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를 보여주마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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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코뿔소를 보여주마]

 

역사 소설을 좋아해서 눈여겨본 작가였다.

<비취록>,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 등의 전작을 통해 만난 적이 있었으므로 새로운 소설 출간 소식에 가슴이 설렜다.

이번 소설은 시대 소설이긴 하지만 아주 오래 전은 아니다.

현대사 속에서 잊혀졌던 사건-샛별회 사건- 하나를 쑥 끄집어 내서 지금의 진실과 마주대하게 한다.

세월호가 인양되면서 묻혔던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했건만 속시원히 드러나는 것은 없다.

지나간 과거 속에서 이런 식으로 가뭇 없이 사라져간 일들은 또한 얼마나 많을 것인가.

답답한 마음을 끌어안고 한숨을 내쉬게 만들지만 이러한 작은 발걸음 하나하나가 모여 흐름을 만들어 낼 것이다.

 

소설은 파격적인 사건을 보여주며 관심을 확 끌어모은다.

'여기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

공안부 검찰 출신의 늙은 변호사 장기국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검찰과 경찰이 합동으로 수사에 매달렸지만 그가 살해되기 직전 모습이 담긴 엽기적인 동영상이 배달된다. 단테의 <신곡>을 모방한 동영상이었다.

피가 튀기거나 잔인한 장면이 직접적으로 담기진 않았지만 기묘한 모습으로 어둑한 곳을 향해 걸어들어가는 모습은 보는 이를 전율시키기에 충분했다.

겔포스를 입에 달고 사는 베테랑 형사 두식과 범죄심리학자 수연, 그리고 어두운 가족사를 짊어진 채 냉혈함으로 똘똘 뭉친 검사 준혁이 이 사건을 파헤친다.

심리학자 수연은 동영상을 보고 이 사건이 한 번에 끝날 일이 아니라 연쇄적으로 발생할 것임을 짚어낸다.

장기국 실종사건은 장기국이 야트막한 산기슭을 베개 삼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됨으로써 살인 사건으로 바뀌었고 뒤이어 두 번째 피해자를 내기에 이른다.

두 번째 피해자에게 이집트 사자의 신 아누비스의 '심장 무게달기' 의식을 거행하는 동영상이 수사팀에 배달되자 이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지고...

두 피해자를 추적하던 중 과거의 '샛별회'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피해자들은 샛별회 사건을 맡은 담당검사, 정치부 기자였던 것이 밝혀진다.

당시의 피의자였던 배종관, 고석만, 손기출...

이들에게는 고춧가루 탄 물 먹이기, 손톱 빼기, 관절 꺾기, 송곳 찌르기 등의 고문이 가해졌고 국가보안법 위반, 반국가단체 구성죄가 씌워졌다. 이들은  교도소에서 자살하고 단식으로 사망하는 등 각기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렇다면 26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당시 샛별회 사건을 조작한 주범들을 처단하고 엽기적인 동영상을 찍은 이들은 누구일까?

복수를 시작하는 이들은 섬뜩하면서도 친절하게도 실마리를 잔뜩 담은 소설을 남긴다.

<코뿔소>, <코뿔소를 위하여>, <코뿔소를 위한 변명>

왜 코뿔소인가?

 

코뿔소는 태어나자마자 뿔이 자라기 시작한다. 코뿔소의 뿔은 죽기 전까지 자라는 걸 멈추지 않는다. 싸우다가 부러져도 다시 돋아나 평생을 자란다. 코뿔소 새끼는 어미의 뿔을 보고 가야 할 곳을 찾는다. 코뿔소는 새끼든 어미든 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간다. -459

 

'침묵 당하는 모든 진실은 독이 된다.'라는 니체의 말이 소설 곳곳에서 삐죽 얼굴을 내민다.

수사팀은 범인을 찾아내지만 잡을 수는 없다.

 

이들을 잡을 명분 또한 수사팀의 내부에서 단단하게 자리잡지 못했다.

흐지부지하게 사건을 덮어버리는 흐름 속에 몸을 내맡기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을 밝히려는 움직임은 더욱 크게 꿈틀거린다.

그날의 진실은 표면상 덮여버리긴 했지만 완전히 봉쇄된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작은 움직임으로 꿈틀거리며 기어나와 세상에 드러나게 되리라.

소설 속 '샛별회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바깥으로 나와 알려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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