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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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작별할 수 있음도 큰 축복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오늘 아침에도 초딩 아들 녀석이랑 한 판 했다.

이 녀석의 기다란 손톱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깎아 준다고 했는데

마른 손톱이 틱틱 꺾이는 게 그만 신경을 거스른 모양이다.

말은 안 하지만 표정에 싫은 티가 역력하다.

내민 손을 거두어들이더니 " 안 깎아!" 한다.

나도 그만 뿔이 나서 "그럼 엄마한테 말 걸지 마!" 하고 대꾸한 뒤 입을 다물었다.

옷을 입으려다 여름 옷이라 윗단추까지 안 끼워도 되는데 이상한 고집이 발동한 녀석은 한참을 단추 끼우는 데 용을 쓰더니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도와줄까, 해도 "말 안한다면서!"라며 한껏 삐쳤던 탓에 한사코 거절하던 녀석이 결국은 내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엉뚱한 기싸움에 지친 녀석은 조금 누그러져서 "잘못했어요."했지만 아직 분이 안 풀린 내가 잔소리를 시작하자"다 엄마 때문이잖아. 스트레스 받아!"하며 다시 큰 소리로 대들었다.

지각하기 일보 직전이라 자리를 박차고 학교에 가버린 아들 녀석. 문을 쾅! 닫고 나가는 소리를 들으니 더 화가 진정이 안 되었다.

아침 나절 내내 이 녀석과 나의 대결을 곱씹으며 계속 씩씩거리고 있었다.

'내가 그 때 먼저 "아프게 해서 미안해."라고 살살 달래며 손톱을 깎아주었더라면 괜찮았을까.

아니지, 그래도 조그만 녀석이 엄마한테 아침부터 그렇게 신경질을 팍팍 내면 안 되는 거잖아.

다 엄마 탓이라고 몰아세우다니. 나쁜 녀석.

속으로 몇 번을 궁시렁거리고 또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그래도 학교 다녀오면 녀석도 감정이 누그러져 엄마 보기가 멋쩍을 테지.

그 때는 어떤 표정으로 대해주어야 하나........'

 

마음이 몇 번을 널뛰기를 하던지.

그러다가 프레드릭 베크만의 짤막한 이야기를 손에 들었다.

 

손자의 이름을 남들보다 두 배 더 좋아해서'노아노아'라 부른다는 할아버지가 나왔다.

할아버지는 벤치 아래 활짝 핀 히아신스를 떠올리기도 하고 자신이 평생 좋아했던 수학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언제나 다정하고 자기 편이었던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할아버지의 머릿속은 언제나 하룻밤 새 전보다 작아진다.

그걸 깨닫게 되는 순간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린다.

나이가 들었고 기억력이 흐릿해지고 시공간이 뒤죽박죽되고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아들인지 손자인지 헷갈리고...

그런 할아버지를 지켜보는 사람은 아들 테드가 되기도 했다가 어린 손자 노아가 되기도 하고 어느새 장성한 청년 노아가 되기도 한다.

분명 되풀이 되는 시간의 테두리 안에서 할아버지는 우울하기도 때론 슬프기도 할 테지만

할아버지가 손자 노아에게 세상 신기한 비밀을 알려주듯 조근조근 건네는 말투는 이상하게도 눈물겹지 않다.

할아버지는 세상의 좋은 것만을 간직하기로 한 사람처럼

끊임없이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재생한다.

할아버지는 기억을 잃어가지만 손자는 그런 할아버지를 지켜 보며 헤어짐을 배워간다.

아직 할아버지와 손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이별을 나눌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그들은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저는 작별인사를 잘 못해요."

"연습할 기회가 많을 거다. 잘하게 될 거야. 네 주변의 어른들은 대부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제대로 작별인사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후회하고 있다고 보면 돼. 우리는 완벽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연습할 거야. 오나벽해지면 네 발은 땅에 닿을 테고, 나는 우주에 있을 테고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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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작별을 연습할 시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데도 어떤 장벽 때문에 그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

얼마나 마음이 무너져 내릴까.

남아 있는 하루하루를 작별의 시간이라 생각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면

할아버지의 말 그대로 남는 후회가 없을 텐데.

 

사랑한다는 말, 더 늦기 전에 전하길 바란다.

이 말은 남들에게 할 것이 아니라 오늘 아침에도 아들 녀석이랑 철없이 싸우고 씩씩거렸던 철없는 엄마인 내게도 큰소리로 전해주어야 한다.

아직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서 그 소중한 시간을 철없이 싸우고 할퀴면서 상처투성이로 덮어버렸던 내가 아닌가.

많이 남아 있는 시간이란 없다.

이 녀석, 하교 후 돌아오면 어떻게 한 번 꼭 안아줘 버려?^^

소중하고 소중해서 손자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불러주던 할아버지처럼

내 아들의 이름도 두 번 세 번 불러줘 버려?^^

 

아름답게 작별할 수 있음도 큰 축복이 될 수 있음을~

현재 누리고 있는 행복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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