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 세트 - 전2권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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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채널러의 속시원한 반란 [보복대행전문 주식회사]

 

 

 

나는 부산에 살고 있는데, 몇 걸음만 나가면 낙동강이 바로 보인다.

부산 안에서도 낙동강이 보이는 이 지역에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이 지역 토박이인 사람 말로는 예전엔 허허벌판 너머로 낙동강이 훤히 보였다 한다.

지금은 높이 솟아오른 아파트며 굽이굽이 휘어져 내려오는 도로 때문에 고층 빌딩 아니고서는 낙동강의 전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자동차나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그 낙동강 주변에 잘 닦인 자전거 도로가 보인다.

평일 한낮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몇 없지만 주말이 되면 드문드문  행과 렬을 이루어 죽 달려나가는 자전거 무리들을 볼 수 있다.

그나마 날이 시원하면 괜찮지만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에 보면 그늘 하나 없는 저 기나긴 길을 땀 뻘뻘 흘리며 다니는 사람들이 안쓰러워 뵌다.

강바람이 분다고는 하지만 맨 몸에 무자비하게 내려꽂히는 햇볕을 어찌 이겨낼 것인가.

강 주변에 자전거 도로가 난 것이 어찌 보면 여가 활용을 위해 좋은 것 같기도 하지만

오직 그 한 가지만으로 자전거 도로의 성공을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특히나 여름철만 되면 올라오는 하천의 썩은 냄새.

이 책에서는 특히나 '녹조라떼'로 형상화해서 그 폐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적폐청산'을 내세우고 있는데 아직까지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을 모르겠다.

이전까지의 치세 동안 쌓인 것이 워낙 많아야지.

이 책이 씌어진 시기가 'm'의 정권 대에 맞물린 것인지

특히 4대 강을 정조준해서 까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 즈음을 겨냥해서 우리 나라가 안고 있는 사회악들을 하나하나 들춰내서 이슈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30대의 식물 교감 채널러이다.

금수저로 태어나 범생이의 길을 걸었지만 중학교 때 집안의 비밀을 알고 나서부터는 은둔형 외톨이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친일파로 행세하며 쌓아온 재산으로 살고 있는 것이 너무나 낯부끄러워서였다.

외아들로서 아버지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물려받은 그는 화천 다목리에서 수목원을 조성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마음이 닿지 않는 사람 앞에서는 극심하게 말을 더듬는 것도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는 꽃집에서 우연히 만난 식물 '백량금'의 도움으로 세상을 염사하는 능력, 즉 식물과 교감하며 채널링하는 법을 터득한다. 그와 가까운 이로는 학교 동창이자 현직 검사인 박태빈과 썸타는 사이인 꽃집 사장 한세은 뿐.

나무들의 힘을 빌려 썩어서 악취를 풍기는 세상을 청소해 나가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그는 보복대행전문 주식회사를 설립한다.

나무들과 공조해서 억울한 사례를 수집하고 보복 여부를 숙고한다. 가진 건 돈과 시간 밖에 없는 이 남자의 통쾌하고 속시원한 보복이 이 책의 묘미다.

고양이 머리에 대못을 박은 남자, 국회의원이라는 감투에 걸맞지 않게 뒤가 구린 놈 들은 물론이고

좀 더 조직적이고 거대한 음모를 꾸민 세력에게도 거침없이 보복한다.

그가 흠모했던 고등학교 때 국사 담당 노정건 선생님이 4대강 사업을 전직 대통령이 주도한 경천동지할 대국민 사기 사업으로 단정하고 있음을 알고 적극 가담한다.

까도 까도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채널러의 보복대행은 흡사 홍길동과도 같아서 유쾌, 상쾌, 통쾌하다.

돈을 숭배하고 권력에 기대어 사람들을 우롱하고 농락하는 나쁜 놈들에게 누가 속시원히 벌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판타지를 식물 채널러는 과감히 실행한다.

그것도 이 세상에서는 어떠한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땅에 깊이 뿌리박힌 채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던 "식물"과의 공조를 통해서 말이다.

식물들은 어떤 근거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드러내는가?

그들이 가진 끝없는, 무한한 "사랑"이 그 근거다.

말없이 이 세상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지만 식물들은 동물적 근성을 드러내며 썩은 내를 풀풀 풍기는 인간들을 향해 조용히 "사랑"을 부르짖는다.

식물 교감 채널러는 그저 보복을 "대행"할 뿐이다.

 

 

 

우리나라에 오래된 나무들도 참 많다.

거수님이라 칭하는 나무들을 한 번쯤 찾아가 둘러보고 싶다.

식물 교감 채널러는 그들을 향해 절을 올린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경외의 빛으로 우러러보기는 하겠지. 1,000년을 넘어 살아가는 동안 이 세상 위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꼴을 보고 속으로 얼마나 혀를 차고 있을 것인가.

 

책 속에서 녹조라떼를 원샷하고 뿌연 강 속으로 앞다투어 뛰어드는 나쁜 놈들을 보며 대신 폭소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일차원적인 보복 구조가 때로는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

 

 

*책 몇 군데에서 "판이하게 다른"이라는 구절이 쓰였는데, 자꾸 신경 쓰인다.

"판이하게"를 "아주"라는 강조의 뜻으로 보아도 될지...고유의 한자어가 가진 뜻이 있는데, '다른'의 뜻을 중첩하여 쓰는 것만 같아서 읽다 멈추고 읽다 멈추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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