렇게 끝날 줄 알고는 있었지만
아버지와 딸의 대결이라는, 쉽사리 상상이 가지 않는 심리싸움이었기에
그만이 가지는 스릴이 대단했다.
사랑하지만 원망할 수밖에 없는, 애증의 대결 앞에 숨죽이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찌 보면 아주 얇은 종이 한 장의 차이로 선이 이기는 형국이 되고 말았지만
약간만 비껴 갔더라면 결말은 아주 다른 방향으로 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 순간에 어느 쪽을 택하게 될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만드는 과정이 좀 더 세밀하게 그려졌더라면 더 심장 쫄깃했을 이야기다.
그림 동화든 안데르센 동화든,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해피엔딩만을 접해왔기에 이렇게 뒤틀리고 음울한 동화에는 적응이 잘 안된다. 오래오래
행복하게~의 과정을 너무 간단한 공식처럼 치부해버렸던 습관이 오히려 새로운 동화에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마쉬왕의 딸 모티브를 차용해서 영리하게 잘 짜낸 이야기인 것 같다.
#마쉬왕의딸,#북폴리오,#심리스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