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마술사
데이비드 피셔 지음, 전행선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정말 멋진 쇼야![전쟁 마술사]

 

 

 

길고 길었던 추석 연휴 동안 딱 한 편의 영화를 봤다.

제목은 [아이 캔 스피크]

2차 세계 대전의 기억은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만행으로 인해 우리에게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꽃다운 나이에 위안부로 가서 욱일승천기나 일본어로 된 문신 등을 몸에 새겨야 했지만 아픈 기억과 상처는 묻어버리고 시장에서 옷수선 가게를 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던 '나옥분'씨.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고 온 세상에 일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미국 의회에 나아가 증언을 하는데,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말한다. 그래서 처음 입에서 뗀 문장이 바로 '아이 캔 스피크'이다.

한 개인의 슬픈 개인사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그 의미와 무게가 너무 커서 이제는 역사에 쓰여져야 하는 것이다.

실제 있었던 일이기에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믿지 않을 도리가 없고,

위안부 할머니들 한 분 한 분이 살아 있는 증거가 되기에 우리는 그 아픔을 함께 느끼고 공감하며 더 나아가 올바른 역사를 새우기 위해 조금이나마 노력할 수 있다.

 

[전쟁 마술사] 또한 믿을 수 없는 2차 세계 대전 속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것이 놀라운 이유는  실제 히틀러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마술사 '재스퍼 마스캘린'이라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실제 상황이라니, 이 마술 같은 이야기가...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정신병자 같은 히틀러가 연일 승승장구하며 유럽의 여러 나라를 초토화시키고 있을 때,

런던의 인기 마술사 재스퍼 마스켈린은 입대를 자원한다.

190이 넘는 키에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 남성미를 드러내는 갈라진 턱과 짙은 녹색 눈동자.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기교를 가진 그는 일련의 영화를 제작했으며 마술을 사용해 범죄를 해결하는 형사 역으로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쇼 비즈니스를 잠시 접어두고 무대 위의 마술 기법을 전쟁에 이용하기 위해 고민한다.

'상상력과 지식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1940년 덩케르크의 함락으로 프랑스가 나치에 항복한다. 서른 여덟의 재스퍼는 마술을 강력한 힘이나 다른 형태로 활용하면 현재의 전투 상황에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우겨 군에 입대한다.

 

자율권만 주신다면, 제가 전장에서 만들어낼 효과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대포도 만들어 낼 수 있고, 유령선이 바다를 항해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드넓은 평원에 군대가 꽉 차게 할 수도 있고, 전투기가 눈에 안 보이게 할 수도 있고, 심지어 수백 미터 상공에 떠가는 구름에 히틀러가 화장실에 앉아 힘을 주고 있는 모습을 투사시킬 수도 있습니다.-22

 

대대로 내려오는 마술사 집안의 아우라가 그에게 호기를 부려 놓은 것인지, 그의 호언장담은 대체로 허황되게 들렸지만, 그는 그것을 진짜로 실현해 냈다!!

제프리 바커스 소령 휘하에 배치된 재스퍼의 군대는 '위장술 실험단'으로 지정되어 중동 지역에서 활약한다. 광학기술, 응용역학, 전자공학에서부터 모조, 위조 등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전문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었던 재스퍼는 그 기술을 십분 활용해 장군들이 요구하는 전술을 이행해 나간다.

낙타 똥과 우스터 소스를 이용해 페인트를 개발하여 사막을 지나가는 탱크를 위장시키고, 마술처럼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옮겨놓기도 한다.

'소용돌이치는 빛의 스프레이'라는 마술 거울은 마침내 영국의 공습 방어 시스템에서 중요한 무기가 되었다. 적기의 조종사가 섬광에 맞아 방향을 잃고 기체의 통제력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원리였다.

마술 기법이 전쟁에 적용될 수 있음을 입증했지만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바로 전쟁의 광기.

마술단원 녹스의 죽음으로 패닉에 빠진 그는 한동안 주춤했으나 몽고메리 장군이 전쟁 역사상 가장 대단한 마술 공연을 펼쳐 보이라고 요구하면서 중심 무대로 나아가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불굴의, 전승을 올린, 참을 수 없는' 등의 단어로 묘사되는 몽고메리는 재스퍼의 도움으로 수많은 팬저군단 병사들을 무찌르고 승기를 잡았다.

 

이 수많은 재스퍼의 업적들은 이야기로 읽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부분이 많았다.

이 장면들이 실제 눈앞에 펼쳐진다면...정말 멋진 쇼야! 라며 브라보를 외칠 텐데.

상상력으로 만들어내기보다는 스펙타클한 영상으로 이야기들을 실감나게 이해하고 싶었다.

전쟁의 광기는 조금 눌러두고 한 사람의 마술사가 자신의 능력과 상상력으로 군대의 열세를 우세 쪽으로 바꾸어 놓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의 모든 행적은 기밀에 속하는 것이라 정보가 많이 공개되지 않았기에 마술단의 놀라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면 가장 먼저 달려가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전쟁의 기억은 아프고 쓰리고 때로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전쟁 마술사'의 기억은 그 아픔들을 쓰다듬어 줄 것만 같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처럼, 전쟁의 포화가 포근포근하고 새하얗고 고소한 향기로 가득한 팝콘으로 화하면서 전쟁의 아픈 기억들을 감싸안아줄 수 있는 새로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현실과 동화의 경계 그 어딘가를 교묘하게 넘나들면서 전쟁마저 유쾌하게 풀어내는 그 기억 한 자락 있으면 아프기만 한 역사는 보드라운 이불에 위안받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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